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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와 전쟁보도 연구
김창룡 외 지음 / 한국언론재단 / 200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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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 전쟁보도 연구』는 미국의 9.11테러 직후부터 9월 17일까지 5일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의 보도내용과 9월 12일부터 9월 14일까지 3일간 미국의 <뉴욕타임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내용을 비교 분석한 논문이다. 각주, 판권까지 포함해 140쪽의 적은 분량이었지만 그라나다 침공부터 이라크 침공까지 전시 미군의 언론통제전략에 대해 비교적 세세하게 다루고 있는 논문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논문)이 출간된 것이 2001년 12월의 일이고, 비슷한 시기 한국언론재단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이 논문을 접하고 한국 언론(특히 신문)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던 기억이 있다.
읽은지 7년이나 지난 책을 지금 리뷰하는 이유
벌써 7년이나 흐른 시점에서 이 책을 다시 펼쳐보게 된 까닭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 논문에서 연구한 4개사 중 <한겨레>를 제외한 나머지 3사가 MB정부 아래 외국의 거대자본까지 끌어들여 방송 진출을 꿈꾸고 있는 현실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공격을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모습은 과연 그때보다 얼마나 나아졌을지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전쟁 중이다. 효율적인 전쟁기계를 갖춘 폭력조직(국가)과 그렇지 못한 폭력조직간의 대결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것은 전쟁이 아니다. 아직 지상군이 투입되기도 전인데 팔레스타인 사상자가 2,500명인데, 이스라엘 병사는 한 명 죽었다고 한다. 과연 우리 언론은 이런 사실을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또 하나는 바로 얼마전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졌을 때의 언론이 보여준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다. 비자금사건이 터진 뒤 참여연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언론감시단체에 의해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각종 언론들이 회장님의 안위를 염려하는 논설과 기사를 연일 쏟아내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한국의 언론을 하이에나에 빗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언론을 바라보는 관점은 이제까지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측면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왔다. MB정부의 출범 이래 한국 사회는 언론이 실은 이윤을 내야만 하는 ‘미디어산업’이라는 - 정확하게는 미디어산업 중 일부분이라는 - 새로운 사실을 깨우치는 중이다. MB정부 들어 유익한 깨우침을 여럿 얻고 있는데 이것도 그 중 하나다.
거대한 침묵 속에 압살당하는 사람들
: 문타자르 알-자이디 기자가 구두를 집어던진 이유
이 책은 김창룡 교수가 국내언론을 분석하고, 장호순 교수가 미국과 영국의 2개 신문을 분석, 최효찬 경향신문 기자가 ‘테러저널리즘’에 대해 소개하는 3개의 장으로 구분된다. 김창룡 교수는 베트남전 당시 전투에서 이기고 안방에서의 전쟁에서 졌다고 판단하고 있는 미국 군사당국의 전시 언론통제 전략을 분석하는 것으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다. 그라나다와 파나마 침공 당시 언론인들은 현장에 접근할 수조차 없었고, 이 같은 보도통제는 이후 걸프전까지 지속되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5년 만에 이라크에서만 적어도 100만 명이 죽고, 400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자 수가 400만에서 600만으로 추산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것을 전쟁범죄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언론의 거대한 침묵 속에 학살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다. 우리는 한 이라크 신문기자가 집어던진 신발에 환호했지만 오죽하면 기자라는, 냉정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직업을 가진 이가 일국의 대통령에게 신발까지 집어던졌을까?
이 책의 본격적인 부분은 9.11테러를 보도한 국내 언론의 문제를 1. 공정성, 2. 정확성, 3. 선정성 그리고 이 셋을 비교․종합하여 분석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보도의 공정성에 가장 문제가 있는 신문으로는 <동아일보>가 첫손에 꼽혔다. 특히 <동아일보>는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시각으로 미국의 테러사건을 보도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9.11테러 사건과 잔인한 참상에 대해서는 보도하면서도 그 같은 사태가 발생한 원인이나 배경에 대한 보도는 찾아볼 수 없고, 마치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줬다는 것이다. 또 CNN보도를 그대로 옮겨 전달하는 것 같은 자세는 당시 독자투고에서까지 비판받고 있다.
겉으로는 정론지, 속으로는 옐로우페이퍼
기사의 정확성에서 가장 큰 문제를 노출시킨 신문은 <조선일보>였다. 5일 동안 게재된 기사 가운데 무려 15건의 기사가 정확성이 결여된 보도로 미국 언론보다 앞서 호들갑을 떨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인 것이 테러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조사된 바에 따르면 사망자수는 공식적으로 3,050명이며 실종자를 포함해도 3,500명인데 <조선일보>는 다른 언론들과 달리 ‘1만 명 이상’이라고 확정하듯 보도했다. 첫날 <한겨레>는 수천 명으로 추정하다가 며칠 지난 뒤엔 1만 명 대열에 동참하기도 했다.
<중앙일보>의 경우엔 금방이라도 미국이 보복공격에 나서야 할 것처럼 지나치게 앞서나갔는데, 테러 3일째인 14일자부터 ‘공격 목표 잡았다… D데이만 남아’, ‘미 보복공격 임박’, ‘미 보복 초읽기’, ‘미군 최고비상령… 이르면 주말공격’, ‘미 보복공격 다가왔다’ 등 제목만 보면 도리어 한국 언론들이 나서서 왜 보복공격에 나서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형국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조중동> 3개 신문사는 모두 권위 있는 정론지를 표방하고 있는 신문이지만 선정성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대중지(옐로우페이퍼)들과 쌍벽을 이룬다. 9.11테러 직후 노스트라나무스의 괴담을 언론이 앞장서서 게재하는 등 흥미위주로 다가선 것은 둘째고, 테러의 잔인한 광경을 여과없이 생생하게 보도하는 태도 등에서 이들 메이저 3개 신문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이외에도 <동아일보>는 CNN이 보도한 기사를 자사 기자의 이름으로 보도했다가 나중에 이것이 오보로 밝혀지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월트디즈니와 글로벌 미디어산업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를 분석한 장호순 교수는 이 두 신문이 비교적 공정하고 차분하게 보도에 임했음을 밝히고 있다.
두 신문보도의 전체적인 특징은 뉴욕, 워싱턴, 펜실베니아 3개 지역에서 수천 명이 동시에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확인된 사실을 근거로 기사화했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경우는 테러 사건 자체에 대한 세밀한 소개보다는 테러 사건이 미칠 경제적 여파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두 신문 모두 테러현장의 잔혹한 장면이나 희생자 유족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신 충격과 고통을 극복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에 보도의 비중을 두었다. 책임자 처벌이나 피해에 대한 보상문제 등은 이 기간 동안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본문 41-42쪽>
사람들은 ‘월트디즈니’하면 먼저 미키마우스와 디즈니랜드 같은 것을 먼저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월트디즈니’는 지난 세기 말을 거치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성공을 거둔 글로벌 미디어업체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변화가 빠르고, 성공과 실패가 극명하게 갈리는 분야가 미디어산업 분야이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1998년 매출 기준 상위 3대 기업 중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월트디즈니’ 하나뿐이다.
전통적인 미디어기업들은 모두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었으나 월트디즈니만큼은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고, 살아남았다. 특히 신문, 출판이라는 올드 미디어는 ‘석탄산업’처럼 사양산업이 될 것이라는 자조적인 말도 나오고 있다. 작은 프로덕션 업체로 출발했던 월트디즈니는 M&A와 자기 영역 파괴를 통해 세계 최대의 글로벌미디어 기업 중 첫 손에 꼽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날로 영향력이 쇠락해가고 있는 <조중동>을 비롯해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MBC조차도 벤치마킹할 수만 있다면 본받고 싶은 기업 중 하나가 월트디즈니일 것이다.
<조중동>과 같은 활자매체들은 물론 기존의 미디어산업 중 비교적 호황을 누리는 것으로 알려져왔던 방송산업 역시 급변하는 미디어환경 속에서 산업적으로 위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9.11테러 직후 국내언론들의 보도태도를 문제 삼았지만, 이들 언론사들의 정치적 태도의 문제에만 주목하지 않고, 실제 산업의 규모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들 언론사들의 규모로는 세계적 미디어 기업의 보도를 인용 보도하는 수준을 넘어서긴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들이 현재 우리 언론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조중동>이 방송진출에 목을 매는 이유
잘 알려진 것처럼 <조선일보>가 창간 이후 계속해서 라이벌 신문이었던 <동아일보>를 결정적으로 넘어선 것은 80년 광주 이후 들어선 전두환 정권 시기였다. 전두환 정권은 언론통폐합 과정을 통해 언론에 재갈을 물렸지만 산업적인 측면으로만 보자면 ‘1도 1사’와 같은 언론 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언론사들은 경쟁 없이 광고를 수주할 수 있는 최대 호황을 누렸다. 바로 그 같은 시기에 <조선일보>가 현재와 같은 위상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국내 여론 시장은 뉴미디어에 수요를 빼앗겨 규모가 축소된 반면에 업체들은 대폭 늘어났다. 새로운 수익모델은 창출되지 못했기 때문에 광고에 목을 매야 하는 언론기업들은 이윤을 극대화할 수 없었다.
<조중동>이 방송진출에 목을 매는 이유는 현 시점에서 냉정하게 말해 언론사의 영향력 확대라는 정치적 이유보다는 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보는 것이 좀더 정확할 것이다. <조중동>이 국내 신문시장에서는 과독점 상황일지 몰라도 거대미디어 재벌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디어산업에 대한 다국적 자본(혹은 거대자본)의 참여가 허용된 이후에 가장 크게 문제가 된 것은 이들의 방송 지분 소유가 그 자체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서 문제가 되었던 것보다는 상업성과 선정성 문제였다. 1997년에 제작된 007시리즈 제18탄 <네버다이>에 나타났던 글로벌미디어의 사주가 전쟁을 일으키려 했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선정성과 상업성을 통한 광고 전쟁에서 승리하려 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조중동>의 방송진출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고, 방송 소비자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리모콘을 들고 이들이 벌이는 방송경쟁을 즐기면 될 터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SBS의 창사로 주요 방송사의 기술직, 방송인들의 주가가 뛰었던 것처럼 이들에게도 몸값 인상의 새로운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송개방의 결과는 그렇게 낙관적인 것이 아니다. 단적으로 지역의 신문사들이나 지역민방의 경우를 살펴보면 된다.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은 즐거운 권리이긴 하지만 공짜가 아니다. 최악의 경우 방송에 참여한 미디어 재벌들의 연쇄도산 가능성도 충분하다.
일부 신문들은 케이블방송을 통해 이미 방송 산업에 진출해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미디어 산업은 물론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사회 고유 영역의 파괴를 통한 새로운 융합이다. 규모의 경제학이란 이마트와 구멍가게, 재래시장의 것만이 아니라 미디어산업 영역에서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이미 포화상태인 방송에 이들의 참여를 허용할 경우 벌어진 위험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둘째 이들 거대 자본의 참여를 허용할 경우 과거 이들이 신문을 운영하듯 방송을 운영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확보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조중동>이 외국계 거대자본까지 끌어들여서 방송산업에 진출하려 하는 이때, 어째서 이토록 냉정하게 말할 수 있는가?라고 도리어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첫째. 저들은 글로벌자본의 투여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미국의 시각으로 보도를 해왔고, 둘째. 글로벌 자본이 투자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한국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에 신경 쓰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윤을 더 많이 낼 것이냐를 신경 쓸 것이기 때문에, 더 나아가 마지막으로 어차피 망할 기업은 망하게 하라는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핵심인데, 그런 차원에서라도 더욱 냉정하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냉정해지기 힘든 까닭은 이번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당시 1만여 시위대의 목소리를 삭제하고 방송하는 공영방송이 있기 때문이다. 상식 이상의 도덕이나 윤리를 보여달라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인 수준만이라도 지켜주면 좋으련만 현실은 언제나 상식 이하다.
* 참고로 이 책은 내용은 좋지만 너무 비싸다. 언론재단은 가격을 현실적으로 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