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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 疏序(소서)
●第6門(제6문) 旨趣玄微(지취현미)
其爲旨也(기위지야)여 冥真體於萬化之域(명진체어만화지역)하고
顯德相於重玄之門(현덕상어중현지문)이로다
用繁興以恒如(용번흥이항여)하고
智周鑑而常靜(지주감이상정)이로다
眞妄交徹(진망교철)이라 卽凡心而見佛心(즉범심이견불심)이요
事理雙修(사리쌍수)라 依本智而求佛智(의본지이구불지)로다
理隨事變(이수사변)이라 則一多緣起之無邊(즉일다연기지무변)이요
事得理融(사득이융)이라 則千差涉入而無礙(즉천차섭입이무애)로다
故得十身歷然而相作(고득십신역연이상작)하고 六位不亂而更收(육위불란이갱수)로다
廣大即入於無間(광대즉입어무간)이요 塵毛包納而無外(진모포납이무외)로다
炳然齊現(병연제현)은 猶彼芥瓶(유피개병)이요
具足同時(구족동시)는 方之海滴(방지해적)이로다
一多無礙(일다무애)는 等虛室之千燈(등허실지천등)이요
隱顯俱成(은현구성)은 似秋空之片月(사추공지편월)이로다
重重交映(중중교영)은 若帝網之垂珠(약제망지수주)요
念念圓融(염념원융)은 類夕夢之經世(유석몽지경세)로다
法門重疊(법문중첩)은 若雲起長空(약운기장공)이요
萬行芬披(만행분피)는 比華開錦上(비화개금상)이로다
그 종지(宗旨)가 됨이여, 참다운 본체는 만 가지 변화의 영역에 가만히 부합하고
덕의 모습[相]은 깊고 현묘한 문에 드러났도다.
작용은 번다하게 일어나지만 항상 여여하고
지혜는 두루 비추지만 항상 고요하도다.
진(眞)과 망(妄)이 서로 사무치니 범부의 마음에 나아가서 부처의 마음을 보도다.
사(事)와 이(理)를 쌍으로 닦으니 근본지혜에 의지하여 부처의 지혜를 구하도다.
이(理)는 사(事)를 따라 변함이라 곧 하나와 많음이 연기함이 무변함이요
사(事)는 이(理)를 얻어서 원융함이라 곧 천 가지 차별에 들어가도 걸림이 없도다.
그러므로 열 가지 몸이 분명하고 또렷하나 서로서로 이루고, 여섯 가지 지위가 어지럽지 아니하나 새롭게 거두어 정리하였도다.
광대함은 곧 사이가 없는 데까지 들어가고, 먼지와 터럭은 밖이 없는 것까지 에워쌌도다.
환하게 함께 다 나타남은 마치 겨자씨를 담은 유리병과 같고
동시에 구족한 것은 바닷물의 물방울과 같도다.
하나와 많음이 걸림이 없는 것은 텅 빈 방에 천 개의 등불을 밝힘과 같도다.
숨고 나타남이 함께 성립됨은 가을 밤하늘의 반달과 같도다.
거듭거듭 서로 비춤은 제석천그물에 드리운 구슬과 같도다.
순간순간에도 원융함은 저녁 꿈에 지나가는 세월과 같도다.
법문이 중첩함은 드넓은 하늘에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도다.
만 가지 수행을 아름답게 펼침은 비단 위에 꽃무늬를 새김과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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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무비 대강백 화엄경 왕복서 특강
(2019년 6월 24일-26일 대구 동화사 국제선센타)
2. 사사무애(事事無碍)
걸림이 없는 이유
理隨事變(이수사변)이라 則一多緣起之無邊(즉일다연기지무변)이요
이(理)는 사(事)를 따라 변함이라 곧 하나와 많음이 연기함이 무변함이요
사(事)와 사(事)가 걸림이 없다.
걸림이 없는 이유를 이야기 하는데 이수사변(理隨事變)이라 즉일다연기지무변(則一多緣起之無邊)이요.
이(理)라고 하는 것을 사(事)를 따라 변함이라 곧 하나와 많음이 연기함이 무변함이요 그랬습니다.
*
사(事)는 펼쳐놓고 보면 참 많죠.
이(理)는 하나입니다. 하나로 통일 되어 있고.
예를 들어서 몸으로써 별별 동작을 다하더라도 그건 많은 거죠.
하나의 몸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몸이 별별 동작을 하는 거예요.
걸어다니기도 하고 무슨 운동도 하고 무변하게 그 연기가 이(理)와 사(事)가 연기(緣起)하는 것, 하나와 많음이 연기하는 것이 끝도, 갓도 없습니다. 천변만화하는 거죠.
우리가 그렇게 살아오고 있고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수사변(理隨事變)이라.
이(理)는 사(事)를 따라서 변한다.
일다연기지무변(一多緣起之無邊)이라. 요런 것도 아주 미세하게 설명하기로 하면 조금 골치가 아프니까 대충 이렇게 설명하고 넘어갑니다.
*
60쪽 요건 내가 이런 글을 내가 써야 되나 말아야 하나 앞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는데 한 번 밑에서 네 번째 줄까지 같이 한 번 읽겠습니다. 여러분들 다 해당되는 내용이예요.
걸림이 없는 이유로서 이(理)가 사(事)를 따라 변한다는 것을 세상사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사찰에는 이판(理判)이 있고 사판(事判)이 있다.
사찰의 행정이나 살림살이를 맡아서 그 소임을 다하는 사람을 사판이라 하고 경전을 공부하거나 참선이나 염불을 위주로 하는 사람들을 이판이라 한다. 이판들은 사판을 만나서 그의 능력과 지위를 잘 활용하면 이판으로서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여 자신을 마음껏 변화시킨다. 그래서 그의 삶이 윤택하고 이름도 빛난다. 그러나 사판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이판은 아무리 능력이 있고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밖에서는 알아 줄지 몰라도 그의 삶은 언제나 곤고하다.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뿐이다.이것이 이(理)가 사(事)를 따라 변하는 도리이다.
남자와 여자의 이치도 그와 같다.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면 여자의 내조에 의지하여 크게 성공할 수 있으며, 여자도 남자를 만나는 데 따라 왕비가 될 수도 있고 일개 시골 농부의 아내나 거지의 아내가 될 수도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 기가 막힌 도리죠?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사입니다. 세상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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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임제록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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