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피라칸사스 원한에 찬 독설가처럼 온몸에 장전한 시퍼런 독가시와 그것을 뒤덮은 붉디붉은 열매 이미지를 좋아한다
피라칸사스 붉디붉은 열매를 쪼아먹고 있는 가슴이 간장 종지만 한 새 이미지를 좋아한다
피라칸사스 그늘에서 가슴이 간장 종지만 한 새의 간덩이를 노리고 있는 눈썹 없는 푸른 눈 고양이 이미지를 좋아한다
피라칸사스 독가시가 무서워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그 엄연한 절망에 공감한다 그러니 어쩌겠어
피라칸사스 그늘에다 눈썹 없는 푸른 눈 고양이 집을 지어주기로 했어 그건 산해진미 앞에서 찬물에 흰밥 말아먹는 고역쯤 되겠지만 모르겠어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들은 하나같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질문을 지니고 있었어
피라칸사스 넌 어떠니 봄여름가을겨울 피땀 흘려 만들어 놓은 그 많은 붉디붉은 열매를 단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따먹어버리는 가슴이 간장 종지만 한 새를 좋아하니 그래서 그들을 단숨에 쫓아줄 눈썹 없는 푸른 눈 고양이를 얼씬도 못 하게 온몸에 독가시를 장전하고 있는 거니 정말 그런 거니
거봐 너도 답 없지 생각하면 할수록 골 때리지 그치
꽃과 시와 히키코모리
아가야 이 꽃 너무 예쁘지 향기도 끝내주지 지금 문밖에는 이 꽃이 만발했단다 이 꽃 옆에는 천리향꽃 개나리꽃 매화꽃 목련꽃 벚꽃 명자꽃 진달래꽃 복사꽃 라일락꽃 모란꽃 백합꽃 장미꽃 수국꽃이 만발해 세상이 온통 꽃천지란다
어서 문을 열고 나와 보렴
아가야 어쩌자고 엄마 말을 못 믿는 거니 그럼 저 꽃들이 피는 족족 꺾어서 너에게 보여 줄게 엄마가 꺾어준 하나같이 순하고 어여쁜 꽃을 보며 향기를 맡으며 골똘히 생각해 보렴
이토록 순하고 어여쁘고 향기로운 꽃천지에서 무슨 나쁜 냄새가 생겨나겠니 누가 누굴 시기 질투하고 뒤통수치고 배은망덕한 일을 꾸미겠니 도무지 말이 안 되잖아
어서 문을 열고 나와 보렴
아가야 엄마가 꺾어준 그 많은 순하고 어여쁘고 향기로운 꽃을 직접 만져보고 향기도 맡아보고도 어쩌자고 엄마가 문밖에 나갔다 올 때마다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느니 표정이 너무 어둡다느니 시가 너무 어둡다느니 억지 핑계를 대는 거니 도무지 말이 안 되잖아
제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똑똑히 들어 지금 문밖에는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이 꽃이 만발했고 엄마는 꽃처럼 사랑받고 싶어서 문밖에 나갈 때마다 꽃향수를 온몸에 뿌리는 시인이고 문밖에서 엄마가 만나는 사람이라야 꽃향수 풀풀 삐져나오는 시인뿐이고 엄마는 시를 썼지 일기를 쓴 게 아니잖니 저저증말이야 증말이라니까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