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시설 합의! 열가지 뒷 이야기
결국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승리했습니다. 일주일동안 천막농성을 하며 국고반납 저항을 통해 국고를 지킨 결과 열악한 초평동에 멋진 수영장, 체육시설, 도서관 등의 문화체육시설을 건립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은계동에 국민체육센터를 건립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에서도 밤낮으로 흔들림 없이 농성장을 지켰던 시민들의 힘으로 국고반납을 막았고, 시민들이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화된 힘입니다’라고 새겨진 고노무현 대통령 비석의 가르침을 오산시민들이 실천하였습니다. 국고반납 저지를 시민들과 함께 축하드리며, 지난 5년간 복합시설에 얽힌 드라마와 같은 뒷이야기 중 10가지 주요 장면을 꺼내 보여 드리겠습니다.
#장면 1. 장관에게 30억 확보
국회의원이 된지 일년 가량 밖에 되지 않은 2005년 봄. 정동채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함께 메리야트호텔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여당의원이었지만 야당보다 강하게 정부를 비판하던 저에게 장관이 잘 지내보자고해서 만들어진 자리였습니다. 와인을 곁들인 식사가 마무될 무렵 취기가 돈 장관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안의원님, 오산 지역구를 위해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인조잔디운동장, 도서관, 학교복합시설을 위한 예산을 도와주십시오.
그날 이후 장관과 가까워 졌고 오산고 인조잔디운동장 5억, 중앙도서관 건립비 24억, 학교복합시설 건립지원 30억을 2005년에 지원받았습니다. 이렇게 학교복합시설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장면 2. 원일초에 이어 운암초 부지 선정 실패
2005년 12월. 경기도 교육청과 함께 학교복합시설에 적합한 부지를 찾기로 하고 도 교육청 담당 국장과 함께 설계가 막 끝난 원일초 부지를 갔습니다. 위치는 최적이었으나 문제는 복합시설을 위해 학교 재설계가 필요하고 그럴 경우 개교시기를 한 학기 늦추어야 하는데 학부모들의 민원이 골치였습니다. 즉 2007년 6월에 개교하기로 한 학교가 9월에 개교한다면 학부모들이 가만있을 리가 만무하겠지요. 그래서 원일초를 포기하였고, 그 다음 부지로 물색한 곳이 운암에 있는 운천초와 운천고였습니다.
운천초와 운천고는 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두 학교 모두 체육관이 없어 담을 끼고 300평씩 부지를 할애하면 600평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서 교육청 관계자들과 함께 쾌재를 불렀습니다. 운천초와 운천고 아이들,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복합시설이 건립된다면 활용도 면에서도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적률이 문제였습니다. 용적률 해결을 위해 오산시와 경기도에 문의하였으나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아 결국 복합시설 예산이 지원된 첫해 겨울에는 부지를 찾지 못한 채 아쉬움을 남기고 넘겼습니다.
#장면 3. 오산시장에게 복합시설 협력 요청
2006월 6월. 박신원 시장의 직무정지로 1년 반 공백이었던 오산시장에 이기하 신임 시장이 당선되었습니다. 제가 당선축하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고 오산 인근의 장어 전문집에서 기분 좋게 저녁을 먹으며 오산시의 현안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특히 주민과 학생 함께 사용하는 복합시설 건립을 위해 국고 30억원이 확보되어 있으니 오산시가 멋진 복합시설을 짓도록 협력을 당부했습니다. 오산시 예산 지원을 포함하여 적합한 학교부지확보를 위해 오산시 지원의 필요성도 설명하였습니다. 국회의원이 30억 국고를 따왔으니, 나머지는 시에서 알아서 하기로 하고 국회의원과 시장은 기분 좋게 헤어 졌습니다.
#장면 4. 오산초 부지 발견!
2007년 5월. 드디어 복합시설 부지를 찾았습니다. 그동안 학교 부지를 찾는데 관심이 없었던 오산시는 2005년에 확보한 30억 기금으로 50m 수영장 건립 신청하였다가 승인받지 못한 터라 여전히 학교부지를 선정한다면 복합시설 기회는 상존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오산초 교장과 학부모 간담회 자리에서 오산초 부지가 검토되었습니다. 오산초와 늘푸른 오스카빌 사이에 있는 800평의 밭을 매입한다면 복합시설에 필요한 부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다행히 밭을 매입하여 급식실을 지을 계획으로 2005년에 교육청 예산 10억원을 확보하였으나, 땅의 소유주가 주공으로 바뀌는 바람에 주공의 매각거부로 밭을 매입하지 못해 학교 측에서 발을 구르고 있었습니다. 주공을 설득해서 땅만 매입하면 복합시설 부지가 확보되고 그곳에 수영장과 체육관, 급식실, 도서관, 헬스장, 유치원 등 문화체육시설을 지어 오산초, 가수초 아이들은 물론 초평동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멋진 복합시설의 그림이 한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러면 낙후된 초평동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더 없이 현명한 선택이 되는 것이지요.
#장면 5. 6개월에 걸친 부지확보 투쟁
2007년 6월. 오산주공사업단장을 만나 부지 매각을 요청하였습니다. 주공 소유의 밭은 세교 3지구 개발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3지구 개발 계획 시에 활용여부를 결정하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즉 세교3 지구 개발 계획이 수립될 때까지 밭을 따로 떼어 매각할 수 없다는 것인데 문제는 세교 3지구가 언제 시작될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갑갑한 상황이었습니다. 주공단장의 말대로라면 오산초 복합시설에 필요한 밭을 매입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지요. 주공사장을 만났습니다. 마침 한행수 전 주공사장과는 제가 형님, 아우하는 사이였기에 한행수 전 사장의 주선으로 저와 전현직 주공사장 이렇게 셋이서 식사를 하면서 매각문제를 의논했습니다. 처음에는 완강히 반대하던 사장이 ‘오산 사업단에서 동의하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라며 긍정적 여운을 남기고 헤어 졌습니다. 이후 오산사업단과 실무진들을 여러 차례 만나면서 협박과 설득을 병행하기를 거듭하는 사이 어느덧 여름에서 가을이 되었습니다.
2007년 12월!
몇 달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주공이 부지를 매각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육청 예산은 10억원뿐인데, 주공은 매각비용으로 19억 3천만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복합시설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백방으로 알아보아도 연말에 10억이나 되는 추가 예산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연말이 다가 왔습니다. 해가 바뀌면 이미 확보된 10억 예산조차도 반납해야 할 처지에 있어서 연말까지 추가로 10억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복합시설의 꿈은 물거품이 되는 갈림길에 다다랐던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 끝에 김진춘 경기도 교육감에게 애걸하기로 하고 전략적으로 날짜를 크리스마스 이브에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부지 확보를 위한 마지막 승부수였던 셈이지요. 김진춘 교육감과 평소 친밀한 관계였고 제가 졸업한 성호초에 부임한 적이 있어 서로가 사제지간의 정을 느끼는 지라 일말의 기대를 안고 교육감을 만났습니다.
‘선생님, 크리스마스 선물 받으러 왔습니다’
‘무슨 말인데?’
‘꼭 주셔야 합니다. 먼저 주시겠다고 약속하셔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약속해 주십시오’
‘허허. 안의원 답지 않게 왜 이렇게 비굴하시나? 내가 선물 주면 앞으로 나를 많이 도와 주셔야 하네. 안의원 먼저 약속하시게.’
‘예. 평생 잘 모시고 충성하겠습니다’
저의 비굴함과 충성서약에 깜짝 놀란 김진춘 교육감께서 결단을 내리셨고, 교육감께서 주공에 2008년 추경예산으로 10억원 부지매입을 지원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6개월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부지를 매입하였고, 김진춘 교육감께서 오산초 복합시설 건립을 위한 의향서 계약서도 체결해 주셨습니다.
장면 6. 부끄러운 시장과의 갈등
2008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초평동 복합시설을 공약으로 내건 탓에 유독 초평동에서 몰표가 나와 민주당 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낙선되었던 수도권에서 저는 매우 여유있게 당선되어 오산시 최초의 재선의원이 되었습니다. 재선된 후 무엇보다 복합시설 건립을 위해 오산시와 협력을 기대하였으나, 어처구니없게도 부지가 확보된 오산초 대신에 사립학교인 오산중에 30억 체육관으로 신청하였습니다. 참 섭섭했고 화도 났습니다. 국회의원과 시장이 협력해서 멋진 복합시설을 만들어 서로 상생하면 될 것을 체육관 하나 달랑 짓겠다는 발상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사립학교는 복합시설 건립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오산중에 신청하는 오산시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고발을 당했습니다. 시장 조카라는 분이 저를 수원지검에 고발을 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선거 때 복합시설 관련해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인데, 저를 대신해서 보좌관이 기소되어 고등법원까지 갔지만 결국 8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참 많이 화가 났습니다. 시장과 국회의원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시장이 국회의원을 고발까지 하는 것은 정치를 하지 말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민들에게 죄스럽고 부끄러운 시장과 국회의원의 갈등설은 복합시설 건립에 대한 견해차이 때문이었는데,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제가 추진하는 방향이 상식이라는 점을 믿었습니다.
#장면 7. 교육부 장관 15억 지원 결정
2008년 12월. 시장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갈수록 증폭되었으므로 오산시의 예산지원은 기대조차 하기 어려워져 보였습니다. 복합시설에 필요한 나머지 예산 확보가 되지 않으면 어렵게 매입한 부지도 헛된 일에 불과할 듯 했습니다. 그러나 오산시의 협력 없이 전국 최고 수준의 복합시설을 건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여러 경로를 통해 오산시와의 협력을 모색하였으나 시장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오산초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예산을 오산시에서 지원받는 기대는 하지 않기로 하고 정부지원을 요청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 취임 이후 식사제의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밥 한번이라도 먹으면 인간적인 정 때문에 정부 정책 비판의 선두에 서야 하는 야당 간사의 매서움이 둔해 질까 우려되어 장관이 몇 차례 제안한 식사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모두 정중히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목마른 자가 운물을 파는 법. 장관실로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장관님. 오산초 복합시설 때문에 허위사실죄로 고발을 당했습니다. 오산초 복합시설 건립을 도와주십시오’
‘예. 최대한 지원을 하지요’
이렇게 지원된 정부의 예산이 15억. 하여 2005년 30억 기금에다 장관 지원금 15억이 보태져 총 45억원의 확보되었으나 아직도 부족한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복합시설 건립에 대한 갈증이 더해 갔습니다.
장면 8. 김상곤 교육감이 내려준 15억
2009년 5월. 초대 민선교육감으로 당선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오산초를 방문하였습니다. 김상곤 교육감의 브랜드가 된 무상급식 정책을 제가 만들어 드린 인연으로 두터운 친분을 갖게 되었고 교육감에 당선된 후 오산에 복합시설 지원해 달라는 요량으로 교육감을 오산초에 모신 것이지요. 오산초에서 간담회를 마친 교육감이 복합시설 건립에 찬동하셨고 15억 추가 지원을 약속하셔서 안병만 교육부장관으로부터 확보한 15억까지 합하면 총 60억의 사업비가 마련되는 듯 했습니다. 오산시의 예산지원 없이도 복합시설이 가능할 수 있는 예산이 확보된 셈이지요. 그런데 예산심의 과정에서 교육감과 갈등을 빚던 경기도 의회에서 15억이 전액 삭감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도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오산 출신 박천복 의원님께 부탁을 드렸으나 워낙 분위기가 비관적이어서 고등학교 선배인 원유철 한나라당 도당위원장에게 여러 차례 부탁을 드렸습니다. 화성교육청 박창신 국장과 경기도 교육청 예산과장도 최선을 다한 결과 15억의 추가 예산이 결정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2007년 부지확보에 이어 60억 사업비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장면 9. 3년 만에 오산시와 예산 협의
2009년 12월 10일. 시장직무 대행을 하고 있는 이진수 부시장에게 예산협의를 제안했고 부시장께서 동의하여 시청에서 국회의원과 오산시와의 예산 관련 간담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박신원 시장님 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 상호 어색하였지만 국회의원과 오산시 간에 자주만나 소통하는 것은 오산시 발전을 위해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자리에서 오산시는 국회 예결위원인 저에게 늦었지만 4가지의 국고 예산 확보를 요청하였고, 저는 세마고 기숙사 예산지원과 오산초 복합시설 신청을 요청하였습니다. 특히 복합시설의 경우 오산시는 부지확보를 못해 국고 예산을 반납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부지가 마련된 오산초에 신청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국고 반납의 이유가 시의원 몇 분이 복합시설을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도대체 국회의원이 따온 국고를 한 푼도 남김없이 잘 쓰도록 도와야 할 시의원들이 국고반납을 획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작용하고 있고, 시민들의 눈은 무서워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의리를 더 중시하여 국고를 반납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시민들에게 지켜야 할 소임보다 자기들의 의기를 더 중시하는 시의원들이 시민들의 혈세를 받는 것은 부당의 극치입니다. 그 분들이 양심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석고대죄하며 의원직을 내려놓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며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이 그분들의 완장을 떼어 줄 것입니다. 시민들이 벌을 줄 것입니다.
#장면 10. 극적 타결, 촛불이 축배로
2009년 12월 28일.
드디어 시민들이 뿔났습니다. 국고반납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집회와 천막농성이 전개되었습니다. 23일부터 시작된 천막농성 6일째인 28일 오후 2시, 저는 마지막 담판을 위해 부시장을 만났습니다. 국고반납을 막아 보자는 저의 간곡한 호소와 토론을 하였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다음날 오전에 연락을 받기로 하고 헤어 졌습니다. 저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시의회 반대 때문에 망설이는 부시장을 설득하지 못하는 저 자신이 답답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시청 로비를 걸어나오면서 갑자기 손에 아무것도 쥐지 못한 채 시청을 나올 수가 없다는 생각에 교육청 분들과 함께 로비 커피숍에 주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시장에게 연락하였습니다. 결론을 내릴 때까지 시청을 떠나지 않겠다는 최후 통보를 주었습니다. 시청에서 밤샘 돗자리 농성이라도 해야 한다는 최후의 결단을 하였습니다.
공보담당관이 내려와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달라며 시청을 떠나주기를 애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일 아침까지 시청을 떠나지 않겠다며 두 시간 여를 기다렸습니다. 커피 두 잔과 따뜻한 차 석잔을 마시며 버티어 내었습니다.
5시 30분경. 결국 국고 반납 하지 않고 복합시설 건립하겠다는 약속을 부시장이 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예정된 촛불문화제는 취소되었고 대신에 시민들이 승리한 기념으로 축배를 즐기는 환희의 밤이 되었습니다. 촛불이 축배로 바뀌었던 그날 밤의 환희와 감동은 어찌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국고반납을 막고 오산시가 복합시설 건립을 약속한 날입니다. 제가 복합시설을 구상한지 오산시와 공식적으로 건립을 합의하기까지 5년이 걸렸습니다. 오산시와 협력하여 멋진 복합시설이 건립하여 주민과 학생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 드리겠습니다. 눈물이 날 만큼 큰 기쁨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기쁨은 시민들의 것입니다.
오산초 복합시설이 완성되는 날 다음의 문구가 적힌 기념비가 제막되었으면 합니다.
본 건물은 정부와 교육청, 오산시의 협력으로 건립된 최초의 복합시설입니다.
특히 깨어있는 오산시민의 힘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오산시민들과 학생들의 복지와 건강을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9년 마지막 밤 국회 농성장에서 안민석 드림
첫댓글 2009년 마지막 밤 국회농성장에서 이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해 수고하시는 의원님께 늦게나마 격려를 보내면서.......복합시설에 대한 그동안의 뒷이야기를 상세하게 알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년초부터 좋은 정보에 애쓰신 하늘사랑님께...감사드리고요...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살짝부끄,,^^ 님도 복많이받으세요..
오호 ~~ 저희 국회의원 안민석의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잘뽑은것같아요..도서관생긴게젤맘에듬..또담에나오면 뽑을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