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
선미가 병원에 가는 날이다.
박정구는 이미 와서 선미의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번번이 이렇게 신세를 져서 미안해서 어떻게 하나?”
김 여인은 박정구를 보면서 미안해한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미안하시다니요? 이제 한두 번만 더 가면 아마 항암치료를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오죽이나 좋겠나?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하던지 보기가 딱해서..........”
“그래도 선미씨가 얼마나 잘 참아내는지 너무 예쁘더군요.”
“그거야 박 선생이 잘 봐주니까 그렇겠지.”
그때 선미가 방에서 나온다.
“오시지 말라니까 왜 오셨어요?”
“내가 온 것이 반갑지 않소? 그럼 다시 되돌아갈까요?“
선미는 대답대신 눈을 곱게 흘긴다.
“다녀오겠습니다.”
박정구는 인사를 하고는 선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간다.
“그동안 약을 잘 복용하셨지요?”
“네!”
간단한 검사가 끝나자 의사가 하는 말이다.
“이제부터 항암치료를 중단해도 될 것만 같습니다.”
“네? 정말입니까?“
박정구가 곁에 서 있다가 묻는다.
“네! 상태가 아주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 상태로 라면 항암치료를 중지하고 약만 복용해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생활에 있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경우에 여자의 질까지도 모두 제거를 해야만 했습니다만 요즘은 질은 건드리지 않고 아기집만 드러내는 수술을 했으니 성생활에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동안 선생님께서 수고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병원에서는 박정구와 선미를 부부로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언제나 함께 나란히 병원을 찾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의 병 수발을 들고 있다고 생각들을 하는 것이었다.
박정구는 기분이 매우 좋다.
선미를 차에 태우고는 야외로 나간다.
“어디를 가는 거예요?”
“이렇게 기분이 좋은 날 그대로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 않소? 어디 가까운 곳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바람이라도 쏘입시다.“
박정구는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야외로 차를 운전하고 간다.
팔당 땜 근처의 조용한 호수 근처였다.
“어떻소? 힘들지 않소?”
“네! 괜찮아요.“
”선미! 난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시요?“
“.........................”
“당신의 항암치료가 끝나는 날 청혼을 하려고 무척이나 기다렸소!”
언제 준비를 했는지 박정구는 주머니 속에서 작은 보석함을 꺼낸다.
“이것을 받아요.”
“아니요! 그것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선미는 그의 손에 있는 보석함을 받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지 않소?”
“.....................”
“난 당신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소. 그런데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이오?“
“.....................난 선생님하고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이제 항암치료가 끝났다고 해도 여자로서의 생명을 다한 몸이에요. 어떻게 선생님앞길을 막을 수가 있겠어요?“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육체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요.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맑고 고운 영혼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육체가 아니고 당신의 마음과 영혼을 사랑하고 있는 거요. 내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오?“
“그래도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어떻게 선생님께 의지를 한단 말이에요? 그렇게는 할 수가 없어요.“
“선미! 내게 남은여생을 의지하고 기댈 수가 없소? 내가 그렇게도 당신에게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아니에요! 제가 선생님께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에요. 선생님의 사랑을 받아 드리기에는 너무나 형편없는 사람이에요.“
박정구는 가만히 선미를 끌어안는다.
“선미! 내겐 당신이외의 어떤 여자도 필요치 않소! 건강한 여자도 아름다운 여자도 내겐 필요치 않소! 오직 사랑하는 당신만이 내 곁에서 우리에게 남아있는 삶을 함께 살아가기를 원할 뿐이오.“
“.............................”
선미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너무나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이지만 현제 자신의 건강으로는 불행하게 만들 것만 같다.
“내가 왜 대학 강의를 그만 두었는지 아시오? 당신을 데리고 병원을 다니려고 그만 둔 것이오. 그만큼 당신은 그 무엇보다도 내게는 소중한 사람이오.“
“허지만................. 난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난 이미 당신에게 많은 것을 받았소! 당신의 맑고 고운 영혼을 보았고 그것으로 인해서 많은 시를 쓸 수가 있었소! 당신을 보고 있노라면 내 영혼까지도 맑아져서 아름다운 시상이 떠오르곤 한다오.“
“..............................”
“선미! 나를 사랑한다고 분명하게 말해 봐요.“
“..............사랑해요!”
“고맙소! 난 처음엔 그저 당신에게 동정심만 있는 줄 알았소!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늦게 서야 깨닫게 된 것이오. 당신을 만나면 만날수록 내 마음이 당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야 그것이 당신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오. 당신은 어땠소?“
“전 지금까지 그 누구를 이렇게 사랑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애요. 처음 결혼을 했을 때도 사랑한다는 것보다는 부모님께서 정해주신 대로 했을 뿐이거든요. 그리고는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감정을 가져보지 못했어요.“
선미는 박정구의 품안이 넓고 포근하다는 생각을 한다.
“선미! 이제는 이 반지를 받을 수가 있소? 내가 이 반지를 당신 손에 끼워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시오?“
박정구는 선미를 가만히 밀어내고는 선미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보석함을 연다.
다이아반지가 세팅도 간결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으로 들어 있었다.
“어떻소? 당신 마음에 드오?“
선미는 비로소 반지를 바라본다.
마음에 쏙 들어오는 반지의 모습에 행복감에 젖어든다.
“정말 제가 이 반지를 받아도 되는 거예요?”
“당신이 아니면 누가 있겠소? 두 번 다시는 사랑이라는 것이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소! 헌데 이렇게 당신을 만나서 내게 다시 인생의 봄이 시작이 된 것이오.“
박정구는 선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준다.
반지는 선미의 손가락을 잰 듯이 꼭 들어맞는다.
“어떻게 이렇게 맞을 수가 있어요?”
선미는 신기하다는 듯이 반지를 들여다본다.
언제 손가락을 재본 기억이 없었다.
“내가 당신의 모든 사이즈를 다 알고 있다오.”
“네?”
“하하하............ 농담이오!“
박정구는 새빨개지는 선미의 모습을 보면서 재빨리 말을 정정한다.
“내 눈썰미가 그 정도로 정확하다는 말이오.”
“난 또?................”
“춥지 않소?”
“안 추워요.”
박정구는 자신의 윗옷을 벗어 선미의 등 뒤로 둘러준다.
“아직은 무리해서는 안 되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갑시다.“
그는 선미를 무슨 보석을 다루듯이 아주 조심스럽게 다룬다.
마치 함부로 만지면 깨지는 유리항아리처럼 조심스럽게 선미를 대하곤 하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선미를 위해서 고급 한정식 집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고는 이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선미는 피곤해서 돌아오자마자 자리에 눕는다.
“박 선생님! 오늘 일은 다음에 조용하면 제가 어머니께 말씀을 드릴게요!“
“당신은 그런 것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말아요. 모든 것은 내가 다 알아서 하리다.“
박정구는 선미가 마음이 약해서 결혼한다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지금 아버지의 병환이 위중하시다.
이런 때에 결혼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릴 그녀의 성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정구의 생각을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간단하게 식이라도 올리고 당당하게 이 집안의 사위노릇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박정구는 선미의 방에서 나와 안방 문을 노크한다.
김 여인은 조용하게 방문을 열고 나온다.
“어머님! 오늘 항암제를 끊었습니다.“
”뭐라고 했나? 그 말이 사실인가? 그럼 이제 우리 선미를 안심해도 좋다는 말인가?“
“아직은 조심을 해야만 합니다. 항암제를 끊었다는 말이지 병이 다 나은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오년은 지나야 안심을 하는 것이랍니다.“
“그런가? 그동안 박 선생이 너무 고생이 심하셨네! 내 이 은혜를 무엇으로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어머님! 그리고 저희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뭐? 그게 정말인가? 우리 선미도 그러겠다고 하던가?“
“네! 오늘에서야 간신히 선미씨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아이고! 이 사람! 고맙네! 이 고마운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을 해야만 할지 모르겠네!“
김 여인은 박정구의 손을 덥썩 잡는다.
“어머님! 아버님의 병환도 위중하시니 빠른 시일 내에 간단하게 식만을 올렸으면 합니다.“
“암! 아버님의 병환이야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벌써 십오 년을 이어온 병환이신데 아무런 신경을 쓰지 말게!“
“어머님! 제가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말씀해 보시게!”
“이곳은 선미씨가 이제 쉴 수 없게 될 것만 같습니다. 아버님 때문이라도 가족들이 드나들게 되면 신경이 많이 예민해져 있는 선미씨가 쉴 수가 없게 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부탁입니다만 식을 올리기 전이라도 제 집으로 데리고 갔으면 합니다.“
김 여인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오늘도 저녁이면 자식들이 몰려올 것이다.
아직 선미는 환자다.
쉴 수가 없게 되면 다시 병이 도질까 염려스러운 것이다.
어차피 남편은 이제 다시는 소생할 가망도 없거니와 더 이상 생명을 연장한다 해도 오늘 내일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생명이다.
“박 선생! 정말 고맙네! 그렇게까지 우리 선미를 생각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내 이제 눈을 감는다 해도 아무런 여한이 없을 것이네!“
글: 일향 이봉우 |
첫댓글 즐거운 시간 행복하세요 잘보고갑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자식들(26회)"와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웃음가득 하고 행복가득한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