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로 돌아온 서동수가 소파에 앉자 민혜영이 잠자코 커피잔을 내려놓고 물러갔다. 지난번 비서실장 유병선을 시켜 중국 측으로부터 받은 제의를 청와대에 전하기는 했다. 그러나 며칠 사이에 상황이 급진전되었으니 청와대에서도 놀랐을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구내전화의 벨이 울렸다. 버튼을 누른 서동수는 민혜영의 목소리를 듣는다.
“청와대 비서실장님이십니다.”
“알았어, 받지.”
서동수가 전화기를 들었다.
“예, 서동수입니다.”
“서 회장님, 축하합니다.”
양용식이 대뜸 말했는데 목소리가 밝다.
“단숨에 분위기를 반전시켰습니다. 백기현이를 우물 안에서 펄떡펄떡 뛰는 개구리로 만든 셈이지요.”
그러더니 양용식이 소리 내어 웃었다.
“대통령님이 뭐라고 하신 줄 압니까? 네 번 뛴 개구리라고 하셨습니다.”
백기현이 4선위원이다. 서동수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내용보다 두꺼비 같은 대통령이 모처럼 농담을 했다는 것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며칠 사이에 상황이 급진전되어서 자세하게 말씀 못 드렸습니다.”
서동수가 뒤늦게 해명했더니 양용식이 서둘러 말했다.
“그 정도 알려주셨으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해합니다. 어쨌든 대단한 일입니다. 앞으로가 중요하지요.”
차츰 양용식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대통령께서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에서도 벌써부터 환영 성명을 발표한다면서 법석입니다.”
“…….”
“야당은 공황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특히 백기현은 구태정치의 표본으로 매도되고 있는데 정치생명이 끝날 것 같습니다. 백기현 때문에 야당이 민족통일 기회에 동참하지 못할 분위기까지 되었으니까요.”
“…….”
“생명력이 강한 야당이라 털고 나서겠지요, 회장님의 사업에 동참할 것 같습니다. 거부하면 반통일 세력이 될 테니까요.”
“…….“
“제가 그랬죠?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말입니다. 이 말씀 안 드렸나?”
흥분해서 헷갈리는 것 같다. 서동수도 차츰 열이 오르는 바람에 누가 했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어졌다. 통화를 끝냈을 때 문이 열리더니 이번에는 민혜영과 임청이 같이 들어섰다. 둘 다 손에 핸드폰을 쥐고 있다. 먼저 임청이 말했다.
“한국당 대표님 전화입니다.”
서동수가 머리만 흔들었더니 임청이 잠자코 방을 나갔다.
“민족당 대표님이신데요.”
민혜영이 말했을 때도 서동수가 머리만 저었더니 다시 묻는다.
“내선 1번에 전(前) 부인 박서현 씨란 분이 찾으시는데요.”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시선만 주었고 민혜영이 말을 이었다.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합니다.”
오전 10시 40분, 한국 시간으로는 11시 40분이 되겠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더니 민혜영은 몸을 돌렸다. 문이 닫쳤을 때 서동수는 전화기의 1번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미혜 아빠.”
박서현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다.
“내가 부탁할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소파에 등을 붙인 서동수는 문득 인간은 갖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때 박서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 그 사람, 좀 도와줄 수 없어요?”
서류를 읽고 유병선이 머리를 들고는 길게 숨을 뱉었다. 오후 5시 반, 탁자에 놓인 서류는 꽤 두툼했는데 표지에 붉은색 ‘극비’스탬프가 찍혀 있고 제목에는 붉은 테두리가 둘러져 있다.
‘정영철과 박서현.’
남들이 보면 장관 청문회에 대비한 서류 같이도 보이겠지만 서동수의 전처 박서현과 재혼한 남편 정영철에 대한 신상보고서다. 유병선의 의뢰를 받은 ‘정보회사’가 만 하루 만에 보고서를 만들어 온 것이다. 어제 낮 12시 경이 되었을 때 유병선은 중국에 있는 서동수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서동수는 박서현, 정영철과의 관계를 짧게 설명해줬는데 몇 년 전 중국의 대동자동차에서 오더를 받도록 연결시켜 준 것까지 말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지시한 것이다.
“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당신한테 맡긴다.”
유병선의 시선이 다시 서류로 옮아갔다. 정영철은 부친한테서 물려받은 회사를 부도 내고 지금은 백수다. 한때는 잘살았겠지만 지금은 의정부의 28평 전세 아파트로 옮아간 후부터 넉 달이 넘도록 두문불출, 지금은 박서현이 편의점 알바를 뛰는 동안 집에서 애를 돌본다. 입맛을 다신 유병선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조사원이 기록한 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관계는 좋은 편임. 아파트 안에서도 착한 남편, 잉꼬부부로 소문이 났음. 화목한 가정인 것처럼 보임.”
“무슨 개뿔, 거머리 같은 족속들.”
이것은 유병선의 입에서 터져나온 말이다. 그때 인터폰의 벨이 울렸으므로 유병선은 버튼을 눌렀다. 앞쪽 벽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실장님, 박서현 씨 부부가 오셨습니다.”
스피커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울렸다.
“들어오시라고 해.”
말해놓고 나서 유병선은 문득 비서가 박서현의 이름을 앞세운 것을 떠올리자 길게 숨을 뱉었다. 그제야 마음을 굳힌 것이다. 곧 남녀가 들어섰는데 선남선녀다. 다만 박서현의 눈빛이 강했고 조금 여유가 있어 보일 뿐 닮은꼴이다. 박서현은 비서실장이 만나자고 한 것이 서동수의 배려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제 남편 정영철이 무안해지지 않도록 해주려는 배려다. 인사를 마치고 마주보며 앉았을 때 유병선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께서 이 일을 저한테 맡기셨을 때 일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생각해보았더니 상식적으로 처리하라는 말씀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유병선이 입을 꾹 다물었다. 숨을 다섯 번쯤 쉬었을 때 비서가 들어와 커피잔을 내려놓고 나갔다. 다시 숨을 세 번쯤 쉬고 나서 마침내 박서현이 입을 열었다. 어느덧 얼굴이 굳어졌고 눈동자가 흐려졌다.
“다른 말씀은 없고요?”
“예, 없습니다.”
다시 무거운 정적이 덮였다. 세 번 숨을 뱉었을 때 박서현이 다시 물었다.
“그럼 실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때 유병선의 시선이 정영철에게로 옮아갔다.
“정 선생님 생각부터 듣고 싶습니다.”
그러자 정영철의 굳어진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고는 시선을 내린 채 말했다.
“미안합니다. 내가 안 오는건데.”
“아니, 잠깐만요.”
그것을 본 박서현이 눈을 치켜떴다. 그러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여자가 되었다.
“아니, 나한테, 우리한테, 이렇게….”
박서현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을 때 유병선이 벨을 눌렀다. 비서를 부르려는 것이다. 박서현의 항의가 계속되고 있다.
“중국에서 ‘동성’이 왜 인정을 받는 줄 압니까?”
TV에 출연한 중국 산둥성의 성장 우더린이 열띤 목소리로 말하자 밑에 자막이 떴다. 우더린은 지금 한중교역 22주년을 기념한 KBC의 ‘한중수교’ 특집에서 인터뷰를 하는 중이다. 우더린이 말을 이었다.
“그것은 각 지방의 동성이 그 지방 고유의 사업장으로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동성은 그 지방 주민의 소득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체육 발전에 아낌없는 투자를 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동성’이 내 회사, 내 고장의 기업인 것처럼 느끼고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미리 원고를 외우고 왔겠지만 유창한 언변이다. 그것을 저녁시간대의 한국인 시청자가 다 보고 있다.
“우리는 ‘동성’이 한국인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국인 회사, 또는 중·한 합자회사라고 믿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서동수의 인터뷰 이후로 동성의 주가가 폭등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은 물론 중국의 동성 관련 주식이 폭등해서 서동수의 재산 총액이 두 배로 늘어났다는 소문이 났다. 우더린이 똑바로 한국 시청자를 보았다. 우더린은 산둥성 성장이며 중국 정부의 지방장관이다. 그가 다시 말했다.
“나는 ‘동성’이 산둥성에서 시작하여 전 중국으로 확산된 것처럼 북한에서도 성공하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결국은 산둥성에서 시작되었다는 자화자찬이 들어갔지만 이런 선전은 그야말로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대박이다. 또 한 번 KBC 영웅캠프 팀이 대박을 친 것이다. 리모컨을 들어 TV 화면을 끈 서동수가 앞에 앉은 왕창궈 사장에게 말했다.
“그럼 출발하시지요.”
“예, 회장님.”
자리에서 일어선 왕창궈가 인사를 하더니 몸을 돌렸다. 왕창궈는 신의주특구개발 사업단을 이끌고 출발하려는 것이다. 신의주특구를 맡기 전에 현황 파악을 해야만 한다. 왕창궈가 방을 나갔을 때 유병선이 입을 열었다. 유병선은 오늘 오후에 중국으로 날아왔다.
“회장님, 지방선거가 5개월 남았습니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 전에 회장님께서 창당을 하고 후보를 내신다면 거의 전승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
“그럼 2년 후의 총선도 완승할 것이고 3년 후의 대선에서도 승리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건 마치.”
서동수가 소파에 등을 붙이면서 웃었다.
“손에 좋은 패를 잔뜩 쥐고 고스톱을 친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입을 열었던 유병선이 다시 다물었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한국의 대통령이 거저먹는 자리인가? 그렇게 쉽게 대통령이 되다니?”
“회장님, 그것은.”
“대통령은 정치인이 해야 돼.”
서동수가 불쑥 말하자 놀란 유병선은 숨을 들이켰다. 지금까지 서동수는 정치인을 부패하고 무능하며 사욕이나 채우는 부류로 치부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병선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정치는 사람을 다루는 거야. 난 기업가로는 맞을지 모르지만 정치인은 힘들어.”
서동수가 이제는 입맛을 다셨다.
“내 전처도 내가 직접 처리 못하는 것 좀 봐.”
“서 회장님을 위해서 내가 숙고한 것입니다. 오늘 저녁 7시에 임페리얼 호텔 라운지입니다.”
수화기에서 울리는 리정산의 목소리는 정중했고 간곡한 느낌까지 들었다. 다시 리정산의 말이 이어졌다.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이것은 서 회장님한테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오.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서도 아주 호의적이란 말입니다. 그럼.”
전화가 끊겼으므로 어깨를 늘어뜨린 서동수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리정산이 숙고한 것이 아니었다. 여럿이 함께 숙고해서 주선했다는 말이다. 벽시계가 오전 11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이윽고 서동수가 인터폰의 벨을 눌렀다.
“예. 회장님.”
임청의 맑은 목소리가 울리자 서동수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임청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 희망이 솟는 것 같다. 그것은 민혜영도 마찬가지다.
“유 실장을 들어오라고 해.”
유병선이 당분간 중국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곧 방으로 들어선 유병선이 서동수의 눈짓을 받고 앞쪽에 앉았다. 그때 서동수가 메모지를 유병선에게 내밀었다.
“이 사람 조사해봐.”
메모지를 받은 유병선이 적혀진 이름을 보았다. 장치다. 리정산이 말해준 이름인 것이다. 머리를 든 유병선에게 서동수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리정산 서기가 오늘 저녁 7시에 만나보라고 한 여자야. 베이징대 영문과 교수라니 인터넷에도 떠 있겠지.”
“리정산 서기가 말씀입니까?”
메모지와 서동수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유병선은 긴장하고 있다.
“그럼 이분은….”
“내 결혼 상대로 소개시켜 주는 거야.”
“…….”
“가문이 좋다는군. 학벌, 미모도. 37살에 이혼 경력이 있다는 말도 해주었어. 아이는 없고.”
“…….”
“중국 고위층에서도 적극 추천한다는 거야. 이른바 정략적이지.”
“알겠습니다.”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인 유병선의 얼굴이 밝아져 있다.
“좋은 현상입니다. 회장님.”
“그렇게 생각하나?”
“항상 한두 계단 앞질러서 기회가 놓여지는 느낌이 듭니다. 회장님.”
“놓여진다고 했어?”
“그렇습니다.”
유병선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물론 그렇게 놓여질 기틀을 잡으신 것은 회장님이십니다.”
“아부하지 마.”
유병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서둘러 방을 나가는 유병선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뗀 서동수가 길게 숨을 뱉었다. 그렇다. 유병선의 표현대로 이것이 기회가 될 것이다. 가문이 좋은 중국 여자와의 결혼으로 중국인 인정을 받으면 활동 범위는 더 넓어질 것이고 기반 또한 굳어진다. 한국은 물론 북한에서의 사업도 더 안전해질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유병선이 들어서는 바람에 서동수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쉽게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애써 흥분을 감춘 유병선이 서동수를 보았다. 눈동자가 반짝였다.
“장치 씨는 부친이 전 산시성 서기였던 장윈창이었고 조부는 부총리였던 장산이었습니다. 두 분 다 사망했지만 대단한 가문이죠.”
그래서 고위층들이 추천한 것이다.
라운지로 들어선 서동수에게 지배인이 다가왔다. 웃음 띤 얼굴이다.
“서 회장님이시지요?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배인은 서동수를 알아보는 것 같다. 오후 6시 55분, 안쪽 밀실로 안내하면서 지배인이 말을 잇는다.
“TV에서 뵈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렇게 얼굴이 팔려서 제대로 연애도 못하겠군.”
서동수가 투덜거렸더니 지배인이 활짝 웃었다.
“호텔맨 입은 믿으셔도 됩니다, 회장님.”
밀실 앞에 선 지배인이 노크를 하더니 문을 반쯤 열고 비켜섰다. 안으로 들어선 서동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여자를 보았다. 그 순간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감동을 받은 것이다.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선녀 같았다. 잘록한 허리 곡선을 살린 드레스는 눈이 부셨다. 서동수와 시선을 마주친 여자가 웃음 띤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갸름한 얼굴과 맑은 눈, 눈초리가 조금 솟았고 쌍꺼풀은 없다. 적당하게 곧은 콧날과 살색 루주를 바른 입술이 반들거렸다. 키는 165㎝쯤 될까? 날씬한 몸매, 20대 후반쯤으로나 보이는 몸매와 얼굴이다.
“반갑습니다, 장치 씨. 미인이시네요.”
“감사합니다.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장치의 손은 작고 부드러웠다. 원탁에 마주보고 앉았을 때 서동수가 지그시 장치를 보았다.
“한국인과 결혼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전혀 없는데요.”
머리를 조금 기울이면서 장치가 웃었다. 가지런한 이가 드러났고 눈이 가늘어졌다. 그 순간 서동수는 목구멍이 좁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성욕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장치를 보았다. 인간은 유일한 절제의 동물이다. 간음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벌을 받는다면 서동수는 십만 번도 더 죽었다.
“그래요? 민족이 달라도 괜찮아요?”
다시 물었더니 장치가 또 웃었다.
“중국어 잘하시니까 중국인처럼 느껴지는군요.”
“그런가요?”
“더구나 제 조상이 북방계예요. 아마 회장님의 조상과 같은 핏줄이 섞였을 수도 있지요.”
장치의 두 눈동자가 반짝였고 표정이 진지해졌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이런 모습이 될까? 장치가 말을 잇는다.
“몽골 초원에서 일어난 원이 중국 대륙을 지배했을 때도 있었고 금, 청도 북방 민족이었죠.”
“…….”
“중국은 어느 소수민족이 지배를 해도 동화되어 대국을 이루었습니다. 저 또한 동화될 수 있어요.”
그 순간 서동수는 온몸에 차가운 기운이 덮였다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곧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몸에 열기가 일어났다.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제는 눈앞에 앉은 장치가 붉고 뜨거운 용암 구멍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을 빨아들여 녹여 없애는 구멍, 그리고 일체가 된다. 서동수가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장치 씨, 당신한테 빨려드는 것 같아.”
“하하.”
입을 딱 벌리고 짧게 웃은 장치가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다.
“저는 불덩이가 날아오는 것 같아요.”
서동수는 이제 목구멍이 막힌 느낌을 받고는 입을 딱 벌렸다. 그 순간 눈앞에 아득한 중국 대륙이 펼쳐졌다. 만리장성을 넘은 칭기즈칸의 느낌이 이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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