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오빠는 풍각쟁이야 : 대중 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민음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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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의 공을 치하한다. 장유정은 이 책을 현재 대중가요의 존재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썼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녀는 성공적으로 근대 우리 가요를 분석했고, 당시 조선을 거닐게 해줬다. 인용할 부분이 너무 많은데, 주요 부분만 밝혀 둔다.
275쪽 “트로트는 당시 일본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아서 새롭게 출현한 일련의 모든 곡들을 통칭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현존하는 유성기 음반 가사지 중에서 유행가란 곡종을 달고 있는 모든 곡이 트로트는 아니지만, 대체로 트로트는 일제 강점기 대중가요 중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였다고 할 수 있다.” ―, 「대중가요의 문학적 구현 양상」 중에서
트로트, 일본 영향 인정.
331쪽 “결국 트로트가 당대에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트로트가 보여 주고 있는 정서가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와 닮은 보편적 정서였기 때문이다. 비록 트로트가 음악적인 면에서는 일본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았을지라도 노랫말에 담겨 있는 정서는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정서였기 때문에 당대의 대중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며 불릴 수 있었던 것이다.” ―, 「대중가요의 문학적 구현 양상」 중에서
트로트의 의의라고 볼 수 있을까.
348~349쪽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의미의 대중가요가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초에 등장한 유성기 음반의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유성기의 등장은 음악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촉진시키면서 음악의 대중화를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19세기부터 대중음악이 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이 마련되고 있었다. 이는 서울 중심의 상업 발달과 인구의 서울 집중화 현상,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배태된 시정인(市井人)의 소비적이고 유흥적인 태도에서 비롯하였다. 도시 상업이 발달하면서 조선 후기 서울에는 유흥업이 번창하였는데, 이와 더불어 새로운 음악 문화도 출현하였으며, 서울의 상업 도시화는 연예를 생계로 삼아 활동하는 상업적 연예 집단을 배태시킨 것이다.” ―, 「20세기 전반기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적 위상과 의의」 중에서
대중가요가 출현할 수 있었던 게 비단 유성기의 힘뿐만이 아닌 환경이 이미 조선 말기에 조성되었다는 말, 요 문단 매우 중요하다.
박찬호, 안동림 옮김, 『한국 가요사 1 : 가요의 탄생에서 식민지 시대까지 민족의 수난과 저항을 노래하다, 1894~1945년』(미지북스, 2009)
미시적인 관점이 커서 읽기를 미뤘던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 대중음악사에 있어 의미가 굉장히 큰 책이다. 1992년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 대중음악을 다룬 책은 없었다. 박찬호는 담담하게 그 시절, 그 노래를 음반과 당시 자료를 통해 구술하고 있다. 이 땅의 음악을 공부하는 많은 이들이 박찬호에게 빚지고 있다.
박찬호, 이준희 엮음, 『한국 가요사 2 : 해방에서 군사 정권까지 시대의 희망과 절망을 노래하다, 1945~1980년』(미지북스, 2009)
내용이 어떻든 간에 박찬호의 공은 월등하다. 박찬호가 연대기로 노래와 가수를 정리했기에, 후학들이 이를 기반으로 가요사를 정리하고, 책으로 쓸 수 있었다. 다만 사실 관계에 있어서는 좀 더 고증이 필요하다. 많이 배운다. 이러기도 쉽지 않다.
로브 셰필드, 이은선 옮김, 『파란 하늘처럼 하드록처럼 : 스무 개의 낡은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단 하나의 사랑』(Y브릭로드(웅진), 2009)
영국 인디펜터트지가 선정한 ‘최고의 록 음악 책 10권’으로 꼽혔다는데, 글쎄다. 부제처럼 주인공의 카세트테이프 연대기다. 마흔 살이 넘은 사내들이라면 공테이프에 녹음하여, 선물하고 듣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로브 셰필드는 아예 녹음테이프의 추억으로 소설을 구성했다. 음악을 좋아하고, 테이프에 녹음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의 연대기다.
노동은, 『노동은의 음악상자』(웅진출판, 1996)
80년대 이후 민족음악 부분은 노동은, 대중음악 부분은 김창남으로 양분되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그의 문체는 주장과 근거만 있지, 글의 미학은 없었다. 모두 다 잘 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돼 있다. 1 인간과 음악과 민족, 2 한국음악의 미래, 3 북한음악의 이해, 4 다시 쓰는 음악사 장면들, 5 이 시대의 음악가 등 다섯 부분인데, 곳곳에 기고된 내용들이라 연속성 없이 읽어도 무방했다.
225쪽 “한마디로 요약하면, 북한의 민족음악은 ‘민족적 형식과 사회주의적 내용’을 골격으로 삼고 있다. 민족적 형식이란 서양음악이나 중국음악 등의 양식적 형식을 바탕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형성되어 온 민요 등의 전통음악 형식을 가리킨다. 민요 등 전통형식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는 근로대중들이 생활과정에서 수천년간 생활감정과 나아갈 바를 음악형식에 드러냈고, 이러한 음악형식으로 인해 민족고유의 특질을 지켜 올 수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음악의 요약.
민경찬, 『청소년을 위한 한국음악사(양악편)』(두리미디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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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닌 독서 중이다. 오로지 필요성에 의해 음악 관련 책을 읽고 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 기분, 힘든데 재밌다. 이 책은 한국 양악에 대한 책이다. 음악을 전공하는 초급자들이 기초 교양서적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음악의 성장 과정과 숙제에 대해 확인하는 계기가 되다. 조금 머쓱하지만 인류 평화를 위해 음악을 봐야 한다.
207쪽 “정확히 말한다면, (안익태의 애국가가) 나라나 정부에 의하여 공식 국가로 채택이 되었거나 법적인 차원에서 국가로 제정된 것이 아니라 관습적인 차원에서 국가로 불리다가 명실 공히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노래로 돼 버린 것이다. 즉 대한민국의 공식 국가는 아직 없으며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애국가〉가 국가이겠지만, 관습법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가 아닌 것이다.”
애국가를 공식 국가로 인정한 사실이 없다는 말.
224~225쪽 이 시기(전쟁 이후 분단 시대)의 음악은 이분화된 대립과 갈등의 구조 속에서 팽창 일변도로 진행되었다는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립과 갈등은 자극적인 요소로서 기능을 하여, 때에 따라서는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고, 때로 따라서는 생산성을 향상시켜 주어 다양하고 풍부한 장르의 음악 문화를 창출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즉 동양 음악과 서양 음악, 고전 음악과 현대 음악, 전통 음악과 외래 음악, 고급 음악과 저급 음악, 예술 음악과 대중 음악, 국악과 양악이라는 이분화된 대립 구조는 경쟁 원리의 작용으로 인해 각 장르의 독자적인 발전을 촉진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영역의 확장과 생산에만 관심을 둔 장르 이기주의를 낳게 하는 역기능적인 면으로 작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기의 음악 문화는 장르 간의 소통과 수용자와의 소통보다는, 개별적인 장르의 발전을 중시한 생산자와 예술가 중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분단 이후 음악 변천 약술.
284쪽 “유감스럽게도 이 시기(1980년 이후)에 발표된 가곡들은 몇 곡을 제외하고는 발표와 동시에 더 이상 연주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청중 획득에 실패를 한 것입니다. 신작 가곡이 안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변화된 수용자의 취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생산자인 작곡가 중심으로 곡을 만든다는 데 있기는 하지만, 가장 큰 보급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중․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가곡 수록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 새로운 곡에 도전을 하지 않고 귀에 익숙해져 있는 곡만 부르려는 성악가들의 태도 등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창작된 가곡의 수는 약 10만편에 이르지만 연주되는 곡은 200편 정도에 불과합니다. 작곡가는 수용자를 생각하여 곡을 만들고, 연주자는 그 새로운 곡에 도전을 하고, 사회는 그 곡의 유통 구조를 만드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부각된 것입니다.”
답답한 구절 창작 동요, 가곡, 고전 음악 류의 실종. 이름 난 연주자는 있지만 창작자는 없다.
398쪽 “한국 근․현대 음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첫째, 수용자를 중시한 음악이라기보다는 음악가 중심의 음악이었고, 장르 간의 소통보다는 개별적인 장르의 발전을 중시한 전문가 중심의 음악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이 땅의 삶과 고통과는 다소 무관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서양적인 음악은 잘 발달한 데 비해 사실주의 음악과 서사적인 음악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점을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셋째, 서양 중심의 음악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전통 음악과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고, 인도 음악, 아프리카 음악, 남미 음악 등 먼 나라 음악은 물론 중국 음악, 일본 음악, 대만 음악 등 주변 국가의 음악에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넷째, 세계 음악사의 주역이 아니라 조역으로 머물면서 서양의 음악을 수용하고 재생산하는 데 급급했지, 세계 음악사를 창조하는 데는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째, 남․북 분단 시대에 살면서도 음악을 통한 남․북 화합에는 무관심하다시피 하였습니다.”
한국 현대음악의 문제점 정리. 이 문제점을 개선하는 게 우리 음악의 숙제다.
노동은, 『김순남 : 그 삶과 예술』(낭만음악사, 1992)
긴 책이다. 김순남의 모든 걸로 봐도 무방하다. 다만 노동은의 글이 거칠어 맥락을 이해할 때마다 외줄 타는 심정이고, 책 편집이 엉망이라 집중력을 헤쳤다. 독서 이전에 김순남의 음악을 들어봐야 하는데, 지금 들을 수 있는 노래는 조수미의 「산유화」와 장필순의 「자장가」가 전부다. 유투브를 통해 몇 곡 더 들을 수 있지만 이 또한 객관화시키기 힘들다. 김순남의 재발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의 음악이 음반이나 음원으로 선행돼야 한다. 여하튼 묻혀 있던 김순남이라는 위대한 작곡가를 노동은과 강헌을 통해 배우다.
김태원, 『우연에서 기적으로 : 김태원 네버엔딩 스토리』(청어람미디어, 2011)
김태원이 TV에서 한참 주가를 올릴 때 사실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정동하 이후의 부활은 듣기 힘들었고, 김태원은 부활의 음악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의 행보에 대해서는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선전에 박수를 보냈고, 그의 말처럼 TV에 나와서 세인의 이목을 끈 만큼 부활의 음반이 한 장이라도 더 팔리길 같이 기원했다. 유명세를 타고 나온 책이다. 책 구절이나 어감, 내용 등이 TV에서 보여줬던 김태원과 맥락이 같다. 감성 풍부한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모든 게 동의 되는 건 아니다. 심심한 오후, 김태원과 불편하게 놀았다.
김성환, 『한 권으로 보는 J-Pop 연대기 : 한국인이 받아들인 J-Pop, 그 역사 속으로』(음악세계, 2013)
이웃 블로거 mikstipe님의 책으로 유추된다. 일본 대중음악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대표 선수들의 약력도 살펴볼 수 있다. 필요성에 의해 가볍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본 대중음악이 이 땅의 음악에 미친 영향을 대충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좀 더 깊이 있게 파고들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 책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