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현은 항상 그랬다. 술버릇조차 플러팅인 사람. 그와 10년을 넘게 알고 지낸 혁우는 백현을 향해 그랬다. 페로몬 향이 난다고. 쉽게 말하면 어딘가 바람둥이 같은 기질이 있다는 뜻이었다. 여주는 백현과 모든 것이 반대였다. 이름조차 엮여서 거론되는 게 낯설다 못해 괴리감이 느껴지는 조합이다. 그런 둘의 묘한 소문이 퍼지게 된 건 백현의 알 수 없는 행동 때문이었다.
"나는 긴 머리가 좋아."
한국대 캠퍼스에 붙임머리의 붐을 불고 오게 했던 백현의 취향이 담긴 한 마디가 손바닥 뒤집듯 바뀐 건 어느날 갑자기 머리를 싹둑 자르고 단발머리를 하고 온 여주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단발이 좋아."
한국대 캠퍼스에는 다시 단발병의 붐이 불었다.
"나는 민트초코 못 먹겠던데. 그런 혼종은 대체 누가 먹는..."
학교 앞 카페 상호명이 박힌 플라스틱 일회용 컵에 민트초코 프라푸치노가 담겨 빨대를 꽂고 지나가는 단발머리 여주를 보던 백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민트초코 혼종 뭐."
"다시 생각해보니까 맛있을 것 같아."
빨대를 꽂아 민트초코를 한입 쪼록 마신 여주가 강의동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2.
"우리 여주 뭐해?"
백현은 여주의 책상에 놓인 민트색 플라스틱 컵을 흘깃 바라봤다.
"너무 친한 척 하지 말아주세요."
"너무하네."
백현은 자연스레 방금 전 민트초코를 들고 지나간 여주를 쫓아 강의실로 들어섰다. 어떻게 여주의 시간표를 수소문한 백현은 여주가 듣는 교양을 따라 들었다. 백현은 친구의 친구, 또 그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후배. 그 후배의 동아리 친구. 그 친구의 여자친구. 그 여자친구의 고등학교 동문. 그 동문의 친구를 통해 여주의 시간표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 꼴을 지켜보던 우혁은 고개를 저었다. 변태같은 새끼.
"그 정도 집착이면 서울대는 갔겠다."
너는 걔가 그렇게 좋냐? 여주 예쁘지, 예쁜데... 솔직히 더 예쁜 애들이 너 좋다고 안달을 내는데 굳이? 우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럴 때마다 백현은.
"안 좋아해."
"지랄하세요."
"응."
그저 안 좋아한다는 말로 되받아쳤다.
“여주도 민트초코 좋아하는구나. 나도 좋아하는데.”
“선배 이거 좋아하세요?”
여주는 손가락으로 제 앞에 한입 마시고 거의 새것처럼 놓인 민트초코를 가리켰다. 응, 좋아하지~ 언제나 그렇듯 백현은 여자들 여럿 홀린 눈웃음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해지기 위한 첫 단계는 공통점을 만들기 위한 공감의 대화였다. 그런 백현에게 돌아온 건 저가 그토록 맛없다고 외치던 민트초코 음료였다.
“...응? 이걸 왜?”
“좋아하신다면서요. 먹던 거라 좀 그런가?”
“으음...”
“저는 별로 안 좋아해서요.”
“아아...”
“친구가 기프티콘 준건데 환불하긴 뭐해서...”
“아하...”
백현의 계획은 처참히 무너졌다.
“민트초코는 가끔... 누가 먹는지 모르겠던데.... 선배 좋아하시면 많이 드세요.”
여주는 슬금 자리를 떴다. 맨 앞자리로 가야 수업에 집중이 잘 된단다. 아니 그럼 여기는 왜 앉아있던 건데.
3.
백현이 여주 몰래 여주와 시간표를 맞추고 개강한지 얼마 안 된 날이었다.
“우리 여주 가디건 이쁘네.”
“....”
하얀색 롱코트 안에 귀여운 파스텔톤의 하늘색 가디건을 입고 온 여주한테 한 말이었다. 다음날 여주는 입고 오던 가디건을 벗었다.
“우리 여주 오늘 가디건 안 입었어?”
“더워서요.”
영하 2도였다.
4.
혁우와 게임 주요 승급전을 두고 백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웬만한 채팅방의 알람음은 꺼놓던 백현인지라 갑작스런 방해에 순간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눈깃으로 흘깃 휴대폰을 훔치며 미리보기로 뜬 채팅방의 내용을 본다. 여주다. 백현은 휴대폰을 집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백현은 짧게 고민하다 자판을 톡톡 쳤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백현은 헤드폰까지 벗어던졌다. 다시 짧게 고민하다 자판을 톡톡 쳤다.
우리 여주 갑자기 왜 그럴까. 백현은 다시 헤드폰을 집어들었다.
머리에 쓰려던 헤드폰을 다시 집어던졌다. 이번엔 고민 없이 자판을 톡톡 쳤다. 10분이 넘게 지나도 답장이 없다. 분명 읽었는데. 잠이 들었나. 백현은 다시 말을 바꿔 답장을 보냈다. 순식간에 1이 사라진다.
우리 여주가 진짜 왜 이럴까. 백현은 심란했다.
5.
백현은 전날 밤 승급전에서 무단이탈한 덕에 우혁에게 욕을 한바가지 얻어 먹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현은 다리를 꼬고 맨 뒤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깨물며 맨 앞에 앉은 여주의 뒤통수를 지그시 바라봤다.
“애 뒷통수 뚫리겠네.”
“누가.”
“너 때문에 새꺄.”
“내가 네 뒷통수 뚫는다고?”
“말 해석 참 줏대있게 하네.”
“응. 그런 편이야 내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백현은 뒷문으로 나갔다. 이미 5분 전부터 덮여있던 책을 가방에 쓸어담기는 쉬웠다. 대강당 뒷문으로 나간 백현은 앞문 쪽으로 가 여주가 나오길 기다렸다. 우혁은 그런 백현을 바라보다 먼저 자리를 떴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여주는 나올 기미가 없었다. 백현은 슬며시 안을 들여다봤다. 교수님 옆에 딱 붙어서 질문하고 있는 여주가 보인다. 백현은 손목에 걸친 시계를 한번 확인했다. 곧 나오겠지.
“...왜 안나오는데.”
백현은 다시 안을 들여다봤다. 그토록 기다리던 여주는 없었고 교수님 덩그러니 남아 있다. 백현은 몸을 돌려 뒷문을 바라봤다.
“이런 미친...”
어느새 뒷문으로 나가 쏠랑쏠랑 멀어지는 여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백현이 넋을 놓고 바라봤다.
6.
“나는 운동 잘하는 남자가 좋아.”
운동은 기깔나게 잘하지. 도장에서 사범님 소리 듣고 자란 백현은 여주 뒷자리에 앉아 몰래 여주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있다. 한때 경찰대 준비도 했다.
“어깨 넓은 남자가 좋아.”
어깨 뒤집어지게 넓지.
“키는 그냥 나보다 크면 돼.”
여주 키는 남들보다 조금 아담한 편이다.
“눈꼬리 올라간 사람은 싫어.”
백현은 처음으로 제 얼굴에게 감사했다.
“손 예쁜 남자가 좋아. 엄청 똑똑하지 않아도 말은 예의있게 잘 하는 남자가 좋아. 가끔가다 재미도 있었으면 좋겠어.”
“야 그거...”
백현은 여주의 말을 귀담아 듣다가 심각하게 여주의 뒷통수를 바라봤다. 저거...
“네 이상형 딱 백현선배 아니야?”
완전 난데.
“으음...”
여주는 친구의 말을 듣더니 고민하는 듯 허공을 바라봤다.
“아닌 것 같아.”
“누가.”
“이상형 좀 다시 고민해볼게.”
백현은 심란해졌다.
7.
“왜 요즘 꼬리 안 치고 다녀?”
“누가.”
“네가.”
“내가?”
“냅둬라.”
백현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문인 여사친인 유라를 만났다. 우혁은 백현대신 대답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공부중이야.”
“누가.”
“내가.”
“네가?”
“냅둬라.”
우혁은 유라대신 대답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무슨 공부를 해.”
“있어. 요즘 그거 때문에 머리 아파.”
“공부 안해도 1등이라고 재수 털리게 말할 땐 언제고.”
“있어. 요즘 여주 때문에 백현이 머리가 아파.”
“그게 누군데?”
유라는 눈을 땡글게 뜨며 백현을 바라봤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거.”
“뭐 새로온 교수야?”
“아니.”
“그럼 뭔데!”
유라는 두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쳤다.
“갖고싶은 거 있어.”
“게임 캐릭터야?”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돈 주고 살 수 있잖아.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6 22:51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6 23:30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6 23:3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7 00:2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7 03:50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7 14:01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7 18:4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7 18:5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7 21:3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7 21:4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8 00:15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8 00:57
첫댓글 사랑해요 퀸토님 자주와줘 ㅠㅠㅠ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8 09:2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3.01 00:45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3.01 08:41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3.01 14:2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3.01 20:10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3.08 23:5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3.10 13:59
여주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은 배켜니..ෆ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3.12 01:15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3.15 02:1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3.18 23:2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3.30 00:1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4.06 02:2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4.11 02:2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4.16 02:2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4.17 17:4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4.21 23:11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4.22 12:0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4.22 13:1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4.22 18:0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4.22 23:2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4.28 23:2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5.07 13:10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5.10 13:27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5.29 04:5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6.25 19:3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7.16 08:27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8.04 22:07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8.06 09:2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8.06 17:1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1.15 13:2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2.15 16:11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3.23 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