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武林名品族(무림 명품족)
56. 變身的解法(변신은 변신인데......)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을 읽을 수 있다면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될 것이오.'
반생편작 뻔뻔한 자식은 분명히 내 말을 알아듣고도(내가 입술로 벙긋벙긋하자 무척 불편한 얼굴이 되었으니까......)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일방적으로 대화를 중단하고 옆으로 슬쩍 걸어나가 매화정의 시녀 청이를 바라보았다.
"어린 아기에게 가을의 밤 공기는 해롭소. 금청자매,"
"그렇다면 안으로 들여야겠군요."
금청이 매화정의 눈치를 보자 매화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다시 돌려 안고 '메롱 메롱'을 해 보였다. 어쩌면 '우르르 까꿍!' 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해석에 조금 차이가 나도 별 상 관은 없을 터였다.
"까르르르르르"
- 훗, 아줌마 혀가 꽤 긴데? -
"귀여운 녀석, 안으로 들어가자, 청아."
"소생도 안에 들어가서 자세히 진맥을 했으면 합니다만,"
"그렇게 하시오. 반생편작"
굉장히 차가워진 목소리였다. 아마도 반생편작이 천산대공자에게 독수를 썼다는 것을 듣고 태도가 변한 듯 했는데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러고 보니 반생편작은 이곳에서 처음 등장 하면서 노골적으로 매화정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등 기이한 짓거리를 하지 않았던가?
"오라버니께서 곧 내 방으로 오겠다고 말씀하셨소."
매화정의 이 말은 마치 '내 방에서 딴짓을 하면 울 오빠가 네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릴 거야!'
라고 외치는 고함처럼 들려왔다.
"그렇습니까?"
반면 반생편작의 대꾸는 담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라버니께서는 명교도들이 이곳에 자주 나타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소. 우리는 성실히 부탁 받은 대로 일을 해주고 있는데 그대들은 전혀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 것 같으니 말이오."
"소생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소생은 문주 어르신과 마마의 기침병을 치료해드 리라는 당부를 받았을 뿐 입니다."
"명교의 정보가 애매하다는 이야기도 있소. 우리의 제자 하나가 명교의 정보를 듣고 정란공주를 추적하다가 실종되었다는......"
"역시 소생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매화정은 반생편작을 잠시 노려보다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난 그녀의 품에 폭 안겨서 찌찌를 떡 주무르듯 주무르며 나른하게 졸고 있었다. 이 긴장된 가을밤의 상황에서...... 빌어먹을 어린 아기의 몸이여......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어떤 개자식이 내 발치에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금침을 꽂아 도배를 해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독할 정도로 통증이 몰려왔고 발가락 사이로 검은 피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아기가 깨어났습니다."
"많이 아플 텐데......"
반생편작이었다. 호롱불 몇 개로 조명을 밝힌 그리 넓지 않은 방에서 녀석은 온갖 섬뜩한 의술도구들을 산처럼 쌓아놓고 내 몸을 실험재료 삼아 기기묘묘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반생편작이 트윈사이즈 침상을 주인처럼 차지하고 앉아 내 몸을 고슴도치로 만들고 있는 동 안, 매화정은 침상 옆의 의자에 앉아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침상 발 치에서 더운 물을 은수저로 휘젓고 있는 금청이는 '졸려 죽겠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역시 애새끼는 방긋 방긋 웃을 때나 좋지 평소에는 사회악이야!'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인의 아무런 허락도 받지 않고 행해지는 의료행위였다. 하하, 부항에 뜸질에 금침에 쇠침까지......
'내가 동절기에 낙상해서 골절과 디스크치료를 겸하고 있는 팔순 노파로 보이냐! 이 개 자 식아!'
분노하고 놀란 눈으로 반생편작 녀석을 노려보고 있자니 녀석은 능글맞은 애매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마에 밴 땀을 닦아냈다.
"아기씨가 워낙 참을성이 좋아서 다행입니다."
"신통하구나, 이렇듯 침을 놓고 있는데 울지를 않다니......"
"이 아기 어쩐지 이상한 구석이 있지 않습니까? 침을 맞으면 소녀도 눈물이 찔끔 나오는데 저렇듯 엄청난 침을 맞으면서......"
"응애, 응애, 응애, 응애......"
나는 네 번을 울어주었고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청이란 뇬을 바라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소아과나 치과 병원에서 울지 않는 애는 최우수 고객이다. 의사들이 제일 좋 아하는 손님이란 말이다. 그런데 침을 맞고 울지 않는다고 무신경한 넘으로 취급하다니......
"아가, 울지 마라. 네 몸을 위해 놓는 침이야."
매화정은 내 머리를 어루만졌고 나는 그녀의 손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반생편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기씨가 참을성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치료가 거의 끝났습니다. 아마도 가끔씩 인삼, 당귀, 복령초, 차전자, 구기자를 3대 2대 2대 2대 1로 배합해서 달여 마시면 몸에 무궁무진한 이로움을 가져올 겁니다."
"받아 적어라. 청아."
"이 아기를 앞으로도 돌봐주시려고요? 아무래도 정체도 수상하고......"
청이란 뇬의 매정한 말에 매화정이 나무라듯 대꾸했다.
"세상에 정체가 수상한 어른은 있어도 수상한 아기는 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이예충 왜 이런 어마어마한 치료와 탕재가 필요한 것이오? 그대 입으로 건강하다고 하지 않았소?"
매화정은 아무래도 다소 둔감한 구석이 있는 여자 같았다. 그럼 지금까지 이 자식이 나를 고슴도치로 만드는 동안 눈만 뜨고 '우리 아기 아프면 안돼!' 하고만 있었다는 것인가?
"이미 말씀 드렸지만 이 아이는 건강하기는 하지만 기질에 약점이 있습니다. 천산의 대공자 에게 소생이 지금 처방을 한다 해도 이와 동일한 탕재를 쓸 것입니다. 인삼, 당귀, 복령초, 차전자, 구기자를 32221의 배합으로 달인 약재는 천산대공자처럼 잘못된 의원의 처방으로 해가 되는 치료를 받고, 약재를 꾸역꾸역 먹어온 아이들의 체내에 쌓인 독기를 몰아내줍니 다."
이상한 소리였다. 나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매화정이 눈살을 찌푸리며 반생편작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도 후천적으로 잘못된 처방을 받았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어떤 악의적인 돌팔이가 아이를 해칠 생각으로 몇 가지 치명적인 처방을 내렸던 겁니다."
녀석이 워낙 담담하게 사실을 불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신이 범한 죄를 씻기 위해 이 아이를 천산대공자라고 생각해서 이토록 열심히 치료를 하는 것이오? 벌써 두 시진이나 아이를 잡고 매달리고 있지 않소?"
"그렇습니다. 마마, 소인은 이 아기씨를 천산대공자 유세엽님이라고 생각하며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인이 천산대공자에게 범한 죄가 없어지지 않는 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흥, 천산대공자는 천산의 족속이며 우리의 적인데 죽이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어디서 그런 요사스러운 주둥이를 놀리는 게냐!"
확실한 적으로 돌아선 금청이의 말에 매화정이 차가운 음성으로 고함을 쳤다.
"마마, 하오나, 역시 이 아이는 정체가 의심스럽고 또 천산대공자는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하나 적혈문의 적이며......"
금청도 물러설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아무리 명교와 적혈문의 적이라고 하나 어린 아이를 상대로 그딴 치졸한 공작을 하고 독계 를 펴는 것이 허용될 것 같더냐? 그것이야 말로 소인의 계책이다. 내 그 소문을 듣고 오늘 반생편작 이예충에게 전모를 들은 다음에는 명교 두만력의 사람됨에 의심을 갖게 되었다."
이 말에 놀란 사람은 금청이었다. 그녀는 물을 담은 대야를 내려놓더니 벌떡 일어났다가 무 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마마, 행여 누가 엿들을까 무섭사옵니다. 두교주와 마마는 이미 정혼이 약속되어 있는 처지가 아니십니까? 이 일로 인해......"
"적혈문과 명교의 사이가 갈라진다는 것은 생각도 해 본적이 없다. 일어나라 청아. 난 이미 두만력의 여자라고 생각한다. 단 근천궁의 후궁이었던 내가 아니라 적혈문주 매충식의 누이 동생으로서 매화정이 말이다. 선제폐하께서 참혹하게 살해당하셨을 때 이미 다짐을 했던 바 가 있었다. 찬탈자 주체(영락제의 본명)를 죽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짓이라도 하겠다고 말이 다. 내 그 일을 위해 주체의 첩이 되라면 될 생각도 있었고, 창기가 되어 몸이라도 팔 각오 가 있었다.
두만력은 천하의 영웅이고 그에게 시집을 가서 명교의 힘을 얻어 일을 이룬다는 것은 어떻 게 보면 죄 많은 이 몸을 하늘에서 어여쁘게 여겨주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 된 것은 잘못된 것이며 소인의 행동을 저지른 것은 소인의 행동을 저지른 것이다. 아무리 금칠로 포장을 하 고 덧칠을 하려 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하오나 마마......"
반생편작은 어찌되었건 자기의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내 발에 꽂았던 금침을 뽑으면서 그 위에 향긋하고 시원한 고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순식간에 통증이 사라지는 신기 묘묘한 고약이었다.
"아기의 치료가 끝난 것이오?"
"네, 마마, 소생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습니다. 이 복합 치료는 아기의 후천적으로 막혀있는 숨은 혈맥 다섯 개를 소통시켜 주어 추후 장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숨은 혈맥이라는 건 대체 뭐요?"
"혈도와는 좀 다른 것입니다. 소생의 사부께서 발견해낸 비맥(비밀 혈맥) 은맥(숨은 혈맥)이 모든 사람에게는 각 다섯 개씩 열 개가 있습니다. 그 중 은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설명을 드리자면 꽤 복잡하고 어려운 강의를 여러 시진에 걸쳐서 드려야 합니다.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인체 표면이 아닌 장기 내부에 있는 혈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그것이 대부분 뚫려 있는데 이 아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대가 그것을 뚫었다?"
"그렇습니다. 마마."
매화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 일을 다했다면 그대는 더 이상 이 방에 머물 이유가 없겠군?"
"그렇습니다. 소생 물러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반생편작은 주섬주섬 의료 도구를 챙겨 허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한 다음 걸어 나갔다. 그가 방문을 열기 직전에 매화정이 다시 입을 열어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하문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이예충, 그대가 나를 넘보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들려오던데 어찌된 것이오?"
매화정은 내 생각대로 완전 둔탱이는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반생편작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마마는 소생의 사모님과 많이 닮으셨습니다."
"그대가 겁간을 했다는 그 사모를 말하는 거요?"
"그렇습니다. 그 이후 제 정신이 들자 목을 매달아 자진하신 제 사모님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다른 뜻이 있어서 마마를 바라보았던 것은 아니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러가서 내가 부르기 전에는 결코 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마시오. 이예충, 인의를 저버리고, 예의를 저버리고, 수치를 저버린 데다가 의원의 도리까지 저버렸다는 그대를 보면 계속 해서 살심이 솟아나니까 말이오. 지금 그대를 죽이게 되면 오라버니의 입장이 난처해지오. 따라서 내 눈에 띄지 마시오."
매화정의 음성은 담담했는데 담담했기 때문에 더욱 섬찟한 것이었다. 반생편작은 역시 담담 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청아, 일어나라!"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던 금청은 매화정의 말이 들리자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소녀가 어리석었습니다. 마마."
"반생편작은 계속해서 이 아이에게 존대를 했다."
"네?"
"천산대공자인 유세엽이라는 아이에게 사용해야 한다는 처방을 동일하게 썼고 말이다. 침을 놓으면서는 아기가 깨지도 않았는데 연속해서 '참으십시오. 공자' '참으셔야 합니다. 공자'라는 소리를 지껄였다."
"그렇기는 했습니다만,"
"그 사부가 그랬다지만 반생편작 이예충도 자기 재주 하나만을 믿고 오만한 남자다."
"네에......"
이미 나는 매화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는데 청이란 뇬은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눈을 굴리며 상전의 말을 분석하려고 하는 동안 매화정은 나를 안아 들고 하얀 비단 수건을 들어 내 발치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냈다.
"정말로 수상하다."
"반생편작이 말씀이십니까?"
"모든 일이 다 그렇다. 반생편작은 나와 오라버니의 기침병을 고치라는 이유로 적혈문으로 보내졌다. 그와 동행한 흑의추종단 두 녀석은 대단한 녀석들이지, 일종의 감시역이다. 그런 데 너도 알겠지만 오라버니도 나도 기침병 따위는 없단 말이다."
"네에, 그건 그렇지요,"
"그렇다면 왜 두만력은 반생편작을 여기로 보내서 나와 오라버니를 치료하게 했을까?"
금청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조심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에게 그를 죽여달라는 건가요?"
"아마도, 명교에서는 반생편작의 약점을 잡고 그를 흔들어 왔다고 들었다. 그런데 조금 지나쳤던 모양이야. 그가 사모를 겁간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말을 지껄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반생편작과 완생편작 두 사제간의 정은 돈독하기로 유명했고 두 사람 모두 자기 처를 끔찍하게 사랑했다고 한다. 그런 자가 제 정신으로 자기 사모를 겁간 했을 리야 없지 않겠느냐?"
"그렇겠군요."
"몽혼약을 썼던지 비열한 방식으로 협박을 했을 것이다. 명교는 그렇게 해놓고 적당히 소문을 내게 되면 반생편작은 무림에 발을 붙일 수가 없고 죽을 때까지 명교에서만 빌붙어먹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지나쳤지,"
"아하......"
"강호의 다른 곳에 발을 붙이지 못한다 해도 반생편작에게 명교만이 길은 아닌 것이다. 죽게 되면 그는 명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내 귀에도 무지 흥미롭게 들려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명교는 절대로 그를 보내주려 하지 않겠지, 그와 같은 의원의 가치는 돈으로 치기 어려운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반생편작은 자기의 가치를 없애기 시작했다. 의원의 가치가 없다는 그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부상을 당하거나 병을 입은 명교 고수들을 고치지 않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칠 수 없다고 포기하거나 아주 무성의하게 진료를 한 것이지, 최근 들어 그러한 일이 자주 있었다고 오라버니에게 들었다. 반생편작의 실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소문이 돌던 참에 그가 우리에게 온 것이다."
"왜 자결을 하지 않았을 까요? 그 편이 쉬울 텐데......"
"그의 약점 때문이다. 지독하게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는 거지, 그의 가족은 불귀곡에 있다고 하더구나,"
나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는 스스로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아기가 왜 저러죠?"
"모르겠다. 졸린 걸까?"
"배가 고픈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금청의 말에 매화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언가를 먹여야 할 거야. 이빨이 있으니 부드러운 것을 먹이면 될 거다. 반생편작 이예충도 껌벅 죽는 아기니 무언가 고급스러운 먹을 것이 필요할 거야."
매화정의 말은 어쩐지 나보고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난 그저 눈만 마주치면 웃거나 찌푸리거나 하며 표정연기를 계속 했는데 어쩐지 더 이상 약 발이 받는 것 같지가 않았다.
"거참 이상해, 돌이 지난 나이로 보이는데 왜 아직 걷지를 못할까?"
"돌이 지나면 말도 곧잘 합니다. 소녀의 조카딸도 말을 곧잘 했던걸요?"
매화정은 나를 바라보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사람을 무지 불안하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반생편작 이예충 같이 오만한 사람이 왜 저 아이를 대하며 연속해서 존대를 하고 그렇듯 끔찍하게 보살폈을까? 아이가 혼자 걸어왔을 리는 없을 테니......"
"역시 마마께서도 반생편작과 이 아이가 관련이 있다고 보시는 거로군요?"
"지금까지는 그렇다. 반생편작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무공으로는 아이를 안아 내가 머무는 거처의 뜰에 내려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와 동행한 명교의 두 흑의추종단은 가능한 일일 터, 지금까지 나와 오라버니는 반생편작 이예충을 우리에게 보낸 이유가 바로 그를 죽여달라는 두만력의 암묵적인 뜻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아이의 등장으로 인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반생편작이 내 등 뒤에서 아이에게 입을 뻐끔거리면서 무언가 들리지 않게 이야기를 했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아이도 비슷한 짓을 했는데 우연찮게도 침대에서 둘이 그 짓을 할 때 난 거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매화정은 의자에서 일어나 침상으로 다가왔다. 거리라고는 고작 한 걸음, 그녀는 침상에 누 워 발가락을 꼬고 있는 나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바로 천산대공자 유세엽 본인이 아니냐?"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하겠는가?
"부우 부우 뿌뿌뿌뿌......"
"정말로 말을 못하는 거냐? 아니면 못하는 척 하는 거냐?"
매화정은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가느다란 노끈 같은 것을 끄집어냈다. 두 개로 갈라진 혀를 쉭쉭거리는 적혈사였다. 이 뱀에 물린 점소이가 당했던 고통스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뿌뿌뿌 아뿌뿌뿌뿌!"
내가 뱀을 보고 손을 흔들자 매화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짓으로 금청을 불렀다. 금청은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조그만 통을 갖고 있었는데 매화정의 손에서 뱀을 받아 그 속에 넣었다.
"안심해라. 너를 뱀으로 물어 죽이려 이 방까지 데려왔던 건 아니니까, 난 그저 네가 누구 인지 궁금한 거다. 넌 대체 누구냐? 천산대공자 유세엽이냐? 아니면 마교 중요한 인물의 자식이라도 되는 거냐? 쉽게 대답하려고 하지는 않겠지, 청아!"
"네, 마마."
"그 방법을 쓰자."
"그 방법이라 하심은......"
난 두 여자의 입에서 어떤 끔찍한 고문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해졌다. 조심스럽 게 내공을 체크해보았지만 아직은 천외경은 고사하고 반골장을 운기 할 정도의 내공도 모이지 않은 상태였다.
'웃 젠장할, 무림 어디에 가도 그냥 멍청하고 사람 좋은 것들이란 없는 법이냐?'
"그렇다. 소수요녀(素手妖女) 금청의 소수섭혼술 말이다."
"소수섭혼술은 어린 아이에게 시전해본 적이 없었는데요?"
"이 아이의 그것을 보지 않았느냐? 느낌인데 다른 애들이라면 몰라도 이 아이라면 통할 것 같다. 준비해라."
금청은 한숨을 내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을 내리시면 무엇이든 다 하겠지만 소수요녀라고 부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흥, 새파랗게 어린 궁녀의 신분으로 왕자들을 사로잡아, 궁에서 탈출하여 무림 온갖 높은 사내들을 홀리고 다니며 그들에게 무공을 전수 받던 소수요녀를 그렇다면 무어라 부르면 되겠느냐?"
"이미 손을 씻었고 소녀가 그런 방법으로 무공을 익힌 이유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잖아요?"
금청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지자 매화정은 달래는 듯한 목소리가 되었다.
"네 가족도 연경왕인 주체에게 죽었고, 내 낭군도 연경왕 주체에게 죽임을 당하셨다. 우리는 비록 주종관계라지만 같은 목적으로 함께 일을 하고 있는 거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하지만 이 아이는 소녀의 본래 얼굴을 아는데......"
"소수요녀의 본 얼굴을 알던 왕자 셋이 그 미색에 넘어갔지......"
대체 두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금청이 품에서 뱀을 꺼내 광주리에 담아놓고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보였다. 대체 무엇을 보여준다는 것일까?
소수섭 혼술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저 몸매는 착하지만 얼굴은 그저 그렇고 머리도 별로 좋아 보이 지 않는 아이에게 대체 무슨 방법이 있다는 것일까?
매화정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밥은 잠시 후에 먹여주도록 하마. 어린 것에게 이런 방법을 쓰게 되어 미안하구나, 아프지 도 않을 거고, 어쩌면......"
어쩐지 뒷말은 울음을 삼키며 뱉어내는 말 같았다. 차 한 잔 정도 마실 시간이 지나자 문이 열렸고 누군가 진한 사향을 풀풀 풍기며 들어왔다.
"어부! 뿌뿌 부부?" - 오홋! 이것은......-
정말로 위험해 보이는 색기를 풀풀 풍겨내는 여자였다. 오직 하얀 원피스 드레스 같은 것을 입었는데 디자인 면에서 홍콩 귀신 영화에 나올법한 것으로 얇고 뒤로 위로 질질 끌리는 그 런 옷이었다. 중요한 점은 옷 속에 바로 멋진 굴곡의 몸매가 비친다는 사실, 치렁치렁한 장신구들이 발과 팔과 목에 사정없이 걸려 있었으며, 한결같이 비싼 물건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얼굴은 한국의 섹시스타 누구 누구(김혜수, 엄정화, 기타 비슷한 여자 들)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였다.
섹시한 분위기로 가득한 여자는 물위를 걷는 듯 내 앞으로 다가와 침상에 가볍게 걸터앉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가슴의 여밈 사이로 보이다 말다를 반복하는 멋진 품질의 풍만한 젖가슴을 보느라 제대로 말도 듣지 못했다.
"해볼 만 하겠느냐?"
매화정의 목소리도 간신히 귀에 들려왔다.
"이상하네요. 어린 아이인데 어른만큼 쉬울 것 같아요."
그렇다. 천하제일의 섹시녀는 다름 아닌 금청의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얼굴을 뜯어보았고, 그녀에게 천하제일의 셀프 메이크업 실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주근깨와 기미가 상당히 있던 얼굴은 뽀얗게 분장되어 그 위에 핑크색 연지를 조금씩 바름으로 자연미 넘치는 하얀 피부가 되었고, 크다고 말하기 힘들었던 두 눈은 어느새 쌍꺼풀이 생겨나서 커 보이는 위에, 진하고 긴 속눈썹이 나란히 생겨나 있었다. 입술은 아래는 도톰 하게 위는 얇게 마무리 되어 있었으며 아이라인에는 연한 푸른색 마스카라 비슷한 것이 발라져 있었다.
오호라 푸른 마스카라의 본 뜻이 무엇이던가? 파리의 유부녀들이 총각이나 다른 유부녀를 사냥하면서 암묵적으로 보내던 신호가 아니던가? '나 지금 만나는 남자땜에 무지 피곤하거 든, 넌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겠어?'
크아아, 분명히 금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천하 제일의 섹시녀로 변한 금청은 내 얼굴을 넘어 가슴과 배를 어루만지고 있었으며 그 코와 입술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그 탄력 있고 부드러운 가슴이 내 머리를 지긋이 누르고 있었다.
내 정신은 순식간에 몽혼함을 떠나 아득함으로 출발하고 있었으며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금청이 머리카락 하나를 만져도 짜릿해졌으며 그녀가 내 피부를 만지 게 되면 온몸이 절로 오그라들 정도였다.
"너를 천산대공자 유세엽이라고 불러도 될까?"
베게 옆에서 속삭이는 모든 여자가 갖고 있는 세 번째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어쩐지 절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응? 이 누나는 그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어, 어머 이 볼록 튀어나온 귀엽고 남자다 운 배 좀 봐! 내가 그대의 통통한 두 다리에 반했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어? 누나는 근육질 남자의 건장한 다리보다 이렇듯 보드랍고 통통한 다리가 더 좋거든, 혹시 이 누나를 수치 도 모르는 변태라고 부르고 싶은 거야? 미안해 그렇지만 그대가 이렇게 만들고 있는 거야 나쁜 사람은 바로 그대란 말이야."
소름끼칠 정도로 매혹적인 음성이었다. 난 필사적으로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우구구구구구구 부르르르르르!" - 끄아 끄아 끄아 끄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