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글
곡(哭). 정병국 소설가. 영면하소서
김 송 배
(시인.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버린 그의 영정 앞에 절을 올린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생활한복 차림에 곱게 다듬은 턱수염의 화사한 웃음이 나를 반긴다. 그의 잔잔하고 인자한 음성을 듣는 듯한 문상을 마치고 그의 제자들과 그를 다시 회상의 시간을 가졌다.
소설가 정병국 형. 그는 1947년생이니까 나보다 약간 아래이지만 그동안 해박한 지식을 투영하여 일간 내외경제와 코리아헤럴드 등 언론사에 근무하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과 사람들의 향취(香臭)가 어떤 것인가를 예리하게 판단하고 직필(直筆)로 이를 천하에 전달하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우리들이 잘 알다싶이 계간지 『시와수상문학』을 창간하여 지금까지 54호를 발간하면서 많은 문인들에게 발표 지면을 제공하는가 하면 문학 창작 교육을 실시하여 새로운 문인들을 발굴하는 일을 꾸준히 진행함으로써 우리 문단에 지대한 업적을 창출한 공로를 잊을 수가 없다.
또한 그는 출판사 <지시과사람들>을 설립하여 시, 소설, 수필 등 문인들의 저서 발행에 도움을 주면서 이들의 활동과 문학적인 역량을 널리 알리는 매체의 중심에서 심혈을 기울여 문학 사랑에 집념했던 진정한 문학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창작 활동에도 남달리 열정을 투자하여 불행히도 그에게 찾아온 췌장암과 갑상선종양이라는 투병생활 중에도 많은 작품집을 출간했다. 시를 닮은 에세이『귀가 머니 세상이 조용해서 좋구나』 외에 소설집 『강』 『이혼의 진실』 『제3의 결혼』 등으로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최근에는 ‘소설가 정병국의 암 투병 생존 시집’ 『새 생명의 동행』이라는 제하의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나는 “정병국 소설가는 지난 12여년간 [죽음의 공포] 췌장암등 6종류의 중증암 투병에서 ‘떠날 때는 떠나더라도 완치 생존 불가능의 기적에 도전하자’는 결연(決然)한 심정으로 대수술과 항암치료의 고통을 극복하면서 ‘암(癌)은 / 끝내 절체절망의 죽음이 아니라 / 새 생명의 동행’이라는 그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했다”는 짧은 서평을 해준 기억이 새롭다.
그는 평소에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늙고, 병들고, 죽는다. 숨이 멈출 때까지 사랑하는 삶, 그 아름다운 가슴 속 따뜻한 이야기들을 이 악성병으로부터 기사회생의 빚을 글로 갚아야 하는 운명처럼 글을 써야 한다’는 비장한 문학적인 인생의 가치관을 피력하고 있어서 참으로 존경해마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시창작 강의를 맡기거나 시집 해설과 월평 등을 청탁하고 행사에 초청하여 축사나 격려사를 부탁하는 등 많은 배려와 교감을 통해서 <시와수상문학작가회> 회원들과의 친목의 시간을 제공하는 끈끈한 정감이 넘치는 잊지 못할 인생적 교류가 더욱 아쉽게 생각되는 그가 이 세상을 하직한 영전에 경건하게 명복을 빈다. 이제 모든 고통 모두 잊으시고 극락에서 편히 영면하소서.(2021. 9. 6.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