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영의 시 세계
‘세월’과 화해하는 서정 시학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세월’과 ‘삶’과 존재의 인식
현대시의 속성은 그 표현이나 투영(投影)된 주제가 우리 인간들의 삶과 밀접한 상관성을 가진다. 그것은 우리들의 사유(思惟)가 삶에서 획득한 체험의 근간(根幹)에서 창출(創出)하는 정서가 원천(源泉)으로 내포(內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깊은 성찰(省察)이 결론적으로 시적 이미지를 제공하는 상상력의 재생에서 시적 진실을 발견하고 이를 적시(摘示)하여 독자들에게 창의적(創意的)인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 시인의 존재에 관한 인식(認識)이며 자아(自我)의 확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곽윤영 시인이 두 번째로 상재(上梓)하는 시집『』에서 일별(一瞥)할 수 있는 주제들이 보편적인 삶을 통해서 지각(知覺)하거나 인식한 체험들이 세월(시간)과 융합(融合)하면서 생성(生成)한 우리 인간의 진실들이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곽윤영 시인은 첫 시집『이런 날 푸른 기억으로』에서 ‘나라는 현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과거의 성찰이 탐색되고 현존재의 순응 혹은 자아에 대한 확인’이라는 평설로 알 수 있듯이 이미 자아 성찰과 존재 순응(順應)의 메시지들을 피력(披瀝)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관심을 모은바가 있었는데 이번 작품들도 이러한 범주(範疇)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그의 진솔한 시심(詩心)을 읽을 수 있다.
온 몸으로 끌고 넘은 여름 끝자락에
한 올 희망이
무엇일까 무엇일까
첫 새벽에 별로 뜨는 시간이다
세월이 나를 시들게 할지라도
가버린 너를 헤아려보고
너를 찾아 나서야하리
영혼의 생명 너를
용을 쓰며 찾아 나서리
너의 끝없는 속 뜰로 들어가
내 안의 나를 다독여 보리
내 치마폭 다 펴서
수평선 저 너머로 가는
너를 수 없이 퍼 담으리
--「시간을 찾아서 2」전문
곽윤영 시인은 ‘시간’이라는 유한(有限)인 무형(無形)에서 그가 탐색하는 ‘영혼의 생명’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이러한 그의 확고한 신념은 ‘세월이 나를 시들게 할지라도 / 가버린 너를 헤아려보고 / 너를 찾아 나서야하리’라는 시적 화자(話者)의 비장한 언술로 적시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어조(語調)를 통해서 그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세월의 무상함과 동시에 지워지려는 자아를 ‘내 안의 나를 다독여 보리’라고 더욱 간절하게 염원하는 기원의 의지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세월과 삶의 공존은 영원히 존속된다. 흐르지 않는 세월 속의 삶은 없다. 세월과 삶에서 생성하는 생명성은 지대(至大)하다. 그것은 우리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포한한다. 결론적으로 존재의 인식은 시간과 함께 유영(遊泳)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이 소비하는 것 중에서 시간이 가장 가치있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렇다.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생명에 대한 가치성이 동시에 인식되는 근원이 된다. 그는 ‘실루엣으로 살아온 세월을 셈하지 않았다(「동심」중에서)’거나 ‘ 안 가본 길이 말을 건다 / 세월을 수선하러 왔으므로 / 헛도는 말도 그냥 들어야 한다고.(「물리치료실」중에서)’라는 등과 같이 그의 ‘세월’을 시적으로 직조(織造)하고 있다.
곽윤영 시인이 진지하게 탐색하는 ‘세월(시간)’에 대한 그의 어조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어서 주목하게 된다.
- 버리고 버려서 가벼워지긴 했는데 / 뒤돌아 휘 휘 둘러보며 / 문턱을 넘어 설 때엔 / 스 무 성상 함께하던 낡은 반려(伴侶)들이 / 한사코 동행하자고 뒤 따라 온다.(「이사를 간다 」중에서)
- 밖에서 돌아오면 제일먼저 너를 찾는 / 네 주인은 주인 아닌 만년 고객 / 세월과 함께 늙 어 온 / 냉장고와 단골손님으로 / 주 객 없이 함께 산다.(「미니 백화점」중에서)
- 뒤로 비스듬히 앉아 / 허물을 갈아내고 망치질로 지나간 시간을 깨트려 / 내 이도 새 단 장을 한다(「못질」중에서)
- 계절이라고 다르랴 / 오고 가는 것이 멈춰버린 / 너와집의 / 사계(四季)인 것을.(「너와 집」중에서)
- 세월의 무상함, 앞으로 살아갈 일들 / 안녕을 다독이면서... / “무릎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 얼마나 좋을까요“ 했더니 / “그낭 그리워하면서 살세” / 그 대답 / 수묵(水墨)에 스민 꽃으로 번졌다.(「그리움」중에서)
- 생각을 멈추지 않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 한 생을 살아도 / 미치지 못한 것을 / 작 은 소망이 까만 꽃씨로 / 도드라진다.(「낡은 일상」중에서)
이처럼 ‘세월’과 동행하는 ‘삶’의 어조는 작품「처서(處暑)」에서 ‘이승의 잛은 삶을 마감하라는 / 신의 게시이던가’, 「해질무렵」에서 ‘별들이 내려와 / 쓰고 아린 삶을 위로 하리 / 바람은 문 밖을 서성인다’, 「꿈-어느 무당의 꿈」에서 ‘슬픔을 점지받은 삶이었다’,「추신(追伸)」에서 ‘너희들이 / 내가 살아온 이유였지 / 천먼번 물어도’ 그리고 「서글픈 치장」에서 ‘살아온 날 위에 / 짠 눈물 바르고 / 더러 진한 회한도 바르고 싶지요’라는 보편성에서 찾아보는 시적 진실이 숙성(熟成)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2. 여행과 깊은 사유의 지향
곽윤영 시인은 고적(孤寂)한 삶에서도 이를 해소하고 화해하는 방법으로 여행을 자주 한다. 그는 국내의 요지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관광을을 통해서 글로벌 시대를 절감(節減)하고 있다.
눈앞의 일을 벗어놓고
몸만을 챙겨 길 떠난다
구름을 타고 창밖에 눈길을 준다
하늘의 눈으로 본 아름다운 세상
아득한 발 아래에서
누가 나에게 손짓하며 부르지 않을까
구름이 가리는 하늘의 괴물을 불러본 적 있나요
물 한 바가지의 세례이듯
시원하고 얼얼하다
머리는 진공인데 마음은 꽉 차있다
햇살 한 주먹 눈부시게 쏟아지며
지상에서 다 가지지 못한 말들
허공으로 둥근 비행을 하며
영혼을 건드린다
--「여행」전문
여기 ‘여행’에서 감지(感知)할 수 있는 것은 ‘지상에서 다 가지지 못한 말들 / 허공으로 둥근 비행을 하며 / 영혼을 건드린다’는 의미심장한 정서의 일단을 엿보게 하는데 이는 그가 ‘눈앞의 일을 벗어놓고 / 몸만을 챙겨 길 떠’날 수 있는 오랜만의 여유를 알 수 있다.
곽윤영 시인의 여행은 국내와 국외를 가리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생명은 할퀴고 채이면 / 고슴도치 가시로 날이 서는데 / 거제시 학동 해수욕장은 / 달 돋고 별이 떠오르는 밤 / 흑진주로 반짝이는 검은 돌로 / 벌어지는 잔치(「몽돌」중에서)’라는 ‘거제시 학동 해수욕장’을 비롯해서 ‘지난날의 영상이 / 외마디소리 지르는 / 경춘선열차 차창 밖에서 / 민낯으로 드러난다(「경춘선 열차」중에서)’, ‘청령포의 서러운 곡소리(「청령포」중에서)’ 그리고 ‘보성 새벽을 마신다(「보성 청소년수련원의 새벽」중에서)’는 등 전국을 골고루 여행하고 거기에서 발양(發揚)하는 시의 현장이 적나라(赤裸裸)하게 현현되어 있다.
=가파도키아=
자연 시간이 빚은 비경秘境이다
외계인의 삶터로 휘둥그런 괴뢰메 계곡은
하늘 향해 태양을 향해
구원을 기다리는 기암괴석들
버섯바위 키쓰바위 요정의 굴뚝
돌들도 가파도키아에서 구원을 기다린다
그 한 귀퉁이를 물고 늘어지는
인간들의 오두막은
신만이 빚을 수 있는 솜씨이다
가슴 아랑 아랑에 접신接神이라도 한 것은 아닐는지
--「시간의 예술」중에서
그는 외국을 탐방하여 현지의 문물과의 교감이 이루지고 있는데 특히 터어키의 여행은 그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터어키의 명물 ‘가파도키아’에서 ‘신만이 빚을 수 있는 솜씨’와 ‘접신’의 경지를 체험하게 된다.
이 밖에도 ‘우스크다르’, ‘아나토리아’ 등 명승지를 돌아보고 ‘사이프러스 울창한 언덕에서 전해 오는 / 신비한 가락은 무슨 음악일까 / 모른다고 머리 가로 젓다가 / 문득 가슴엔 듯 머리엔 듯 / 점점이 새겨 들려오는 / 터키 민요이다(「우스크다르」중에서)’ 그리고 ‘내가 사는 땅에 돌아가면 / 이 마음에도 그리움 수북이 쌓일꺼야 / 그리움 놓지 않으면 / 꿈은 이루어 진단다 그 한 마디로 / 잡은 치맛자락 슬며시 놓고 일어선다(「길 위에서-아나토리아에 핀 꽃」중에서)’는 등의 어조로 현지의 생생한 정감이 피어나고 있다.
일찍이 누군가 말했듯이 ‘여행하는 것은 많은 이익이 있다. 그것은 신선함을 마음에, 놀라운 일에 대한 견문, 새로운 도시를 보는 기쁨, 모르는 친구와 만나는 것, 고결한 예법의 습득’이라고 그 경이로움을 말하기도 하고 ‘여행은 인간을 겸허하게 한다.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 얼마나 하찮은가를 두고두고 깨닫게 하기 때문’이라고 해서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곽윤영 시인은 이처럼 국내와 외국 여행을 통해서 감응(感應)하는 이미지는 신비한 경관(景觀)에만 매료(魅了)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생성한 역사나 전설 등이 형상화하는 시법을 현현하고 있어서 새로운 체험에서 획득하는 소재와 주제의 투영이 또 다른 시적 묘미를 적시하고 있다.
3. 가족들과의 정감 혹은 사랑학
곽윤영 시인의 정감에는 애틋한 가족과의 사랑이 수놓아지고 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하여 아들에 이르기까지 가족 구성원 간의 이미지가 스토리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살아온 역정(歷程)에서 추출(抽出)한 진정한 교감이며 시적 진실이기도 하다.
그는 작품「기억의 저편 1」에서 ‘한국전쟁 막바지 / 어머니와 둘이서 / 밤이 이슥할 때까지 마루에 앉아 / 이야기 한다 / 동생들은 다리로 이불을 덥고 꿈속에 들었다 / 아버지는 우리 옆에서 무엇인가 나직나직 거드신다’라는 어조와 같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등장하는 가족들의 스토리로 시작하고 있다.
또한 ‘꿈을 캐러 서울로 유학 간 소식 끈긴 딸이 /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 넉넉하신 아버지 / 난세亂 아니면 아버지의 그런 표정을 만날 수 있을까 / 아버지.’라는 ‘아버지’에 대한 경외(敬畏)는 그가 가직한 ‘기억의 저편’에서 승화한 시적 정서의 한 축(軸)으로서의 명징(明澄)한 주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밤의 한 토막에서
불면이 고개 들 때
창 밖 불빛보석이 감시 한다
살아온 동그라미
살아갈 네모를 꿰뚫는다
오리의 나는 꿈 어그러진 언저리
무에 그리 오싹할까
불빛 하나 긴 파장으로
제 어미 기척 들은 아이로
별을 삼킨 밤이 숨차게 내 달린다
어쩌면
어머니의 부음이 귓전을 울려
맨발로 효성이 달릴지도 모르지
창밖 비처럼 쏟아지는 슬픔에
맨발로 달려가 보았느냐고 불빛보석이 웅얼인다
태엽은 어디만큼 밤을 감고 있을까
--「질주(疾走)」전문
여기에서는 ‘어머니의 부음’ 주된 시적 구도를 형성하고 있어서 누구에게나 체험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인간사를 적시해서 공감을 유로(流路)하고 있다. 그는 ‘창밖 비처럼 쏟아지는 슬픔에’ 젖은 당시의 상황(situation)이 시의 본령(本領)에서 확인시키고 있다.
곽윤영 시인은 이처럼 한 생명의 소멸에 대해서 그의 심중에는 앞에서 말한 바 있는 존재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상당한 시적 충격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시인들이 진실 탐색에서 절대적으로 천착(穿鑿)하는 것은 한 생명의 생몰(生沒)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동시에 삶에 관한 지향적인 사유를 새롭게 정리하는 인생의 전환점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지금 어머니가 살아있지만 / 심폐 소생하려고 / 다급하게 숨 몰아 내달리고 있다 / 내달리는 시간에 / 잔별은 /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 감사하다고 다독인다.(「새벽」중에서)’거나 ‘어머니의 오롯한 금자둥이 / 초등학교 오학년 여름방학 첫 날(「기억의 저편 2」중에서)’ 등의 어조와 같이 ‘어머니’의 사랑어린 시적 정황이 절대 지울 수 없는 정감으로 각인(刻印)되고 있다.
주위의 속 깊은 눈길 속에서
입춘 날 우리 집 아이가
고등학교 울타리를 벗어났다
유난한 잠투정이
방안을 파김치로 만들던 애기가 자라서
맨발로 달려오는 해일 앞에
보다 높은 이상과 넓은 미래를 두드리며
비상의 날개를 펼치려한다
모교의 둥지에 마지막으로 서는 자리
격려와 갈채를 받는 순간
몸을 버팅기고 잠투정하는 애기와 오버랩한다
- 호사다마好事多魔를 경계하는 것도 알고 있지
--「졸업식」전문
이 작품에서는 ‘우리 집 아이(아들)’가 시적 대상이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구성으로 시적 이미지를 투영하면서 ‘이상과 넓은 미래’와 ‘비상의 날개’ 또는 ‘호사다마를 경계하는 것’ 등이 적절하게 분사(噴射)되고 있어서 교육적인 언어를 통해서 아들과 교감하고 있다.
이밖에도 작품「고슴도치 사랑」에서 ‘외동딸’,「쉼터」에서 ‘지방에 사는 친구’, 「아기」에서 ‘우산이 세 살 난 아기에게는 / 일등 장난감이었다’ 그리고 「이별」에서 ‘마흔 성상 길러오던 소철(蘇鐵) 한 그루’를 ‘시집보낸 딸’로 의인화하는 등 다양한 시적 구성으로 가족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4. 영혼 감응과 형이상시의 발상
곽윤영 시인은 현실적인 지각 외에 영혼과의 감응을 통해서 발양된 형이상시(形而上詩-metaphysical poyry)의 개념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그가 ‘무심도 하여라 / 검은 마음이 고개 든 사람 / 고개 숙이게 하고 / 비틀거리는 영혼을 인도하며 / 구름이 일었다 사라지듯 / 그저 무심하다(「가로등」중에서)’는 어조처럼 ‘비틀거리는 영혼을 인도하’는 시인의 궁극적(窮極的)인 가치관의 정점(頂点)을 찾고 있다.
미국의 신비평가 렌슴은 사물이미지(‘가로등’)만으로는 시의 의미를 충족할 수 없으므로 관념이미지(‘영혼’)와 융합(融合)이 이루어져야 가장 바람직한 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형이상시의 개념이다. 사물시(事物詩)와 관념시(觀念詩)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새로운 형태로 창작한 시를 말한다.
이와 같이 형이상시는 ‘철학적인 개념으로 보면 영감(靈感-inspiration)을 얻어서 창작된 작품’을 말하는데 이는 그 시인의 감정에 대한 개인의 의식을 강화하고 자신의 영혼의 편력(遍歷)속에 인간의 운명이라는 드라마를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나게 된다.
산길을 걷다 문득
세월을 견디다 죽어가는 나무. 곤충들과 만나기도 한다
숲을 이룬 나무는
무성히 푸르렀던 잎과 열매를 떨구고
삶의 제 몫을 다 하던 생명은
그들이 남긴 씨앗으로
다음 해의 부활을 약속하며 바스러져간다
누구나 언젠가는 구천에 이르지만
언제나 충격적이고 새삼스러우며
피안彼岸에 대한 외경에 사로잡힌다
오솔길 너머 고목 한 그루 나무
정물화로 서 있다
헐벗은 희디흰 영혼과
가난한 언어의 남루함을 곱씹으면서.
--「고목(枯木)」전문
일찍이 프랑스의 시인 볼테르는 ‘시는 영혼의 음악이다. 보다 더욱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세월을 견디다 죽어가는 나무’와의 교감하고 ‘삶의 제몫을 다하던 생명은’ ‘다음 해의 부활을 약속하며 바스라져’ 가는 형상들이 ‘희디흰 영혼과 / 가난한 언어의 남루함’이 서로 화해하는 형이상적인 어조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작품「기축년」에서 ‘묵은해의 악귀에서 도망쳐 / 시작이 피어나는 맑은 바람에 안긴 영혼’이라고 해서 영혼의 감응이 현현되고「섣달 그믐」에서도 ‘사라지는 영혼은 / 하루라도 늦추기를 손 모으는 달력의 숫자’ 그리고 「마지막 축제」에서 ‘망자 그늘은 / 노독에 찬 영혼들의 오아시스였다’ 라고 적시함으로써 영혼과 더욱 친숙한 상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5. 서정적 자아-자연과의 순응
곽윤영 시인이게서 다른 측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은 그가 천성적으로 간직한 서정성이다. 더구나 친자연적인 식물을 시적 소재로 하는 특성이 있다. 대체로 살펴보면 ‘수수꽃다리’, ‘하늘매발톱’, ‘들국화’, ‘배롱나무’, ‘풀꽃’, ‘낙엽’, ‘보향다원’ 등이 있으며 ‘봄’이나 ‘여름’ 등 계절적인 서정도 읽을 수 있다.
겨울바람이 끝내 긴 꼬리를 끌고
햇볕을 피해 달아났다
봄기운이 산천 가득 창궐 했는데
달아난 바람 따라
잔설도
햇볕으로 얼룩을 지웠다
튀밥 눈(雪)이
개구리 눈(眼)에 들어가 왕방울로 부풀고
부푼 눈엔
가물거리는 아지랑이가 서렸다.
--「봄바람 2」전문
그는 만유(萬有)의 자연 섭리에 순응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상관성을 심취(心醉)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의식은 자연의 향취(香臭)가 오래도록 배여있는 그의 심저(心底)에는 서정의 원류가 지금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고단한 시간 속 / 떠난 빈자리에 고인 설렘 / 그런 자리 하나있다.(「낙엽」중에서)’거나 ‘ 얼음짱 밑 흐르는 체온으로 / 남몰래 자랐던 화혼(花魂) / 세월을 칭칭 감아 / ‘수수꽃다리’로 자랐다 / 그 향기의 은유는 / 젊은 날의 사랑이며 추억이어라.(「수수꽃다리의 말」중에서)’, ‘무슨 원한이 저리 많아 / 독기로 세운 눈 흘기다가 / 째려보며 저렇게 눈을 뜰까(「하현달」중에서)’ 그리고 ‘한껏, 녹차에 젖은 여로(旅路) / 차창 밖 검은 숲에 / 유월이 내려앉는다.(「보향다원」중에서)’는 잔잔하면서도 차분한 서정 속에서 자아를 탐구하고 있다.
우리 현대시법에는 시인들이 자연과 감응할 때 비정적 타자성(非情的 他者性)이라고 해서 자연의 인격화(이를 시학에서는 감상적 오류라고 함)에서 동화(同化)와 투사(投射)라는 두 원리를 작용시키게 된다. 시인이 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內的) 인격화하는 것이 동화이며, 이와 반대로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원리가 투사이다. 이를 낭만적 자연관의 두 가지 원리라고 해서 많은 시인들이 작품의 구상이나 표현에서 적용하고 있다.
곽윤영 시인도 이러한 시법의 일환으로 자신을 자연에 투사시키거나 반대로 자신이 자연 속으로 몰입하는 경향의 어조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시인들이 은연(隱然)중에 공통적으로 당면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서정적 자아라는 개념이 친화적인 자연관으로 형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꽃이나 나무, 풀 그리고 계절적 향기와 산과 강 등 자연 경관의 순수 자연 생태에서 발현하는 시적 양상과 더불어 ‘시는 어느 빛깔도 물들이 수 있고 / 어느 빛깔도 지울 수 있는 백색의 염료이다(「봉산산방(蓬蒜山房)」중에서)’거나 ‘
산은 고요를 베고 누워있고 / 바위는 침묵(沈黙)을 떠받힌 채 / 내려놓을 줄 모른 다(「가막골」중에서)’ 는 어조처럼 어느 특정 지역에서 조망(眺望)하거나 관조(觀照)된 자연 서정도 그의 내면에서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곽윤영 시집『』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곽윤영 시인의 인식에는 다양한 체험의 소산물로 시적 소재와 주제를 투영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실생활(real life)에서 추출한 이미지들이 그에게 내재된 정서의 숙성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아를 인식하는 소박한 시정(詩情)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이 그가 생활화하고 살아가는 지표로 정립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순정적인 순박함과 순수성은 그의 작품을 지탱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습성(習性)이 크게는 존재의 문제와 가치관의 문제까지 포괄하는 인생론이 된다는 점도 시의 위의(威儀)를 위한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작품「즐거운 고독」전문에서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외로운 고통을 / 승화하면 즐거움이 되리 // 군중속의 고독이 아니어도 / 늦은 밤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것도 / 혼자서 하루 기차여행하면서 / 가신 어머니와 동행하는 수마노 빛 꿈도 / 깨물수록 달콤한 외로움이 되리 // 자발적인 고독이 / 때로는 행복한 고독이 되리.’라는 단정이 바로 곽윤영 시학의 원류이다.
우리 시의 숙연(肅然)한 위의나 본령을 위한 새로운 인생관을 창출하려는 우리들의 기원은 영원히 존속할 것이며 이를 확고하게 정립하려는 노력은 우리 시인들의 숙명적인 과업으로 남는다. 거듭 축하한다.
*시집 이름은 아직 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