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성지
-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순교성지다. 본래는 산의 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것 같다고 해서 잠두봉(蠶頭峰)이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경치 좋은 한강의 명승지중 하나였으나 1866년의 병인박해 당시 잠두봉에서 약 8,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형으로 목이 잘리고 시신은 한강에 던져넣는 집단 처형(순교)이 벌어진 후 머리 자르는 산이라는 뜻인 절두산(切頭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국내에서 가장많은 순교자 유해를 안치하고 있는 곳이다.
노고산성지(서강대 정문에서 좌측)
- 기해박해(1839)때 순교하셨던 앵베르주교,모방신부,샤스탕신부의 시신이 매장되었던 곳으로 4년후 삼성산으로 이장되었다가 1901년에 명동성당 지하묘소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가회동성당
- 중국인 신부이셨던 주문모신부가 조선최초로 미사를 봉헌하였던 곳이며 조선의 마지막 황실가족이었던 대원군의 손자이며, 고종의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이강과 왕비 김숙이 세례를 빋은 곳이다. 북촌을 본거지로 계동의
관할성당
서소문밖네거리성지
-새남터와 더불어 조선왕조의 공식 처형장이었다.1801년 신유박해때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오랜시간 동안 천주교신자들의 처형지로 103위순교성인중에 44위가 순교복자124위 가운데 27위가 이곳에서 참수당한 신앙의 증거지이다.
2019년 공영주차장 부지를 활용해 정식으로 성지로 개관하였다. 지하2층에 역사박물관과 성정하상 기념경당에서 월요일을 제외한 하루 두차례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광희문성지
-1839~1868년에 순교자 시신이 광희문을 통해 성밖으러 버려지거나 광희문성벽 어딘가에 묻혀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에 청계천이 한강으로빠져 나가는 수문과 가까워 수구문또는 시신을 성밖으로 내보내는 출구로 이용되어 시구문으로 불리웠던 한맺힌 장소이기도 하다.
종로성당
- 조선시대 천주교신자들이 고문과 문초를 받았던 좌우포도청과 경기감영터 의금부터 전옥서를 관할하고 있는
성지성당이다.
가톨릭성신교정
- 한국천주교회를 이끌어갈 신학도의 요람으로 베론의 요셉신학교(1855)가 모태이다.1866년 병인박해로 폐쇄 1885년 여주 부엉골 예수성심신학교 설립되었고 1886년 용산이전 현재에 이른다.
창경궁
- 조선시대에는 창덕궁과 더불어 동궐로 불렸으며, 종묘와도 연결되어 있다. 창덕궁과는 다르게 동향배치로 왕실의 별궁으로 쓰였다고 한다.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인근에 있는 절두산성지를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순례자들
절두산성지 성당으로 올라가고 있는 순례자들
노고산성지(서강대내에 있다)
가회동성당
1925년 프랑스에서 발행한 <Le Pelerin > 1839년 9월21일 서울 근교에서 일어난 모방신부,샤스탕신부, 앵베르주교의 순교장면을 그림으로소개- 이잡지는 성모승천수도회 파리본원에서 발행된것 이라고 합니다.
첫댓글 말씀 사탕의 말씀 한구절,한구절 발췌와 만들어 주신 소화데레사님 감사드립니다 ~
주님 은총 가득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오월의 초록을 담으셨습니다.
맑은 오월의 빗방울도 담으셨습니다.
간절한 기도와
행복한 발걸음
연둣빛 꿈까지 ......
주님안에서 함께한 길
모든 순간을 담으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