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운명 運命)-08
미정은 그의 가슴을 살짝 밀치며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생각하는 운명은 그를 비켜갔다. 그렌즈는 밤12시 정각을 가르키고 있었고, 그림같이 자동차 불빛이 실내를 비추었다. 야간 순찰 경찰차가 주차장을 돌고 있었다.
그는 노련하고 폴라이트하였다. 그는 예순 둘이었다. 그는 대 기업 사장이었다.
그를 만나면서 미정은 남은 삶을 바꿀수도 있다 고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체이스를 잊을 수 없었다. 뭔가에 이끌리듯 그가 결국은 돌아 올 그곳까지 찾아 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에 기인한 것인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바깥을 통제당한 채 영어와 같은 생활을 해 온 그녀에게 무엇이 힘을주어 능숙치 못한 운전솜씨로 전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던 그 오지같은 곳을 찾아가게 한 그 힘은 무엇인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마음을 차지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체이스와의 사랑은 너무 아름답고 깊었다. 짧은 시간에 그 사랑은 조미정의 가슴에 촉촉히 살아 퍼져 있었다. 그가 다시 나타난 이상, 늘 부르던 노래. ‘아아아아~ 사랑하다 죽어도 좋은 사람 당신이 어딜 가시더라도 내 손 꼭 잡아줘요. 불구덩이 속이라도~ 내 사랑 체이스 리.’
미정이 스스로 그 가사를 만들어 ‘미아리 고개’의 곡으로 붙혀 체이스에게 불러주던 노래였다. 그렇다. 이제는 절대 그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
“이쁜 사람아! 어서 내 전화받아요. 나 당신 목소리 듣고 싶어요~”
현주는 휴대폰에서 컬러 링이 울리자 곧 손목시계를 봤다. 18K금으로 도금한 금장 테두리에 아라비아 숫자가 우유빛 백색 바탕에 앙증맞게 새겨 진, 성태를 만난 후 천 일 기념으로 성태가 사 준 시계였다. 그 시계의 에메랄드빛 시침과 분침은 오전 10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이 컬러 링은 두 사람에게만 주었다. 하나는 팀장인 Mr. 권. 좋든 싫든 즐거운 목소리를 들려 주어야 하므로, 그의 번호에 이 컬러 링을 연결해 놓았다. 팀장에게 목소리라도 즐겁게 들을 수 있는 행복을 주는데야 돈 들일 없고 서로 시작이 좋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당연, 성태씨였다.
“여보~ 세요~~”
말로 애교 좀 주자는데 특별히 비용들 일도 없잖은가. 가치깍이는 것도 아닐 것이고, 너 좋고 나 좋자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 생각하며 현주는 혀를 굴렸다.
“여보세요 고 저보세요 고 간에 현주. 김현주! 당장 눈썹이 휘날리도록 내 방으로 달려온다. 실시!”
“실시!”
저 인간은 군대갔다 온지가 벌써 석 삼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뭔가를 착각하고 있었다. 현주에게는 Mr.권 팀장이 큰 스트레스를 주는 주 적 중 하나였다. 허나, 어쩌랴. 달려가야지. 상관이 부르는데… 늦으면 또 기합일 것이다. 기합이라야 이제는 다 알아버린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풀려고 하는 제스추어일 뿐이었다. 왜 그렇게 사냐? 이제는 정말 끝 하고 싶다. 현주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며 혼자서 중얼거렷다. 팀장의 방문을 열고 한 발을 들이미니 책상 앞에서 서성이든 그가 반색을하며 반긴다.
“오! 내 사랑~ 어서 오셔요~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잠깐. 팀장님! 이제 그 내사랑은 좀 거두어 주시지요. 오직 내사랑이 들으면 왼쪽 장갑 던질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읔! 그러면 안되지. 나는 늙어가는 청춘이고, 그대의 그대는 젊음의 끝에 서 있는데… 알았어요. 그건 그렇고 현주씨!”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 졌다. 이 때부터 최대한 경계모드로 전환 유지해야 함을 현주는 익히 알고 있었다.
현주는 방송사로부터 새로운 드라마 대본을 요구받았다. 그것은 그녀에게 큰 스트레스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 우선 그녀는 그가 출간한 소설책 출판사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그가 호주의 타즈메니아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태씨! 여기야.”
현주는 근무중인 성태를 회사로 찾아가 불러내었다.
“뭐야! 지금이 어느 때인데 호출하고 난리야. 내 직장 책임 질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게야?”
“성태씨. 내사랑 성태씨!”
“왜? 왜, 또 그래. 그러지마. 나 겁부터 먹는단 말이야. 어서 본론으로 가자. 응. 사랑하는 현주야.”
“치~ 뭐 이런 사랑이 다 있어. 그래. 알았어. 본론으로 가자. 뭐~”
“현주야. 무슨 일 있었어? 나에게 죄다 말해봐. 사랑하는 현주의 수호천사. 내가 있잖아.”
“응. 죄다 말할께. 놀라지마.”
“가만, 정말 겁나는데… 겁 안 나는 것으로 하면 안될까?”
“나 내일 호주 타즈메니아로 출장가야돼. 성태씨는 그 사이 날 위해 해줘야 할 일이 하나있어. 들어 줄 꺼지?”
“호주! 타즈메니아! 여자 혼자서!”
성태는 정말 놀라워했다. 도대체 갑자기 이런 일을 벌이는 현주의 정체가 뭔지 궁금하였다.
“응. 타즈메니아는 섬이야. 호주의 멜본 남쪽에 있어. 성태씨. 기억하지? 체이스라는 소설가 말이야. 그가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데. 나는 그곳에 가고 성태씨는 그 사이에 여류 시인 조미정을 만나. 그리고 체이스 소설가와의 관계를 알아봐. 그러나 절대 체이스 리의 이름과 그 어떤 것도 말하면 안돼. 이건 아주 중요한 사안이야. 부탁해.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조미정 시인이 여자가 봐도 아주 아름답잖아. 그러니 성태씨. 흔들리면 안돼! 알았지? 늦어도 삼 일 안에 돌아 올거야”
“이건 뭐야? 무슨 시험보는거야. 알았어.”
*****
이현주가 타려는 비행기는 콴타스 727E였다. 오전 7시에 인천공항을 출발한다. 김성태는 현주의 출국을 지켜본 후 늘푸른 출판사를 찾아 파주 출판단지로 튜산의 머리를 돌렸다. 파주로 가는 길은 출근 차량들과는 반대이므로 한가하였다. 그러나 아주 한가하지는 않았다. 출근을 파주로 하는 차량들이 가까워 질수록 점 점 늘어났다. 전화로 찾아 볼 수도 있었지만, 직접 담당자를 만나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얻고 싶었다. 늘푸른 출판사는 파주 출판단지 중간쯤에 이층으로 지어진 막사같은 건물안에 있었다. 오전 8시30분. 사무실은 업무시작 준비로 부산하였다. 편집담당은30대 초반의 머리를 뒤로 말아 올린 호감가는 여성이었다. 성태는 현주의 YJK방송사 명함을 그녀에게 내 밀었다.
“조미정 시인을 만나고 싶다 하셨지요? 이유를 알면 안되나요?”
“YJK 방송사에서 년말 특집을 위하여 조미정 시인을 집중 취재하고 싶다 하여 제가 대신 왔습니다. 저는 인터뷰를 할 수 없고 조미정 시인님을 만나기만 하면 됩니다.”
그녀는 그제서야 명함을 주었다. 명함에는 늘푸른 출판사 편집담당 서지희 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조건이 있어요. 조미정 시인님의 방송스케쥴을 저에게 보낸다는 것이에요. 어렵진 않지요?”
그녀는 생글 웃으며 가볍게 말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 앞의 빈 의자에 앉기를 권했다. 성태는 앉아 다음 말을 기다렸다.
“조미정 시인님을 만나시려면, ‘아름다운 생활’이라는 회사로 가셔야 해요. 그 회사가 조미정 시인님을 메니져하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스폰서회사이지요. 저희도 그 시인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그 쪽과 접촉하거든요.”
그건 이미 알고있는 내용이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실은,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므로 공개적으로 알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가능하다면 직접 조미정 시인님을 만나서 소식을 전해주고 의견을 듣고 싶은데, 좀 도와주십시요.”
그녀는 이해하였다. 머리를 끄득였다.
“알겠어요. 무슨 의미인지. 저도 조미정 시인님을 좋아하고 있거든요. 잘 되길 빌고 있어요. 제가 휴대폰 번호를 드릴께요. 이 번호는 직접 관계되는 사람 이외에는 주지 않아요. 그러니 조미정 시인님에게 폐가 되지않게 잘 관리하세요.”
정말 조미정 시인을 좋아하고 있었다. 성태는 그녀를 이해하였다. 그는 출발 전 차 안에서 랩탑 컴퓨터를 열고 인터넷에서 남양건설을 찾았다. 사장은 정한구. 그리고 구글에서 이미지 방을 열었다. 있었다. 조미정 시인과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찍은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출판 기념회겸 낭송회 사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조미정 시인이시지요?”
“예.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전화번호를 아시고… 누구신데요?”
“안녕하셨어요? 저 김성태입니다.”
“아~ 김성태씨. 기억해요. 잊어버리면 안되지요. 기억하고 있어요.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워요. 현주라고 하였지요? 현주씨도 잘 지내고 계시죠?”
맑고 고운 목소리였다. 다정함이 우러나왔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억력도 좋았다.
“예. 잘지내고 있습니다. 근데, 부탁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지금 전화 통화하여도 괜찮은지요?”
“그럼요. 무얼 걱정하세요? 아하~ 도청? ㅎㅎㅎ 우리가 도청당할 대상이나 되나요. 무슨 부탁인데요?”
“YJK 방송국아시지요? 현주가 일하고 있는 곳.”
“네. 알아요. 그런데…”
“지금 이 내용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므로 시인님 혼자서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네. 그렇게 할께요.”
“YJK에서 년말 특집으로 시인님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 예정이라 합니다. 선생님이 괜찮으시다면, 나흘 후 오전 중에 이현주와 함께 선생님을 뵙고 싶습니다.”
*****
미정은 성태와 전화를 마치고 망연자실한 채 쇼파에 앉았다. 그에게는 들키지 않으려고 애썻지만, 온 몸에 전률이 흐르듯 그녀 온 몸으로 그리움과 보고싶음과 안타까움에 대한 사랑이 몸서리치도록 하였다. 그녀가 사랑시와 사랑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하여서 였다.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전혀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그 한 사람을 위하여. ‘체이스 리. 당신 지금 어디에 있어요? 왜 연락조차 주시지 않는가요? 왜? 내가 당신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그리워하는지 당신은 알까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건 눈물이 아니었다. 기다림과 그리움에 대한 고통이었다. 이 치명적인 사랑의 고통을 어느 누군들 알 수 있을까. 성태와 현주의 이름을 듣고 난 후 미정은 체이스의 모습이 더욱 뚜렷이 살아 가슴속에서 몸부림치듯 꿈틀대고 있었다. 고통이었다. 치명적인 사랑의 고통. 그 사람도 이런 고통을 겪고 있을까? 모를 일이다. 그가 살아 있다면 나를 찾을 수 있을텐데… 미정은 깜짝 놀랐다. 그녀 스스로의 생각에. 그렇다. YJK 방송에서 소식이 방영된다면, 그도 나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가 나에게 전화를 하겠지. 그래. 기다리자.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갈기 찢어져 가는 내 심장의 고통을 그에게서 다 보상받을 것이다.
잔인하도록 하나도 남김없이 다 보상 받을 것이다. 그러나 미정은 세상을 많이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동안 그녀의 세상은 별 탈없는 평행선과 같이 한 삶을 살았던 것을 스스로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삶을 부딪히며 알아 온 삶이었다면 이러한 사랑을 할 수도 없었을 것임을 역시 모르고 있었다. 사랑은 여기 저기 떠 돌아 다니며 선남 선녀가 손 휘둘러 잡히는대로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혀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놈은 힘듦을 먹고 오해를 먹고 지침을 먹고 짜증을 먹고 지루함을 먹고 기다림을 먹고 아픔을 먹고 슬픔을 먹고 눈물을 먹고 그리고 피를 먹고 이제는 포기다 라는 허탈을 먹을 때. 그 때서야 가치라는 이름의 벅찬 감격과 감동을 토해낸다. 그 사랑이라는 놈은 결코 호락 호락하지가 않다. 적어도 진정한 사랑이라는 놈은 그렇다. 그것이 그의 최소한의 실체이다. 미정이 그것의 실체를 알기에는 그것의 배를 채우기에는 너무 여리다. 자칫 사랑이라는 놈은 두사람을 가지고 신나게 세월을 튕기며 놀 것이었다.
*****
기다림
너도 나 기다릴 때 있었니
그 때 네 마음이 지금의 나 같았었니
기다리다 초조해 하고 포기할 것 같고...
너도 나 기다릴 때 나를 이해했었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때 지금의 내 마음 같았니
기다리다 초조해 하고 포기할 것 같고...
그러다 하는 수 없이 이해하고
눈물에 젖은 보고픔을
차곡 차곡 접어 가슴속에 넣고
돌아서는...
체이스는 시를 쓴 적이 없었고 쓸 생각도 못했다. 그러는 그가 시라고 썻다. 그것은 시가 아니었다. 가슴에 심어 고이 키우는 눈물꽃이 피면서 부르는 노래였다. 밖으로 분출하지 못한 피의 노래였다. 지독한 사랑의 고통적 신음이었다. 그는 그리움으로 가슴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지독하였다. 죽음보다 더 지독하였다.
그는 얼마 전에 아는 사람과의 뜻하지 않은 만남과 주선으로 한 여인과 조우하였다. 그녀의 모습은 평범한 아름다움이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두 자식의 교육을 위하여 캐나다로 이민하길 열망하는 금전적 재력이 충분한 여성이었다. 혼인신고만 하고 헤어져도 좋다고 하였다. 댓가는 충분히 지급할 것이라 하였다. 벤쿠버에 살며 한국으로 오가며 지낼거라 하였다. 나이는 50이라 하였다. ‘당신은 원하는 타입이 아니지만, 한집에서 같이 필요한 기간 동안만 생활하고 언제든 떠나 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군요. 가능하군요. 충분히 유혹적인 조건들 이군요. 좋습니다만 저에게는 과분하군요. 저 같은 구두닦이가 그런 류에 합류 할 수는 없군요. 원하는 타입을 찾아 보시는게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는 것 일겝니다.”
그는 일어났다. 그리고 뒤 돌아 보지않고 지하철을 탓다. 더럽게 비참한 기분을 억누르느라 진땀이 이마에 맺혔다. 그는 참기 어려웠다. 그는 의자에 앉아 두손을 아랫배에 모아 깍지를 꼈다. 이 나이에 만난 사랑이 아무런 지불없이 호락 호락와서 뜻대로 간다면 그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 것인가. ‘미정아.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이것들은 내가 너를 위하여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사랑의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아직 그 지불은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결국 다 지불 할 것이다. 피 눈물로 만든 댓가로’ 그는 유니언 스테이션을 빠져나와 레이크쇼를 지나 온타리오 호숫가에 섯다.
‘미정아~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거냐? 너를 만나기 전에는 호수를 앞에 두고도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다. 너는 날 생각하고 있는거냐? 잊어버린거냐? 기다리고 있는거냐? 끝난거냐?’
미정을 만나기 전에는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고 이해되지가 않았다. 그러나 가슴속은 그리움으로 아직은 혼자인 사랑으로 활 활타고 있었다. 화산이 참고 견디다 마침내 터지는 것같이 언젠가는 그렇게 터질 것이다. 그는 그것이 두려웠다. 제대로 터지지 못하고 헛 터졌을 때 그는 화산을 잘 못 키운 것에 대한 죽음같은 고통을 또 겪으리라는 것에 대하여.
지금 그가 할 수있는 것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끝내는데 몰두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위하여 생각을 허트리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바다낚시도 이곳에 와서 세번 밖에 가지 않았다. 그것에 대한 규칙은 없었다. 고향에서는 언제나 마음이 내켜서 집 문 밖에만 나서면 낚싯대를 던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과거에 몇 번 온 적이 있었던 타즈메니아를 택했다.
*****
“엄마! 나 오늘 엄마에게 진지한 권유 좀 하려고 해요. 들어주실거죠?”
토요일 밤이었다. 쇼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커메디프로를 웃어가며 보고 있는데 은희가 전화해서 다짜고짜 권유한다며 빠르게 말하였다.
“왜. 은희야~ 엄마 지금 신나게 웃고있는데 왜 김빼니? 뭔데 그래? 이 밤늦은 시각에.”
“어휴~ 엄마. 토요일밤. 그거 보는구나. 그렇지? 엄마! 내 말 좀 진지하게 들어줘요. 네?”
“그래. 알았다. 뭔데 그러니?”
“엄마. 내일 정오에 뭐할거에요?”
“응. 내일 정오에. 특별한 것은 없고 절에나 다녀올까. 아니면 글 쓴 것들 좀 교정도 봐야하고… 왜? 무슨 일인데. 나 긴장되네.”
“내일 12시 30분에 안산 부흥동에 있는 디스티네이션이라는 까페에서 저 좀 만나줘요. 김 서방도 같이 있을거예요.”
“은희야! 무슨 일이니? 너희 둘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솔직하게 지금 말해봐. 무슨 일이야?”
“엄마는~. 그 때 오시면 알게 될거예요. 엄마~ 아주 이쁘게해서 오세요. 김 서방이 반할 정도로.”
“으~ 김 서방. 왜? 내가 김 서방에게 잘 보여야 돼? 무슨 일인데 그러니? 너무 궁금하다. 둘 사이에 별 일은 없는거지? 그것부터 말해.”
“예. 별 일없어요. 전혀 걱정마요.”
“디스티네이션을 어떻게 찾아가. 나는 전혀 모르는데…”
“응. 엄마~ 차는두고 택시타고 부흥동 디스티네이션 갑시다 하면 금방 올 수 있어요. 한 10분도 채 안걸려요. 그럼, 내일 12시 30분에 그곳에서 만나요. 사랑하는 미정씨~”
“은희야~ 너 엄마 아주 기분좋게 만드네. 그래. 알았다. 그런데 너무 기대하지 마라. 엄마 이제 안 이뻐.”
“엄마는 요. 지금 그대로도 이쁘고 아름다워요. 엄마~ 편안하게 잘 주무시고 기분좋게 일어나셔서 그 때 만나요.”
전화가 끝나자 미정은 우선 은희 부부사이에 특별한 일이 없다는 말에 안심하였지만, 무슨 일이기에 자기를 끌고 가려는지 궁금증에 쉽게 잠에 빠질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