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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소망. / 揺らぐことのない希望。( 2023년 12월 10일 주일예배)
본문; 마태복음 13:44-50
마 13: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46 그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 47 ○"또 하늘 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온갖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내버린다. 49 세상 끝 날에도 이렇게 할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사이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서, 50 그들을 불 아궁이에 쳐 넣을 것이니, 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4. 「天の国は次のようにたとえられる。畑に宝が隠されている。見つけた人は、そのまま隠しておき、喜びながら帰り、持ち物をすっかり売り払って、その畑を買う。45. また、天の国は次のようにたとえられる。商人が良い真珠を探している。46. 高価な真珠を一つ見つけると、出かけて行って持ち物をすっかり売り払い、それを買う。47. また、天の国は次のようにたとえられる。網が湖に投げ降ろされ、いろいろな魚を集める。48. 網がいっぱいになると、人々は岸に引き上げ、座って、良いものは器に入れ、悪いものは投げ捨てる。49. 世の終わりにもそうなる。天使たちが来て、正しい人々の中にいる悪い者どもをより分け、50. 燃え盛る炉の中に投げ込むのである。悪い者どもは、そこで泣きわめいて歯ぎしりするだろう。
지난 주일에는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영적으로 건강할 때 인생은 비로소 풍요롭고, 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심할 수 있으며, 후회없는 용기로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바라보는 눈이 분명해지므로 소망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더 이상 죽음 이후의 멸망이나 죄의 심판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후회와 낙심, 절망이 없는 영생의 복을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죽음을 이야기하면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분명한 믿음이 없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떻게 보면 복음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복음의 유익함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복음을 믿는 유익함을 이 땅에서의 이익과 결실, 혹은 성과를 얻어내는 것만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지요. 과연 우리의 복음이 이 땅에서의 성취와 성공, 그리고 단순한 심리적 안도감을 위한 종교적인 수사에 불과한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이러한 종교적 접근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 15:19)
그렇습니다. 성도의 바라는 것과 간구하는 것이 다만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국한되어 있다면 다른 이방 종교인들이나, 혹은 불신자들보다 불쌍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리의 소망과 간구는 이 땅에서의 형통함과 순조로운 결과, 혹은 성취(성공)에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소망이 있는 것일까요?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 8:24)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의 존재로서 이 땅을 살면서도 염려와 낙심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는 믿음에서 생긴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보이지 않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 혹은 하늘나라로 표현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비유를 가지고 가르쳐 주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완성된 나라인데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와 같은 공동체가 곧 교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완성되는 곳을 우리는 천국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천국은 꼭 죽어서 가는 나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죽어서 가든 그렇지 않고 이 땅에서 경험하든 하나님의 뜻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내면의 상태를 뜻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이 땅에서는 경험하기 힘들지요.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인생이 마감되고 난 후 심판을 통과한 이들이 누리는 곳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를 통해서도 말씀을 드렸는데요. 죽음 이후 반드시 서게 될 심판대에서 복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음으로 죄의 심판이 끝났다는 것을 인정받고 최종판결이 내려집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리스도인에게 죽음 이후에 치러지는 심판은 영생과 천국의 입성을 최종적으로 인정받고 소유하게 되는 통과의례인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천국이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저 일상적인 밭인데 그 안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서라도 사고 싶은 소망의 공간이 된 것이지요. 천국은 이과 같은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일상의 노동이 있고, 고된 사명이 있는 곳이 난데없이 금은보화가 나타나면 그 삶의 자리를 구매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지요. 만일 여러분이 이 예화의 농사꾼과 같은 입장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밭을 사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 전체를 다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은 곳이 천국이라는 뜻입니다.
또, 45절에는 좋은 진주를 찾던 사람이 자신이 보기에 최고의 진주를 찾았기에, 이 사람도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산다고 말하지요. 자신이 가장 값지게 생각하는 것이 나타나면 모든 것을 팔아도 아깝지 않다는 뜻인데요.
이처럼 천국은 우리의 일상이나, 혹은 현실적인 가치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우리가 천국의 존재에 눈이 뜨여지고, 천국의 가치를 헤아릴 수 있는 시선을 갖추게 되면 자신의 현실에 일어나는 모든 고난과 수고, 그리고 가치를 두던 일들을 모두 팔아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채우는 데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 천국이란 이처럼 세상의 성공이나 성취에 대해 집착하지 않도록 내면세례를 채우는 소망이라는 말이지요. 천국에 눈을 뜨면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죽음을 보는 시선이 열려도 불안해하고 불평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죽음 뒤에 심판이 있다는 것에 두려워하며, 죽음의 권세에 매여 죄의 종노릇을 하고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복음을 믿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교회를 다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복음이 주는 소망으로 마음을 채우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저 종교생활을 하는 자체에 위안을 삼고 천국을 소망하기 보다, 이 땅에서의 일상이 순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지요.
히브리서 2장 15절에....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 2:15)
라고 약속하신 것은 예수님을 믿고 온전히 천국을 소망함으로 이 세상의 일들에 집착하지 않는 내면의 넉넉함과 용기와 활력을 주시려는 것이지요. 천국을 향한 소망으로 현실의 문제에 집착하지 않는 넉넉한 내면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천국은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 주십니다. 좋은 진주를 발견하는 것이나,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는 것은 모두 보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천국에 합당한 두 사람 모두 무엇인가를 발견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보물을, 한 사람은 좋은 진주를 발견하였지요. 보물과 좋은 진주는 모두 좀 더 높은 수준의 무엇인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구절에서 “천국을 발견한다”는 것은 “좀 더 높은 지평에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낮은 곳에 있는 것보다 좀 더 높은 곳에 서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또한 더욱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마치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고도에 올라가면 세상이 다르게 보는 것처럼...). 또한 죽음을 보면서 인생의 귀하고 소중함을 알 수 있듯이, 높은 곳에서 보다 넓은 지평을 볼 수 있으면 인생에서 주요한 선택을 해야 할 기로에 섰을 때 더욱 소중한 것을 선별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진로나 혹은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향후 20년 내지 30년의 역사적 흐름을 헤아릴 수 있다면 큰 유익이 있을 수 있겠지요. 물론 미래를 내다보는 점쟁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생을 생각하는데 생각의 지평이 좁은 것보다는 넓은 편이 소중한 것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는 말입니다. 하나만 아는 사람보다, 둘을 아는 사람이, 그리고 다섯까지 헤아리는 사람보다, 열까지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보다 지혜롭게 인생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시편에는 이런 탄식의 간구와 고백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시 27:5)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시 61:2)
환난과 고난의 날, 그리고 위기의 때에 높은 곳에 서서 좀 더 높은 지평으로 인생을 볼 수 있을 때 위험의 걸림돌을 기회의 디딤돌로 삼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단순히 높은 곳이나 지위에 오르는 것을 욕망하는 것은 또 다른 교만과 오만을 불러올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와 고난의 때에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계신 곳, 천국의 지평에 서서 보기를 원하는 것은 인생을 가치 있게 잘 살기 위한 간구라는 것을 믿습니다.
천국을 볼 수 있는 시선을 갖추면 우리는 이 땅에서 다가오는 모든 유혹과 핍박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소유하게 됩니다. 만일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으면 사기와 유혹에 쉽게 마음을 내어 주게 됩니다.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의 유익함에 마음을 내어 주게 되는 것이지요. 사탄은 우리의 가장 나약하고 연약한 부분을 알고 그곳으로 비집고 들어와 유혹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사람의 성격과 혈액형이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그와 관련된 카툰이 책으로 출판된 적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MBTI라는 것이 유행하더군요. 대체로 사람들의 성격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고, 그것을 조합하여 대체로 16가지 성향으로 구분하는 것 같은데요. 예전에 네 가지 혈액형으로 성격과 성향을 구별하던 것보다는 훨씬 다양해서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 한 1년 정도 성경적 에니어그램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심리유형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는데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9가지의 몸통 유형이 있고, 그 9가지에 추가하여 날개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유형에 따라 두 가지 중에 한쪽을 더 많이 사용하기에 몸통 유형 9가지는 다시 18가지의 유형으로 확장됩니다. 거기에 더해 18가지 유형은 세 가지 본능 중에 각각 하나의 본능에 의존하는 성격으로 정리됩니다. 그럼 기본적으로 사람은 54가지 성격유형 중에 어느 하나에 속하게 되는데요. 같은 유형, 같은 날개, 같은 본능이라고 해도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다른 유형의 반응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제가 여기서 그 모든 내용을 설명할 수는 없는데요. 다만 제가 이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은 사람은 참으로 오묘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성향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같은 유형의 사람도 서로에 대해서 공감을 하더라도 분명히 다른 점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유형이라고 규정할 수 있으나, 그 사람이 항상 같은 유형의 다른 사람과 똑같은 생활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성격이나 성향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은 맞지만, 현실에서는 모두 다른 모습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완전히 같은 성격이나 생각은 거의 만나기가 힘들다고 보아야 하지요. 그러니 누군가와 잘 맞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적 에니어그램이 혈액형 성격유형이나, MBTI와 같은 심리검사와 다른 점은 모든 사람의 유형이 고유한 내면의 취약점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내면의 취약점은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상황에 놓여 있어도 어떤 사람은 유혹이 강하게 오는 반면, 어떤 사람은 전혀 유혹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하지만, 각자에게 맞은 회개의 기도를 통해 그 취약점을 강점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배우는 것이 성경적 에니어그램인데요. 그 회개의 내용이 복음 하나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여러분들과 함께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은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성향의 사람들이 각자 고유하게 갖고 있는 내면의 취약점을 비집고 들어오는 마귀의 유혹과 핍박에서 그 사람을 성숙하도록 지켜주는 강력한 능력을 준다는 것입니다.
성경적 에니어그램의 관점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이 취약점(‘격정’이라고 일컫는...)을 갖는 이유는 이 땅에서의 현실적인 삶과 생존을 위한 욕구로 인해 발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각 사람의 성향이 가진 취약점은 천국의 삶이 아닌, 지상의 삶을 위해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 취약점을 관리하여 마침내 각 유형의 강점(‘덕목’이라고 일컫는...)을 드러내는데 그 강점이 곧 천국의 삶을 위해 부여받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어떤 유형의 사람이든, 어떤 성격의 사람이든 그 성향과 성격으로 인생이나 장래의 한계가 결정되거나, 혹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것은 오로지 이 땅의 인생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지 않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상대의 성격과 성향을 구별하여 인간관계를 맺거나 끊기를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의 성격, 성향, 기질을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위해서 활용하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이처럼 천국에 대한 소망은 인간 내면의 취약점을 비집고 들어오는 유혹과 핍박을 능히 이겨내도록 우리에게 채우시는 주님의 능력인 것을 믿습니다.
우리 주변에 참으로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 있다고 좌절하고 실망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천국에 대한 분명한 소망이 있다면 죽는 한이 있어도 절망하지도 않고, 낙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고, 그 심판은 천국으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미혹이 있고, 유혹이 있고, 심지어 핍박과 괴로움이 밀려와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듯 소망은 우리를 경건하고 성결하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섬기는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소망이 있기에 자신의 사명의 자리를 굳게 지킬 수 있는 것이지요. 사도 요한은 우리가 소망을 가졌기에 거룩함을 지킬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3)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죄는 다시 돌아보기도 싫어집니다.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당장에 버리게 됩니다. 선을 베풀고,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심지어 원수와 같은 이까지도 아끼고 사랑하게 되지요. 당연히 가는 곳마다 원수는 사라지고 친구들만 만나게 될 것입니다. 몸이 죽어 심판을 통과하여 들어가는 천국에 가기 전에 이미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 수 있게(살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대한 소망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리를 지식적으로 머리에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지평을 확장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나의 가장 아름답고 온전한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합당한 모습으로 하루에 하루만큼 자라나고, 변화되고, 충만해지고, 복된 인생의 열매를 풍성히 넘치도록 맺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분명하면 이 세상의 현실적인 생존문제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인생을 보는 지평이 확장되어 보다 지혜롭고, 바람직한 시선과 가치관으로 인생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일상에서도 분주하거나, 산만하거나, 혹은 낙심 또는 좌절하지 않게 됩니다. 모든 것들에 여유와 함께 활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어떤 문제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게 되니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거나, 예민하게 대응하지 않게 됩니다. 무엇보다 나를 속이려는 사기꾼들의 유혹이나, 나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못된 인간들의 핍박과 괴롭힘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인간관계가 폭넓고 튼튼해지는 것이지요. 자연스레 가는 곳마다 원수는 사라지고 친구들이 생겨납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과 동행하며 천국을 소망하는 태도로 일상을 살 때 이 모든 복을 누리게 될 것을 믿습니다. 언제나 성령의 임재 가운데 주님을 바라보며 천국을 소망하는 눈이 열리기를 다시 한번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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