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기의 발견
2)자화상 공연-진정한 자기실현
자화상의 의미는 라틴어의 'protahre' 에서 유래한 것으로 '끄집어내다'와 '발견하다' 혹은 '밝히다'라는 의미로 오늘날에는 '초상화를 그리다'의 'portray'가 되었다. 즉 자화상은 자아라는 의미의 'self'와 'portrait'가 합쳐진 합성어이며, 자기 자신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그리는 이의 자의식이 만들어내는 자화상은 단순하게 자신을 닮게 그리는 기교나 화법의 차원을 넘어 대상인물의 인간적 면모에 대한 종합적이고 유기적인 이해가 가능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김종국, 2002).
Walker(1939, 이정인, 2010, 재인용)에 의하면 자화상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으로 자기 자신을 직접 그리기 때문에 초상화와는 다르게 고백적이며 자기 탐구적인 경향이 있다. 많은 예술가들과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의식을 확인하고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외형적인 자신의 모습과 본인만의 실제 모습의 차이에서 혼란과 정체성을 고민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길은 그동안 사회의 요구에 순응함으로써 자아에 의해 완전히 소외된 그 사람의 진정한 개성과 자기를 찾아주는 것, 즉 자기실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실현 또는 개성화의 과정은 치유의 과정이며 건강한 사람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이부영, 2003a). 이 자기실현의 과정은 근원적 자기와의 통합으로 내면에 잠재된 여러 가지 열등한 의식들을 개성화시켜야 하는 작업이기에 평생을 노력해도 부족한 일이다. 그래서 Jung은 이 개성화과정을 근원적 자기의 인격의 성숙이며 자기실현의 과정이라고 말한다(조영혜, 2002).
인간 이외로 존재하는 것들은 그 종(種)에 내재된 자연의 질서에 따라 자동적으로 자기를 실현해가지만 자유의지가 주어진 인간의 자기실현은 자동적으로 자연의 질서를 따라 자기를 실현해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자기실현 과정에서 인간은 자아의 결단과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비로소 의식과 무의식의 합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김성민, 2001).
치유는 치료자가 하는 어떤 말이나 행동이 아닌 치료자의 인격(what he or she is)으로 인해 일어난다. 치료자가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못 보면, 통합성(intergrity)을 잃어버리게 되어 치료하기보다 오히려 내담자에게 해를 입히게 될 수 있다(Jaffe, 1990/2006).
Frida Kahlo(1907~1954)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자전적 그림을 많이 그렸다. 자화상을 그리면서 그녀는 "나는 자주 혼자고 가장 잘 아는 대상이 나이므로 나를 그린다."고 하였다(박서보, 오광수, 2003). 나도 Frida Kahlo 같이 나를 잘 아는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 심정으로 차크라 색채명상을 하며 자화상을 여러 장 그렸는데 연구 텍스트로 연구에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직접적인 자화상보다 상징적인 자화상으로 자기실현의 과정을 경험하고자 하였다.
분석심리학 관점에서 보는 상징은 실재에 참여하게 하는 기능을 하고 대상의 감각적 외양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실재를 현존화하여 상징이 가리키는 실재에 참여하게 한다. 또한 리비도를 변환시키는 기능을 하는데, 상징을 통해 어떤 정신적 내용이나 사건을 하나의 이미지로 변환시킨다. 상징은 의식의 세계에 무의식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매개로 의식과 무의식, 숨겨진 것과 나타난 것 등 대극적 요소의 중개자이며 자율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상징은 대극들을 통합시키는 초월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어서 상반되는 요소가 서로 대극의 긴장관계일 때 상징이 그 가운데 초월적인 위치에 서서 대극의 긴장을 풀어주고 두 요소간의 충돌이나 모순을 완화시키고 통합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하게 한다(김신옥, 2006).
자화상은 화가가 자신을 대상으로 한 초상화지만 자신을 상징하는 자화상은 적극적인 상상을 하며 자기 자신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입체적 결과물을 내는 MRI와 같은 신비와 재미난 은유가 들어 있다. 인간은 상징의 기능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의 내적인 조화를 이루어가면서 영혼의 발달을 경험하게 된다. 상징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개인을 지지하고 안내하며 삶의 목적을 이루어 가는데 동기가 되는 삶의 에너지를 자아에게 전달한다(Edinger, 2002/2018). 상징은 원형적 정신의 자발적 산물로 인간은 상징을 제조할 수 없으며 단지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상징적인 다양한 표현들과 정신의 에너지를 가진 상징은 살아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Ⅴ-12는 태아의 모습에서 성장통을 앓으며 각종 통과의례를 치루고 어른으로 살아가려는 나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마음의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을 그렸다. 판단과 평가에서 벗어난 파랑새가 앉아있는 나무는 생명의 나무이고 그 나무는 우주를 품에 안고 있다. 검정색 옷을 입은 나는 천사의 날개 아래에 혼자 서있다. 보랏빛과 파란색 빛이 위에서 나의 삶을 비추고 현실은 노란색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트모양에는 진실한 사랑을 담았고 그 안에는 생명이 호흡하고 있다. 빛의 잔치 중에 피어난 꽃들과 어린 소녀는 그네에 앉아서 꿈꾸고 있으며 왼쪽면의 원색들은 잠재된 에너지를 표현한 것이다. 참 나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자한 것 같은데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자기실현에 대한 과업을 인정하고자 하는 내 마음이 표현된 것이다.
그림Ⅴ-13은 마음의 날개를 달고 계속 성장해 나가는 나의 삶에 대해서 그린 것으로 공기와 바다가 나무와 무지개색 꽃들과 새들이 노래하는 장면이다. 일곱 개의 차크라 색채명상을 시작하여 마칠 때까지 조금씩 그려서 오랜 시간동안 그린 것으로 그림Ⅴ-12보다 원색적이고 강렬한 색감이 사용되었다. 나 스스로에 의한 고통과 주변과의 갈등에 대해 회피하고 싶었던 마음에서 이제는 수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겨서 조금은 안정적으로 변화된 것처럼 보였다. 불안과 강박적인 지식에 대한 욕구보다는 자연의 에너지에 더욱 의미를 부여하여 이전의 구조화된 여러 도구를 내려놓고 흙에서 올라오는 강한 생명력과 생명체들이 강조되었다.
예술 활동은 유기체인 인간에게 정서적인 불안과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무의식에 담겨져 있던 심상의 이미지를 표현하면서 무의식에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분화시켜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고유한 개성을 발견하여 드러내는 기능이 있다(Jung, 1964/2016). 예술치료사로서 자기실현에 관한 탐구를 하면서 경험하고 있는 예술적 체험들이 무의식을 대면하게 할 뿐 아니라 나에게 보상과 휴식을 주고 특히 차크라 색채명상을 통해서는 몸과 마음이 더욱 색채를 깊게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었다.
Jung(1964/2016)은, 인간은 자연스럽게 성장하여 완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기 성장과 자기발전의 능력과 더욱 분화된 특별한 형상 계발을 통하여 문제점을 초월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였다. 그림안에서의 상징적인 표현은 내면의 갈등에 조화를 이루고 내적방향을 찾는데 도움을 주며 자신의 정서와 감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창조적이고 치유적인 기능으로 무의식적인 내용들을 의식에 통합시켜서 정신적인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신체적 작업은 우리의 생각이나 자아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때도 있는데 의식이 우울한 기분이나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어떤 자세나 움직임이나 호흡과 동작 등을 함으로써 해체되어 있고 긴장되어 있어서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고 있던 우리를 회복시킬 수 있다(Humbert, 1993/2018).
자화상을 그리고 진행한 '진정한 동작(Authentic Movement)'은 즉흥적인 춤으로 안무 없이 자신의 내적 충동에 따라 움직이며 몸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유연상을 해나가는 치유적인 방법의 하나이다.
동작자와 목격자가 각자의 경험을 언어화하며 무의식이 보여준 여러 요소들의 내용과 의미를 이해해가며 해석해가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몸의 언어는 무의식을 드러나게 하고 자아의식의 언어는 무의식과 의식의 대화가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가 있다(남희경, 2019).
그림Ⅴ-14는 상징적인 자화상(그림 Ⅴ-12)을 벽에 붙이고 대학원에서 표현 예술치료 수업 중에 공연을 한 것이다. 그림Ⅴ-14와 Ⅴ-15는 그때 촬영한 사진들이다. 차크라 색채명상 과정에서 전개되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자화상과 상징적 자화상을 두고 진정한 동작(Authentic Movement)을 경험하며 몸을 읽고 진정한 나 자신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목격자 앞에서 동작을 한다는 것은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자화상에 집중하고 진정한 의미를 담은 동작에 스스로 목격자가 되어 제3의 눈으로 나를 자각하였다.
그림 Ⅴ-16은 아지나 차크라를 활성화시키는 동작으로, 직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추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은 물라다라 차크라의 안정적인 발달과 밀접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직관의 세계로의 출발이었다.
그림 Ⅴ-17은 렘니스케이트(lemniscate)라는 무한대(∞)를 상징하는 모양을 두 팔을 모아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그리는 동작이다. 사하스라라 차크라의 영원을 향한 에너지와 우주로부터 무한하게 제공되는 생명에너지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동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의식의 변화는 우리가 몸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대부분은 배가 고프거나 잠이 올 때를 인지하게 되면 식사하거나 수면을 취한다. 우리 몸은 외로움을 느낄 때나 슬플 때, 화나거나 좌절감을 느낄 때와 언제 평화와 침묵에 머무르고 싶은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 정보를 주시하여 잘 듣고 수용하여 우리는 선택할 수 있으며, 우주적 영혼에 연결된다. 또한, 우리의 환경, 즉 모든 자연으로부터 오는 메시지와 내면의 소리를 감지하여 진정한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할 수 있다(Rogers, 1993/2007).
그림 Ⅴ-13을 그리고는 혼자서 목격자 없이 공연을 여러 번 했지만 사진을 남기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공연을 하니 마음속에 강렬한 연상과 몸의 기억이 남아있어 오히려 나의 영성에 도움이 되었다. 언제나 머리는 지식과 이론을 마구 꺼내오면서 몸의 감각은 멀리하고 비유적인 간접적인 표현으로만 소통하고 움직이지 않고 멈추어만 있었는데 갑자기 신선한 바람이 몸과 마음속에 불어와 새로운 생명의 약동을 표현하였다.
정신적인 토대요 기둥인 물라다라 차크라의 빨간색 에너지는 신체가 존재하는 기반으로 인간의 생명력을 몸 위로 보내고 아래로는 대지와 연결하여 인체를 지지해주는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의식적인 삶을 살고자 하며 무의식을 알아차리고 정신적인 깨어있음과 이성과 지성의 발달은 물라다라 차크라의 안전한 존재감과 생명력이 전제가 될 때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 만약 이 빨간 차크라 에너지가 결핍되어 있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문제들과 자연재해나 이번의 코로나(COVID-19)와 같은 중대한 사건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자연스럽게 일상을 살아내는 것에 심각한 무리가 생긴다.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 앞에 놓여진 일들을 해결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우리의 몸에 머물러야 비로소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다.
그림 Ⅴ-18은 빨간색 에너지로 표현된 치유의 상징으로 다소 공격적인 이미지이지만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고 축복이며 생명의 불꽃을 표현한 것이다. 자발적 이미지를 창조하고 자신의 무의식적인 동기를 다루기 위해 표현된 이미지는 자유연상을 통해 학습할 수 있는 상징적인 언어 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이 선택한 어떤 방법으로든 자유롭고 자발적인 작업을 하게 된다(Naumberg, 1987/2014).
차크라 색채명상을 통한 예술치료사의 자기실현에 관한 연구의 이번 여정은 여기서 막을 내리고자 한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의 삶을 신과 함께 하며, 호흡과 같은 기도를 드리기를 원하는 것은 나와 타인이 함께 신께 나아가기 위함인 것을 알게 되었다. 현실에 충실하지만, 그것을 초월한 영혼이 나에게 존재하며 신이 주신 내면의 은총과 영원한 사랑의 힘으로 창조적인 현실을 살아내는 것이 나의 과업이요 운명과 같은 사명임을 오래전에 느꼈지만 자전적 내러티브를 통해 더욱 명료하게 탐구하게 되었다. 이제 그 힘에 순명하며 순응하고 살고자하는 것이 나에 대한 자기실현이며 신과의 약속이며 그 앞에 성스럽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 길에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차크라 색채명상을 통한 예술치료사의 자기실현에 관한 자전적 내러티브 탐구/ 전진옥 건국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치료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