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사람은 강경의 도강목 숫막을 떠난 지
반식경이나 되어서 강경천(江景川)의
지류인 어양내[漁梁川]와 만났다. 내는
그렇게 깊지 않았으되 물이 차갑고 달도
없는지라, 나귀들이 물길로 들어설 엄두를
못 내고 버티었다.
용익이 다리를 둥둥 걷어 길가를 먼저
업어 건네고 나귀들을 족쳐서 물길로 잡아
엎치는데, 맞은편 자드락 어름에서 여우란
놈이 기를 쓰고 울었다. 삭정이를 주워다가
불을 피워 겁 많은 나귀들을 달래고 언
발을 대강 녹인 다음 다시 길을 떴다.
"이렇게 어두워서야 나귄들 어디 길을
찾겠나?"
닿아야 술국이라도 얻어먹지요."
"부기가 도지면 어떡하나 그게
걱정일세."
"주리 참듯 참고 있다가 조송파를 만나면
벌충을 해달라십시다."
"무슨 벌충을 한다는말인가?"
"조송파가 김학준이란 놈에게 전사에 진
빚으로 어음표(於音票) 한 장이라도
받아쥐었다면 길동무에게 돈 백 냥 뚝
떼어줄지 누가 아오."
"예끼 이 사람, 내가 천상 젓동이 깬
젓장수 꼴이 되었네만 공것은 바라고
싶지가 않으이."
"젓동이를 잃은 대신 초피 열 장을
얻었으니 이참에 아주 장삿길 물리를
그쪽으로 트고 말지요."
젓장수면 어떻고 초피장수면 어떤가......
팔도의 먼지를 뒤집어쓴다 해도 이 한몸
연명해왔으면 족하이. 그러나 이제 한 손을
잃었으니 젓장수만은 하직일세.
조막손에 젓국자가 모양있게 잡힐 리가
없고 젓국맛을 보여줄 손가락도 없게
되었지 않나. 그년이 자르려면 손목째
자르든지 하지, 손가락만 잘라놓았으니
병신도 이런 흉한 병신이 없고 병신값도
또한 제대로 못하게 생겼지 않나.
손가락만 잘린 놈을 두고 어느 놈이
병신이라 하겠으며 또한 어느 놈이 성한
사람의 취급 해주겠나?"
"그년이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한
짓일까요?"
"능히 그럴 계집이었네."
"뭘 말인가?"
"궐년을 다시 만나 앙갚음을 하실
작정입니까?"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그냥
웃어넘기고 말 것인가? 하물며 그년은
근본은 우리와 같은 상년으로 반가의 계집
행세를 톡톡히 하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집에 돌아가서 내권이 이 일을 알게 된다면
명색이 지아비란 것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기왕 내친김에 그놈의
집구석을 아주 도륙을 내놓고 말아야지."
용익은 치를 떨었다. 그가 당초부터
초죽음이 된 형용을 했기에 망정이지
궐녀의 거조로 보아 아직 미성취한 사내의
불을 발리는 일인들 두려워했을 계집이
아니었었기 때문이다.
작로하실 작정이오?"
용익이 앞에서 물었다.
"조송파가 김학준을 다루는 솜씨 봐가며
작정할 일이지."
강경에서 50여 리 상거인 석천리(石泉里)
세거리에 당도하였을 때 하늘이 뿌옇게
밝아왔다. 말갈기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고 두 사람의 입은 굳어 있었다.
나귀도 지쳤고 사람들도 허기가 져서
얼요기로라도 속을 채우지 않고는 더
이상의 작로가 어렵게 되었다.
"겨우 50여 리를 온 셈이군."
길가가 굳어 있는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세거리 못미쳐서 대여섯 채의 숫막이
보였지만 인근에 촌락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삼담리(三潭里) 네거리로 빠지는 길이요,
곧장 나아가는 한 가닥 길은 여산으로 가는
대로였다. 힘이 지쳐 걸음이 늦어지는
나귀를 그대로 몰아 강경에선 60릿길인
여산 고을을 비켜 새말[新里] 주막거리에
닿았을 땐 날도 거진 새었거니와 이젠 정말
사람도 나귀도 단 한 발짝을 때어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나귀가 생각보다는 빨리 지쳤던 것은
밤길 때문이었다.
숫막을 얻어드는 길로 쑥찜한 자리를
풀어보았으나 덕석을 덮어써서 어한을 한
탓인지 생각보다는 부기가 덜하였다.
쑥찜질을 다시 하고 더운 술국을 재촉하여
겨우 요기를 때웠다.
마침 주막거리 앞 거리에는 마른 생선을
강경보다는 산이 가까운 지형이라 제법 큰
시탄전이 형성되고 있었다.
거리 앞으로 마소가 여러 필 드나들고
새벽같이 나뭇짐을 내온 나무장수들은
등토시에 양팔을 집어넣고 숫막의 추녀
아래에 웅기중기 서 있었다.
한겨울인데도 누비등거리라도 껴입은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고 대개가
홑저고리에 아랫도리가 덩그렇게 드러나는
홑바지에다 뒤축이 떨어진 짚신들을 질질
끌고 있었다.
첫닭이 홰를 치는 것을 기다려 나무
한짐을 뼈대 하나로 괴며 4,50리의
산중길을 내처 왔건만 주막거리에
당도하였어도 장떡 요기 한번인들 변변스레
못할 시골고라리들이었다.
마냥 기다리고 서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은 여산
쪽에서 내려오는 길과 전주(全州) 쪽에서
올라오는 길목으로 연신 눈길을
두리번거리고들 있었다.
숫막의 추녀 아래나 울바자 앞에 붙어서
있다가 간혹 전주를 오가는 견마잡이 없는
양반 행차나 행탁이 두둑한 부상(富商)들을
만나면 오금아 나 살려라 하고 달려가는
것이었다. 바리나 부담농을 내려주고
나귀들의 여물 심부름을 해주면 몇푼의
동전을 행하돈으로 얻어 허기를 끌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그런 행차를 용하게 만난다
하더라도 십수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악다구니를 벌이다가 종내는 행차의
욕설을 뜨거나 심하면 나귀부리던 회초리로
등줄기를 얻어맞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등줄기 한두 번 회초리로 얻어맞는다
하여도 뱃속에 든 새벽 걸신이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의 소원은 수저를 똑바로 꽂아도
넘어지지 않을 만큼의 빽빽한 황육(黃肉)국
한 그릇과 하얀 쌀밥을 미주알이
뻐근하도록 먹어보는 일이었으되 그 소원을
단 한번이라도 속시원히 풀어본 적은
없었다.
전주고을로 내려가는 길목답게 해가
아귀트기 시작하자, 장사치들과 행인들의
내왕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거개가 밑천 짧은 장돌림이거나 꾀죄죄한
괴나리봇짐을 달랑 매단 거릿귀신들뿐으로
보이질 않았다.
어젯밤에 당도하여 숫막의 헛간 하나를
빌려 밤을 새운 솟대쟁이 패거리들이
한속을 못 풀어 달달 떠는 몸짓들로 울바자
아래에다 노구솥을 걸고 수제비국을 끓이고
있었다.
제법 해사하게 생긴 계집도 두셋 끼여
있는 솟대쟁이들에게 담배장수로 보이는
키가 껑충한 한 놈이 농지거리를 하며
다가서고 있었다. 담배장수들은 길소개
일행보다는 나중에 당도한 축들이었는데,
대여섯이나 되게 상단(商團)을 지어
몰려다니는 듯하였다.
그중 한 녀석이 꼭두잡이인 솟대쟁이
하나를 잡고 물었다.
"노형들은 어디로 가시오?"
생긴 계집이 담배장수를 핼끔
뒤돌아보았으나 대답은 꼭두잡이인
노닥다리가 했다.
"어디로 가다니요? 살판뜀인 광대들이
작정하고 갈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식후엔 어디로 갈 것이오?"
"전주로 작로할 작정입죠만 중도에
살판이라도 만나면 또 그곳에서 하룻밤인들
못 묵겠소."
"고향들은 어디시우?"
"여보시오, 새벽녘에 남의 고향은 왜
물고 늘어지시오? 화귀(花鬼)에 물들어
바람 따라 자고 바람 따라 흘러가는
광대들에게 찌그러진 고향인들 있을 턱이
없지요."
꼭두잡이가 담배장수 한 놈과 수작을
계집은 솥 가녘으로 국자를 돌릴 때마다
일부러 육기 좋은 엉덩이를 훼훼 내젓었다.
계집의 엉덩이에 힐끔거리며 눈길을 주던
담배장수란 놈 무슨 복안이 생겼던지
툇마루에 놓았던 담뱃짐에서 잎담배 한
꼭지를 쑥 빼내들더니 꼭두잡이 노인네에게
내밀었다.
"상관초(上關草)요."
"허, 이거 고맙수. 밤새도록 학을 타는
꿈을 꾸었더니 담배를 얻으려는 꿈이었나
보구려."
"예끼, 과찬 마시우."
꼭두잡이가 지체없이 담배꼭지를
받아쥐었는데, 간혹 육허기가 든 떠돌이
장사치들이 솟대쟁이패들에 끼인 찌그러진
계집을 겨냥하여 수작이라도 한번 해볼까
때문이었다.
꼭두잡이는 받아쥔 담배꼭지를 들고
동패들에게 한닢씩 뜯어 돌리는데 그 틈을
타서 담배장수란 놈은 국자 쥔 계집에게로
슬쩍 다가갔다.
"거, 솥 밑구녁 뚫어질라. 대강 젓고 날
좀 보시오."
계집이 눈시울을 곱게 뜨고 핼끔
뒤돌아보는 품이 벌써 수작은 됐다 싶었다.
"뜸이 들었으니 고만 젓지요."
계집이 일어서며 눈짓으로 주막 뒤꼍
어름을 가리킨다. 솟대쟁이 계집들 중에는
간혹 길가에서 만난 장사치들에게 밑엣품을
놓아서 용채를 얻는 신세라, 해뜰 때건
해질 때건 그게 큰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계집이 담배장수 한 놈을 옭아서 숫막
웅기중기 붙어섰던 나무장수들이 삽짝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행차 하나가
마침 세거리목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말 탄
양반이 셋이요, 바리 실은 나귀도 두
필이었는데다 가마 탄 내행(內行)도
보였다.
그들 또한 마침 숫막이 있는 쉴참을
만난지라 말을 풀려고 숫막 어름을
겨냥하는 참이었다.
"이놈들 비켜서거라."
행렬의 앞쪽에서 견마를 잡고 있는
배행꾼이 우르르 달려나오는 나무장수들을
바라보며 눈을 부릅뜨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고삐를 서로 받아쥐려고 북새판을
벌이었다. 마상에 앉은 도포자리가 눈살을
찌푸리고 구종들을 좋지 않은 눈썰미로
아래에까지 가서 하정배를 드리며,
"나으리, 아랫목 뜨거운 숫막이
있습니다요."
고삐 쥔 구종이 그 말 되받아서,
"이놈들, 아랫목 찾는 나으리들을
보았느냐?"
"왜들 이러슈? 초행이시라면 신리 세거리
풍습을 모르실 거 아뇨?"
"이놈들 봐라? 세거리 풍습이 어떠하냐?
맛 좀 보자."
"우리가 두어 푼 행하를 받는대서 이녁이
배아플 거야 없지 않는가?"
"이놈들아, 양반 행차 가로막고 서서
무슨 행하돈을 바라느냐?"
"그러니까 말에 여물이라도 먹여
드리자는 것 아니오?"
먹는 것을 언제 보았느냐?"
"말이 여물을 먹지 그럼 약과라도 먹는단
말이오?"
"이놈들 봐라. 약과 좋은 줄만 알았지
쌀겨 좋은 줄은 모르는 놈들이구나. 썩
비키지 않으면 네놈들 등줄기에다 기어코
회초리맛을 보일 테다."
"회초리 무서워 비켜날 우리가 아니오.
나으리들께선 보고만 계시는데 배행꾼들이
훼방을 놓을 것이야 없지 않소."
"이놈들 이제 보니까 순
왈자들이로구나."
옥신각신하는 터에 목자 사납게 생긴
배행꾼 한 놈이 다가와서 나무장수 한
사람을 모양좋게 드잡이를 하고 비켜나더니
딴죽걸이로 패대기를 치니 허기진 몸뚱이가
양반 행차에 구종이라면 근본으로 따져
나무장수들보다야 상것들임에는
틀림없겠건만 녹록하지 않기로는 마상에
앉은 나으리들보다 한술 더 뜨는 꼴이었다.
배행꾼들의 서두르는 꼬락서니가 보통은
아니었지만, 그런다고 쉽게 물러날
나무장수들도 또한 아니었다.
딴죽걸이로 한 놈을 혼구멍낸 배행꾼이
다시 다가서더니 다시 한 놈을 잡아내어
드잡이를 하고 밖으로 끌고 갔다.
"이놈, 맛 좀 봐라."
결김에 등지기로 냅다 곤두박는데, 마침
등지기로 넘어가는 작자 손에 말고삐가
잡혀 있었던 터라, 아니래도 나무장수들이
북새판을 벌이는 통에 얼혼이 빠진
말[馬]이 껑충하고 엉덩이를 쳐들고
마상에 앉았던 도포짜리가 말엉덩이를
타고 쭈르르 미끄러져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낭패는 보았으되 다행히
말이 더 이상은 뛰지 않았다. 도포짜리가
갓이 찌그러지고 도포를 찢었으니 아무리
양반 행세로 그때까지 두고만 보았으나
종시 참을 건덕지가 없었다.
저놈 잡으라는 손짓을 할 요량으로
관자놀이부터 부르르 떠는데 낙상을 한
도포짜리 앞으로 키가 껑충한 담배장수 한
놈이 느닷없이 가로막고 서면서 봇짐에서
담배 한 두름과 백간죽(白簡竹) 하나를 쑥
빼들더니,
"팔도를 주름잡는 경강 삼개에 사는
담배장수 한 놈 나으리께 초인사 여쭙니다.
강수복(康壽福) 헌수복(獻壽福)의
소상반죽(瀟湘斑竹), 자문죽(自紋竹),
양칠간죽(洋漆竿竹), 각죽(刻竹),
칠죽(漆竹), 서산용죽(瑞山龍竹),
조죽(鳥竹), 화문죽(火紋竹),
상중(喪中)에는 백간죽(白簡竹)이
수수하옵지요. 이름 좋은
금산초(錦山草)며, 장광(長廣) 좋은
직산초(稷山草)며, 수수한 영월초(寧越草),
빛깔 좋은 상관초(上關草)며, 전라도
진안초(鎭安草), 충청도에 괴산초(槐山草)
수성초(水成草)며, 경상도에
안동초(安東草)요, 연기 맑은 경기도
금광초(金光草)며, 강원도의
횡성초(橫城草)라. 함경도
갑산초(甲山草)며, 평안도의 향기로운
성천초(成川草) 덕양초(德陽草)
익산초(益山草)에 불 잘 타는 남의초(草),
상관초, 서초(西草), 양초(洋草),
향초(香草), 망우초(忘憂草) 입맛대로
들여가십시오."
담배장수란 놈 너울지게 어깻짓까지 하며
다리를 빗대고 한바퀴 휘그르 돌더니 이젠
타령으로 넘어간다.
"진안초 넓은 잎새 그중에서 골라내어
마디마디 빼어서 접첨접첨 발 밑에
넣었다가 잠이 꼭 잔 연후에
산유자(山柚子) 목침(木枕) 내어놓고 벽에
걸린 오동철병(梧桐鐵柄) 반 은장도 옥수로
덤썩 빼어 한허리를 선뜻 잘라
탈락[毛]같이 썰어서 은수복(銀壽福)
백통대에 장가락으로 눌러담아 청동화로
백탄(白炭)불 이글이글 불붙는데 옥수로
파란 연기 몽기몽기 항라(亢羅)치마에
아드득 씻어 올리면 나으리 그걸 받아
잡수옵시면, 한 모금 뱉어내어 정신이
아득하여 부모상에 이러함은 효자 충신 뉘
못하리.
또 한 모금 뱉어내니 일가상에 이러함은
다툼 말고 애옥살이, 또 한 모금 뱉어내니
살림하는 여인네가 살림맛이 이러하면
장차추심(將差推尋) 뉘 못하리.
또 한 모금 뱉어내니 일하는 농군들이
일맛이 이러하면 장원급제 왜 못하리. 또
한 모금 뱉어내니 활 쏘는 활량들이 활의
맛이 이러하면 호반급제(虎班及第) 왜
못하리......"
담배장수는 비단으로 기운 쥘쌈지까지
내밀며 타령을 읊조려 화가 상투끝까지
눈알을 가로막던 것은 담배 몇구붓이나
팔아보려는 작심에서가 아니라 배행꾼들
행패에 봉패를 당하고 있는 시골고라리들이
안쓰러워서 양반놈의 손짓에 다시 한번
도륙이 날까 해서 제딴에 훼방을 놓고 있는
게 분명하였다.
|
첫댓글 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