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의 맛과 멋(61)
유 준 호(한국시조협회 자문위원)
* 고시조
<호화코 주귀키야>
기대승
호화코 주귀키야 신능군만 할가마는
백년 못 하야셔 부덤 우희 밧츨가니
하물며 녀나믄 장부야 닐러 무슴 하리오.
기대승(奇大升:1527~1572)은 조선 중기 주자학자로 벼슬을 멀리한 이인데 그가 지은 시조로 호화롭고 부귀하기로야 고대 중국 식객 삼천을 거느렸다는 위나라 신능군만한 사람이 있을까만 그가 세상을 뜬 지 백 년도 못 되어 후세 사람들이 그 무덤 위에 밭을 갈게 되니, 하물며 호화도 부귀도 못 누린 평범한 이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리오, 하는 시조로 인생무상을 노래한 작품이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한 것이며, 물질 추구 황금만능은 그 의미가 얕고 낮기 그지없음을 말하고 있다.
* 현대시조
<산사>
김연동
장삼처럼 내려앉은 한 장 적막을 본다.
가랑잎 굴러가는 먹물 빛 적멸의 길
등 굽은 늙은 단풍이 흰 어깨를 툭 친다.
김연동(金硏東 1948∼)은 1987년 경인일보신춘문예로 나온 시인이다. 산사는 고적이 깔리어 있는 곳이다. 그곳엔 적막이 있다. 가랑잎이 먹물 빛 적멸의 길로 굴로 굴러가고 있다. 적멸은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것 즉 죽음의 길이다. 한 장의 적막으로 가랑잎이 세상 이별을 고하는 장면이다. 그 얼마나 고요하고 쓸쓸했으면 등 굽은 늙은 단풍 하나가 휜 어깨를 툭 친다고 했을까.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라 했던가. 낙엽도 늙어 저승길을 가듯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산사에서 보는 낙엽의 감회는 더없이 외롭고 쓸쓸하다. 목탁 치는 소리와 풍경 울리는 소리가 산사를 메우고 그 소리를 듣는 시인의 소회(所懷)가 차분하게 표현되어 있다.
<승인 2024.06.07. 08. 46세계한인사회 중심넷『worldkorean.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