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재회 기녀원에서 심부름을 하는 그 사람은 구노(龜奴)라고 불렀다. 귀노는 은자를 받고 크게 기뻐했으며 크게 돈을 쓸 호객(豪客)이 왔음을 알고 는 대뜸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그는 기다란 소리로 부르짖었다. "손님이시오!" 그리고 공손히 그를 맞아 안으로 들어섰다. 주모가 나와서 영접했다. 그러다 15,6세 된 소년의 옷차림이 화려한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애는 집안의 돈을 훔쳐서 마구 쓰려고 나왔구나. 어찌 되었든 한 번 뜯어내야겠다.)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이구! 도련님, 우리 이곳의 규칙은 문을 열자마자 이득을 보는 거라 오. 그대가 소저를 만나려 한다면 이곳에서 먼저 행화전을 내야 해요." 위소보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대는 나를 기녀원에도 못가 본 쑥맥으로 여기는 것이오? 나로 말하 면 바로 전문가외다. 우리집에서 바로 이와 같은 영업을 하고 있소이 다." 그는 한 무더기의 은표를 꺼냈다. 약 삼사 백 냥은 되는 것을 탁자 위 에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으며 말했다. "한 소저가 술자리에 앉아 시중을 드는 것은 오전의 은자이고 하룻밤 자는데는 세 냥의 은자이며, 커다란 찻주전자를 내오는 데는 오전이고 또한 주모에게도 오전이라는 돈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소? 난 오늘 흥 취가 무척 좋아 일률적으로 두배를 드리겠소." 잇달아 그는 기녀원에서 통하는 말을 했는데 한 마디도 하자가 없었다. 그 주모는 일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알고보니 동업하는 도련님이셨군요. 사람을 잘못 보았소. 그런데 도련 님의 댁에서는 어떤 집을 경영하고 계신가요?"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집은 양주에서 여춘원과 이정원(怡情院)을 열고 있고, 북경세선 상심루(賞心樓)와 양춘각( 春閣)을 열고 있으며, 천진에서 유정원(柔情 院)과 문국루(問菊樓)등, 모두 여섯 집을 경영하고 있소이다." 기실 여섯 집은 모두 양주의 유명한 기녀원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일시 에 그가 어찌 여섯 개의 기녀원의 이름을 들춰낼 수 있겠는가? 주모는 그 말을 듣자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여섯 집을 경영하는 주인이 크게 장사를 하려고 온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련님께서는 어떤 소저를 말 친구로 삼으려고 하시오?" "이같이 조그만 지방에는 소주(蘇州)의 소저가 없겠지? 그런데 대동부 (大同府)의 소저는 있소?" 주모는 얼굴에 부끄러운 빛을 띄우며 나직이 말했다. "한 사람이 있긴 있습니다만 그것도 가짜입니다. 그녀는 산서 분양(汾 陽)사람입니다. 그저 모를 만한 사람을 속이자는 것이지 전문가를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위소보는 웃었다. "이 집의 소저들을 모조리 불러오시오. 이 도련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세 냥의 은자를 내리도록 하겠소." 주모는 크게 기뻐서 그 말을 전했다. 삽시간에 재잘재잘대는 소리와 함 께 방안은 소저들로 꽉 찼다. 조그만 곳의 기녀원에는 물론 손이 거칠 고 발이 큰, 속된 지분 냄새를 풍기는 여자들밖에 없었다. 하나같이 손 을 잡고 허리를 껴안는 등 애써 비위를 맞추려고 했다. 위소보는 크게 흐뭇했다. 뭇기녀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짙은 눈썹에 광대뼈가 툭 튀어 나왔고, 어떤 사람은 시뻘건 입이 쩍벌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나찰보다 도 더 추악하다고 할 수 있었으나 그는 어려서부터 기녀원에서 크게 한 바탕 노름을 벌이겠다는 뜻을 세워 온 터였다. 그런데 오늘 이같이 평 생의 소원을 풀게 되었으니 의기양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 는 옆에있는 기녀를 끌어안고서 그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그런데 한 가닥 파와 마늘냄새인 듯한 고약하기 이를 데 없는 악취가 곧장 풍겨오 는 것이 아닌가? 하마터면 구역질을 할 뻔했다. 그때 별안간 문휘장이 들춰지면서 두 소녀가 다가왔다. 위소보는 입을 열었다. "좋아. 두 누이는 이리로 오시오. 그리고 먼저 입맞춤부터 합시 다......" 그런데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는 두 소녀의 얼굴 모습을 똑똑 히 보고는 그만 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는 크게 한소리 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끌어안고 있던 두 기녀를 밀어뜨려 땅바닥에 쓰러뜨렸다. 들어온 두 여인은 바로 밤낮으로 생각하던 그 녹의소녀와 그녀의 사저 가 아닌가? 그 남의 소녀는 냉소했다. "그대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우리들은 그대 뒤를 따라왔어요. 그 대가 이곳에 와서 무슨 나쁜 짓을 하려는가 두고 보려고 했던 거예요." 위소보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억지로 웃었다. "그래요. 그런데 소저 그대......그대 목의 상처는...... 목의 상처 는...... 다 나았소?" 녹의소녀는 흥 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의소녀는 노해 부르짖었다. "우리들은 매일같이 소림파 밖에서 기다리며 그대를 갈기갈기 찢어서 우리 사매의 원한을 갚고자 했어요. 흥! 어찌 되었든 하늘이 도와서 그 대와 같은 악승이 우리의 손에 걸려들게 되었지요." 위소보는 속으로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오늘 정말 나는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할 모양이구나) 그러나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기실......기실......나는 그렇게 죄를......죄를......소저에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그저......이렇게 한 번 잡았을 뿐이외다. 그것 도 상관없는 일이 아니겠소? 내가 보기에는......내가 보기에는......" 녹의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두 눈에 살기를 담았다. 남의소녀는 냉랭히 말했다. "조금 전 그대는 뭐라고 했지요? 우리보고 어떡하라고 했지요?" "아, 참 잘못 되었소. 이것, 또한 번거롭게 되었구려! 나는......나 는......그대들 두 분 역시...... 역시 이 기녀원의 기녀인 줄 알았 소." 녹의 소녀가 나직이 말했다. "사저, 저같이 못된 짓만 하는 땡초중에게 말을 해서 뭐해요? 한 번에 죽여 버리지요." 그리고 휙 하는 소리와 더불어 하얀 광채가 번쩍였다. 위소보는 크게 부르짖으며 목을 움츠렸다. 그 순간 머리 위의 모자가 어느덧 그녀의 유엽도에 베어지고 중대가리가 드러났다. 뭇기녀들은 크게 소란을 떨며 일제히 뾰족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사람 죽인다. 사람을 죽인다!" 위소보는 몸을 낮추고 한 기녀의 등뒤로 피하면서 부르짖었다. "이것 보시오! 이곳은 기녀원이란 말이오! 들어오는 사람은 바로 갈보 외다! 그대들 두 사람이 빨리 나가지 않고 보든 사람이 알게 된다면 그 야말로......매우 듣기......듣기 거북하게 될 것이오!" 두 소녀는 휙휙 몇 번 칼질을 했다. 그러나 방안에는 십여 명의 기녀들 이 가득차 있어서 마음대로 칼을 휘두를 수 없었다. 칼날은 하마터면 두 명의 기녀들에게 상처를 입힐 뻔 했다. 위소보는 크게 부르짖었다. "내가 이 기녀원에서 놀고 있는 것이 뭐가 나쁘다는 것이오? 나 는......나는......옷을 벗겠소. 그리고 바지도 벗겠소." 그리고 옷자락을 벗어서 내던졌다. 두소녀는 극도로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위소보가 정말 망나니처럼 바 지를 벗게 될까봐 두렵기도 했다. 녹의소녀는 그 말을 듣더니 몸을 돌 려 달려나가 버렸다. 남의소녀도 어리둥절해 하더니 역시 달려나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쿵쿵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들어오던 주모와 구노 가 그녀들과 부딪혀 좌우 양쪽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일시에 기녀원에는 고함소리가 진동하게 되었고 욕하는 소리가 땅을 뒤 흔들었다. 위소보는 잠시 동안 한칼에 목숨을 빼앗기는 것은 면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두 소녀가 반드시 문앞에서 지키고 있을 것 같았다. 자기가 이 기녀원에서 한 걸음만 나가면 즉시 그녀들에게 살해될까봐 그는 부르짖 었다. "모두들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오! 모든 사람들에게 각기 열냥의 은자를 드리리다! 모든 사람들에게 드릴 것이며 결코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겠 소." 뭇기녀들은 그 말을 듣자 즉시 조용해졌다. 위소보는 이십 냥의 은자를 꺼내 구노에게 내주며 분부했다. "빨리 가서 말을 한 필 준비하여 골목 어귀에 대령시켜 주시오." 그 구노는 은자를 받더니 달려갔다. 위소보는 한명의 기녀를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그대에게 이십냥의 은자를 줄테니 빨리 옷을 벗어 나와 바꿔 입게 해 주시오." 그 기녀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옷을 벗었다. 나머지 기녀들은 이곳저곳 에서 중구난방으로 다투어 물었다. 위소보는 대답했다. "그 두 명은 나의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인데 나의 머리를 박박 깍아 놓아 기녀원에 놀러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오. 나는 도망쳐 나왔던 것이 외다. 그러니까 그녀들은 나를 죽이러 이곳까지 쫓아왔구려." 주모와 기녀들은 그 말을 듣고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녀원에 놀 러오는 손님들의 처가 기녀원으로 달려와 소란을 일으키고 싸움을 벌이 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칼을 들고 죽이겠다는 사람은 보기 드문 편이었다. 더욱이 처첩이 합심협력해서 남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기녀원으로 놀러 가지 못하게 했다는 일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위소보는 총총히 기녀의 옷차림으로 바꿔 입고 한 조각 꽃무늬가 있는 베로 얼굴을 가렸다. 기녀들은 그가 화장을 하고 도망치려 한다는 사실 을 알고는 히히, 헤헤 하며 그를 도와 연지를 바르고 분을 발라 주었 다. 기녀원에서 노름판을 벌이고 있던 손님들도 그 소문을 듣고는 우르 르 몰려와 구경했다. 얼마 후 구노가 되돌아와 말이 준비되었다고 했 다. 그리고 사정을 들은 후 말했다. "도련님, 이번에야말로 조심하십시오. 그대의 큰 부인께선 뒷문을 지키 고 계시고 작은 부인께서는 앞문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칼을 들고 있어요." 위소보는 크게 거드름을 피우듯 소리쳤다. "이 악랄한 계집이 지아비를 이토록 엄히 다스리려고 하다니, 정말 해 괴한 일이야! 정말 해괴한 일이야!" 주모는 그로부터 삼십 냥의 행화전을 받게 되자 말했다. "두 암호랑이가 남의 밥그릇을 깨뜨리려고 하는군! 천하의 여인들이 그 대의 마누라 같다면 우리들은 서북바람을 마시지 않겠소? 이랑신(二郞 神)이시여 그 두 암호랑이가 자손을 낳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시사, 아 이구 도련님, 나는 도련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외다. 그대는 차라리 두 암호랑이를 내쫓아 버리고 매일같이 이곳에 와서 통쾌하게 놀도록 하십 시오." 위소보는 웃었다. "그 생각은 그럴싸하구려. 그런데 아주머니, 그대는 앞문쪽에 가서 그 고약한 마누라를 욕해 주도록 하시오. 하지만 그대는 문뒤에 숨어서 욕 을 해야 하오. 그녀가 성질이 나 칼부림을 해서 그대를 해칠지 모르니 까 말이외다. 그리고 누나와 누이들은 모두 뒷문으로 달려나갑시다. 그 러면 우리 두 악랄한 마누라는 나를 잡지 못할 것이오." 그는 즉시 은자를 꺼내 나누어 주었다. 기녀들은 하나같이 좋아라 했 다. 기녀들은 은자를 보자 하나같이 충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 위소보를 도와 주려고 했다. 이때 문앞에서 그 주모가 욕을 하고 있었다. "이 악랄한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야! 지아비를 똑똑히 지키고 싶다 면 마땅히 그의 말을 들어야 하고 그의 환심을 사야 하지, 그대들 자신 에게 그만한 재간이 없으니 그가 기녀원으로 즐거움을 찾아 놀러오는 것이 아니겠어? 칼을 들고 그를 죽이려고 한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느 냔 말이야. 그대들의 지아비를 말하면 손 씀씀이가 커서 천하 제일의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두 마리의 암호랑이는 조금도 그 분과 어울릴 만한 자격이 없다! 이 늙은 것이 그대들에게 요령을 가르쳐 주 겠는데 빨리 그에게 큰절을 하고 사과를 해라! 그리고 다시 이 늙은이 를 사부로 모시고 침대 위에서 펼치는 재간을 익히고 그를 잘 시중들도 록 해라. 그렇지 않으면 그는 너희들을 이 늙은이에게 팔아넘겨 이곳에 서 기녀가 되도록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거래를 하게 되었는데...... 아이구 아파 죽겠네......" 위소보는 그 소리를 듣게 되자 남의소녀가 참지 못하고 손을 써서 일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급히 말했다. "모두들 나갑시다." 20여명이나 되는 기녀들이 뒷문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위소보는 그 안에 섞여 있었다. 녹의소녀는 손에 유엽도를 들고서 문가를 지키고 있 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떼의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달려나오 자 아름다운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떻게 된 일인가 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뭇기녀들이 골목길을 벗어나자 위소보는 대뜸 몸을 날려 말 위로 올라 소림사로 질풍같이 달려갔다. 남의소녀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즉시 주모를 버리고 몸을 돌려 뒤쫓 아왔다. 뭇기녀들은 골목길을 가득 메우다시피 하고 손으로 잡아끌며 다투듯 말했다. "이 암호랑이야. 너의 지아비는 말을 타고 갔으니 쫓아가지 못할 것이 다. 히히! 헤헤!" 남의소녀는 분해 거의 기절할 정도였다. 칼을 들고 위협을 했지만 뭇기 녀들은 그녀가 정말로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천박하고 악 랄한 여인이라느니, 질투심이 많은 처라느니, 고약한 여편네니 하는 욕 으로 응수했다. 남의소녀는 다급해지자 소리 높이 외쳤다. "사매, 그 도적이 도망을 쳤다. 빨리 뒤쫓아라!" 그러나 말발굽 소리는 어느덧 멀어져 가고 있는데 어떻게 쫓아갈 수 있 겠는가? 위소보는 말을 달리며 옷을 하나하나 벗어던졌다. 그런데 승포를 쌌던 보따리를 촉망중에 그만 기녀원에 두고 나온 모양이었다. 그는 손에 침 을 뱉어 얼굴의 지분을 닦아내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금년의 운수가 불길하구나. 화상 노릇을 해야 하고 또한 갈보 노 릇까지 해야하다니. 아! 녹의 소녀가 정말 나의 마누라라면 내 손을 자 른다 해도 나는 기녀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단숨에 소림사로 달려왔다. 그리고 말을 몰라 뒷산 쪽으로 가서는 말에서 내려 살그머니 걸음을 죽이고 옆문을 이용해 절안으로 들어갔 다. 그리고 즉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달려서 자기의 선방으로 되 돌아갔다. 그는 얼굴에 남은 연지와 미끈미끈한 분가루들을 씻어내고 승포를 입은 연후에야 다시 마음을 놓고 생각했다.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 등 두 사람이 만약 절안으로 달려들어와 시 끄럽게 군다면 나는 죽자 하고 그런일이 없었다고 잡아 떼야겠지.) 점심 때가 다 되었을 무렵 위소보는 비스듬히 침대 위에 기댄채 누워 녹의소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생각했다. 그러자 다시 모험을 하고 싶어 졌다. (어떻게 절묘한 방법을 강구해서 내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더 보지?) 그런데 갑자기 정제가 선방으로 들어오더니 나직이 말했다. "사숙조, 이 며칠 동안 절안에서 나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일이 약간 잘못되었습니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그 연유를 물었다. 정제는 말했다. "주방의 화공(火工)이 조금 전 나에게 말했는데 그가 산가로 다가가서 나무를 할 때 두 명의 젊은 소저를 만났는데 손에 칼을 들고서 사숙조 에 관해서 묻더랍니다." "무엇을 물었다는가?" "그에게 사숙조를 아느냐 모르느냐, 그리고 사숙조가 평소 어느때 나가 며 즐거 가는곳은 어디냐고 물었답니다. 사숙조, 두 소저는 절대 호의 를 품고 있지 않으며 절 밖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숙조께 해를 입히고자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숙조께서 이 절 안에서 나가 시지만 않는다면 그녀들은 감히 안으로 뛰어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 소림사의 고승이 그녀들을 두려워하여 감히 절을 나가지 못한다 면 무슨 꼴이 되겠소?" "사손은 이미 방장께 알렸습니다. 그 어르신께서는 저에게 사숙조에게 알려 드리고 잠시 동안 그녀들에게 양보하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짐 작컨데 두 소저는 참을성이 없을 테니 며칠 기다렸다가 사숙조를 만나 뵙지 못하게 된다면 자연히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방 장께선 무림의 친구들은 우리들이 대인으로서 커다란 아량을 베풀었지 결코 당당한 소림사에서 문파가 없는 소녀를 두려워했다고는 하지 않으 리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문파가 없는 소저라구? 흥! 그러나 우리 문파가 있는 대화상들보다 훨 씬 무서운걸." "그 누가 아니랍니까?" 그는 팔이 탈골된 원한을 생각하게 되자 또다시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방장께선 명하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소녀들과 좋게 해결하자구요." (어디 징관 노화상에게 가보자. 그가 좋은 요령을 생각해 냈으면 좋겠 구나.) 그는 반야당에 이르렀다. 그러고보니 징관은 두 손으로 머리를 얼싸안 은 채 고개를 젖히고 천정의 대들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방안을 서성거리며 원을 그리고 있었고 입으로는 뭐라고 중얼중얼 거렸다. 위소보는 그의 생각을 중단시키고 싶지 않아 한참 동안 기다렸다. 그러 나 그는 몇 바퀴를 돌아도 여전히 멈출 기색이 없었다.그리하여 그는 기침을 몇 번 했다. 징관은 이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소리쳐 불렀다. "노사질(老師姪), 노사질!" 징관은 여전히 듣지를 못했다. 위소보는 앞으로 달려가 손을 뻗쳐 그의 어깨를 슬쩍 밀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노......" 그런데 손바닥이 그의 어깻죽지에 맞닿게 되었을 때 갑자기 몸이 흠칫 하더니 대뜸 뒤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그 만 벽에 부딪쳐 숨이 꽉 막혀 입을 쩍 벌리게 되었으나 밖으로 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징관은 깜짝 놀라 재빨리 땅에 엎드려 합장한 채 말했다. "사질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사숙의 위엄을 거슬렸으니 사숙께선 엄 한 벌을 내려주십시오." 위소보는 한참만에야 숨을 돌리고 웃었다. "일어나시오. 일어나시오. 예를 차릴 것은 없소이다. 내가 잘못했소." 징관은 여전히 사과를 했다. 위소보는 벽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다 시 징관의 부축을 받아 몸을 제대로 세운 후 물었다. "그대의 이 무공은 어떤 것이오? 어찌하여 이토록 대단히 무섭죠?"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무공이 만약 연마하기 어렵지 않다면 배우면 꽤 쓸모가 있을 것 같 구나.) 징관은 얼굴에 황송하다는 빛을 띄우며 말했다. "정말 미안합니다. 사숙께 말씀드리죠. 이것은 반야장의 호체신공(護體 神功)이라고 합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속성의 방법은 생각해 내었소?" 징관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질은 일지선과 역근경의 내공을 이용하지 않고 반야장으로 상대를 하더라도 두 분 여시주의 무공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었습 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반야장을 연마하는 데도 이삽십 년이 흐른다는 것이 아니겠 소?" 징관은 말을 더듬거렸다. "이삼십 년이라도 아마......아마......" 위소보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동시에 얼굴에 멸시의 빛을 띄우고 말했 다. "아마도 반드시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오?" 징관은 매우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 말했다. "사질이 좀더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만약에 염화금나수를 사용할 때 쓸모가 있을는지 없을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위소보는 이 노화상이 너무나 격식에 얽매여 있다고 생각했다. 일을 행 함에 있어 반드시 서열에 따르니 설사 염화금나수가 쓸모가 있다 하더 라도 10여 년이라는 세월에 걸쳐서야 배울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노화상의 내력은 심후해서 홍교주에 못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홍교주는 이미 새로운 초식을 창안해 냈었으며 임기응 변의 수법을 쓰더라도 얼마나 자연스럽던가? 이 노화상은 그 반대로 멍 청한 사람이니 반드시 밝은 길을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노사질, 내가 보기ㅣ에 두 소저의 나이가 젊은 것으로 보아 결코 오랜 세월을 두고 무공을 익힌 것 같지는 않구려." "그렇소이다. 바로 그 점이 이상한 점이외다." "상대방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배운 것이 아니라면 우리도 한 걸 음 한걸음 착실히 죽어라 하고 배울 것이 없지 않겠소? 그녀들에게 어 찌 그대와 같이 심오한 내공 수위가 있겠느냔 말이오? 내가 볼 때 그 두 계집애를 상대함에 있어서는 아예 내공을 연마할 필요조차 없소이 다." 징관은 깜짝 놀라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무공을 연마함에 있어서......기틀을 튼튼히 하지 않는다면......그것 은 방문좌도가 아닙니까?" "그녀들은 비단 방문좌도일 뿐 아니라, 어느 문파 어느 도에도 가입하 지 않았단 말이오. 문파도 없고 어느 도에도 가입하지 않은 무공을 상 대하려면 문파도 없고 도에도 가입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해야 될 것이 아니겠소." 징관은 얼굴 가득히 곤혹스런 빛을 띄우며 중얼거렸다. "문파도 없고 도에도 없는 것이라......그건......그건 사질로서는 이 해할 수 없군요."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가 모른다면 내가 그대에게 가르쳐 드리지." 징관은 공손히 말했다. "사숙께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가 한평생 보아온 회 자 항렬의 사백이나 사숙들은 하나같이 무공이 탁월한 덕망 높은 고승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속으로 이 나이어린 사 숙이 나이가 어려 내력 수위가 부족하다 할지라도 반드시 뛰어난 점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자기의 사숙이 되었겠느냔 말 이다. 이 며칠 동안 무공의 속성 방법을 애써 생각해 내려 했으나 시종 털끝 만큼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보기에는 10년 20년이 아니라 늙어 죽을 때 까지 그 어려운 문제를 풀 길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회자 항렬의 나이어린 승이 자기의 의문을 풀어 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생각했 다. 불현 듯 그는 놀람과 기쁨에 얽혀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이 가 슴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위소보는 입을 열었다. "그대는 그 두 소저가 사용하는 것이 곤륜파와 아미파 가운데 일초라고 했소? 소림파의 무공과 그 잡다한 문파들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강 하오?" "아무래도 우리 소림파가 좀더 강할 것입니다. 설사 강하지 못하다 해 도 적어도 그들보다 약하지는 않습니다. 위소보는 손뼉을 쳤다. "그렇다면 쉬운 노릇이오. 그녀들은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일초를 무턱 대고 휘둘러대는 문파의 초식을 쓴 것이니 우리 역시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소림파의 초식을 쓰면 그녀들을 이기게 될것이 아니겠소? 그 무공 이 반야장이라도 좋고 금강신장이라도 좋고 바라밀수라도 좋고 아미타 불 발길질이라도 좋소. 그저 내공을 연마하지 않는다면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징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미타불 발길질이라는 무공은 본파에는 없습니다. 혹시 다른 파에 있 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만약에 내공을 연마하지 않는다면 본파의 이 권법과 장법들은 아무런 위력이 없으며 다른 문파의 무공이 고강한 고 수를 만나게 되었을 때 일초에 얻어맞아 근골이 부러지게 될 것입니 다." 위소보는 소리내 껄껄 웃으며 물었다. "하하하! 그 두 소저는 내공이 심후한 고수요?" "아니지요." "그런데 노사질은 왜 걱정을 하는 것이오?" 그 말 한다미는 꿈속에 있는 사람을 놀라 깨어나게 하기에 족했다. 징 관은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원래 그랬었군! 원래 그랬었군! 사질은 줄곧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어리둥절해 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또다른 어려운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본파의 입문권은 십팔 로(十八路)이고 내외기계(內外器械)는 삼십육문(三十六門)이며 절기는 칠십 이 가지가 됩니다. 매 한가지의 무공 변화는 적어도 수십 가지가 되며 많은 것은 천 가지 이상도 됩니다. 이 같은 초식을 모조리 다 깨 우치기란 쉽지 않은 노릇입니다. 설사 내공을 익히지 않고 초식만 배운 다 해도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노화상은 정말 우둔하기 짝이 없구나.) 그러나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뭐, 다 배워야 한단 말이오? 그저 소녀들이 어떤 초식을 쓰느냐 하는 것만 알면 되오. 군사가 쳐 들어오면 장수가 나가서 막고 물이 몰려들 면 흙으로 막으라는 말이 있듯이 소녀가 이런 일초를 써서 공격해 오면 노화상이 이런 일초를 써서 깨뜨린다면 얼마든지 그녀들이 당황하여 도 망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외다." 징관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에 기쁜 빛을 띄웠다. 크게 깨달은 듯한 표정이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 남의소저는 노산파의 강하일하라는 일초를 썼으며 그대는 여섯 가 지의 피하는 방법이 있고 또 일곱 가지 반격할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 았소? 기실 그렇게 잡다하게 늘어놓을 필요가 어디있느냔 말이오. 그저 한 가지 방법으로 반격하여 그녀로 하여금 대패하도록 한다면 나머지 열 두 가지는 배워서 무엇하겠느냔 말이오. 이렇게 된다면 모든 일이 한결 수월해지는 것이 아니겠소?" 징관은 크게 기뻐서 말했다. "지극히 옳은 말씀입니다. 지극히 옳은 말씀입니다. 두 분 여시주가 사 숙의 팔을 탈골시켰고, 정제 사질 등 네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 사 용한 것은 분근착골수로서 네 파의 수법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 나 우리 소림파의 무공으로 해소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즉시 그는 먼저 두 소녀가 사용한 수법을 일일이 펼쳐 보였다. 그리고 다시 매 일초의 깨뜨리는 방법을 설명하고 위소보에게 시늉을 해보였 다. 징관의 상대방 술수를 깨뜨리는 방법은 때로 너무나 복잡하여 배우기가 힘들었고 때로는 내공을 운용하기도 했다. 위소보는 그에게 조금 더 간 단하고 알기 쉬운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소림파의 무공은 물론 방대하며 대단히 풍부한 편이었다. 징관으로 말하면 또한 기이할 정도 로 무학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위소보가 배우기 어렵다고 느끼고 고개를 흔들면 그는 즉시 다른 수를 쓰곤 했다. 그래 도 되지 않을 때는 다시 초식을 바꾸어 위소보가 아무 힘도 들이지 않 고 배울 때까지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징관은 어린 사숙이 반 시진도 되지 않아 그 같은 초식을 다 배우게 되 자 오랫 동안 애써 생각해 낸 어려운 문제가 일단 시원하게 풀려진다고 느끼며 기뻐서 귀밑을 긁거나 뺨을 어루만지곤 하면서 크게 흐뭇해 했 다. 그는 갑자기 또다른 사실을 상기한 듯 말했다. "애석하군 애석해!" 그리고 다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위험하군, 위험해!" 위소보는 재빨리 물었다. "애석한 것은 무엇이며 위험한 것은 무엇이오?" 징관은 말했다. "사숙 어르신과 정제 그들 네 사람이 나가 두 명의 여시주와 손을 쓰게 되고 그녀들의 손과 발을 문질러서 치유하기 어려워 이후부터 병신이 된다면 어찌 애석한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에 두 분의 여시 주가 손을 악랄하게 써서 놀랍게도 그대들 다섯 분을 죽인다면 그 아니 위험합니까?" 위소보는 의아하여 물었다. "어째서 우리 다섯 사람이 나가 손을 써야 한단 말이오?" "두 분 여시주가 배운 초식은 반드시 그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닐 것 입니다. 사질은 그녀들에게 또 어떤 초식이 있는지 모르니 자연 그 초 식을 해소시키는 방법을 모르지 않겠습니까? 만약 다섯 분이 나가서 얻 어맞으면서라도 그녀들의 초식을 시험해 보지 않는다면 어찌 알아낼 수 있단 말입니까?" 위소보는 소리내 껄걸 웃었다. "하하하! 원래 그랬었군. 그것도 방법이 있소. 그대가 가서 그녀들과 손을 써보기만 한다면 애석할 것도 위험할 것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겠 소?" 징관은 얼굴에 난처한 빛을 띄웠다. "출가인은 화를 낼 수 없으며 무단히 남과 손을 쓸 수 없답니다. 그것 은 크게 잘못된 일이죠." "됐소. 우리 두 사람이 들에 나가 산책을 해봅시다. 만약에 두분 여시 주가 이미 멀리 떠났다면 더할 나위 없이 잘된 일이외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이 나를 침범하지 않으니 내가 다른 사람을 침범하지 않는 격 이지요. 따라서 그녀들에게 달리 어떤 초식이 있는지 더 아랑곳할 필요 가 없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제는 한 번도 절문을 나 선 적이 없습니다. 대뜸 나가자마자 일을 일으킬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세운 뜻이 착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과거 녹야원( 野苑)에서 처음으로 법륜(法輪)을 넘겨 주실 때 전수하신 것은 사성제(四聖제)와 팔정도(八正道)인데 옳바른 뜻이란 바로 팔정도의 하 나로서......" 위소보는 그 말을 가로챘다. "우리는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그저 절 주위를 산책하기만 하면 되오. 그리고 그녀들을 만나지 않는다면 가장 좋은 일이죠." "바로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사숙의 마음씨가 인자하고 착하여 남과 다툼이 없으니 그것이 옳바른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질은 마땅히 모범으로 삼겠습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우스꽝스러움을 느끼며서 그의 손을 잡고 옆문으로 소 림사를 나섰다. 징관은 절 부근의 숲속을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푸 른 소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것을 보고 불현 듯 희한하다고 탄성을 지르 며 신이 나서 말했다. "이 많은 소나무들이 함께 자라 있으니 정말 기이한 구경거리군요. 우 리 반야당의 정원에는 다만 두 그루의......"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등뒤에서 간드러진 호통소리가 들 려왔다. "조그만 도적 같은 땡초가 여기 있다!" 하얀 광채가 번쩍이는 가운데 한 자루의 강철칼이 위소보에게 떨어졌 다. 징관은 말했다. "이것은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가운데 맹호하산(猛虎下山)이군!" 그러면서 손을 뻗쳐서 칼을 내려친 사람의 손목을 잡았다. 갑자기 그는 이 일초가 염화금나수 가운데 한 가지 수법이어서 너무나 어렵다고 느 끼고 말했다. "안돼, 안 되겠어." 그리고 급히 손을 움츠렸다. 칼을 쓴 사람은 바로 남의소녀였다. 그녀는 징관이 손을 움츠리는 것을 보고 유엽도를 훽 뒤집더니 그의 허리께를 비스듬히 쓸어왔다. 바로 이 때 녹의소녀가 소나무 밭에서 달려나오더니 칼을 휘둘러 위소보를 베려 고 들었다. 위소보는 황망히 징관의 등뒤로 피했다. 이렇게 되자 녹의 소녀의 칼은 징관의 왼쪽 어깨를 향해 떨어지게 되었다. 징관은 말했 다. "이것은 태극도(太極刀)의 초식이군! 간단한 방법으로 헤소시키기는 휩 지 않을 것 같은데......"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두 여인의 쌍칼이 일제히 휘둘러지면서 더 욱더 급히 떨어지게 되었다. 징관은 부르짖었다. "사숙, 안 됩니다. 안돼! 두 분 여시주의 손 씀씀이가 너무 빨라 나 로...... 나로서는 자세히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사숙은...... 사숙은 빨리 두 분 소저에게 성급히 굴지 말고 천천히 베도록 하라고 하십시 오." 남의소녀는 연신 매서운 초식을 펼쳤으나 시종 노화상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하마터면 몇 번이나 칼을 빼앗길 뻔하게 되었다. 거기 다 그가 크고 작은 소리로 마구 부르짖자 그가 일부러 자기네들을 비웃 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대노하여 더욱더 칼을 급하게 휘둘렀다. 위소보는 웃었다. "이것 봐요. 두 분 소저, 나의 사질은 그대들에게 너무 성급히 굴지 말 고 천천히 초식을 펼치라고 하는구료." 징관은 말했다. "바로 그렇소이다. 나의 머리가 민활하게 돌아가지 못해 일시 삼각에 이르도록 깨뜨리는 법을 생각해 낼 수가 없소이다." 녹의소녀는 지극히 위소보를 미워했다. 그래서 몇 번 칼로 쳤으나 징관 이 막자 다시 칼을 휘둘러 위소보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징관은 손을 뻗쳐 막으며 말했다. "이 분 여시주, 우리 사숙은 그대의 도법을 깨뜨리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 지금은 그를 내려찍을 필요가 없소이다. 나중에 그가 다 배워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때 다시 베려고 해도 늦지 않을 것이 오. 아, 나의 방법은 실로 안되겠구나! 사숙, 지금은 서둘러 기억할 필 요가 없소이다. 지금의 이 방법들은 모두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나중 에 우리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그는 입을 멈추지 않으며 두 손으로 갑자기 잡았다가 낚아챘다가 또 다 시 찔렀다가는 때리곤 했다. 그리하여 두 소녀를 바짝 붙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녹의소녀가 위소보를 죽이고자 했으나 뜻대로 될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이제 위험한 일이 사라진 것을 알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나무 에 등을 기대며 자못 흐뭇해 했다. 그리고 한 쌍의 눈동자로 녹의소녀 의 얼굴, 몸, 손, 발 등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 하나하나를 잔뜩 배불리 구경하노라니 그 즐거움은 무궁무진했다. 녹의여인은 위소보가 보이지 않자 이미 도망친 줄 알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는 한 쌍의 눈동자로 자기를 핥듯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 가?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다시 징관을 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서 칼을 든 채 위소보 쪽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는 이 일지를 일부러 매 우 느리게 찔렀다. 그녀는 이 일지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을 나누어서 사람을 죽이고자 한눈을 팔았기 때문에 즉시 옆구리 아래쪽에 손가락을 찔리게 되었다. 한 소리 신음소리와 더불어 그녀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징관은 말했다. "아이쿠! 미안하게 되었소. 노승의 이 소지천남(笑指天南)이라는 일지 의 지력은 그렇게 무섭지 않소. 여시주가 오호단문도 가운데 악호난로 (惡虎 路)라는 일초를 펼쳐 비스듬히 칼을 들고 막기만 하면 막을 수 있소. 이 일초를 여시주가 펼치는 것은 보지 못했으나 남의를 입은 여 시주께서 펼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노승은 여시주도 반드시 펼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소. 그런데 누가 알았겠소......아, 실례했소. 실례했 소." 남의소녀는 극도로 분에 차서 강철칼을 마구 이리 치고 저리 치며 내려 찍으려 했다. 그 위세는 날카롭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무공 은 징관과 너무나 떨어져 있어 징관의 소맷자락조차도 건드릴 수 없었 다. 징관은 일부러 잔소리를 늘어놓았으나 속으로는 그녀의 초식을 기 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장에는 간단하게 깨뜨리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녀의 도법 초식을 기억했다가 차후에 일초 일초 자세 히 연구해 보리라 작정하고 있었다. 위소보는 녹의소녀 앞으로 다가가서 찬사의 말을 했다. "이처럼 아름다운 미녀는 아마 세상에서 그대 혼자뿐일 것이외다. 쯧쯧 쯧! 정말 나는 그대를 보고 혼이 반쯤 하늘 밖으로 달아났구려." 그리고 손을 뻗쳐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한 번 꼬집었다. 그 소녀는 놀 람과 분노에 휩싸여 기절을 하고 말았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다시는 경박한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온몸을 똑바로 세우고 부르짖었다. "징관 사질, 그대는 그 여시주의 혈도를 짚어서 쓰러뜨리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각종 초식을 천천히 이야기하도록하여 서로 감정 이 상하지 않도록 하시오." 징관은 의아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적절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같이 손발을 쓴다는 것은 너무 의롭지 못한 일이외다. 그러니 아무쪼록 그녀에게 말을 시키도록 하는 것이 비교적 점잖은 것이오." 징관은 기뻐서 말했다. "사숙의 말씀이 옳습니다. 손짓 발짓을 하게 된다는 것은 올바른 도리 가 아니지요." 남의소녀는 이 노화상이 전력을 기울여 펼치게 된다면 자기가 그의 일 초반식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사매가 사 로잡혀 있는 몸이니 자기마저 상대방의 손에 잡히게 된다면 그 누구도 전갈을 하고 구원을 청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즉시 뒤로 물러서며 부르짖었다. "그대들이 만약 우리 사매의 털끝 하나라도 해친다면 소림사를 잿더미 로 만들 테니 그리 알아요!" 징관은 어리둥절해졌다. "우리가 어찌 여시주를 해친단 말이오? 하지만 그녀 스스로 털끝 하나 를 떨어뜨린다면 설마하니 그대는 소림사에다 불을 지르겠다는 것이 오?" 남의소녀는 몇 걸음 달려가더니 고개를 돌리며 욕을 했다. "늙은 땡초중이 입술만 살아 있군! 작은 땡초중은......" 그녀는 본래 음탕하고 호색한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그 같은 말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어서 발로 땅을 차며 숲속으로 달려갔다. 위소보는 녹의소녀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파란잔디 위 의 백옥같이 고운 얼굴과 한 쌍의 백옥관음(白玉觀音)이 잠자고 있는 모습을 새겨놓은 것 같아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징관은 입을 열었다. "여시주, 그대의 사저는 돌아갔소. 그대도 빨리 가시오. 그러나 머리카 락 하나도 떨어뜨리지 마시오. 그대 사저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떨어뜨 리게 된다면 우리 절을 불태우겠다고 했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지. 이 작은 미녀가 나의 손에 들어온 이상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놓칠 수는 없다.) 그는 합장하며 말했다. "부처님께서 살피시옵소서. 징관 사질, 우리 부처님은 그대로 하여금 우리 소림파의 무학을 크게 떨치고 본파의 천여 년이나 되는 위명을 지 키도록 하려고 하는 바이니 그대야말로 본파의 제일 큰 공신이라 할 수 있소." 징관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사숙은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지요?" "우리들은 그렇지 않아도 두 여시주가 더욱더 많은 어떤 초식을 펼칠까 봐 번뇌하지 않았소? 그런데 다행히도 부처님이 불쌍히 여기시어 이 여 시주를 보내 우리 절로 찾아오게 해서는 그녀로 하여금 일일이 초식을 펼쳐 보이도록 해준 것이 아니겠소?" 그리고 그 소녀를 안아들고 말했다. "갑시다!" 징관은 아연해졌다. 그는 일이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입을 열었다. "사숙, 우리가 이 여시주를 모시고 절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규율에 합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규율에 합당하지 않다니 무슨 말이오? 그녀는 소림사로 들어간 적이 없소? 방장과 계율원의 수좌도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 물론 규율에 합당한 것이 아니겠소?" 그가 한 번 질문할 때마다 징관은 고개를 한 번씩 끄덕였다. 그의 한마 디 한마디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그의 소사숙 은 승포를 벗어서 그 소녀의 몸 위에 덮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안은채 옆문으로 해서 절안으로 들어가지 않는가? 징관은 하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얼굴에는 의혹의 빛을 가득 띄우고 있었다. 머리속은 그 저 어지럽기만 했다. 위소보는 가슴이 쿵쿵 크게 뛰었다. 이 소녀의 머리끝에서부터 발 끝에 이르기까지 승포자락에 뒤덮여 있어서 전혀 밖으로 드러 내놓은 부분이 없었다. 그러나 만약에 절의 승려들이 보게 된다면 의심을 하게 될 것 은 뻔한 이치가 아닌가? 그는 부드러운 여체를 안아들고 있었으나 마음 속은 여간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반야당은 절 뒤쪽의 외지고 조용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는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들어가 어떤 승 려와도 부딪히지 않았다. 반야당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반야당에서 일을 보던 집사승들은 사숙조가 왕림하고 또 수좌가 그 뒤를 따르는 것 을 보고 공손히 한켠으로 비켜섰다. 징관의 선방으로 들어가서도 그 소녀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위소보는 그녀를 침대 위에 눕혔다. 손에는 식은땀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그는 두 손바닥을 허벅지에 갖다대고 문지르며 한숨을 크 게 내쉰 후 웃었다. "이제 됐다!" 징관은 물었다. "우리 둘이 이 분...... 여시주를 이곳에 모시자는 것입니까?" "그렇소. 그녀는 그렇다고 뭐 처음으로 본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잖소? 저번에 그녀는 목에 상처를 입어 바로 동원선방에 머물지 않았소?" 징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하지만...... 하지만 그때는 그녀의 상처를 치료하고...... 목숨과 관계있는 일이라서 부득이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했어야 했지 요." "그거야 매우 수월한 노릇이외다." 그리고 그는 다리 쪽에 감아놨던 비수를 뽑아들고 말을 계속했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