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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대표팀을 소재로 한 명품 다큐를 완성시켰던 이태웅 PD ⓒ이상헌 |
지난 8월 열렸던 런던 올림픽을 즈음해 방영된 KBS의 다큐멘터리 ‘공간과 압박’과 ‘선택’은 오랜만에 보는 축구를 소재로 한 ‘멋진 작품’이었다. ‘올림픽 메달 획득’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홍명보 감독과 올림픽대표팀을 심도 있게 촬영한 이 다큐는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비바! K리그’ 등을 통해 이미 축구통으로 알려진 이태웅 PD는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던 올림픽대표팀 라커룸 안, 숙소 안의 세계는 물론 코칭스태프 회의, 팀 미팅에까지 함께 하면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완성했다. 그리고 올림픽대표팀이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까지 획득하면서 이들의 역사를 세밀하게 기록한 이 다큐들은 더욱 가치가 높아졌다. 두 편의 다큐를 제작한 KBS의 이태웅 PD를 만나 올림픽대표팀과 함께 했던 시간들, 그리고 촬영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 ‘공간과 압박’, ‘선택’ 두 편의 다큐를 모두 재미있게 봤다. 어떻게 해서 올림픽대표팀의 다큐를 기획하게 됐는지. 홍명보 감독님 쪽에서 먼저 제의가 왔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부터 카메라맨을 고용해서 촬영하고 계셨더라. 올림픽에 갈 때까지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말씀이셨다. 모든 것을 오픈할 테니까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을 찍어줄 수 있겠냐고 하셨고, 제작 입장에서는 홍명보에 올림픽이니까 당연히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찍은 영상을 보니까 3-4위전 전반에 0-2로 지고 있었고,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까 하프타임에 카메라가 라커룸에 못 들어갔더라. 그래서 홍 감독님께 다큐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상황에서의 라커룸까지 오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전달했고, 홍 감독님도 동의하셔서 만들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창원에서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을 할 때 첫 촬영을 시작했고, 마지막 촬영은 올림픽대표팀이 런던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 처음에는 카메라에 대해 코칭스태프나 선수들 모두 불편해하고 거북하게 느꼈을 것 같은데. 일단 감독님이 아무 말씀 없으시니까 선수들은 그런가 보다 생각하는 눈치였는데, 코치님들이 처음에는 불편해하셨다. 처음에 팀 미팅을 찍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면 홍 감독님만 말씀하시고, 코치님들은 한 마디도 안 하시더라. 우리 때문이라는 것을 찍는 입장에서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무조건 버티고 있어야 하니까 기다렸다. 한 30분 정도 지나고 나서 김태영 코치님께서 잠시만 나가있어 달라고 하시길래 어쩔 수 없이 나갔던 기억이 난다.(웃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낯설지 않게 되고, 우리도 스태프처럼 짐도 나르고, 훈련 세팅할 때도 돕고, 훈련 끝난 후에도 마무리 정리를 함께 하면서 동화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팀원들과 친해지니까 팀 미팅을 할 때도 점점 의식을 하지 않더니 마지막 경기를 할 때쯤에는 모두들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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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압박의 한 장면 ⓒKBS |
- 예전 인천 유나이티드를 소재로 한 다큐 ‘비상’을 연출했던 임유철 감독도 선수들이 자신을 같은 팀 멤버로 생각할 정도로 교류를 나눈 이후에야 좋은 영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선수들은 비교적 빨리 카메라를 편하게 여겼다. 코칭스태프의 경우는 회의를 하다보면 민감한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에 처음에 불편한 반응이었지만, 선수들은 자기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그냥 보여주면 되니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코칭스태프를 보면 홍 감독님과 미팅을 하기 전에 코치님들끼리 먼저 입을 맞춰서 이런 이야기를 하자고 의논을 했다. 그 후에 감독님과의 미팅 때 그 주제를 다시 꺼내는 형태였다. 처음에는 몰랐다.(웃음) 우리는 스태프끼리 활발한 의견 교류를 하는 것을 찍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코치님들끼리 이야기할 때가 의견 교류가 훨씬 활발했다. 이런 부분은 나중에 오만 원정을 갔을 때에야 캐치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그런 형태로 회의하는지도 몰랐고, 알았더라도 들어가기가 껄끄러웠을 것이다. 올해 2월 오만 원정을 갔을 때는 카메라가 있는데도 자연스럽게 세 코치님들이 의견 교환을 하더라. 개인적으로는 세 분이 서로 의견교환을 치열하게 하면서 소통을 하는 그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 올림픽대표팀 훈련 기간에는 항상 같이 있었던 것인가? 기본적으로 올림픽대표팀이 소집하면 우리도 같이 합류하는 형태였다. 올림픽대표팀 일정의 거의 90% 이상은 같이 있었던 것 같다. 남해에서 2주 동안 전지훈련을 할 때만 며칠 촬영하고 올라왔고, 그 외에는 거의 같이 있었다. - 다큐 중간 중간에 홍명보 감독의 과거 영상들이 나온다. 어떤 의도였는가? 홍 감독의 반응도 궁금하다.(웃음) 홍 감독님도 예전에 올림픽에 나가려다 못 나간 역사도 있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현역 시절 겪었던 상황이 비슷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부분을 중간 중간 비유적으로 포인트를 넣어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송 나가기 전에 미리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들에게 보여드렸는데, 2002 월드컵 터키와의 3-4위전에서 실수해 골을 허용하는 장면이나 조광래 감독님과의 악수 장면 등을 불편해하실 줄 알았는데, 쿨하게 영상이 너무 잘 나왔다고 해주셨다.(웃음) 사실 터키전 실수하는 장면은 의도적으로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홍 감독님 개인적으로는 스타일 구기는 장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촬영하면서 가장 큰 고민이 홍명보라는 사람이 너무 멋있게 나온다는 점이었다. 선수들 인터뷰를 해도 우리 감독님이 최고라는 반응만 나오고, 옆에 있었던 우리 입장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 다큐는 홍명보를 찬양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냉정한 시각으로 보고 싶었는데, 냉정하게 봐도 멋있게 나오더라.(웃음) 그래서 받아들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싶어서 중화시키기 위해 터키전 실수 장면 등도 넣었고, 호텔방을 잘못 찾아가는 모습을 첫 장면으로 배치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멋있게 나왔다.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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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
- 바로 옆에서 지켜본 올림픽대표팀과 홍명보 감독. 어떤 팀이었고, 어떤 감독이었는가? 사실 홍명보 감독님은 워낙 유명한 분이셨고, 어떤 사람일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함께 하면서 ‘이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구나, 그렇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런 프로그램도 먼저 제안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수들 각자 한 명씩 인터뷰를 하는데, 모두들 이 팀에 대해 엄청난 애착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팀에 오는 게 너무 즐겁고, 이 팀을 잘 키워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거의 예수님과 열 두 제자 같은 분위기랄까.(웃음) -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을 강하게 질책하는 장면은 꽤나 놀라웠다. “야, 이 새끼들아”라고 하실 때는 나도 굉장히 놀랐다. 원래 홍 감독님은 선수들을 아주 신사적으로 대하고 화도 잘 내지 않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연습게임을 위에 올라가서 보고 있다가 내려와서 이야기를 하시는 도중에 갑자기 터지셨다. 선수들도 그렇고, 우리도 감독님이 갑작스럽게 화를 내신 것이 오히려 가슴에 확 꽂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날 밤에 감독님과 따로 인터뷰하기로 약속이 잡혀있던 상태여서 그 때 물어봤다. 낮에 화를 내신 것이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였냐고... 그랬더니 감독님은 “전혀 아니다. 선수들에게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행동하거나 뭘 끌어내기 위해 내 감정을 가식적으로 꾸민 적은 한 번도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인상적이었다. 선수들과 심리 플레이를 하려는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홍 감독님이 아직 완성된 감독이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감독이라는 점이었다. 오만과의 중요한 경기를 준비하면서 이전과 달리 화도 내고, 스타팅 라인업도 원래는 끝까지 확정하지 않는데 일찍 결정했다. 자기 원칙이 분명히 있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변화를 주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유연성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는데, 어쨌든 이런 식으로 지도자로서 경험을 쌓고 성장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번 올림픽대표팀이 동메달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 같다. 대회 전에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예상했는지. 조별예선 통과 정도는 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예상 정도였다. 출국 전에 뉴질랜드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아주 시원한 경기는 아니어서 과연 어느 정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영국 현지에서 세네갈전을 보면서 잘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 2편에 걸쳐 방송한 것은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인가? 아니면 1편의 반응이 좋아서 추가로 편성된 것인가? 처음에 1편은 영국에 가기 전에 찍고, 2편은 현지에서 같은 방식으로 찍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올림픽은 IOC가 주관하다보니 출입의 문제가 걸렸다. ID 카드가 있어야 하는데, 스태프도 일부는 못 들어가는 상황에서 불가능하더라. 결국 1편만 찍고 끝나는 것이었는데, KBS의 올림픽 사전 특집 중에 하나로 2편이 나가게 됐다. 원래는 영국으로 가서 계속 찍는 것이 홍 감독님이나 내 생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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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
- ‘공간과 압박’이란 제목도 멋있었다. 어떻게 지었는가? 고민을 많이 했다. 팀이라는 것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 않나. 그런 상반된 부분이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빛과 그림자’가 어떨까라는 생각도 했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쓴 ‘축구, 그 빛과 그림자’라는 책도 있었고... 그러다가 이왕이면 축구용어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홍 감독님이 ‘압박’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강조하셨다. 그리고 압박의 반대 개념으로 압박을 하면 상대의 공간이 줄어드는 것이니까 ‘공간과 압박’이라는 제목은 어떨까 싶었다. - 홍 감독의 원칙 중 하나가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고, 멤버들의 팀워크를 우선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나중에 박주영이나 기성용이 합류했을 때는 기존 멤버와의 관계에 있어 미묘한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나도 2편인 ‘선택’을 찍을 때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관찰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주영의 경우 이미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기존 선수들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오히려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면 기성용이 아닐까 해서 유심히 봤다. 그런데 올림픽이라는 목표가 워낙 큰 당면과제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없었다. 또 스태프와 이야기해보니 기성용이 이렇게 적극적인 자세로 생활하고 훈련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 기성용 스스로 선수들과 융화되기 위해 굉장히 적극적으로 노력하다보니까 기존 선수들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앞서 말했지만 올림픽 메달이라는 큰 목표를 두고 모두 동기부여가 철저히 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불만 요소가 끼어들 여유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 대부분의 선수들과 편하게 촬영했고, 중간 중간 인터뷰하는 영상도 나왔다. 그러나 박주영과는 결국 성사되지 못했는데.(웃음) 우리도 박주영과 인터뷰를 할 수 있느냐가 제일 고민이었다. 선수 한 명 한 명 불러서 모두 인터뷰를 했고, 박주영 한 명만 남은 상황이었다. 방에 찾아가서 “주영아, 인터뷰 조금만 하자”라고 했는데, “죄송해요. 저는 정말 인터뷰는 못할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해요”라면서 굉장히 공손하게 거절하더라. 예의 바르게 거절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원래 박주영과는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한 번에 포기했다.(웃음) - 축구팬들, 그리고 일반인들도 이 다큐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이번 다큐가 이렇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일단 워낙 좋은 재료였다.(웃음) 홍명보라는 인물이 있고, 선수들 캐릭터도 각각 있었고,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부분까지 모두 오픈해서 찍을 수 있었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좋은 재료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에서도 나레이션을 하지 말고, 자체의 느낌을 많이 살리자는 쪽으로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가 봤던 것을 그대로 전달만 해줘도, 그 자체의 느낌이 워낙 좋기 때문에 잘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오히려 나레이션이 들어가면 생생한 느낌이 많이 줄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옳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 좋은 재료가 있었다고 하지만, 축구와 스포츠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다큐라는 생각도 들었다. 팀의 생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대처 요령이나 어느 선까지 촬영이 가능한 지,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찍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스포츠 전문이 아닌 PD들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되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 티저 영상이라고 하나? 본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전에 나왔던 영상들도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장면들을 찍을 때부터 기억에 남으니까 저건 써먹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방송에서 결국 못 써먹은 장면들이 있었다. 아무리 구성해 봐도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경우였다. 특히 이회택 부회장님이 이야기하는 영상이 대표적이다.(웃음) 그런 장면들을 예고편으로 쓰자고 생각했다. 그런 장면들을 보여주면 우리가 얼마나 팀에 밀착해서 취재했고, 얼마나 다양한 것을 찍었는지 궁금증을 유발시킬 수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촬영하면서 이회택 부회장님의 매력에 아주 푹 빠졌다.(웃음) 본 방송에는 홍철편과 홍정호편만 나간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 이번 다큐를 완성해 성공적으로 방영했고, 올림픽도 동메달을 획득하고 끝났다. 이 시점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 나와 고요한 촬영 감독이 항상 2인조로 다녔는데,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번 경험은 정말 특수하다. 올림픽대표팀과 함께 다니면서 생활하고 촬영한다는 것은 정말 정말 특이한 경험이었고,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보통 올림픽대표팀은 하루에 한 번 훈련했다. 밖에서 보기에는 나머지 시간에 뭐하나 싶을텐데, 같이 생활해보니 2~3시간 간격으로 타이트하게 선수들을 관리하고 컨트롤하고 있었다. 이렇듯 밖에서는 알 수 없었던 생활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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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웅 PD가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던 홍명보 감독의 팀 미팅 모습 ⓒKBS |
- 이번 다큐를 찍으면서 모든 장면을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아마 다들 비슷할 것 같은데, 홍명보 감독님이 선수들 앞에서 칼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나는 내 마음 속에 항상 칼을 갖고 다닌다. 그 칼은 다른 사람들을 찌르기 위해 갖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다칠 것 같으면 그 칼로 내가 먼저 죽을 거다.” 홍 감독님이 이렇게 말하는데, 우리도 옆에서 촬영하다가 소름이 확 돋았다. 보통 그렇게 멋진 이야기를 하면 카메라가 줌인이 들어가서 그 사람을 가까이서 비춰줘야 하는데, 고요한 촬영감독도 소름이 돋아서 멍해진 상태에서 줌인이 들어갈 타이밍에 못 들어갔다고 하더라. 방송 보면 알겠지만, 결국 같은 구도로 계속 찍고 있다.(웃음) - 홍명보 감독은 이렇게 멋진 말을 선수들에게 자주 하는 것 같다. 미리 생각을 하고 오시는 건가?(웃음) 나도 물어봤다. 감독님이 말하길 자기가 따로 준비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예전 가시와 시절에 주장을 했는데, 그 때 감독이 팀 미팅에 앞서 5분간 주장이 이야기를 하도록 시켰다고 한다. 그 때 선수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기술이나 레퍼토리가 많이 늘었다고 하더라.(웃음) - 오만전에서 홍정호의 롱킥을 통해서 김보경이 골 넣는 장면이 홍 감독의 지시대로 그대로 이뤄졌다. 현장에서 본 느낌은 어땠나? 사실 그 전략은 그 경기만 특이하게 쓴 것은 아니다. 홍정호의 킥이 워낙 정확하고, 김현성의 머리가 좋으니까 자주 썼던 패턴인데, 그날따라 킥오프하자마자 그걸 하자고 지시한 것이 특이했는데 딱 맞아 떨어졌다. 사실 현장에서는 워낙 시끄러웠기 때문에 나는 그 지시를 못 들었다. 그런데 경기 끝나고 홍 감독님이 흥분해서 우리가 이야기했던 것이 다 맞아 떨어졌다고 굉장히 기분 좋게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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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전에서 홍명보 감독이 전략을 지시하는 모습 ⓒKBS |
- 이제 이태웅 PD의 이야기도 해보자. 처음 KBS에 입사할 때부터 스포츠 PD가 목표였는지. 그렇다. 입사 자체를 스포츠 PD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특히 축구에 열광했다. 사실 야구는 일반인들보다도 모르는 편이었다. 마침 입사할 때가 2003년이었는데, 한일 월드컵이 2002년에 있다 보니 스포츠 PD 면접에서 월드컵과 축구 관련한 것만 물어보더라. 평소에 워낙 축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거침없이 답할 수 있었다.(웃음)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고 할까. - 축구 관련한 프로그램은 언제부터 맡았나? 입사 3년차인 2005년에 선배인 백정현 PD와 함께 영국 BBC의 ‘매치 오브 더 데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K리그에도 해보자는 생각에 ‘비바! K리그’를 시작했다. 2~3년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매우 즐거웠다. 그러나 로테이션상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한 프로그램을 3년 정도 하면 할 이야기도 없어지고 기운도 많이 빠지기도 한다. 이후에도 ‘비바! K리그’는 계속 자기 색깔들을 살려서 잘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 확실히 ‘비바! K리그’는 축구팬들에게는 상징적인 존재인 것 같다. 사실 시청률이라는 것이 모든 방송의 판단 기준이 된다. 공중파에서 K리그의 시청률이 잘 나오기는 쉽지 않다. 이건 축구 뿐 아니라 야구도 마찬가지다. 결국 공중파에서 경기 중계 잡기가 쉽지 않다면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히려 쉽게 보기에는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이 더 재미있고, 이것은 K리그가 자리 잡는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7~8년의 세월이 흘러 확실히 자리를 잡고 있어 좋긴 한데, 그렇다고 K리그의 사정이 그 당시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도 없다. 왜 그럴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고, 너무 작은 파이를 너무 많은 종목들이 나눠 갖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또한 축구에 할당된 파이 중에서 대표팀의 비중이 너무 큰 것 같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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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인 이태웅 PD ⓒ이상헌 |
- 방송국 PD 입장에서 축구를 잘 포장해 팬들에게 멋진 모습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카메라 앵글을 멋있게 잡고, 이런 것보다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선수들이나 감독, 팀 간의 이야기들, 그리고 서로에 대한 복수나 원한 같은 것... 프리미어리그에는 이런 스토리가 많다. 야구에서도 많이 생산된다. 축구, 그 중에서도 K리그에서는 이런 부분이 조금 부족하다. 그나마 대표팀은 비중이 크고 사람들이 관심이 많으니까 여러 스토리가 나올 수 있는데, 경기가 매주 열리지는 않는다. K리그는 그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고 있기 때문에 좋은 스토리가 있더라도 반향이 덜한 면이 있는 것 같다. - 예전 씨름을 소재로 한 다큐로 상도 받는 등 다양한 스포츠를 취재하고 있다. 종목별로 조금씩 특성이 다를 것 같은데? 종목별 차이보다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 의도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다. 씨름 관련한 다큐는 옛날에 있던 이야기와 당시 인물들의 인터뷰와 영상 자료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반면 이번 축구 다큐 두 편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함께 생활하면서 취재한 프로그램이다. 어떤 식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차이는 있지만, 종목으로 인한 차이는 없다. - 앞으로 축구를 소재로 만들어보고 싶은 프로그램 형태가 있다면. 앞서 언급한 갈레아노가 ‘축구 전술의 발달은 공격에서 수비로 옮겨가는 아주 슬픈 과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축구 전술에도 관심이 많아서 책을 사서 읽어보기도 했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녹여내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네덜란드에 토탈사커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면적이 너무 좁아서 공간 활용이 굉장히 중요했고, 그런 사람들의 심리 상태가 축구에도 투영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렇듯 국민성이 그 나라 축구에 어떻게 반영되는가 등의 주제로 다큐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했었다. 물론 영상으로 담아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 축구인문학 다큐 시리즈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기대해보겠다.(웃음) 궁극적으로는 어떤 스포츠 PD가 되고 싶은지. 스포츠 다큐로 온 지가 3년차인데, 굉장히 재미있는 장르이고 할 이야기도 무궁무진하다. 여건만 허락된다면 이 장르를 계속 파고 싶다. 스포츠 자체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스포츠를 통해서 사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 - 긴 인터뷰 감사하다. 앞으로도 좋은 스포츠 다큐, 특히 축구 다큐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겠다. 인터뷰=이상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