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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24.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만남의 기쁨, 주를 찬양하라 유백선 목사
누가복음 19:37-42
예수비전교회 주소 // 서울특별시 노원구 한글비석로 24라길 76-5 (상계5동 136-55)
상담 :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대표전화 02) 6221-6468, Mobile. 010-8346-6468
예수비전교회 카페에는 삶의 행복과 깊은 감동을 주는 메시지가 더 많이 있습니다. 카페에 들어오셔서 함께 나누시고 예수님의 비전으로 복을 받고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시기 소망합니다.
http://cafe.daum.net/jesusvision91, http://cafe.daum.net/boram9191
성공철학과 성공원리로 사람들에게 변화를 이끌어준 짐 론(Jim Rohn)이 <내 영혼을 담은 인생의 사계절>이란 책에서 말했습니다. “지금 나는 어느 계절에 와 있는가? 봄은 기회, 우정, 사랑, 생각을 활용하는 시기이다. 봄은 변화를 줄 수 있는 기회의 시기이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행동의 씨앗을 뿌려야 가을에 수확물을 보상받을 수 있다. 봄은 약속한다. ”뿌린 대로 거둔다.“ (기도의 씨앗,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 열매로 응답합니다.) 뿌린 결과는 반복해서 돌아온다. 여름은 보호하고 성장하는 시기이다. 여름에 바쁘게 돌아다니는 벌레와 해로운 잡초를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역경을 예상하고 미소를 짓고, 감사하라. 인간의 영혼이 역경을 통해서 성장한다. 가을은 봄의 노동에 따른 열매를 수확하는 시기이다. 가을이 주는 보상에 기뻐한다. (수확의 시기를 놓치지 말라.) 그러나 봄에 씨를 뿌리지 않는 사람은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 여름에 경계하지 않는 사람은 가을에 혼란과 근심,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가을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기이다. 현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결과를 향상할 수 있다. 겨울은 과거의 후회가 아니라 감사를 모두에게 나눠주는 시기이다. 겨울은 추위, 칼바람, 얼음, 눈이 있다. 절망, 고독, 실망, 실패라는 겨울이 온다. 겨울이 왔을 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준비를 했거나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하는 것이다. 겨울은 검토와 숙고, 성찰의 시기이다. 매일 성취하는 것과 역경, 불확실한 미래에 감사하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은 정말로 중요한 날입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하느냐?’ 오늘 이후로 남기게 될 흔적들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생각하고, 행동하고, 노력해야 내일에 수확물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새로운 생각의 씨앗을 마음에 뿌려야 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현실에 결과물을 보내줍니다. 오늘 꿈을 꾸어야 내일이 달라집니다. 매일의 봄에 기적이 숨겨져 있습니다. 돌, 잡초, 다른 방해물이 있어도 씨앗을 넉넉하게 뿌려야 합니다. 상황이 좋지 않아도 씨앗을 영리하게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돌, 잡초, 가시가 모든 것을 파괴하지 못할 것입니다. 상황이 결코 저절로 변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달라지고 싶다면 만나는 사람과 환경을 바꿔야 합니다. 봄에 기적을 보려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을 최고의 명품가치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 폴 투르니에가 말했습니다. “인격적인 만남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인격적인 만남으로 인생이 풍성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을 알아야 인생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예수님의 인격으로 변화가 됩니다. 새로운 영감을 얻고, 삶이 풍성해집니다.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가 됩니다. 새로운 영감을 얻고, 자아가 성장합니다. 인문 심리학의 창시자 칼 로저스 박사가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4가지 특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1)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남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2)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솔직하고 순수하다. 3)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며 말하는 사려가 깊다. 4) 다른 사람에게 일을 전적으로 맡기는 믿음이 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 행복하고,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새끼나귀를 타시고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께 환호하며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할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 21:9) 군중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까? 종려나무는 여호와께 초막절을 지킬 때 하나님을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레 23:40) 군중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자신의 겉옷을 길에 펼쳐놓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자신의 겉옷을 길에 펼쳐놓은 적이 있습니까? 종려주일에 우리가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며 기뻐하였습니다.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본문 3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여기서 “기뻐하다(카이론테스/χαιροντες/xairontes)”는 말은 “유쾌하게 되다, 은은히 행복하다, 인사하다, 환영하다, 즐거워하다, 기뻐하다, 잘 되다, 번성하다.” 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기뻐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것입니다. 참 빛이 세상의 각 사람에게 비추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요 1:9-14) 지금 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가 충만합니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기뻐한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정체성이 자신감과 당당함을 갖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6,18) 하나님의 자녀가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살전 4:3)
제자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찬양하다(아이네인/αινειν/ainein)”는 말은 “높이다, 칭찬하다, 약속하다, 맹세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찬양의 근본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찬양은 마음으로 찬양하고 영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찬양할 때 감동을 받고, 심령이 새롭게 변화가 됩니다.(시 108:1)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시 146:1)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송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나님께 찬양하는 가치는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더 기쁘시게 합니다.(시 69:31)
여러분! 제자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왜 기뻐하였습니까? 왜 하나님께 찬양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큰 능력을 행하셨던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능한 일(뒤나메온/δυναμεων/dynameon)”은 “이적의 능력, 풍부한 일, 권능, 전능한 일, 놀라운 일, 강한 힘”이란 뜻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벳새다 빈들에서 병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셔서 다 배부르게 먹게 하셨던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마 14:14,19-20)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생명의 떡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 6:35) 마음이 상한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죄에 포로가 되었던 사람에게 죄 사함을 주셨습니다. 죄 사함을 받아야 치유가 됩니다. 악한 영들에 매어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셨던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렘 20:13) 하지만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능력을 육신의 생각으로 판단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적인 말씀을 전하실 때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떠나갔습니다.(요 6:66)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여기고 추종하다가 실망하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에 오신 목적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만났던 기쁨을 생생하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증거했던 말씀이 이렇습니다. “생명의 말씀이 태초부터 있었다. 우리가 듣고 눈으로 보았다. 자세히 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보았다. 이 생명이 나타나서 우리가 이 영원한 생명을 보았다. 너희에게 증언한다. 그 이유가 하나님(아버지)과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한 것은 너희가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하나님)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쓴 것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일 1:1-4)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만납니까?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제자들이 생명의 예수님을 생생하게 증거했습니다. 그 증거를 믿고, 우리가 그 증거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느껴야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고, 누리는 것입니다. 생명의 예수님을 믿고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기독교인 과학자 25명이 신앙고백 형식으로 <과학자, 하나님을 만나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김대수 교수님은 뇌과학계의 석학입니다. “유년 시절에 가족이 함께 절에 다녔다. 6세 때 부모님이 교회에 다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나를 동네 교회에 데리고 가셨다. 성도들이 나를 사랑으로 감싸주셨다. 초등학교 때 집중력 장애가 있었다. 친구를 때렸는데 그 친구의 엄마가 나에게 피가 젖어 있는 옷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대수야, 너는 착한 아이다. 내 아들과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따뜻하게 타이르며 부탁하셨다. 친구의 어머니에게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용서와 회개를 배웠다. 그 후에 생명과학을 공부하고 뇌과학자가 되었다. 연구실에서 매 순간에 하나님께 질문한다. ‘이것을 어떻게 이렇게 만드셨습니까?’ 그 과정에서 영감도 얻고, 용기도 얻는다. 과학자는 직업 특성상 인과론을 바탕으로 늘 3인칭 시점으로 연구에 돌입한다. 신앙은 1인칭 시점에서 이루어진다. 그 사이에서 도전에 직면하고, 하나님의 개입에 무관심해진다. 객관적인 내 판단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생로병사는 붙잡을 수 없이 진행되는데 신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패배감에 젖을 때 시각을 바꿔보니 실마리가 보였다. 내 시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전지적 작가시점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일상을 통해 늘 기적을 만들어 가시는 분이라고 믿는다. 학문적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복잡하다는 것이다. 창조하신 세계에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가 숨겨져 있다. 나는 보물이 숨겨진 밭을 살 수 있을 뿐이다. 보물이 어디에 숨겨 있는지 파헤치는 것이 과학자의 고된 임무다. 과학자로 살아가며 항상 기도한다. 끊임없이 연구하며 어떤 결과물을 얻었을 때 그것이 누군가에게 선한 손길이 되기를 바란다. 과학은 3인칭으로 본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전지적 시점이 된다. 뇌과학은 뇌가 신경세포로 이루어져서 신경과학이라고 부른다. 최근에 심리학과 신경과학의 경계가 무너지고, 두 영역에 대한 연구가 융합되어 뇌인지 공학으로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결합하는 분야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과학자가 사랑을 연구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1) 병마와 싸우는 환자의 뇌 속에서 몸이 함께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현대는 뇌가 조종을 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의 뇌에 기본적인 욕구가 시상하부에 있다. 이것이 창조주가 주신 축복이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싶은 욕구는 하나님과 대등하게 되려는 욕망으로 죄를 발전시켰다. 이웃을 위해서 희생하면 더 큰 행복을 얻는 생활 방식과 삶의 철학이 꼭 필요하다. 뇌가 나를 따라오게 해야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분노 에너지는 항상 체내에 쌓여 있다. 사랑이 분노를 조절한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 사랑이 고통, 분노, 부정적 정서를 조절할 수 있다.” 21세기에 미신은 과학의 옷을 입고 다가옵니다. 미신이 과학의 경계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예수님을 맞이하고 무엇을 찬송했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오신 왕을 찬송했습니다. 본문 3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여기서 “찬송하다(율로게메노스/ευλογημενος/eylogemenos)”는 말은 “축복하다, 감사하다, 번영을 빌다, 찬양하다, 엄숙한 기도를 바치다”라는 뜻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면 하늘의 평화가 내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에 나타납니다. 주의 이름을 찬양하면 감사가 넘칩니다. 주의 이름을 찬양하면 번영하는 복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구원을 얻습니다.(행 2:21) 주의 이름을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찬송하면 악한 영들이 물러갑니다. 주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주를 의지합니다.(시 9:10)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면 모든 자손이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회중들이 주를 찬송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시 22:22-23)
예수님을 구원자로 맞이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요청했습니다. 본문 3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바리새인들은 율법학자들이 해석한 율법을 충실하게 실천해왔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님을 시기하고 배척했습니다. 예수님께 난처한 질문을 해서 곤경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선포하고, 병든 사람을 치유하셨을 때 비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악한 영들(사탄, 마귀, 귀신들)을 쫓아내시는 권능을 행하셨을 때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위선적인 행동을 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방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화가 있을 것이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구나. 겉은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구나.”(마 23:25,27) 바리새인들은 경건의 모양이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선포했습니다.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마 3:7-8)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최후에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빌라도에게 고소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바리새적인 신앙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본문 4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구원의 복음을 기뻐하고, 찬송하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기쁨을 침묵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사람들에게 침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오셔서 울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4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오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의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화평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행 10:36) 이제 화평의 복음을 알고,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기 원하십니다.(롬 14:19)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발이 아름다운 것입니다.(사 52:7) 화평의 복음으로 이웃을 기쁘게 하고, 덕을 세우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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