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올해 여름 하나 때는 공교롭게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는 바람에 참여하지 못했다. 물론
일본 친구들과 같이 ZOOM으로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에 기뻤지만, 매우 안타까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번 겨울 하나만큼은 꼭 가자 생각하여, 그 전부터 몸 관리와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특히 일본어 공부라곤 학교에서 한 게 전부인 나에게, 약 1주일이라는 그렇게 길진 않은 시간동안 일본어를 독학한 게
일본인 친구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정말 식겁했던 건 바로 호성이었다. 교류회 바로 직전에, 카카오톡으로 왠지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남긴 것이었다.
여름하나 때의 나와 똑같은 상황을 겪는 건 아닌지 매우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 어느 정도 회복되어 교류회에 참여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하는 해외 방문이었기 때문에 정말 설레여서 많은 내용을 소감문에 담았습니다.
내용이 매우 깁니다. 그래도 천천히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12월 23일 토요일-
~교류회의 시작~
오전 7시, 잠에서 깨고 어제 미리 준비해두었던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갔다.
나는 부모님 차를 타고 공항에 갔는데, 보아 하니 호성, 기원을 포함한 대부분은 공항 철도를 이용한 것 같았다.
그렇게 공항 철도가 있는 인천 공항 지하 1층에서 모두와 만나 비행기를 기다렸다.
나는 완벽하게 여행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캐리어를 살펴보다 일본 여행용 유심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이미 평소에도 무언갈 자주 잃어버리거나, 덜렁대던 나에게 이런 일은 대수도 아니었다..!!
제주도는 두 번 가본 적이 있어 김포 공항은 이용해 봤지만, 해외 여행은 처음인 나에게 있어 인천 공항은 매우 특별했다.
특히, 공항 내부에 들어서면서부터 옆에서 들리는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소리는 기대감을 고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탑승 수속을 완료하고, 공항 내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비행기를 기다렸다.
그 후, 좁은 비행기 내부에서 곧 있을 일본에서의 시간을 기대하며 약 2시간 반동안의 비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 즉 나리타 공항에 막상 도착하고 나서는 이곳이 과연 일본인가 한국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아직은 공항 간판에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크게 적혀 있다는 것 외엔 크게 다른 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슬슬 일본어가 더 많이 들리기 시작하고, 자판기에 일본 음료수밖에 없는 걸 본 순간 조금 실감하게 되었다.
그 자판기가 바로 '나리타 익스프레스' 타는 곳 옆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히나타 선배와 만나서 같이 이동하게 되었다.
참고로 히나타 선배에겐 매우 감사한 점이, 일본이 익숙치 않았던 우리에게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려면
어떤 표를 써야 하는지,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지도해주셨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그렇게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약 1시간동안 타고 가면서, 나의 첫 일본 구경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창밖에서는 분명 분위기 자체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건물 양식이나 간판이 전혀 다른, 오묘한 풍경이 연출됐다.
그렇게 한 번의 갈아타기 후 가와사키역에서 비로소 모두와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그 상태로 곧바로 '산업 진흥 회관'이라는 곳에 가서 교류회 환영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환영회에서는 먼저 모두 자기소개를 비롯해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가와사키 멤버 중 한 명의 메뉴 추천으로 구성된
(누구였는진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맥도날드 버거를 먹으면서 미리 만들어 두었던 자기소개 영상도 보고,
몸으로 말해요, 음악 맞히기, 제스처 전달 게임(팀 별로 일렬로 선 다음, 앞사람이 뒷사람에게 제스쳐를 계속 전달하면서
맨 뒷사람이 주제가 무엇인지 맞히는 게임인데, 게임 이름이 기억이 안 나 임의로 이렇게 작성했다.) 등을 했다.
특히 몸으로 말해요는 내가 자타공인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후술할 테지만 이 바디랭귀지 실력 덕분에
일본어를 잘하지 못해도 일본 친구들과 거의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음악 맞히기에서는, 왠지 모르겠지만 음악을 맞힌 팀이 그 노래의 댄스를 출 수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꽤 많은 흑역사를
양성했다. 절대로 싸이의 강남스타일만은 맞히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스처 전달 게임은 쉬운 듯하면서도 꽤 어려웠다. 특히 공벌레를 설명하는 과정에선, 모든 팀이 안간힘으로
쭈구려서 공벌레를 표현하려고 하는 게 매우 재밌었다. 이와중에 24기 미라이 군은 이 어려운 주제를 거의 단숨에 맞혀버렸다.
그리고 가와사키 친구들이 우리들을 위해 선물을 주었다. 선물 교환을 위한 선물은 아니고,
환영회 기념 선물인 것 같았다. 매우 고마웠지만, 우리는 그 친구들에게 아직은 아무것도 줄 게 없어서
개인적으로 조금 미안했다. 특히 내 선물 포장지에는 보라색으로 이름이 쓰여있었는데, 처음엔 단순히 우연인 줄 알았지만
보라색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위해 준비했다는 것을 듣고 매우 감동을 받았다. 最高!!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기원이 선물은 마치 공주처럼 예쁘게 꾸며진 장식이 있었다.
이때부터 기원이에게 공주병이 도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렇게 찰나 같았던 행복한 시간이 끝나고, 송현이와 하경이는 리나네 집으로 홈스테이를 하러, 나와 기원, 호성은
헤이와지마역 근처 에어비앤비 숙소, 이름하야 '헤이와지마 그레이스'에 출발하게 되었다.
홈스테이를 하지 못한 것은 굉장한 한이었지만, 에어비앤비 숙소도 정말 나쁘지 않았다. 처음 들어갔을 땐 엄청 좁게
느껴졌지만, 그 뒤로 계속 넓은 방이 튀어나와서 좀 놀랐다. 나중에 내가 일본에 살게 된다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숙소에서 내일 준비를 하고, 인생 최초로 일본 욕조에서 목욕도 해보고,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도 사먹으면서
하루의 막을 내렸다. 특히 컵라면이 가격이 꽤 비쌌는데, 건더기가 기대 이상으로 튼실히 들어있어서 만족스러웠다.
-12월 24일 일요일-
~영토 주권 전시관과 자유 탐방~
아침 7시 반쯤에 눈을 뜨자, 창창한 일본의 해가 창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무엇보다도 나, 기원, 루루나, 25기 안나와 함께 자유 탐방을 가는 날이었기에, 매우 기대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향한 곳은 바로 일본의 국립 영토 주권 전시관이었다.
이곳에서는 쿠릴 열도(북방 영토), 독도(다케시마), 센카쿠 열도(댜오위댜오)에 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이곳의 설명이 모두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미 여름 교류회 덕분에 열심히 조사한 독도 외에도
다른 분쟁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가이드 분이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그곳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오다기리 상께서 통역을 해주시는 걸 봤는데, 역시 한국어 실력이 만만찮으셨다.
수첩에 간단히 몇 단어만 적고 바로 완벽하게 통역을 해주시는 모습은 정말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영토 주권 전시관에서 왜 저 세 영토가 일본의 영토여야만 하는지 글이 적힌 팜플렛과 기념품이 잔뜩 들어간
에코백을 기념으로 주시고, 밖을 나가게 되었다. 참고로 이 에코백은 일본 여행을 하면서 매우매우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 비로소 우리 4인방의 자유 탐방이 시작되었다. 맨 처음 갈 곳은, 내가 건의한 '아사쿠사 신사'였다.
사실 난 일본의 관광지에 대해서 잘 모르기에, 단순히 사진 상으로 아사쿠사가 매우 전통적으로 보여서 건의했다.
하지만 아사쿠사는 음식을 먹고, 기념품을 사는 것이 주된 곳이라 구경과는 거리가 먼 곳이라는 걸 알고 조금 혼란스러웠다.
아사쿠사에 도착하니 수많은 인파와 함께 웅장한 가미나리몬(아사쿠사 입구에 있는 거대한 문. 아사쿠사의 아이콘이자,
훌륭한 사진 스팟이다.)이 나를 맞이하였다. 일단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의 라멘집에 대충 들어갔는데, 일본에 가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맛 중에 하나일 정도로 매우 맛있었다. 나중에 일본에 간다면 또 가보고 싶었다.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 -> https://maps.app.goo.gl/77G1enxje29S3Qie8)
그리고 막상 아사쿠사 신사 내부로 들어가니, 먹을 것과 살 것 외에도 구경할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곳에서 부모님께 기념품으로 드릴 마네키네코를 샀다. 고심 끝에 고른 일본 여행에서의 첫 기념품이라 매우 뿌듯했다.
그리고 옆의 딸기 모찌 가게에서 딸기 모찌를 먹는 기원이와 안나가 굉장히 귀여웠다.
그곳에는 '미쿠지'라고 하는 일종의 운세 뽑기가 있었는데, 왠걸, 가족이 변을 당하고 되는 게 없을 거라는 운세가 뽑혔다.
물론 난 운세를 그닥 믿지 않는 편이지만, 보통 이런 운세 뽑기에는 좋은 말만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게 뽑혀서
굉장히 충격이었다. 운세를 뽑은 다음엔 빨랫줄처럼 생긴 곳에 미쿠지 용지를 묶는 의식을 했다.
아까 아사쿠사 역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기원이가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정말 기막히게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미라이 군이 알려줬다.) 유원지가 아사쿠사 신사 주변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사쿠사에서의 관광을 끝내고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갔다. 물론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탈 수 있는 건 많이 없었지만 루루나와 안나가 입장권 비용을 대신 내준 덕분에 편안하게 내부를 누빌 수 있었다.
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안에서는 바이킹을 탔는데, 바이킹이지만 타는 부분이 회전하는 바이킹이었다. 사실 놀이 기구를 크게 안 무서워 하는
사람으로서 엄청난 스릴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간만의 놀이 동산이었기 때문에 매우 재미있었다.
그 다음엔 공포의 집에 들어갔다. 매우 자그마한 열차 하나를 타고 마치 신밧드의 모험처럼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내부를 탐방하는 놀이 기구였는데, 어린이용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정말 재미 없었다... 물론 마지막에 바람으로
놀래켜 주는 곳에서 자존심 상하게 살짝 놀라긴 했다. 그리고 기념품 갓챠숍에서 기념품을 하나 샀다.
아사쿠사 가미나리몬이 매우 작게 들어간 스노우볼이었는데, 정말 귀여워서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 동산을 나와선 그 주변을 탐방했는데, 일본의 시장도 가보고, 그 주변의 오락실도 가서 사진도 찍어보았다.
여자든 남자든 일단 사진을 찍으면 걸그룹 미모의 얼굴로 고쳐주는 시스템이었는데, 루루나와 안나는 매우 이쁘게 나왔지만,
나와 기원이는 무슨 동네 미용실 아주머니처럼 나와서 매우 웃겼다. 그런 다음 그 옆에 있는 돈키호테도 방문했다.
그곳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키노타네(직역하자면 감의 씨앗. 밀감씨처럼 생긴 과자인데, 짭조름하고 맛있다.)'를
팔고 있었는데, 심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와사비맛이었다. 그것과, 교류회를 참석하지 못한 하나 멤버들을 위한
기념품 겸의 밀크티, 그리고 꼭 먹어보고 싶었던 죽순 모양 일본 초코송이를 샀다. 그닥 많이 사진 않았지만,
매우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그 다음 우리가 향한 곳은 아사쿠사 신사 주변의 '타카기 신사'이다. 기원이 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의 메인 캐릭터 '타카기'와 우연히 이름이 겹쳐 콜라보를 하게 되어 타카기 관련 굿즈를 판다는
신사였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했을 땐 문을 닫아 기원이가 그토록 원하던 타카기 굿즈는 없었다.
그래도 아사쿠사 신사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 못했던 참배와 신사 구경을 할 수 있어서 나쁘진 않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꽤 남아서 아까부터 자꾸 우리의 눈에 들어오던 높이 634 m의 도쿄 스카이트리를 가게 됐다.
물론 크리스마스 이브기도 하고 아까의 아사쿠사처럼 사람이 너무 많아 위로 올라가진 못했지만, 아래에서만큼이라도
여러 구경과 기념품 구입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여기서 프링글스 통 모양 동전 지갑을 샀는데, 이것도 또 일본 여행에서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구경을 끝낸 후 우리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가라오케였다. 사실 전날밤, 호성이네 조와 우리 조가 모여서 6시쯤
가라오케에서 합류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 인생 최초로 진짜 일본 가라오케를 가게 되었다.
일본의 노래방은 한국과 매우 비슷했지만 조금씩 달랐다. 일단 가격 자체가 한국보다 매우 비쌌고, 음료수를
한 잔 무료로 시킬 수 있으며, 가사가 보이는 티비가 두 대였다. 곡 선택은 우리나라처럼 버튼식이 아닌 디스플레이가
있는 탭을 사용했으며, 당연히 검색창을 누르자 일본 노래가 주르륵 떴다.
나는 아이묭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든가'와 시이나 링고의 '마루노우치 사디스틱', 마지막으로 Fool's Garden의 'Lemon Tree'를
불렀는데, 고음도 제대로 안 올라가고 일본어 발음도 다 틀려서 조금 창피했다. 그래도 호응을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기원이는 고음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노래를 잘 불러서 놀랐고, 호성이는 내가 잘 모르는 곡들(...)을 마음껏 불렀다.
특히 호성이가 맨 마지막에 부른 노래는 쇼크 그 자체였는데, 노래 이름은 기억이 안 나니 자세한 건 호성이의 소감문을
참고해주셨으면 한다.
노래방을 나온 뒤에는 모두 덮밥집으로 향했다. 도전 정신이 강했던 나는 색다른 경험을 위해 난생 처음 들어보는 '오쿠라 덮밥'을
시켰다. 아야카에게 이 '오쿠라'가 뭔지 물어봤는데, 아야카도 설명을 잘 못하고 인터넷에 검색해도 잘 안 나오는 것을 보니
한국에서는 맛보기 힘든 식재료인 것 같았다. 알고 보니 낫토와 비슷하게 끈적끈적한 진액이 마구 붙어있는
청고추와 식감이 비슷한 식재료였다. 다행히 낫토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덮밥은 엄청 맛있었다.
하지만 이미 음료수로 노래방에서 배를 불린 나에게 미디움 사이즈 덮밥을 다 먹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역시 나와 같이 덮밥을 다 못 먹고 있던 아야카도 옆에 있었다.
그렇게.. 호성이는 좋게 말하면 서비스, 매우 나쁘게 말하면 짬처리(...)로 나와 아야카가 남긴 덮밥을 먹게 되었다.
물론 깨끗하게 먹긴 했지만 호성이에게 왠지 정말 미안했다.
덮밥집을 나오고 편의점을 들른 후 모두 해산하는 과정에서 어떤 버스킹 가수를 보게 되었다. 기타 실력과 노래 실력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 아야카의 설명으로는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되기 위해 그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는데,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우리 셋은 다시 숙소로 돌아가게 되었다.
-12월 25일 월요일-
~여러 전시관과 구로카와 청소년 센터~
25일은 본격적으로 가와사키 친구들과 청소년 센터에서 합숙을 하는 날이었기에, 숙소에서의 짐을 모두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방문하는 곳 중에 가장 궁금했던 곳 중 하나인 '야스쿠니 신사 유취관'을 가는 날이기도 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전쟁에 관련된 사람들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인데, 외관도 멋있고 취지도 좋지만,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죄자들이 기려지고 있는 곳이기도 해 여러모로 논란이 많은 곳이다.
여기서 야스쿠니 신사 유취관은 신사 옆에 있는 박물관인데, 이곳에서는 전쟁에 관련된 여러 물품들과 장비, 기구 등을
볼 수 있고, 전쟁에 대한 여러가지 내용들을 들을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가기 전 이동하는 버스에서 오다기리 상의 설명을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바로 야스쿠니 신사에 기려지고 있던 한 조선인의 이름이 창씨개명된 일본어 이름으로만 적혀 있는 것을 예전 하나 멤버분들께서
지적하고 한국어 이름 - 일본어 이름 병기 표기로 바꾸는 것에 성공하셨다는 것이다. 모두들 그 설명을 듣고 그 내용을
찾아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먼저 거대한 석조 토리이(⛩️, 일본식 신사 입구)를 지나 야스쿠니 신사 앞에 당도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더 멋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신사의 실상을 알고 있던 사람으로서 그 멋있는 모습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도 동시에 들기도 했다.
그 다음 우리는 야스쿠니 신사 옆 유취관으로 바로 향했다. 유취관 내에선 유취관 관장님께서 먼저 마중을 나오신 상태였다.
참고로 입구 근처엔 엄청 큰 일제 시대 비행기와 여러가지 장비 같은 것들이 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나서 관장님의 관내에 대한
가벼운 설명을 듣고 자료실 내부로 들어갔다.
자료실은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약 스무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본이 막부와 무사 체제를 딛고 어떻게 근대화에
성공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과 결과, 근대화에 성공한 이후의 행보, 대동아전쟁(태평양 전쟁, 일본이 이른바 '대동아 공영권'을
내세우며 전쟁을 미화하는 데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자료관에서는 대동아전쟁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였다.)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보았던 내용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로,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통해 동아시아 국가들이 유럽 등지의 외세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는
요상한 논리로부터 시작해 전후 독립에 성공한 나라들의 리스트를 적어 놓은 큰 판넬이었다. 이 판넬에는 독립한 국가 중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부터 작고 생소한 팔라우, 브루나이 등의 나라도 적혀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한국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반도 부분을 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각각
1948년에 '성립'되었다고만 쓰여져 있었다. (덤으로 중국과 대만에 대한 내용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나는 1차적으로 '일본이 만약 동아시아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면, 어째서 조선의 독립은 막았을까?' 라는 모순이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이에 대해 관람 막바지 유취관 관장님과의 질문 시간에서
관장님께 여쭤보았으나, 조선이 독립한 것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단 독립한 특이 케이스라는 것과,
이 둘의 사이가 그닥 좋지 못하다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이 답변은 나에게 그렇게 시원하진 않았다.
똑같이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단 독립한 인도에 관해선 둘 모두 제대로 '1947년 독립'으로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시고 고쳐주신다고 하니 답변을 해주신 관장님께 고마웠다.
두 번째로, 아까 서술한 야스쿠니 신사에 기려진 조선인에 관한 내용이었다. 전시관 내에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기려지고 있는 분들의 사진들이 수두룩빽빽하게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아까 그 조선인의 행방을
찾고 있었는데, 가장 먼저 찾으신 분은 바로 오다기리 상이었다. 근데, 놀랍게도 전의 오다기리 상의 설명과는 달리
병기 표기된 한국어는 없고, 창씨개명된 일본어 이름만 등재되어 있던 것이었다. 오다기리 상이 이에 관해서 관장님께
항의를 했는데, 관장님께서 데려다주신 곳은 다름 아닌 그 조선인의 한국어 이름이 크게 써져 있고 그에 대한 설명이
조그맣게 써져 있는 특별한 전시실이었다. 그 조선인의 특별함을 소개하기 위해서 따로 다른 전시실에 옮겨 전시하고 있다는
설명까지 들었다. 이에 대해 유취관의 배려가 느껴졌으며, 국제 교류회 하나의 힘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관장님께서 그 조선인에 관한 영화를 한 편을 소개해주셨는데, 자신이 그 영화를 볼 때 그 조선인이 등장한 신이
나올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는 이야기도 같이 해주셨다. 과연, 관장님은 깊은 역사적 지식을 통해 그 조선인이 현재 자신의 나라인
일본을 위해 싸울 것인가, 어머니의 나라인 조선을 위해 싸울 것인가 착잡한 마음을 갖고 있었으리라는 점을 어느 정도
이해하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짧은 이야기지만 마음을 정말 무겁게 했던 내용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잠깐 화장실을 들른 사이,
그 주변의 어떤 한 조각상을 발견했는데, 그 조각상의 설명을 보니 다름아닌 '수중 자살 특공대'에 관한 내용이었다.
비행기를 통해 자살 공격을 행한 '가미카제'는 들어봤어도, 수중 자살 특공대는 잘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 이유도 그곳에
담겨있었다. 먼저 특공대는, 폭탄이 끝부분에 달린 기다란 대나무 막대를 들고 물속에 숨어 있다가, 해변에
다다른 적의 배의 바닥에서 폭탄을 터뜨려 배를 부수는 방식으로 공격을 진행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러 기술 상의 문제로
실제 실현되지는 않고 흐지부지된 계획 같았는데,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이것을 실험하기 위해 또 수많은 일본군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제의 광기와 어처구니 없는 죽음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유취관의 관람을 끝내고 나서 우리는 유취관 근처에서 배달된 도시락을 먹었다. 일본식 중화 요리였는데, 특히 칠리 새우와
치킨이 정말 맛있었다. 도시락 안에는 매우 작고 귀엽게 생긴 간장통이 있었는데, 송현이가 그걸 보고 푹 빠져서 다른 친구의
간장통을 받아 가기도 했다. 물론 나도 너무 귀여워 보여서 가방에 넣어놨지만, 크기가 너무 작은 탓에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그 다음 우리가 향한 곳은 위안부에 대한 것들이 전시돼있는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이었다.
사실 더 기대됐던 곳은 야스쿠니 신사 유취관이었지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곳은 바로 이 자료관이었다.
일제가 전쟁 시대 때 벌였던 여러 만행들과, 그로 인해 피해를 받은 위안부 피해자들, 그리고 그 분들의
삶들이 들어있는 곳이었다.
먼저 우리가 직접 관내를 돌아보기 전에 담당자분께서 여러 설명을 해주셨다. 근데 내가 이틀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일본어 실력이 늘은 탓인지, 담당자분께서 천천히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탓인지 일본어인데도 거의 80% 정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담당자분께서는 위안부라는 것이 나타나게 된 배경과, 어떻게 실체가 들어나게 되었는지, 어떤 피해자 분들이
계신지에 대한 몇 가지의 사례를 설명해주셨다. 이곳을 예전에 방문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신 여러 피해자분들의 사진이
전시관 앞에 걸려있었는데, 그 중 대다수의 사진에는 꽃이 걸려 있었다. 그 뜻은, 지금은 이 세상에 없으신 분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한 칸이 비워져있었는데, 그 칸은 다름이 아니라 이 자료관에 오시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셨거나, 지금도 살아 계시지만
어떤 연유로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한 모든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의미하는 칸이었다.
그리고 자유롭게 내부를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중 나의 눈에 뜨인 곳은 바로 '일본인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내용이었다.
호성이와 아야카, 그리고 담당자분의 도움을 통해 모두 읽는 것에 성공했는데, 그 내용은 꽤 충격적이었다.
물론 전부터 조선인 외에도 위안부 피해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학교 교육 과정에서는 조선인 피해자에
대해 집중적으로 배웠는데, 그곳에는 위안부 피해자 중에 다름아닌 일본인도 있었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유곽촌 등지에 살던 일본인 여성을 대상으로, 다른 국적의 위안부 피해자분들과 마찬가지로 "공장에 취업하게 해주겠다",
"돈을 더 잘 벌게 해주겠다" 등의 달콤한 말로 꼬드겨 위안부 시설에 배치하는 군부의 만행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글을 보고 느낀 점은, 위안부에 관한 내용이 그저 '일본 vs 한국', '일본 vs 중국'따위의 국적 문제에 속하는 것 외에도,
일종의 인권 문제에 속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즉 일본 정부가 위안부에 관한 내용을 교과서에서 숨기고,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은 국제 관계 속의 정치적 문제를 떠나 일본인을 포함한 수많은 성폭력의 피해자들을 묵시하는 행동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담당자분께서 나누어주신 팜플렛에 지도 그림과 함께 그 지도 위에 빽빽히 그려진 빨간 점들, 그리고 QR 코드가
있었는데, 이 빨간 점들이 의미하는 것은 예전 일본군이 만든 위안소들의 위치였다.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이것보다 위안소가 더 많았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매우 충격이었다. 이에 대해 담당자분이 한 이야기를 해주시기를,
예전에 중국인 관광객이 이곳으로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살고있던 곳 주변의 공원이 사실은 위안소였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지셨었다고 했다. 내가 지도를 살펴봐도 한반도에서만 약 스무 개의 위안소가 있었다.
(QR 코드 링크 - https://wam-peace.org/ianjo/map/)
이렇게 무거운 내용을 듣고 담당자분과 자료관에 대해 작별을 고한 후 우리가 찾은 곳은 구로카와 청소년 센터였다.
먼저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에서 버스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 주차장으로 이동한 후 약 2시간 정도의 운전 끝에
센터에 도착했다. 센터 스태프 분의 이용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곧바로 각자 방으로 이동했다.
내가 묵어야 할 곳은 남자친구들 전용 방이었기 때문에, 호성, 기원, 미라이 군과 같이 묵게 됐다.
짐을 푼 후 이동한 곳은 센터 1층에 있는 큰 강당이었는데, 센터에서 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이곳에서 진행됐다.
이곳에서 저녁으로 피자를 먹고, 선물 교환을 진행했는데 교환하는 방식이 매우 특이했다.
먼저 모든 사람은 빙고판을 받는데, 가장 먼저 빙고를 외친사람부터 순서대로 준비된 선물을 골라가는 방식이었다.
나는 2등으로 빙고에 당첨됐다. 참고로 여기서 처음 알게 된 것은, 빙고까지 딱 하나만 남았다면 '리치'라고 외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 조금 알아보니 일본의 '리치마작'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내 선물은 26기 안나에게 갔으며,
나는 노무라 코토노의 선물을 받았다. 내 선물은 인형 하나와 짜파게티, 그리고 짜파게티 쫄병과 초코맛 꼬북칩, 그리고
편지였다. 짜파게티는 맵지 않아서 일본 친구들이 좋아 할 것 같아서 샀고, 짜파게티 쫄병은 맛을 서로 비교해 보라고,
그리고 초코맛 꼬북칩은 왠지 일본에서 팔지 않을 것 같아서 샀다. 편지는 왠지 선물이 빈약해 보여서 썼다.
내가 받은 선물엔 여러가지 일본만의 간식들과 피카츄 양말이 있었다. 참고로 이 양말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일본에 가져간 양말 개수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바로 다음 날에 그 양말을 신기도 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선물 교환식이 끝나고 내 기억으론, 다이소에 갔던 것 같다. 일본 다이소는 특별한 점이, 가격이 붙어있지 않은 상품은
모두 100엔이라는 것이다. 나는 다이소에서 최대한 필요해 보이는 것만 샀다. 일단 수건 두 장과 음료수 모양 지우개,
타코야끼 모양 켄다마와 오델로 게임판을 샀다. 별로 안 필요하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보였다.
숙소방에서는 남자들 넷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했다. 가볍게는 한국과 일본의 여러가지 차이점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생각보다 비슷한 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아 재밌었다. 또 역사를 좋아 하는 기원이를 위해 미라이 군이 일본 고등학교에서
쓰이는 세계사 교과서와 일본사 교과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 안에는 생각보다 조선에 대해서도 자세히 쓰여진 부분이 있어
좀 놀랐다. 특히 미라이 군은 K-pop이나 요즘 유행하는 최신 트렌드들은 잘 모르는 듯했지만, 정말 뜻밖에도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어보인 듯 했다. 드라마 '보쌈'이라든지, 나도 잘 모르는 한국 사극 드라마들을 꿰고 있었고, 좌의정, 우의정이나
붕당의 개념, 심지어는 한사군에 대한 지식도 있어 보였다. 역사 교수가 꿈이었던 기원이는 미라이 군이 하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표정이 화색이 되면서 "역사를 잘 아는 일본 친구와 대화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걸 지금 이루고 있다!"라는
말을 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내일 있을 포럼을 위해 기획부 팀들이 단체로 가서 약식 포럼 회의를 진행했다. "너는 주제를 정한 장본인이니까
(이에 대해선 후술) 너 정도는 따라와도 되겠다"라는 기원이의 말에 나도 회의에 잠깐 들어가봤다.
하지만 활동부인 호성이가 인스타그램도 써야 됐고 뭔가 방해만 될 것 같아서 금방 나왔다.. 그리고 기획부인
기원이와 미라이 군이 꽤 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진행한 후 방에 들어와 또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에 들게 되었다.
-12월 26일 화요일-
~포럼 데이~
이때부터 왠지 안타까운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7시쯤 일어나 일단 자료집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미라이 군이 나와 거의 동시에 깨서 강당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으러 갔다. 나도 자료집을 반 정도 읽은 후 강당으로 내려갔다.
아래에는 이미 다른 친구들이 몇몇 내려와 있었다. 그곳엔 엄청나게 많은 아침밥 겸 먹을거리가 진열돼 있었는데,
난 그 중에서 리나가 추천한 참치 마요 삼각 김밥과 쿠키 하나를 먹었다. 사실 한국과 딱히 다른 맛은 아니었지만 맛있었다.
그렇게 9시에 포럼이 시작했다. 사실 포럼 내용 같은 경우에는, 매 앉아서 이야기를 하기만 해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기록을 못해 잘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가와사키 하나 포럼부 친구들이 어느 정도 기록을 해줘서 내용은
알 수 있으니까, 개인적인 소감 중심으로 말하려고 한다.
먼저 포럼 주제는 '세대'인데, 참고로 이 주제는 내가 만든 것이다 !! 하나 단톡방에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서 내가 먼저 투표를 만들었다. 투표 후보에는 정말 그때 생각난 것을 아무거나
적었는데(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러-우 전쟁 문제, 강제징용 배상금 국내 기업 대납안 문제 등..), 'MZ 세대 vs 사토리 세대'라는
이름으로 후보로 했던 게 1위가 되고, 그 주제를 가와사키 하나 친구들도 충분히 수긍을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사실 나는 저 후보 중에선 아무것도 선정되지 않고, 새로 추가가 되거나 다시 투표를 진행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너무 깊은 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있고, 역사라기보단 문화에 더 가까운 주제들도 있어서 그랬다.
하지만 역사 말고도 문화 쪽으로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가와사키 멤버의 의견 하에, 주제는
이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참고로 '사토리 세대'란, 내가 일본에서 대충 MZ 세대와 비슷한 선상에 있는 세대를
따와서 넣은 세대인데, 알고보니 가와사키 하나 친구들은 잘 모르는 듯했다.
사실 포럼 전에는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과연 이 주제로 한일이라는 키워드에 맞는 뜻깊은 포럼이 진행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포럼을 시작하니, 정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물론 '세대'라는 주제에 있어선
조금 벗어났을 수도 있지만, 내 포럼조에선 선후배나 선생님, 부모님께 사용하는 경어와 존칭어에 대한 양국의 차이점이라든가,
양국의 사치 풍조를 바라보는 인식 등 재미있는 포럼을 진행할 수 있었다.
특히, '한일 양국에서 세대간 서로를 보고 느끼는 차이'라는 주제에서, 내가 한국의 IMF와 일본의 버블 경제 때문에 세대 간
관점이 바뀌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IMF가 버블 경제보다 훨씬 나중에 일어났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오다기리 상이 그것에 대해 꼬집어주셨다. 사실 두 사건은 약 5년 간격밖에 시간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나는 IMF가 1997년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버블 경제가 1980년대 초에 일어난 것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은
1992년이었다.)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아주셨기에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해 오다기리 상께 매우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아무래도 세대라는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수 있기에, 따로 '자유주제 시간'이라는 것을
설정해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이때는 포럼 시간이 부족해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미리 정해둔 역사적인 주제(원자 폭탄이 일본에 투하되지 않았더라면?,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근대화에 성공
했더라면? 등)을 이야기할 예정이었다.
먼저 이야기한 것은 '원자 폭탄이 일본에 투하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대체 역사에 가까운 주제였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기원이와 호성이가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근데, 가와사키 하나 멤버들은 이 둘이 한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알고 보니, 한국에선 이 부분, 즉 2차세계대전의 내용을 교과서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런 주제에 대해서 식견이 높을 수밖에 없지만, 일본에서는 비중있게 다루는 부분도 아니거니와, 자료집에서도 페이지 수의
한계 상 자세히 설명될 수 없었기 때문에 포럼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최대한 모두가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로 넘어가야 했기에 호성이와 기원이, 그리고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을 다른 친구들에겐 미안했지만 아까 포럼에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던 주제에 대해 더 집중하기로 했다.
그때 내가 꺼낸 것은 바로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이었다. 우리 조에선 세대 간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최근의 세대가 성소수자, 다문화가정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해 교육을 많이 받아서 더 수용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이 이야기를 기점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나는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배운 기억이 없었는데, 일본 친구들은 학교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고
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우리로 치면 '창체 시간' 정도에 강사 분들을 초청해 강의를 듣는 형식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기원이가 이에 대해 첨언을 했는데, 사실 2023년까지는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을 하라고 어느 정도
말을 했던 것 같지만, 이 이후로는 그러한 규칙마저 폐지되어 완전히 없어진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었다. 다른 선진국들은
점점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인 것 같은데, 한국만 시대를 역행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까웠다. 그리고 학교 별 교복이나 착의에 대한 규제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 갔다. 듣자 하니, 일본은 물론 학교 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한국보다는 교복에 관한 규제가 더 셌던 것 같다.
포럼이 끝난 후, 시간이 좀 지나고 '도톤보리'라는 이름의 오코노미야키집을 갔다. 그곳에서 내 생애 최초의 오코노미야키를
먹었는데, 가와사키하나 친구들이 우리에게 배려해줘서 오코노미야키를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특히 오코노미야키를
뒤집을 때, 내 생각엔 잘 못 뒤집었지만 가와사키 친구들이 다 잘했다고 칭찬해줘서 머쓱했다. 그리고!! 이 일은 후에 다른 친구들
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안나가 갑자기 나에게 메론 소다를 먹지 않겠냐고 물어서, 메론 소다를 좋아했던 나였기에 덥석 집어
고맙다고 했는데, 사실 그게 나에게 주려던 게 아니고 구경 시켜주려고 했던 거였다는 것이다. 사실 그때도 왠지 나한테만
음료수를 주는 것 같아 조금 이상하긴 했다.그때의 일에 대해 아직도 안나에게 너무 미안하다!!! 다음에 만나면 꼭 사과하고 싶다.
재밌는 건 식사를 하는 도중에, 왠지 모르게 갑자기 슈퍼마리오 게임이 시작됐다. 여기서 슈퍼마리오 게임이란, 진짜 비디오
게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술게임 비슷한 것이다. 한 사람이 '슈(일본어 발음으론 '스'에 더 가깝다)'를 말하면
다음 사람이 '퍼', 그 다음이 '마리', '오', '슈퍼', '마리오', '슈퍼마리오', '코인!' 순서대로 각자 말하는 게임인데,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코인!'을 말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실무자 써니가 알려주시기를, 한국에도 '김밥말이 게임'이라는 똑같은
게임이 있다고 한다. '슈퍼마리오' 대신에 '김밥말이', '코인!' 대신에 '헤이!'를 외치는 게임인데, 이것도 했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갑자기 또 다른 게임이 출현했다. '호렌소 게임'이라는 건데, 호렌소는 한국어로
시금치이다. 사실 한국의 홍삼 게임과 메커니즘이 같은데, 맨 처음 술래가 호렌소 두 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받은 사람들이 계속 호렌소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다가 동시에 받는 사람이 생기면 뭔가 구호를 외치는, 그런
게임이다. 근데 이 게임을 하다가 이번엔 진짜 홍삼 게임도 하게 됐다. 일본인들이 '아싸 너너!', '에브리바디 홍삼!'을 외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위화감이 들면서 재미있었다.
이후 당근 게임(이 게임도 홍삼게임과 비슷하지만 차이점은 당근을 받은 사람 주변 사람들은 '당근 당근'을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도 진행했다. 당근 게임의 인트로는 "하늘에서 내려온 토끼가 하는 말, 음치치 음치치"였는데, 이 어려운 한국어 문장을
발음 좋게 그대로 따라하는 모습도 정말 신기했다. 문제는..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너무 시끄럽게 게임을 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곳에서 조용히 밥을 먹으시던 분이랑 실무자분들, 식당 직원분들께 죄송하다..
뭔가 이 날은 죄송한 일이 많았던 것 같다.. 申し訳ございません。。
그리고 '몬쟈야키'라는 것도 봤다. 몬쟈야키는 오코노미야키보다 더 묽고 중간에 국물을 부어가면서 만드는 것이다.
식감은 좋았지만, 약간 신맛이 나서 나는 오코노미야키가 더 맛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나서 야키소바와 아이스크림으로 식사를
마쳤다. 나는 원래 일본 음식 중에서도 라멘과 야키소바를 제일 좋아해서 맛있게 먹었는데, 호성이는 여간 불만이 아니었다.
듣자 하니 야키소바를 만들 때 미라이 군이 간장을 너무 부어 엄청 짰다고 했다. 나는 짠 걸 좋아하기에 차라리 날 줬으면하는
생각도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OBOG 교류회를 하기 위해 다들 준비를 했다. 그렇게 시작된 교류회는, OBOG와 우리 멤버들 간의
자기소개 후에 곧바로 '탁구공 옮기기' 게임으로 진행됐다. 먼저 일단 팀을 짰는데, 나, 송현, 리나, 수인 이렇게 넷이
조가 됐다. 그렇다 ! 우리 조에는 OBOG로 치기엔 젊은 리나 외에는 OBOG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팀의 이름은
'YBYG'로 정했다. 탁구공 옮기기의 룰은 간단하다. 조 중에 숟가락을 들 선두 두 명을 정한 후, 한 사람이 숟가락에
탁구공을 얹고 한 바퀴를 돌고 오면 다음 사람의 숟가락에 넘겨준 후 선두를 교체하는 게임이었다. 그리고 작전
타임이 시작됐는데, 일단 뭐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우리 조는 다들 양말을 벗었다(...) 내 아이디어였지만
솔직히 괜히 한 것 같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고, 오다기리 상의 파워를 받은 것만 같은 팀 이름 '오다기리 조'가
1등을 차지하고 우리는 겨우 꼴등을 면한 3등이었다. 꼴등조의 벌칙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귀여워서 미안해 댄스'
였던 것 같다.
두번째 게임은 의자 앉기 게임이었다. (멤버 정원수 - 1)개로 의자가 구성되어 가운데에 술래가 무언가 인상착의라든지
특징을 설명하면 그 특징에 부합하는 사람들끼리 자리를 바꿔 앉다가 못 앉은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다음 술래가 되고,
벌칙 포인트 1점을 얻는 게임이었다. 벌칙 포인트가 3점이 되면 벌칙을 받는 형식이었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고,
초반부터 어떤 술래가 왠지 날 보면서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을 외쳐서 진땀을 뺐다. 다행히도 나는 한 번만 술래가 되고
벌칙은 면했다. 앗싸~, 그리고 레이스케 선배가 왠지 자꾸 걸려서 정말 웃겼다.
OBOG 교류회가 끝나고, 우선 우리는 각방에 들어갔다. 기원이는 숙제가 있어서 열심히 노트북으로 뭔갈 쓰고 있었다.
나도 무언가 해야 할 것도 있었고, 인스타그램도 써야 했고 할 일이 많아서 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때 호성이가
다른 방에 다른 멤버가 모두 모여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 일이 끝나면 옆 방으로 오라고 말해주고 방을 나섰다.
그리고 왠지 주드도 우리 방에 들어와 있었다. 약 12시 즈음이 됐을 때 하던 걸 모두 마치고 나서, 호성이가 말해준
옆 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기원이가 신경 쓰였다. 숙제 때문에 하나에 와서도 제대로 놀지 못하는 처지라니..
기원이는 이따가 새벽 2시쯤 끝날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숙제에 몰두했다.
-12월 27일 수요일-
~마지막 날~
옆 방에 들어가려 하자 문 밖에서부터 아까 말한 슈퍼 마리오 게임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호성이 말대로
기원이를 포함한 몇몇만 빼고 모든 하나 멤버들이 한 방에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 슈퍼 마리오 게임도 하고,
마피아 게임도 하고 재밌게 놀았다. 일본의 마피아 게임은 내가 알던 것과 살짝 달랐는데, 우선 경찰이
살아 있는 사람을 조사할 수 있는 경찰, 죽어 있는 사람을 조사할 수 있는 경찰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마피아 게임은 별로 재미 없게 끝났다. 먼저, 한국어와 일본어를 계속 번역해줘야 하는 호성이와 아야카의
부담이 컸던 것이 일조했다. 호성이는 중간에 포기해버리기에 이르렀고, 아무래도 말 하나를 할 때마다 시간이 지체돼
거의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게다가 우리는 등을 쿡쿡 찌르면서 직업을 설정하고 밤이 될 때마다 고개를 숙이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아니라 마피아 게임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게임을 했는데, 누군가가 자꾸
그 앱의 원리를 이해를 못해서 게임이 진행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다. 죄송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어설프게 마피아의 승으로 게임이 끝나고, (왠지 송현이가 마피아일 것 같았는데 진짜였다. 이런!)
우리는 한동안 여러가지 주제로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왠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일본인 친구들의
"아빠", "아파" 발음 구분 놀이가 시작됐다. 사실 이건 저번에도 아주 잠깐 나온 주제였는데, 이번엔 엄청 열심히
발음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엄청 잘하는 아야카는 이것도 구별을 잘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른 친구들과
비슷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건조한 음이고, 아파는 약간 촉촉한 음이다"
이런 식으로. 그러자 몇몇 친구들이 진짜 완벽하게 발음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근데 시도때도 없이 "아빠, 아파" 소리가
들려서, 무슨 병원에 온 줄 알았다 ㅋㅋ 아쉽게도 마지막까지 루루나는 이 발음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국 친구들한테 "つ(츠)" 발음을 시킨다든가, 한국와 일본의 잰말놀이를 비교한다든가 여러 이야기를
했다. 가장 충격인 건 일본의 '스모모모모모모모모노우치(スモモも桃も桃の種類桃, 자두도 복숭아도 복숭아의 한 종류)'였다.
호성이가 랩하듯이 한국의 엄청 긴 잰말놀이 문장을 뱉는 것도 재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 친구들한텐 살짝 무서워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제일 재밌었던 건 일본 친구들이 '멍멍이'를 발음하는 거였다. 일본어는 발음 구조가 한국과는 달라서
가와사키 하나 멤버 친구들이 멍멍이를 자꾸만 '몸모이'처럼 발음했다. 이건 정말 아까 '아빠'와
'아파'를 잘 구별하던 친구들도 힘들어해서, 결국엔 발음 가르치기를 포기했다. 이외에도 '사다'와 '싸다',
일본인이 가장 구별하기 힘들어 한다는 '자다', '차다', '짜다', 그리고 '엉덩이(...)'의 발음도 해보는 등 왠지
언어 교실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때가 시간이 약 새벽 2시쯤 됐을 때였다. 나는 중간에라도 자보려고 했지만, 도통 졸리질 않아서 오늘 밤은
그냥 밤을 새고자 작정했다. 하지만 멤버 중 다른 몇몇은 잠에 들기를 원했다. 그래서 깨있던 사람들은 방의 불을 끄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약 새벽 3시쯤, 정신은 아직 깨어있지만 몸이 점점 피곤해질 때, 기원이가 등장했다. 기원이는 '지금까지
다른 친구랑 놀지도 못했는데 이제부터라도 본전을 뽑아야겠다'라는 다짐으로 숙제하느라 피곤했을 몸을 가누고
잠을 자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그리고 왠지 영화 이야기가 오갔는데, 나는 지브리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니
리나가 '메리와 마녀의 꽃'이라는 영화를 추천해줬다. 일본 넷플릭스에 있었는데, 보아하니 한글 자막이 없었다.
나중에 집에 가면 한글 자막 버전을 한번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4시쯤 됐을 때, 깨있는 사람은 나, 기원이, 리나, 레무, 코토노, 미라이 정도였다.
우리는 이 방에 남아 있으면 다른 자는 친구들에게 왠지 방해도 될 것 같고 이야기도 수월하게 나누고 싶어서
결국 옆방으로 이동했다. 옆방으로 이동하자마자 미라이는 바로 누워서 잤고, 남은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해나갔다.
그러다가 너무 심심해서 게임을 몇 개 했다. 아까 오코노미야키 집에서 했던 홍삼 게임과 당근 게임,
그리고 아이엠그라운드나 베스킨라빈스 31도 가르쳐서 같이 했다.
아침이 되고, 모두가 깬 다음 우리는 바로 평가회의를 시작했다. 먼저 각자 간략하게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랜덤 질문'이라는 것에도 답했다. 자유 탐방에 관해서 소감을 나눌 때, 먼저 나는 처음 와보는 해외이기에 굉장히 설렜고
또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만큼 탐방이 매우 재미있었지만, 자유 탐방을 하기 전에 탐방 조가 갑자기 바뀌어서
조 내 가와사키 하나 친구들이었던 루루나와 안나가 계획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탐방을 다니면서도 계속 길찾기를 하는 등
너무 힘들어 보여서 안쓰러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포럼에 대한 소감을 나눌 때는, 포럼은 생각보다 매우 재미있었고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많은 주제로 일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하나에 온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았지만,
마지막 자유 주제 시간 때 진행이 매끄럽게 되지 않았던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랜덤 질문에 대해서도 답했는데, 랜덤 질문이란 모든 멤버에게 랜덤으로 질문을 던져 그것에 간단하게 답하는 것이다.
내가 걸린 질문은 이번 교류회에서의 MVP를 꼽는 질문이었는데, 나는 이번 교류회 때 가장 도움을 많이 받고 어떻게 보면
귀찮게 군 것 같아서 미안했던 사람들이 바로 호성, 아야카, 리나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서로 상대국의 언어를 매우 잘 알아서
오다기리 상이나 통역을 맡아주신 OBOG분들이 안 계실 때 실질적인 통역가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들을 모두
포함해서 통역일을 해주신 모든 분들께 MVP 상을 드리겠다고 했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두루뭉술하기도 하고
딱 1명만 고른다는 MVP의 취지에 안 맞는 것도 같지만.. 그래도 이들에게 매우 감사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 놀랍게도 나를 MVP로 해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코토노였는데, 내가 '아빠'와 '아파'의 차이를 너무 잘 가르쳐줘서 선택해줬다고 했다.
나를 MVP로 추천해줘서 고맙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웃겼다.
평가회의가 끝나고 먼저 우린 청소를 시작했다. 슬슬 한국에 갈 준비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웠다..
먼저 나와 기원이, 그리고 미라이가 화장실 청소를 맡았는데, 나와 기원이는 일본어 실력이 (안 좋은 쪽으로) 비슷하고,
미라이는 거의 한국어를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어설픈 일본어와 영어, 그리고 바디랭귀지였다.
그런데도 이틀이나 같이 합숙을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말이 잘 통했다. 특히, 미라이 군이 능통하게 저 세 소통 수단을
섞어가며 말해줘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와 기원이가 청소를 마친 사이 미라이 군이 1층 화장실을
닦다가.. 실수로 싱크대에 쓰는 솔을 변기에 쓴 사건이 일어났다. 그 이유로, 원래는 청소를 마치고 식당으로 가려고 했는데
미라이 군은 뒷수습을 하느라 오는 데 엄청 오래 걸리고, 다른 친구들만 먼저 다 가버렸다. かわいそう!
식당에서 우리는 메밀소바를 먹었다. 나는 구운 연어와 함께 먹었는데, 마지막 식사로서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음식을 먹다가 점원 분께서 면을 삶고 남은 면수를 주셨는데, 이 면수는 간장에 조금 넣어서 차처럼 마시는 용도였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정말 맛있었다. 따뜻한 차 같으면서도 쇼유 간장의 감칠맛이 느껴져서 일품이었다.
다음에 일본에 와서 소바집에 온다면, 꼭 다시 해보고 싶은 방식이었다.
소바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우린 다시 구로카와 합숙소로 돌아왔다. 구로카와 합숙소에는 엊그제같이 시끌벅적하게
돌아다니는 하나 친구들과 실무자분들, 아침 식사용으로 진열된 간식들은 온데간데 없고 잘 정리된 이부자리와
캐리어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직 일본에 온 게 제대로 실감도 안되는 것 같은데, 벌써 떠나는 것 같아 매우 아쉬웠다.
생각해보면 5일은 절대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모두와 함께 했기에 더 짧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캐리어를 들고, 하나 멤버 모두와 찍는 48차 교류회에서의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고 버스에 탔다.
물론 아직 가와사키 하나 멤버들과 모두 작별을 한 건 아니고, 버스에 따라 타준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를 포함해서 다들 어제 늦은 시간까지 잠을 못잤다 보니 처음엔 슈퍼 마리오 게임도 하고,
돌아가는 길을 기념해 사진도 찍다가 잠들어버렸다. 나는 왠지 계속 졸음은 쏟아졌지만 잠은 제대로 안 왔다.
그리고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후, 진짜로 모든 가와사키 친구들과 작별을 하게 되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이후엔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됐다. (단 주드만은 수하물 문제로 전전긍긍하시긴 했다.)
점저 겸 서브웨이도 먹고, 그곳에서 마지막 메론 소다도 마시고, 주드가 사주신 도쿄 바나나도 먹어보고,
면세점에서 전부터 갖고 싶었던 '오타마톤'이라는 장난감도 기념품으로서 구매했다.
일본으로 비행기를 타고 올 때, 카메라에 담기기도 힘들만큼 아주 멀리서 후지산을 살짝 본 적이 있었다.
이번엔 무조건 비행기에서 후지산을 제대로 보겠노라 했거니만, 아무래도 밤이라 그런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인천 공항에 착륙한 후, 아직도 일본에 있었던 게 실감이 안 나서 친구들과 함께 '사실 비행기가 돌아서
일본으로 다시 온 거 아닐까?', '사실 여기가 진짜 일본이고 모두가 몰래 카메라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하는
실없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하나 멤버들끼리 즐거운 추억을 쌓았던 것과 나는 지금 한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해산하면서 교류회를 진짜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총평-
이번 교류회는 내 인생에서 많은 '최초'를 달성했다. 최초 해외, 최초 일본, 최초 하나 교류회 등..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훨씬 더 의미가 깊었던 것 같고, 두 번째를 더 설레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교류회를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점은, 무엇보다도 가와사키 하나를 포함해 모두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부터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 어떤 주제에 대해 깊게 대화를 나눠보는 게 소망이었다.
이 점을 정말 아주 제대로 이룰 수 있어서 정말 기뻤고, 더 많은 일본 친구들, 나아가 다른 국가에 있는 친구들과의
대화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웠던 점은, 당연히도 시간이었다. 5일이 아니라 50일은 더 하고 싶었다. 그래도, 우리 모두에게도
각자의 일이라는 게 있기에 더 늘리긴 그렇고, 포럼과 자유 탐방, 전시관 탐방 등을 꾹꾹 눌러담은 5일이었기에
더 길었으면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적어도 불만족스럽진 않았다.
난 25기 편입생인데다가 중간에 여름 하나를 못 갔기 때문에 사실상 이게 현기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교류회였다.
앞으로는 25기 OBOG로서, 앞으로의 하나에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잠깐잠깐 교류회도 들러보고,
다른 일로 일본에 가면 가와사키 하나 친구들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그리고 리나가 추천해준 '메리와 마녀의 꽃'이라는 영화를 한국에서 한글 자막을 구해 봤는데,
평점이 낮았지만 나에겐 꽤 재미있었다. 킬링타임용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