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무늬
1.이 문자 문자를 그린 이는 누구일까?. 상형문자인 갑골문자는 아이가 그린 그림 같다. 형상을 보며 문자를 유추하는 재미가 있다. ‘옷’ 자를 닮은 그림은 누가 봐도 사람 人일터 사람이 누워 있는 그림은 죽음을 뜻하는 死이다. 죽은 사람의 머리에는 머리카락을 표현한 듯 세 줄이 그어져 있다. 죽은 이는 누구인지, 그림을 그린 이와는 어떤 관계인지, 애도의 그림일까 부고의 의미일까. 그림은 많은 상상력을 불러온다.
2.똑바로 서 있는 사람 머리 위에는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올곧게 서 있는데 살 活로 변천되었다. 세 줄은 머리카락이 아닌 모양이다. 기운을 뜻하는가? 증명되지 않은 나만의 유추로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작용의 근원인 氣로 바꾸어 생각하니 死와 活이 그럴듯하다. 기가 흩어져 널브러지면 죽음이요 기가 바르게 서 있으면 살아있음이 아니겠는가. 삶과 죽음만큼 확실한 무늬도 없다.
3.점입가경이다. 사람을 그린 ‘옷’의 형상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몸통 부분에 마름모가 생겼다. 마름모 안에는 알 수 없는 무늬가 그려져 있다. 그 무늬가 내 눈길을 잡고 놓지 않는다. 감정을 나타낸 건가. 웃는 입 모양이 그려진 건 기쁨, 일자로 그어진 건 슬픔, X는 싫어, 안돼 이런 의미일까? 기쁠 憙 슬플 悲 아닐 不 궁리에 궁리를 더해도 형상과 문자의 연결 끝이 와닿지 않는다.
4.글월 文이란다. 마름모는 가슴을 형상한 것이고 마름모 속 그림은 문신을 형상한 것이라고 한다. 마름모 속 무늬가 각기 다른 이유는 부족 구분을 위함이라는 설도 있고 사람이 죽으면 가슴에다 무늬를 문신하여 부활하기를 소망했다는 설도 있다. 설이야 어떻든 삶의 흔적을 나타낸 무늬이다. 나는 이러이러한 부족이었소 우리 부족은 사람이 죽으면 가슴에 문신을 새기며 부활하기를 소망하는 문화가 있었다오. 아하! 그래서 인간의 무늬를 나타내는 인문, 문화라는 말에 紋이 아닌 文을 쓰는구나.
5.존재의 무늬는 참으로 다양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새기는 무늬는 교육이다. 미래를 밝히는 희망찬 무늬다. 집을 짓고 길을 닦고 호수를 만드는 일은 자연 속에 인간이 새기는 편안한 무늬다. 정돈된 논과 밭은 농부로서 이 땅에 새겨 놓은 생존의 무늬일터다.
6.사람에게도 무늬가 있다. 성격과 개성이다. 성격과 개성이 다름으로 부딪치기도 하지만 그것이 하나가 되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다. 그 힘이 만든 아름다운 무늬를 알고 있다.
7.‘U.N기념공원’에는 세계 평화와 자유의 큰 뜻을 위해 인종과 문화가 다른 11개국의 용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6.25 참전 영혼들이 거처하는 이곳은 사만여 명의 전사 중 이천삼백여 명의 유택이 있고 다른 이들은 이름만 새겨져 있다. 각 나라의 정책상의 문제나 종교, 나라마다 다른 장례문화에 따라 안장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이라는 폭력에 산화된 이들도 많다.
8.미국, 필리핀 전사자는 모두 고국 땅에 묻혔다. 유택이 이곳인 미국인은 전쟁이 끝난 뒤 한국에 묻히기를 희망한 사람들이다. 반면 영국의 장례문화는 전사한 곳에 유택을 마련하는 문화라 모두 그곳에 있다. 살아서 돌아간 이들 중에 전우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이곳에 안장된 이도 있다. 가장 어린 전사자는 호주에서 온 17세의 도은트다. 삶에서 선택은 운명적일까 스스로 결정하는 것일까?
9.시대가 변해도 폭력, 평화, 사랑 같은 문제에 여전히 마주한다.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고 아프가니스탄도 전쟁 중이다. 전쟁의 무의미함과 인간의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갑골문자에 새겨 있는 死와 活의 그림이 U.N기념공원’의 영혼들과 겹치며 심금을 흔든다.
10.그 영혼을 갑골문자처럼 표현한다면 어떤 형상이 좋을까. 고인이지만 사람들 가슴에 살아 있으니 서 있는 ‘옷’자를 선택할까 하다가 누운 ‘옷’자를 골라 부활을 상징하는 쇠뿔 모양의 날개를 겨드랑이에 그려준다. 희생한 이들에게 헌정하는 마음의 선물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가뭇없지만 ‘U.N기념공원’에 영면한 사람들은 전설로 후손들 기억 속에 부활하고 있다.
11.U.N기념공원’에서 본 인간애와 평화의 무늬를 떠올리다가 내 무늬를 소환한다. 해 지면 달 뜨는 것처럼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라 아기자기한 패턴의 배열이다. 단조로운 듯 보여도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살려고 한 흔적의 무늬라 불만은 없다. 그래도 살아가는 동안 왕건이 꽃다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욕심이 옆에 슬쩍 앉는다.
12.신은 허공에 빛을 새겨 넣고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들었다. 그곳에 신이 새긴 무늬인 해와 달, 구름 그리고 풀과 꽃 모두 아름답다. 인생은 불확실하고 힘들더라도 그 속에서 가치있는 예쁜 무늬를 짜야 한다는 음성이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