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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째 이야기 (한달 반 여행의 마침)
오하이오에서 캔터키로 들어 가기 직전 아는 분으로 부터 전화가 왔는데 뉴욕에 빨리 올 수 있냐고 한다.
이유는 뉴욕에 오면 일을 할 곳이 있는데 돌아 다니지만 말고 가능하면 서둘러 오라고 재촉을 한다.
조금씩 벌어서 다닌 남은 경비가 이제 몇백 달러 남지 않았으므로 가능한대로 부지런히 올라 가서 다음의
궁리를 만들어 봐야겠다.
뉴욕에 가서 아들을 만나 낡은 전화기를 새것으로 사주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사우나도 가고 그리고 일해
돈이 좀 모이면 전에 내 발길이 닿은 적이 없는 곳으로 다시 떠나기로 마음 속에 흉계를 꾸미면서 나그네
발길을 재촉하였다.
좌우의 경치를 구경하며 인디애나와 오하이오 남부를 훑어 보면서 달리다가 개스가 떨어져 오하이오에서
어느 개스 스테이션으로 들어가니 부부가 운영하며 정비공장을 겸했는데 준수한 용모의 여주인이 기름에
절은 옷 차림으로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파워볼 복권이 1억 달러가 넘기에 5 달러를 배팅하니까 너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며 웃는다.
내가 만약에 1등에 당첨되면 이 주유소를 다시 방문하여 옆에서 일을 거들고 있는 있는 네 남편 아닌 너를
만나러 온다고 하며 셋이 한참을 웃었다. 작고 낡은 이름 모를 시골의 주유소지만 이곳에서 만난 잠시의
인연이지만 미국인들은 남에게 늘 좋은 말을 많이 한다.
이번 여행 전에 뉴욕을 떠나기 전 나의 렉서스가 엔진 쪽에서 연기가 나곤 하길래 정비공장을 운영하는
친구네 가져 갔더니 베어링이 망가져 버걱버걱 소리가 나고 덜렁 거린다 했다. 돈도 없고 그냥 타고 간다
했더니 절대로 먼길을 갈 수가 없다 하기에 대층 살펴보라 했는데 이거 라지에이터부터 워터펌프에 뭐에
모조리 사용불능 되어서 잠시 고민 하다가 수리비 견적을 내고, 그의 부인이 부품상에 연락 하는데 원가만
2`000 달러가 넘는다.
이놈의 렉서스 이젠 떠날 때도 된 듯한데 이것이 속을 썩이지만 이거 없으면 난 이젠 돌아 다니지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옛날 내가 잘나가던 그 시절 헤어진 마눌년 집에서 놀고 샤핑이나 다닐 때 사준 것을
삼년전 헤어지고 나서 가져온 것이다.
아까울 것이 없었지만 소행이 너무 괘씸한 것이라 내가 타던 비엠더블을 처분하고 그때부터 이것을 타고
다녔는데 이젠 돈이 들어 갈 시점이 되었다. 정비공장 친구의 말이 다른 종류였으면 벌써 폐차 시켰을 걸
렉서스 400 이니까 20 만 마일 (32만 킬로)을 넘게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삼년 동안 이곳 저곳으로 마음을 추스리느라 돌아 다닌 거리가 11만 마일 (18만 킬로미터)가 넘는다.
일단 고치고 돈은 어느 놈 내놔도 내 놓을 것이니 며칠 후 떠나야 하니까 서둘러 고치길 부탁했는데 그날
후배가 전화 와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길래 그를 만났는데, 형 떠나지 말고 내 벤츠 500을 아주 줄테니
그걸로 뉴욕이 싫으면 뉴저지에서 콜택시 운전을 하면서 당분간 지내보라고 한다.
산지 일년반 된 깨끗한 차 인데 이 친구 늘 나의 성질을 건드릴까 조심하면서 오히려 제 자신이 죄인처럼
조심스레 방법을 제시하는 후배다. " 됐다 그만해라 " "어허 그만 하라니까 그러네 ..."
내가 어려울 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후배인데 이 친구 입버릇 처럼 하는 말, 형은 지금 충격 때문에
판단력도 흐려지고 돌아 다니다 잘못되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객사할 가능성이 있고 먼데서 죽는다면
시체를 가지러 가야 하는데 기왕에 가까운 곳에서 죽으면 자신에게도 편하다며 `링컨 타운카` 사줄테니
콜택시 회사에서 일을 해보라고 늘 안타까워 하던 친구다.
나와는 이십 수 년전 부터 축구를 같이 하며 오로지 먹고 사는 생활을 제외한 시간에는 축구만 연구하고
축구만을 하면서 몇년 전 까지도 일주일에 5~6 일씩 남미 친구들과 풀 게임 축구를 하며 돈독한 우정을
쌓으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후배로, 이 친구 만나면 자신의 입장에서 날 위한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는 유일한 주변 인물로, 몇년 전부터 경제적 운이 트여 지금은 한 달에 현금 수입으로 칠팔 만 달러를
가볍게 벌어 들이는 것이다.
마침 저녁을 먹자고 연락이 왔다. 자연스레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 친구. 형이 정히 간다면 수리비는
자신이 줄테니 염려는 할 것 없지만 가지말고 뉴욕서 어떻게든지 버티고 살면 방법이 생길거라고 한다.
나는 오클라호마의 딸을 만나야 하고 뉴욕은 사방천지에 보이는 얼굴도 많고 거처할 곳도 마땅치 않아
떠날테니 반복해 말하지 말아라...
원가만 받는 수리비 2400 달러는 미안하지만 네가 직접 줘라 하고 떠나는데 경비로 쓰라고 500 달러를
건네 주며 하는 말, 다니다 차 고장 나거나 돈 떨어지면 연락하라고 당부한다.
그의 부인 말에 의하면 오래전부터 둘이 동성 연애하는 사인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붙어 다니던 후배였다.
이렇게 해서 내게 있던 작은 돈과 500 달러로 이번 여행이 시작 된 것이지 뭔 팔자가 좋아 호화롭게 다닌
여행이 아니었다.
켄터키주의 루이스 빌이 나오는데 상당히 큰 도시에 다운타운이 꽤 발달한 모습이지만 난 이제 한달이 넘는
긴 여정을 끝내기 위하여 반겨줄 사람이 별로 없고 머물 곳도 없는 뉴욕으로 길을 재촉해 가고 있다.
64번 도로를 동쪽으로 계속 달려 켄터키 렉싱톤을 지나고 밤길에 찰스타운을 그대로 지나 계속 달렸는데
이젠 앞을 분간하기 힘든 폭우가 쏟아진다, 하나님 저는요 시력이 별루여라~
하여간 끝없이 올라만 가는 길을 따라 어렵게 `웨스트 버지니아` 에 들어왔으니 역시 의지의 한국인 아닌가.
(근데 한국인과 미국인 중 난 어디지? 한국계 미국인? )
20 수년 전 어느 주말에 혼자서 차를 몰고 뉴욕을 출발해 간 곳이 `웨스트 버지니아` 였는데 이번엔 서부의
록키 산맥과 함께 미국의 거대한 양대 산맥인 그곳의 아팔라치아 산맥을 다시 한번 돌아 보기 위해서 이며
내가 좋아 하는 "Take Me Home Country Roads" (내 고향에 있는 그 시골길로 날 데려다 줘요) 라는
칸츄리 노래를 부른 칸추리 음악 가수 John Denver 의 발자취를 한번 더듬어 보자는 뜻이 있었다.
존덴버는 십여년 전 자신이 몰던 날개가 위 아래 달린 구식 골동품 비행기 사고로 바다에 추락해 죽은 안타까운
전설적인 컨츄리 뮤지션 이었다.
Take Me Home Country Roads 1. (웨스트 버지니아 그 시골길로 날 데려가요)
2. (그곳에 나를 데려가줘요)
3. (산 아가씨 그대 사는 곳에 살고 싶어)
4. (금강에 살으리랏다)
노래의 뉘앙스에 맞춰서 한글 제목을 만들려니 쉽지 않네요. 마지막 네번 째 가곡의 제목이 더 잘 맞을거 같아요.
Almost heaven, West Virginia~ Blue Ridge Mountains~ Shenandoah River
Life is old there~ older than the trees~ younger then the mountains ~
growin like breeze~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웨스트 버지니아 ~ 불루릿지 산맥과 쉐난도 강은~ 그곳에 있은지 무척 오래 되었고 ~
그곳에서 자란 나무들 보다 오래 되었어 ~ 높은 산 보다는 오래 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산들바람 부는 그 곳에서~
불루릿지 산맥과 쉐난도 강은~ 더욱 아름답게 변해만 가요 ~
(제임스 엉아의 번역/ 웨스트 버지니아는 산속의 숲과 강은 세월이 갈수록 아름다워 지는 곳이라는 뜻 입니다)
이 노래의 번역은 미국인들의 사고 방식에서 생각하고 해야지 그저 학교에서 배운 영어 실력으로 직역 해 놓으면
잘 맞지 않는 다는 것이 저의 의견 입니다.
이 노래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는 쉐난도 강, 그 깊은 계곡을 다녀온 엉아의 이야기가 아래에 나옵니다.
아래는 후렴으로 제가 여행할 때 자주 흥얼 거리는 부분 입니다.
Country Roads~ take me home~ To the place~ I belong~ West Virginia~
mountain momma~ Take me home~ country roads~ Take me home now~
country roads~ Take me home now~ country roads~
칸추리 로~ 태크미 홈~ 투디 플레이~ 아비 롱~ 웨스트 빌지니아~ 마운틴 마마~
태크미 홈~ 칸추리 로~ 태크미 홈 나 ~ 칸추리 로~ 태크미홈 나 ~ 칸추리 로~
웨스트 버지니아~ 산에 사는 여인아 (산 처녀야)~ 아름다운 그대 사는 곳 그 시골 길로 날 데려가 줘요 ~
아름다운 시골길이 있는 그대 사는 곳으로~ 그대 숨결이 묻어 있는 추억어린 그 신작로 길~
나는 그곳에서 그대를 바라보며 살고 싶어요~
(제임스 주 엉아의 번역은 이렇거든요, 그곳을 직접 다니며 봤으니까 뉘앙스가 아주 잘 맞을 거에요)
폭우가 쏟아지는 밤길에 Beckley 라는 아팔라치아 깊은 산맥 속 자리 잡은 마을까지 가기로 하고 달리다
보니 길 표지판을 잘못 식별하여 거의 버지니아의 리치몬드까지 갔었지만 다시 돌아서 오고 있었다.
비는 쏟아지고 산맥을 오르는 길은 뱀이 기어간 모습의 직선은 흔적도 없는 그런 곳이 동쪽으로 애팔라치아
산맥을 넘어가는 64번 도로인데, 밤을 달려 애팔라치아 산맥을 넘어 남북전쟁 격전지였던 버지니아 남부의
리치몬드로 해서 95번 도로를 따라 남부 `훌로리다` 방향과 북부 `워싱턴 DC` 와 뉴욕 쪽으로 가는 트레일러
들이 꼬리에 꼬리가 연이어 닿아서는 폭풍우 속을 달리고 있는데 그 숫자가 엄청나다.
이곳은 길이 완전히 산악 지역으로서 밤길에 잘못 들어서면 쉽게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으며
트레일러들의 폭주로 인해 운전이 미숙한 사람이라면 정말 조심해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고생을 많이 한 곳이 애팔라치아 산맥의 여행이었는데 길을 잃고 헤메다 내가 목적지로
삼은 `비클리` 마을로 겨우 들어 왔다.
이런 험난한 산속에 아주 넓은 장소를 휴양지로 만들어 놨는데 규모는 역시 미국인들의 스케일 그대로 였다.
이젠 이곳서 하루 자고 "추억 속의 가수 존덴버" 그 노래속의 쉐난도 강, 그 깊은 계곡을 가면 되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호텔이 있는데 한바퀴 돌다 밖에 보이는 문짝부터 좀 고전적으로 생긴 호텔을 골라서 들어갔다.
문에 써 붙여 놓은 표지가 있.(우리 호텔은 애완 동물들이 여행객들과 함께 들어와 자는 것을 환영 합니다)
일년 반전 나이아가라 폭포의 그 식당에서 아빠를 기다리다 눈을 뜬채 죽은 나의 사랑하는 진도개 `주니어`
생각에 마음이 슬퍼진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걸어오는 호텔 사람들과 얘기를 주고 받으며 뒤편의 이층에 있는 방을 배정 받아
차를 옮겨 대고 들어 가보니, 이런~ 왜 하필이면 퀸 사이즈의 그 넓은 침대가 두개 씩이나 있는 것이다.
방에 들어 서면서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거 가는데 마다 호텔 주인들이 끝까지 나를 약 올리는군 ~
이혼하여 혼자 사는 남자를 따라 올 여자가 없고, 김삿갓 되어 이곳 저곳 다니는 외로운 이 나그네를 위로는
못할 망정 넓은 침대를 두개 씩이나 놔두고 약을 바짝 올리는 그대의 처사는 도대체 제대로 되어 먹은거냐 !!!
꽤 호화로운 장식으로 된 그 호텔, 목욕탕에 뜨건 물 가득히 채우고 들어가 앉으니 피곤한 몸이 녹아 내린다.
잠시 나가서 허기진 배를 좀 채우고 들어와 어둠 속에 잠긴 캄캄한 언덕을 보고 저곳에 야생 동물들이 뛰어
놀겠지 했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그렇게 짐작했던 곳은 호텔 바로 옆 언덕에 있는 `공동묘지` 였다.
일단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고 이제 본격적으로 칸추리 뮤지션 "잔덴버" 의 발자취를 따라 보기로 했다.
날은 개었고 사방이 트인 가운데 19번 도로와 39번 도로를 바꾸어 가면서 끝없는 계곡을 오르 내리고 돌기를
끊임이 없이 하면서 감탄을 하고 있었다. 계곡과 계곡의 벼랑을 깎아서 만든 큰 도로들과 숲속의 작은 소로들...
나는 여행 중 미국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 이 가장 신기한 사람인데 이 넓은 대륙에 어느 곳이라도 넓은
길을 어쩌면 그렇게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하며 늘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다.
계곡으로 난 길은 이제 끝이 어딘지 모른채 내리막길이 되었고 이렇게 내려가는 지형이 한번에 수십 마일씩
오르막 길 없이 밑으로 밑으로만 내려 가는 것이다.
이렇게 사방을 감상 하면서 오래도록 달리는데 앞에 커다란 내리막 길 처럼 된 다리가 나온다.
난간은 그저 평범하며 넓고 상당히 긴 다리인데 표지 판이 붙어 있다. " 쉐난도 계곡의 다리 "
천천히 건너자 반 마일 저 앞에 ` 관 망 대 ` 표지 판이 붙어 있는데 그리로 들어 가니 넓은 주차장이고 잔디가
잘 다듬어져 있고 여행 안내소가 있으며 여러대의 차들이 세워져 있고 뿌리는 빛속에 계곡 아래에 다녀 오는
사람들이 있다.
먼저 안내판을 읽어보니 1979년에 인가 건설된 다리, 저 아래 쉐난도아 강 에서 다리 까지의 높이는 "300" 미터
까마득한 높은 곳, 절벽과 같은 양쪽의 골짜기에 걸쳐 놓여진 다리인데, 아랜 아치형의 복잡한 철골로 둥글게
이쪽서 저쪽의 계곡에 걸쳐 놓은 아름다운 다리,
비는 흩뿌리고, 옅은 안개가 계곡을 아주 멋들어지게 수를 놓았는데 그곳으로 내려가는 나무로 만든 긴 다리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쪼리라고 불리는 샌들을 신은 채 아무도 없는 계곡을 천천히 내려가면서 생각하기를 이곳서 불곰이 나무 다리
위로 튀어 오르면 이거 미끄럽고 피할 곳이라곤 저 아래로 뛰어 내리는 수 뿐이 없는데 만약의 경우 뛰어 내리며
저 아래 나무를 어떻게든 잡기만 하면 살아 날 가망은 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래까지 도착하는 시간은 대략 한 시간이며 좁은 듯 넓은 "쉐난도아" 강물이 급하게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니 저 장관을 보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은 천상에서 희미한 저곳을 내려다 보며 억울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교해 말하자면, 한국의 깊은 산속의 계곡 물은 시냇물 처럼 흐르지만 "애팔라치아" 거대한 산맥에 흐르는 계곡
물은 시냇물 아닌 커다란 강물이 되어 흐르는 것이 다르다.
다시 말하면 내가 미국에 오기 전에 갔었던 실머리 처럼 떨어지던 서귀포 옆에 있는 폭포와,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 있는 전 세계의 물이란 물은 모두 이곳에 떨어 진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규모와
비교 하듯 규모가 전혀 비교를 할 수 없는 그런 모습이다.
쉐난도 밸리의 다리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데 내가 어찌하다가 그길로 가게되어 운이 좋아서 만나게 되었다.
이 글을 보는 분 중, 미국 워싱톤 디시 근처에 오면 어떻게 해서든 이곳 웨스트 버지니아의 애팔라치아 산맥을
돌아 보기를 권고 한다. 도시로 다니는 여행도 좋지만 이런 산속에 아름다운 사연들이 수없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자.
누가알어, 존덴버 노래 속에 나오는 "웨스트 빌지니아의 산속의 여인"을 만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수 있을지...
천국의 문턱, 이곳에 다리를 놓아 천국에 쉽게 들어가게 하려는 계획을 만들고, 까마득히 깊은 안개낀 아름다운
계곡을 사이를 연결하기 전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을까...
아름다운 저곳 양쪽에 높은 기둥 세우고 `서스펜션브릿지 강철줄`에 다리를 매단 모습으로 할까 무척 고심했을
것이다. 이곳 지형을 유심히 보면 설계자들이 돈에 눈이 팔려 양심을 저당 잡히고 아무렇게나 선을 쉽게 그어
만들 수 있는 곳이 아닐듯 하다.
자연 경관 훼손을 최소화 해서 단순하게 하고 양쪽은 모두 막아서 전혀 보이지 않게해야 해야지 난간에 틈새를
만들면 경치에 취해버린 오가는 차량들 사고는 물론이고 황홀경에 빠져 제 자신들도 모르게 낙화로 변해 유수에
떨어져 흐르기 십상이다. (낙화유수: 꽃은 떨어지고 물은 흐른다는 뜻)
서울의 "아리수" (한강)는 인생의 궁지에 몰린 가여운 인생들이 뛰어내려 목숨을 끊으려 사람들이 찾아 온단다.
`신의 조화` 로 만들어진 이곳 너무나 수려한 경관 때문에 고심에 고심을 했을 관계자들의 배려에 의해서 결국
다리의 모양보다 사람 목숨을 중요시 하기로 결정하여 정말 볼품없이 윗 부분을 만들기로 한거 같다는 것이다.
( 나의 생각 )
2 년전 뉴욕에서 갑자기 먹고 사는 일이 어렵게 되어 00 관광회사 가이드로 석달을 일했는데 경험한 살아있는
여행 지식을 토대로 가이드를 하는데. 한편에선 모함하는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된 것들, 그것도 불법체류자로
아는 것 없고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가이드가 지천에 널렸는데,
책을보고 줄줄외워서 읊어대는 그런 사꾸라 가이드 그것들의 시기와 모함에 중도에서 집어 치운 경험이 있다.
돈이 되는 코스, 한국서 오는 그들 말로 "물좋은" 후려 먹을 수 있는 단체 관광객들은 오래 굴러먹은 제놈들이
가고 미국에 산지 30 여년 된 여행이라면 안가본 곳 보다는 가본 곳이 많고 한인들 아닌 미국 인들과 3 년 전
까지 살아 온, 가이드로는 경쟁자가 있을 수 없는 막대한 관광 지식의 소유자를 이것들이 험담하며 헐뜯는데
정글 속 하이에나 보다도 더한 자들이 사방에 즐비 하고 사람이 비굴해질 것 같아 그만 두었다.
강타자가 들어오면 밀려나 수입이 적은 곳을 배정받게 되고 생계와 연결되는 수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므로
가이드 세계는 인간성이 마비된 곳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만날 일 없는 에라~ 강아지 만도 못한 잡 X 들 ~
한국에 아름다운 산악과 들판이 많이 있지만 그곳과 이곳은 나라의 면적이 다른 만큼, 보이는 모든 사물이 비례
하여 그만큼 규모가 대단하다고 보면 된다.
비가 연이어 쏟아지고 간밤에는 여러 시간을 올라 오기만 했는데 이젠 끝없이 수백리 길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만
가는 내리막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 갈 79번 도로를 찾아 앞을 행하여 나는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사랑하는 " 웨스트 버지니아 "야 내게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생기면 반드시 이곳 깊은 산속의 너를 만나러
그 여인과 함께 올 것이니 그때까지 우린 서로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한다.
내가 오래전 늘 외우고 다니던 시 하나를 네게 들려주며 우리 여기서 기약없는 작별의 인사를 나누기로 하자.
님은 갔습니다.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라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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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골이 깊으면 언젠가는 높은 산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글 솜씨가 보통이 넘습니다. 얼렁 뉴욕으로 돌아가 정착하시고 새로운 일에 매진하셔서 돈도 많이 버시고 글도 자주 올려주시길 바랍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30.gif)
인생스토리나 글솜씨나 신앙이나 여러가지로 에사로운 분이 아니신듯 한데, 마음의 응어리진 증오를 풀어내는 방법만 찾아내시면 모든 게 훨씬 나아지리라 생각이 드네요. 그것이 자신을 많이 상하게 하고 남은 인생도 힘들게 할 거 같아서요. 그게 어떤 방법일지는 모르겠지만, 쉬운 일도 아닐테지만... 휴~ 건강하세요
다음 달 이후에 다시 올께요 안녕히 계세요. 사랑해요 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