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첫 메이저대회 호주오픈이 코로나를 뚫고 어렵사리 열렸다. 출전선수 2주간 자가격리, 13일 이후 무관중 경기, 각종 방역조치로 분위기는 예년과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메이저대회가 큰 탈없이 개최됐다는 데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이번 호주오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뭐니뭐니 해도 네트와 경기장 안팎에 새겨진 기아의 새 로고였다. 1994년부터 17년간 사용해온 빨강색 타원형 안 영문 정자체를 확 바꾼 로고다. ‘KIA’ 타이포그래피에서 ‘K’자와 ‘A’자의 끝을 같은 각도 사선으로 처리하고 단순화해 날렵함과 역동성을 강조했다. 가히 호주오픈의 ‘신스틸러’라 할 만하다.
세 글자가 이어져 얼핏 보면 ‘W’같이 보이기도 해 보는 이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시각적 만족도가 높은
수작으로 평가된다. 특히 관중의 시선이 집중되는 네트 양끝에 로고 표출은 메이저 스폰서의 특권이다.
기아는 2002년 이후 20년째 호주오픈 메이저 스폰서를 맡아왔다. 호주오픈 사상 최장기 메이저로 이제 호주오픈 하면 연상되는 터줏대감이 됐다. 올해도 미디어용 백드롭과 센터코트인 1만4800석 로드 레이버 아레나 펜스,
전광판, 관중석 곳곳에서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대회장인 멜버른 올림픽파크에 전기차 니로 전시관을 마련하고 호주 출전선수들을 초청해 홍보행사를 올 들어 로고와 기업 비전, 전략을 혁신한 기아의 글로벌 홍보무대가 됐다. 하지만 코로나 탓에 모든 활동이 위축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2004년부터 볼키즈 프로그램이 그 중 하나다.
볼키즈는 경기 중 원활한 볼 공급과 처리를 돕는 스탭을 말한다. 주로 10대 청소년들이 맡는데, 기아는 해마다 국내에서 100대1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한국대표 볼키즈 20명을 뽑아 보냈다. 이들은 세계 각국에서 온 300여 명의 볼키즈와 함께 코트에서 볼 처리를 도왔다.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이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에 참여해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로 인기가 높았는데, 올해 코로나로 인해 중단된 것. 월드투어 테니스대회 관전문화를 주도해온 <테니스피플> 참관단 또한 올해는 아쉬움 속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밖에 온라인 사진·영상 콘테스트, 대회 공식 운영차 제공, 기아차에 탑승한 선수 인터뷰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이벤트 등 다양한 관객 참여 행사도 취소 또는 대폭 축소됐다. 멜버른의 활력이자 매력으로 빛난 호주오픈의 역동적 에너지가 가라앉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아의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고 역동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살려준 호주오픈 홍보효과는 자체 조사결과 연간 3억 달러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기아는 호주오픈 외에도 세계축구연맹(FIFA), 유럽축구연맹(UEFA), 미국프로농구(NBA) 등을 후원하고 있다. 국내에선 기아 타이거즈 프로야구단을 운영 중이고, 국내 유일의 국제프로대회인 코리아오픈 타이틀 스폰서를 맡기도 했다.
메이저스폰서의 특권, 네트 로고
국산자동차의 원조 기아자동차는 올 들어 로고뿐 아니라 아예 사명부터 바꿨다. 기업명에서 ‘자동차’를 떼어 ‘기아’로 변경했다. 제조업을 넘어 미래사회 혁신모빌리티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미다. 사명, 로고 교체와 동시에 기업정신과 정체성 자체를 새롭게 하겠다는 혁신인 셈이다.
기아는 지난달 15일 유튜브 채널과 웹사이트를 통해 비대면 ‘뉴 기아 브랜드 쇼케이스’를 열고 인간의 본능이자 권리인 자유로운 이동을 실현시키는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이 될 것임을 선언해다. ‘Movement that inspires’란 새 브랜드 슬로건도 발표했다. ‘영감을 주는 이동’을 지향하겠다는 뜻이다.
기아는 올해 ‘플랜S’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차, 모빌리티 솔루션 및 서비스, 목적기반차량(PBV) 등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서 앞서가겠다는 중장기 전략이다. 청정 에너지, 재활용 소재 활용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모빌리티 생산체계를 갖추고 2027년까지 7개 전기차 전용 라인업을 선보일 계획이다.
모든 차급에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가 적용된다. 업계에선 전자상거래와 자동차 공유서비스 급성장에 따라 PBV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있다. PBV란 유연한 플랫폼에 사용자 요구에 맞춰 기능을 조절해 탑재하는 통합모듈형 차량을 말한다. 기아는 공유차량과 저상물류 차량, 배달차량 등 수요가 2030년까지 5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1944년 경성정공이란 사명으로 창업한 기아차는 한국 자동차 역사의 산 증인이다. 첫 국산 자전거인 삼천리호 자전거를 시작으로 오토바이, 삼륜차, 승용차를 잇따라 개발했다. 1962년 일본과 기술제휴로 만들어낸 브리사는 현대차의 포니보다 1년 앞선 최초의 국산 승용차였다.
자동차업계는 브랜드 마케팅의 본산이다. 신차가 나올 때마다 컨셉트에 맞는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데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기아차는 이 브랜드네이밍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1980년대 정부의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에 따라 승용차 생산이 금지된 가운데 소형 승합차를 개발해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바로 ‘봉고 신화’다. 봉고의 성공에는 시장수요에 맞춘 제품력뿐 아니라 경쾌한 브랜드 작명이 큰 몫을 했다. 봉고는 아예 소형 승합차의 일반명사가 돼 버렸다. 브랜드네임이던 지프가 차종명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브랜딩 성공은 차종제한 철폐 이후 승용차 프라이드로 이어졌다.
1999년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기아차는 2009년 알파벳 K와 숫자로 구성된 알파뉴메릭(alphanumeric) 차명을 채택했다. 준대형 세단 K7으로 시작해 K5, K9, K3 등 4개 차급 계열을 완성했다. 기아, 코리아, 역동성을 나타내는 ‘kinetic’의 이니셜인 K 시리즈는 정체성을 잘 살린 성공적인 작명으로 평가 받았다.
근자엔 메이저대회도 브랜드화가 대세다. 테니스의 원조 윔블던, 프랑스오픈의 롤랑가로스에 이어 호주오픈은 2018년부터 이니셜 ‘AO’를 밀고 있다. 단순하게 디자인된 상징 비주얼과 함께 요즘엔 대회 관계자, 방송 진행자들이 ‘에이오’라 부르는
걸 흔히 들을 수 있다.
오룡 ‘오늘의 코멘터리’ 편집주간 | tennis@tennispeople.kr
첫댓글 난 별로든데
기아 로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