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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 오늘의 역사
2021년 북한 철도 열차에서 동해안으로 탄도미사일 2발 발사
북한은 9월15일 발사한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철도기동미사일연대의 검열사격 훈련'이라고 밝히며 열차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이날 발사는 김정은 당 총비서는 불참하고 박정천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참석했다
철도기동미사일연대는 15일 새벽 중부산악지대로 이동해 800km계선의 표적지역을 타격할 데 대한 임무를 받고 훈련에 참가했으며 "화력임무에 따라 조선동해상 800km 수역에 설정된 표적을 정확히 타격하였다"라고 전했다.
철도기동미사일연대는 지난 1월 당 제8차 대회를 통해 만들어졌으며 "새로운 국방전략 수립의 일환으로 필요한 군사작전 상황 시 위협 세력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집중타격 능력을 높이며 각종 위협들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대응 능력을 강력히 향상시키기 위함"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철도기동미사일연대 조직과 검열사격 훈련은 지난 11~12일 북한이 발사한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과 마찬가지로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그간 차량에 설치된 이동식발사대(TEL)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는 모습을 주로 공개해 왔으나 열차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을 공개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파악된다.
2018년 태풍 망쿳 필리핀 강타 사망 30명 이상 이재민 10만5천명
2018년 허리케인 플로렌스 미국 동남부 상륙 폭우 1000mm 사망 13명 76만가구 정전
2015년 최초의 돔 구장 고척스카이돔 완공, 돔 구장 자리는 영등포교도소 자리
2011년 전력대란(Black Out), 발생
전력사용 급증 예비전력이 20만KW 이하로 떨어지자 한전이 대량정전 막기 위해 예고 없이 1415만 가구 순환단전.
2010년 日 당국, 2004년 이후 첫 외환시장 개입
2005년 노무현 대통령 뉴욕 UN총회 기조연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제60차 유엔총회 고위급 본회의(유엔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미국 뉴욕을 방문했다.
노 대통령은 미국 뉴욕 방문 이틀째인 15일(한국시각) 유엔 정상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공동번영의 질서를 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 남아 있는 제국주의적 사고와 잔재를 완전히 청산해야 하고,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강대국 중심주의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편 문제와 관련, 상임이사국 증설을 주장하는 일본, 독일, 인도, 브라질 등 이른바 ‘G4’ 국가 입장에 반대하고, 비상임이사국 증설을 주장하는 한국을 비롯한 중견 국가 그룹의 입장을 언급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오늘날 국제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나라들이 먼저 자신들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각별한 성찰과 절제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정부 관계자는 일본을 겨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안보리 진출은 아프리카 연합이 알제리의 강력한 반대로 G4안을 거부하면서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EU가 평화와 공존의 질서라면서, 동북아에도 EU 같은 질서가 실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남바린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은 몽골 건국 800주년인 내년에 노 대통령의 방문 초청 의사를 밝혔다.
2004년 카이저 미 국무부 부차관보 스파이 혐의로 체포
도널드 카이저 전(前) 미국 국무부 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 도널드 카이저 전(前) 미국 국무부 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가 대만에 미국 정보를 넘겨준 혐의로 지난 15일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가, 하루 뒤인 16일 보석금 50만달러(약 5억8000만원)를 내고 일단 풀려났다.
존 애슈크로프트 미 법무장관은 이날 “카이저 전 부차관보가 지난해 9월 은밀히 대만을 방문한 뒤 국무부 자체 조사에서 이에 대해 허위 진술한 혐의가 드러나 FBI에 체포됐으며, 버지니아 동부 연방 법원에 기소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 방문 당시 대만 정보 요원 2명과 접촉한 사실을 조사 과정에서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직책상 미국과 외교 관계가 없는 대만을 공무와 관련해 방문해서는 안된다.
그의 변호사는 “대만 방문은 공무가 아닌 관광 목적이었기 때문에 부인을 포함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사적으로 간 것”이라고 전했다. 그의 부인은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이다.
카이저 전 부차관보는 이 외에도 올 7월 31일 미국 워싱턴DC 근교 식당에서 대만 정보요원 2명에게 미국 정부 직인이 찍힌 것으로 보이는 봉투 두 개를 전달하고, 지난 4일에는 ‘토론 주제’라는 제목이 붙은 6장짜리 서류를 이들에게 건네는 장면이 FBI 요원들에게 목격됐다. 이에 대해 그는 해당 서류는 대만 정보요원과 업무차 만날 때 늘 준비하는 자료였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미국 육상선수 몽고메리, 남자육상 100m 세계신기록(9초78) 수립
2002년 9월 15일 미국의 육상선수 몽고메리가 파리그랑프리파이널 육상 남자 100m에서 9초78의 기록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우승했다. 100m에서 9.78을 기록, 모리스 그린의 종전 기록(9초79)을 경신하였다.
몽고메리는 출발신호가 울린 지 불과 0.104초 만에 스타트 블록을 박차고 나갔다. 정상권 선수들의 출발 반응시간인 0.2초 내외보다 훨씬 빠른 스타트였다. 게다가 날씨도 몽고메리를 도왔다. 샬티 스타디움엔 기록 인정 한계치인 2m의 뒷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만 더 강했으면 몽고메리의 기록은 공식으로 인정받지 못할 뻔했다.
그동안 모리스 그린의 기록은 한때 ‘철옹성’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린이 1999년 6월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던 9초80의 벽을 최초로 넘은 이후로, 육상 장비와 훈련 방식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3년여 동안 그린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다시 그 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몽고메리의 기록 경신으로 해묵은 ‘인간 한계’에 대한 논쟁이 다시 한번 불붙었다
2001년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 서울에서 열림
2000년 제27회 시드니 올림픽 개막
뉴 밀레니엄 첫 지구촌 스포츠 제전인 시드니 하계올림픽이 2000년 9월15일 화려한 개막식을 갖고 17일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시드니 홈부시베이 올림픽 파크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진행된 개막식에는 남북한과 개최국 호주 등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 199개국과 개인자격으로 참가한 동티모르에서 모두 1만6600여 명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했다. 남북한은 `코리아`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96번째로 동시 입장, 11만 관중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윌리엄 딘 호주 총독이 개막을 선언하고 올림픽 찬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올림픽기가 게양됐다. 성화 최종주자인 호주 원주민 여자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이 점화한 물속 성화대가 공중에 솟아 오르면서 개막식은 피날레를 장식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8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0개, 총 28개의 메달을 따냈다
2000년 전국 의료계, 의약분업 강행에 반대하며 3차 총 폐업
1999년 정부기록보존소, 4·3사건 재판기록 첫 공개
제주4·3사태 당시 군법회의에 회부된 인사들의 명단이 담긴 수형인 명부와 민간인 재판기록이 1999년 9월 15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약 200쪽 분량의 수형인 명부는 1948년 12월부터 1949년 7월까지 한라산 토벌작전에서 붙잡혀 군법회의에 회부된 1650명의 이름과 직업, 연령, 본적, 형량, 복역형무소 등을 담고 있다. 재판기록은 1948년에서 1955년까지 제주-광주-목포지검 등에서 4·3사건에 연루된 민간인 1321명을 재판한 기록으로, 1인당 5~20쪽 분량의 방대한 양이다.
이 문서들은 정부기록보존소가 1998년 8월부터 작업해 부산지소 지하에서 찾아낸 것이다.
1993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監儀軌)」 한 권 반환
1989년 최저임금제를 10인 이상 전 산업체로 확대하는 시행령개정안 확정
1983년 메나햄 베긴 이스라엘 수상, 공식 사임
1982년 과기원, 핵자기공명 단층촬영기 개발, 촬영에 성공
1982년 한양대병원 장기은행 발족
1981년 중국, 국공합작 제의
1978년 한국-솔로몬군도 국교 수립
1978년 정효주양 첫번째 유괴
1977년 고상돈 에베레스트 등정 (세계8번째 국가)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 흥분과 감격에 찬 고상돈(高相敦)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본부 베이스캠프로 날아들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에베레스트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의 발걸음을 허용한 것이다. 산악인으로는 55번째, 국가로는 8번째였다. 고상돈과 셰르파 펨바 노르부가 마지막 베이스캠프 C5(8500m)를 출발, 정상공격에 나선 시각은 새벽 5시30분. 6일 전 박상렬 대원이 정상공격을 시도했으나 악천후와 산소 부족으로 100m를 남겨두고 포기했던 터라 마지막 공격에 나선 고상돈의 어깨는 더욱 무거웠다.
무의식적으로 앞만 향해 가고 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셰르파의 외침이 들렸다. “거기가 정상이다!” 불현듯 고상돈의 눈에 히말라야 영봉들이 내려다보였다. 김영도 대장을 비롯한 18명 대원들의 피땀 어린 5년간의 훈련과 극한의 사투가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고상돈의 감격은 2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그는 1979년 5월 29일 알래스카 매킨리봉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길에 실족, 600m 빙벽 아래로 추락했다. 한라산 기슭에서 태어나 산에서 살다 산에서 죽은 31세의 짧은 인생이었다.
1976년 신민당(新民黨) 당권교체
신민당이 1976년 9월 15일 시민회관 별관에서 재적 7백73명 중 7백67명의 대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수습전당대회를 열고, 1979년 총선후까지 당을 이끌 최고위원으로 이철승(1백42표), 신도환(1백18표), 이충환(1백3표), 유치송(98표), 고흥문(87표), 김재광(72표) 등 6명을 선출했다. 이후 16일 대표최고위원선출에서는 김영삼·이철승·정일형이 경합을 벌였다. 그러나 1차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2차투표를 실시한 결과 이철승 의원이 출석대의원 7백66명의 과반수인 3백89표를 획득, 3백64표를 얻은 주류(主流)의 김영삼씨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로써 신민당은 1974년 8월 전당대회 이후 2년 1개월 만에 당권이 교체됐다. 정일형씨는 2차투표 때 이철승씨를 당수로 추대할 것을 선언하고 경합을 포기했다.
1975년 조총련계 재일동포 1차 7백여명 추석성묘차 모국방문
조총련계 재일교포 추석성묘단 1진 50명이 1975년 9월 15일 추석을 앞두고 부관 페리호편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성묘단은 연말까지 10차례에 걸쳐 1천여 명이 모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조국땅을 처음 밟으며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해방 30년 만에 처음인 이들의 모국방문은 재일거류민단의 주선에 따른 것으로 조총련계 동포가 조국의 참모습을 볼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고, 떨어져있던 가족-친지들을 만날 수 있게됐다는 점에 그 의미를 가졌다.
재일교포 모국방문은 한 핏줄을 타고난 동포애가 얼마나 짙은 것인지를 입증했고, 순수한 인도주의가 이념이나 체제를 초월할 수 있음을 확인했으며, 30년에 걸친 공산주의의 허위선전과 대남 비방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깨닫게 했다. 조총련은 재일교포 모국방문이 성공하자 총력을 기울여 공갈 협박 등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동포들의 모국방문을 방해했다.
1972년 한국-서사모아 국교 수립
1971년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 창립
1969년 한국주택은행, 주택복권 발매 시작
1969년 9월15일 주택은행이 정기 발행 복권의 효시인 주택복권을 처음 발행했다
주택복권의 발행목적은 무주택 군경 유가족, 국가유공자, 파월 장병의 주택마련을 위해서다
당시 복권의 액면금액은 100원으로 50만장이 발행되었다
1등에게는 300만원을 지급했다
이후 발행규모가 확대 되어 1972년 6월 제32회부터 월 3회 발행하다가 1973년 3월부터 주 1회 발행하였다
1968년 박정희대통령, 호주-뉴질랜드 방문 등정
1966년 한국비료(韓肥) 사카린 밀수사건 신문보도로 누출
1966년 9월 15일 대재벌 삼성계의 직계 한국비료회사에서 건설자재를 가장, 수천만원어치의 사카린을 밀수입한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 더욱이 적발한 세관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에 해당되는 큰 밀수사건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고 2천만원의 벌과금 추징만으로 사건을 흐지부지하고 말았음이 밝혀져 국민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또 관세청과 경찰 등에서도 여러측면에서 삼성측을 두둔하는 인상을 주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9월 19일 삼성밀수의 전면 재수사를 명령했다. 대검 특별수사부는 10월 6일 재수사 착수 18일 만에 이창희 한국비료 업무담담 상무 등이 회사에 내자 조달을 위해 4월 중순 차관자금으로 사카린 원료인 OTSA 10t을 밀반입, 5월 14일 이 회사 이일섭 총무담당 상무를 통해 이를 금북화학에 매각, 관세, 특관세 등 5백20여 만원을 포탈한 것으로 밝혀져, 두 이씨와 이 회사사장 함상영씨 등 3명을 구속했다.
1963년 국내 첫 라면 `삼양라면` 생산
1961년 어느 날, 삼양식품(주) 전중윤 사장은 남대문시장을 지나다 배고픈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봅니다. 전 사장은 고민을 했습니다. ‘저 사람들에게 싸고 배부른 음식을 먹게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전 사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제조하는 기술을 들여옵니다.
하지만 외화가 없고 국교가 단절됐던 때라 라면을 제조하는 시설을 들여오기는 하늘에 별따기였습니다.
정부가 가진 달러를 민간이 원화로 사던 시절,
한 라인에 6만 달러인 라면 제조시설을 수입하기엔 전 사장도 돈이 부족했고 가난한 정부도 옹색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전 사장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종필씨를 찾아갑니다.
“국민들 배 곯리지 말자”는 전 사장의 호소에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세도를 가진 김종필씨는 마침 농림부가 가지고 있던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전 사장이 사도록 도와줍니다.
신용장을 열고 전 사장이 일본으로 갔지만 일본의 반응은 냉담했답니다.
일본도 어렵던 시절, 라면 제조시설을 국교도 없는 한국에 선뜻 팔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 전 사장은 묘조(明星)식품의 오쿠이(奧井) 사장을 만나 한국의 식량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청합니다.
다음날 대답을 들으러 다시 찾은 전 사장에게 오쿠이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많아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가본 일이 없고 아직 국교정상화도 안됐지만 한국 전쟁이 일본 경제를 재건해준 셈이다.
당신들은 불행했지만 우리는 한국전쟁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내가 민간 베이스로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시설도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
오쿠이 사장은 한 라인에 6만 달러라던 라면 제조시설을 두 라인에 2만 5000달러로 즉석에서 발주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면과 수프의 배합에 관한 일화도 있습니다. 전 사장은 일본 현지에서 라면제작의 전 공정을 배우지만 일본인 기술자들은 끝내 면과 수프의 배합 비율은 가르쳐주지 않더랍니다.
전 사장이 끝내 비율을 못 배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오쿠이 사장은 비서실장을 시켜 공항에서 봉투 하나를 전 사장에게 전해줍니다. 비행기에서 뜯어보라는 그 봉투 안에는 기술자들이 펄펄 뛰며 비밀로 했던 면과 수프의 배합비율이 적혀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렸던 국민들의 배를 채워줬던 라면은 이렇게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1963년 9월 15일 삼양 ‘치킨라면’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가격이 10원. 식당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30원이고 커피 한 잔이 35원이던 시절이니 저렴한 가격이었음이 분명합니다.
196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통령입후보자 등록마감
1961년 미국, 네바다서 지하핵실험
1961년 터키공화국 법정, 멘데레스 전(前)수상에 사형 판결
1961년 한국-태국 무역협정 조인
1959년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국 방문
1959년 태풍 사라호 한반도 강타(-9.18) 울산 502.5mm 여수 327.5mm
사망․실종 924명, 이재민 98만여 명, 피해 2,043억원
1955년 문경선 개통
1954년 중국, 제1기 전국인민대표자대회 개최
1951년 김수환 추기경 사제 수품
1951년 오타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 이사회 개최. 그리스-터키공화국 가입 결정
1950년 조선은행권 유통 금지하고 한국은행권과 교환
1950년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개시
남한에서 거의 포위 당한 유엔군이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을 시도하며 맹공격을 가해 전세를 역전시켰다. 한국군의 해병대원들이 인천 해안에 상륙한 반면 미군은 약간 떨어진 월미도에 상륙했다. 이번 작전은 맥아더 사령관의 큰 모험이었다.
이날 오전 6시 한·미 해병대는 월미도에 상륙하기 시작, 작전개시 2시간 만에 점령을 끝냈다. 한국 해병 4개 대대, 미국 제7보병사단, 제1해병사단은 전격공격을 감행하여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함으로써 인천반도를 완전히 수중에 넣었다. 이틀동안 비행기 및 순양함과 구축함은 여러 곳의 적진지를 포격했다.
19일에는 한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했고 20일 주력부대가 한강을 건너 26일 정오에는 중앙청에 한국 해병대가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작전을 끝냈다
1946년 북한, 김일성대학 개교
1945년 소련, 간도 영유(領有)를 포고
1941년 독립운동가 이규선 사망
1940년 제2차 대전 영․독 공중전
1940년 영국 공군 전투기들이 독일군과 공중전을 치르기 위해 이륙 하였다.
1940년 6월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의 히틀러는 이제 유럽에서 마지막 남은 영국으로 병력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영국은 영국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어 독일 육군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히틀러는 공중전을 통해 제공권을 먼저 장악한 뒤 영국에 상륙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그러나 독일 공군기는 레이더망을 피해야 하고 막강한 영국의 허리케인 전투기와 싸워야 했다.
영국과의 공중전에서 독일의 많은 전투기들이 힘도 쓰지 못하고 추락하였다.
공중전은 영국의 승리로 끝나게 나고 히틀러는 공중전의 패배로 영국해협을 통한 침공 계획을 취소하고 만다.
1935년 히틀러 뉘른베르크법 공포, 유태인 시민권 박탈·유태인과 아리안족의 결혼과 성관계 불법화
1935년 9월 15일,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대규모 나치당대회가 열리던 날, 나치당원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서 홀로코스트(대학살)의 서곡이 울려퍼졌다.
이른바 ‘뉘른베르크법’이라 불리는 ‘독일제국 시민법’과 ‘독일인의 혈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순혈보호법)’이 제정·공포된 것이다. 이미 1933년에 단종법(斷種法)을 공포, 유대인 말살의 근거를 마련한 히틀러는 뉘른베르크법까지 제정함으로써 유대인을 사회로부터 추방하고 급기야는 학살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 법적인 토대를 구축하게 됐다.
뉘른베르크법과 뒤이은 부속 법령으로 유대인은 선거권 등 독일 시민권이 박탈되고 상업활동이 금지됐으며, ‘열등 인종’인 유대인 남성이 독일 여성과 성관계를 가질 경우 사형에까지 처해지게 됐다. 여권에는 붉은색의 낙인 ‘J(Jude·유대인)’가 찍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이 국가비상전시상태에 돌입했을 때, 유대인에 대한 차별은 더욱 엄격해져 유대인은 ‘게토’라 불리는 특정지역 안에서만 살야야 했고 ‘다윗의 별’이라는 배지를 달아야 했다.
1928년 플레밍, 페니실린 발견
영국 런던대학 세인트 매리 실험실!
유행성 독감을 연구하던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는 세균 배양 접시에서 특이한 곰팡이를 발견했다.
다른 박테리아를 다 죽인 채 혼자 남은 이 푸른 곰팡이균은 이후 페니실리움 노타툼으로 명명됐다.
"수천가지 곰팡이와 세균 중 푸른 곰팡이를 찾아낸 것은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플레밍 박사는 회고했다.
탁월한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1940년 치료용 주사제로 만들어져 제2차 세계대전중 수십만 군인들의 목숨을 건졌다.
플레밍은 이 발견으로 1945년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1917년 러시아, 공화국 선언
1916년 영국 1차 대전 중 프랑스의 플레르 전선에서 세계 최초로 탱크 사용
1916년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 태어남
1915년 경성우편국 준공
1911년 경원선 부분 개통(용산-의정부)
1910년 독립운동가 오성술 선생 순국
구한말 전남-북 지역에서 항일의병 투쟁을 벌인 죽파 오성술 선생이 1910년 9월 15일 사망했다. 1884년 전남 광산군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1906년 최익현 선생의 구국 의병항쟁을 주창하는 강회에 참석, 의병 창의를 결심했다. 귀향한 선생은 부친에게 군자금 조달을 요청, 무기를 구입하고 동지 200여 명을 규합, 1907년 2월 광주 용진산을 근거지로 의병을 일으켰다.
선생의 의병은 호남의병부대 연합의진인 ‘호남창의회맹소’에 참여, 전북 고창의 문수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고 고창읍성 탈환, 전남 영광 법성포 탈환전에 참여해 주재소와 우편소는 물론, 일본인 가옥을 불태우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1908년부터 의병에 대한 일본군의 대대적 탄압작전이 시작되자 선생은 전남 광산군 석면산 전투, 함평 대명동 전투, 고막원 헌병분파소 습격, 나주 거성동 전투 등 전라도 지역에서 수많은 유격전을 전개했다. 1909년 7월까지 유격전을 통한 항일의병 활동을 벌이던 선생은 나주 용문산에서 ‘남한 대토벌작전’을 세우고 호남 의병부대의 대대적 탄압을 위해 구성된 일본군 영산포 헌병대와 결사항전을 벌이다 그 해 8월 체포돼 강도죄에 이어 살인·방화죄로 교수형을 언도받고 1910년 9월15일 대구감옥에서 26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는 선생을 2000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90년 영국 여류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 출생
1874년 베를린 제1회 국제우편회의
1857년 미국의 제27대 대통령(1909-13) 태프트 출생
1838년 니카라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821년 엘살바도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821년 코스타리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821년 과테말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812년 나폴레옹 모스크바 입성
1789년 미국 작가 제임스 퍼니모어 쿠퍼 태어남
1620년 청교도 102명 신앙의 자유 찾아 메이플라워호 타고 사우샘프턴 항구 떠남
66일간 항해해 11월21일 케이프코드(현 매사추세츠 프로빈스 타운)에 일단 상륙했다가 성탄절 다음날 매사추세스 플리머스 부근 상륙, 이들 102명이 미국 최초의 영국 정착민들로서 1800년대부터 필그림파더스라 불림
1596 임진왜란 때 왜병 정읍에 침입
1440(조선 세종 22) 평안도에 장성 축조
1401년 신문고(申聞鼓) 생김
조선 제3대 왕인 태종이 원통한 사정이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풀길 없는 백성들을 위해 대궐 밖 문루에 신문고라는 북을 1401년 오늘 달았다.
이것은 조선 때의 대표적인 민의상달의 제도로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이 북을 치면 나라에서 직접 그 사정을 풀어 주었었다.
이 제도는 중국 송나라의 것을 본뜬 것이었으나, 하찮은 일에 까지 쓰이므로 나중엔 폐지되었다.
1130년 주자학의 창시자 주자 출생
1068(고려 문종 22) 해동공자 최충(984-1068) 세상 떠남
945년 혜종 서거
527(신라 법흥왕 14) 법흥왕 이차돈(23세) 순교(음력 8월 5일)로 불교 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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