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한국미술 최고의 비평가라고 평가받는 고 오주석 선생의 한국의 미 특강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 회화에 관해 아주 쉽게 설명한 명작입니다.
책 표지에 사용된 호랑이 그림이 바로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의 일부인데, 수많은 명작 중에서도 이 그림을 채택한 이유가
고 오주석 선생이 생전에 송하맹호도를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화가는 지금 우리 세상에는 없다. 전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
이라며 찬양했기 때문이라는데 작품을 따져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송하맹호도는 말 그대로 소나무 밑에 있는 용맹스러운 호랑이를 그린 작품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그림의 호랑이는 터럭 한 올까지 살아있는 듯이 엄청난 공을 들여 정성스럽게 그려졌는데
이건 김홍도의 기존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겁니다.
김홍도의 필치는 사실성보다 즉흥적으로 붓 가는 대로 슥슥 그린 듯 간결하게 느껴지는 방식인데
송하맹호도의 호랑이는 털 하나하나의 느낌을 모두 살려 엄청나게 공을 들여 그렸습니다.
그 결과 호랑이의 표정 하나로 실제 호랑이가 가지는 압도감을 모두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홍도가 이렇게 정성들여 그린 이유는
당시 청나라에 “호렵도”라 불리는, 만주족이 호랑이를 사냥하는 그림이 조선의 역관이나 상인들에게 퍼져나갔는데
청나라를 오랑캐로 취급하던 선비들은 사냥이나 살육 따위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나라의 호렵도와는 다르게 호랑이 자체에서 기품이 느껴지고 기개가 넘치는 호랑이를 그려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부담감이 김홍도가 걸작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조선 후기에 대중적으로 일반 백성들에게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팔린 민화 속 호랑이와
김홍도의 호랑이 그림을 비교해보면 호랑이의 기품에서 벌써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민화속 호랑이는 호랑이보다 고양이에 가까운 느낌이 나고 우스꽝스럽고 조잡합니다.
보통 호랑이와 함께 까치가 등장하는데,
민화에서는 사실 화가의 명성이나 그림실력보다도 등장하는 대상의 의미가 훨씬 중요합니다.
액운을 물리치는 호랑이와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까치, 그리고 신년을 뜻하는 소나무, 이 세가지가 합쳐져서 “호작도”라고 하는, 신년에 각 집마다 복을 기원하는 의미의 그림이 됩니다.
대중적인 민화 속 호랑이는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와 같은 기품을 낼 필요도 없고 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대표팀 엠블럼 속 호랑이를 보면서 호랑이의 용맹함과 기품보다는
민화 속 호랑이들처럼 약간은 순하고 우스꽝스럽고 귀여운 고양이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엠블럼은 단순하면서도 친근할 필요도 있겠지만 그걸 고려해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호랑이가 사용된 다른 엠블럼을 몇개 더 보았습니다.
울산현대, 일본 프로야구 한신타이거즈, 한국프로야구 해태타이거즈, 미국 MLB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대만 프로야구 싼샹 타이거즈의 호랑이 엠블럼입니다.
제 기준에선 다른 나라가 더 조잡하고, 우리 울산현대나 해태타이거즈의 호랑이 엠블럼에서 더 멋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한국적인 개성이 있는 호랑이 그림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리고 새로 나온 협회 엠블럼은 마치 어린이 만화 호랑이 팔찌 같은 느낌이 듭니다.
협회의 엠블럼은 원래 태극마크를 대신해서 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슴에 다는 엠블럼 또한 태극기가 가지는 품위, 자부심, 전통과 같은 가치가 반영이 조금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새 엠블럼이 그런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영국, 독일, 스페인 같은 유럽의 전통의 강호들이 전통적인 상징들을 협회엠블럼에 활용하고 있는 것과 차이가 납니다.
서울특별시의 엠블럼 또한 단원 김홍도의 작품 “무동”에서 무동의 팔놀이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왕 호랑이를 활용할 거면 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이라 평가받는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의 호랑이를 활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유럽의 전통의 강호들은 전통과 품격이 느껴지는 문양을 협회 엠블럼에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전통과 품격을 무시해버리는 방향으로 가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는 않네요.
요즘 엠블럼 논란을 보니 저 책이 생각나서 한번 글을 써봤습니다.
첫댓글 개인적으로 취미삼아 아마추어 엠블럼을 제작하고있습니다.
현재 로고 스타일의 변화 트렌드가 선의 단순화로 가독성을 중시하는 심플한 스타일로 바뀌고들 있습니다.
새로운 국대로고는 트레이닝용품등의 보조 용품등에 제한적으로 쓰이는것으로 알고있고 나이키의 국대팀 시즌 컨셉이라 이해하시면 될것같습니다.
그 이전에 국대로고 자체가 최초에는 나이키 작품이기 때문에 크게 한국적인 맛을 못살렸다고는 할 수 있는데요
제가 볼때는 그래도 최대한 단순화 할 수 있는 선에서 표정까지 알아보기 쉽게 잘 디자인된 로고라고 생각합니다.
울산의 호랑이도 역대 엠블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선이 점점 심플하게 변경되고 있습니다
호랑이같은 동물 들은 안에 무늬가 들어가는 등 얼굴에 디테일이 많아 단순화하기가 힘들고 단순화하지 않으면 자수 등 실물제작단계에서 제한을 받게 됩니다
무조건 프린팅만 할수는 없잖아요?
물론 못낫다 보시는분들도 이해하는부분이구요 ㅎㅎ 다만 여러가지 사안도 감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럽팀의 분위기있는 문양들 대부분 내부 디테일이 통짜로 단색입니다
맨시티 독수리가 없어진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봅니다
@Daz2i
@Daz2i 이벤트성으로 하나씩 저렇게 만들어 보는 건 괜찮을 거 같은데 국가대표 유니폼이나 정식 트레이닝복에 사용되는 것은 반대해요.
엠블럼이란 게 상징성이 중요하지 않나요?
독일 엠블럼 같은 심플함이면 괜찮은데 우리 유출된 엠블럼은 왜 그런 모양이 되어야 하는지 이유가 잘 안 느껴진다고 할까요..
@용배 제가볼때는 그 심플로고는 시즌 컨셉일뿐 또 시즌 지나면 안쓸가능성이 높습니다
보통 로고가 새인 경우 포인트를 날개에 줄수 있어서 전신을 많이 쓰니까 단순한 외형의 좋은 로고가 나올수 있는데 호랑이나 사자 등은 표정이 중요해서 얼굴에 포인트를 주는데 심각하게 디자인하면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아 힘들긴 하죠
@Daz2i 호랑이 엠블럼은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군요. 말씀을 듣고보니 해태타이거즈 엠블럼 같은 게 심플하면서도 표정을 잘 살린 예라고 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어떤가요?
그렇다면 강서고분의 백호도나 아님 송하맹호도의 호랑이 몸통형태를 형상화하는 방향으로 생각해보면 심플하게 나올 수도 있을 거 같네요.
새 엠블럼은 심플함을 얻고 맥락을 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