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동물인 산호를 두고 동물이냐 식물이냐 하는 논쟁은 너무도 구시대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18세기까지만 해도 산호는 식물로 분류되었으며, 석회질 골격을 가졌다 하여 광물로 오인되기까지 했다.
식물 또는 광물로 오인했던 산호는 강장과 입을 가진 자포동물
산호는 강장과 입을 가진 작은 개체(個體)인 산호충들이 모여 있는 군체(群體)로 자포동물로 분류된다. 산호충은 입 부분에 있는 수없이 많은 촉수를 이용하여 동물성 플랑크톤을 잡아먹는다. 이들 촉수를 폴립(polyp)이라고 한다. 폴립은 그리스어로 ‘많은 다리’라는 뜻이다. 전 세계에 분포하는 2,500여 종의 산호들은 폴립의 성질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색을 지니고 있다.
폴립의 수가 6개 또는 6의 배수인 육방산호(왼쪽)와 8개 또는 8의 배수인 팔방산호(오른쪽)
산호는 폴립의 수에 따라 육방산호와 팔방산호로 구분해
이들은 크게 경산호와 연산호로 나뉜다. 경산호는 6의 배수만큼 씩의 촉수가 있어 육방산호류로, 연산호는 여덟 개의 촉수를 가져 팔방산호류라 구분하기도 한다.
제주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근해에서 색이 화려한 연산호들을 흔하게 찾을 수 있지만, 경산호는 거의 볼 수가 없다. 연산호는 수온에 대한 관용도가 높지만, 경산호는 연중 수온이 20도 이상은 되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와 남해안 해역은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으로 다소 따뜻하긴 하지만 경산호가 살 수 있는 수온 조건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폴립의 수를 가지고 연산호와 경산호를 구별하는 것은 다소 전문적인 구별법이다.
일반적으로는 몸에 딱딱한 외골격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른다. 연산호 무리는 외골격 대신 작은 가시가 몸을 받쳐주어 다소 무른 데 반해, 경산호는 체외에 석회질로 된 골격을 가지고 있어 딱딱한 편이다.
연산호는 고르고니언산호와 바다맨드라매류로 나뉜다. 고르고니언산호류에 속하는 해송·부채산호·회초리산호는 군체 중심에 단단한 축을 가지고 있으나, 바다맨드라미류는 물렁물렁한 육질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산호에는 사슴뿔산호·가지산호·뇌산호·테이블산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사슴뿔산호가 가장 큰 편이다.
서귀포 앞바다 문섬에서 촬영한 고르고니언산호류
강장을 통해 먹이를 잡아먹으며, 부족한 영양분은 공생을 통해 공급받아
산호가 좋아하는 먹이는 동물성 플랑크톤이나 게∙새우∙작은 물고기 등이다. 먹이를 잡기 위해 촉수를 사용하는데, 낮에는 오므리고 있다가 밤이 되면 활짝 펼친 채 먹이를 기다린다. 산호 주위로 지나가는 먹이가 촉수에 닿으면 재빨리 촉수에 있는 자포를 발사해 먹이를 기절시켜 입을 통해 강장으로 집어넣는다.
강장은 먹이를 소화하고 흡수하는 역할을 하며, 강장에서 흡수하고 남은 찌꺼기는 입을 통해 배설된다. 자포의 독성은 강해서, 아주 적은 양이지만 사람 피부에 직접 닿았을 때는 피부 발진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산호충은 자포를 이용해 동물 플랑크톤 등 작은 해양생물을 잡아먹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영양물질을 공급받을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호는 편모조류의 일종인 주산텔라(Zooxanthellae)와 공생한다. 주산텔라는 폴립에 보금자리를 틀고 천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받으며 광합성을 통해 당류(탄수화물)와 같은 영양물질을 산호에게 공급한다.
산호는 생존의 많은 부분을 주산텔라의 광합성에 의존하다 보니 광합성의 필수조건인 태양광이 풍부하게 공급되는 맑고 깨끗한 바다에서만 살 수가 있다.
산호초는 작은 물고기들의 은신처 역할을 한다.
산호초는 왜 열대 바다에서만 볼 수 있을까?
산호초는 활발한 생명활동을 진행하는 경산호들로 구성되어 있다. 생명활동을 벌이는 경산호 아래로는 생명활동을 마친 경산호의 석회질 외골격이 오랜 세월을 두고 겹겹이 쌓여 있다.
산호초 형성의 기본이 경산호이다 보니 산호초는 경산호의 생명조건인 연중 수온 20도 이상인 곳에서만 만들어지게 된다. 지구상에서 연중 수온 20도 이상을 보장할 수 있는 곳은 열대 바다뿐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생물학적 구조물인 산호초는 왕성한 생명활동으로 바다 속 삶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산호와 공생하는 주산텔라가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내는 영양물질과 산소는 작은 바다동물의 먹이가 되고 이 작은 바다동물을 포식하기 위해 큰 바다 동물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지구 전체 바다에서 산호초가 차지하는 면적은 0.1퍼센트도 안 되지만, 해양 생물의 1/4이 이곳에서 어우러져 살아간다. 또한 사람이 먹는 물고기의 20~25퍼센트 정도가 산호초 부근에서 잡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쓰나미나 태풍으로 인한 해일로부터 연안을 지키는 천연 방파제 역할도 하고 있다.
혹가시산호는 부채 모양을 이루고 있어 스쿠버다이버들 사이에서는 시팬(Sea fan)이라고도 불린다.
산호의 폴립에 있는 편모조류,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
그런데 최근 해양학자들은 산호초가 해양생물의 보금자리를 넘어 바다뿐 아니라 지구 전체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장이나 차량에서 끊임없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서 그 농도를 높여, 마치 지구가 비닐하우스 속에 들어앉은 것과 같은 상태를 만들어 지구 온난화라는 문제점을 일으킨다.
특히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발생하는 해수면의 상승은 지구라는 하나의 생명체가 직면한 큰 재앙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산호초가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해양학자들의 주장이다.
산호의 폴립 속에는 1cm3당 100~200만 마리의 편모조류가 살며, 이들 편모조류는 광합성을 한다.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산호초, 그 산호초를 구성하는 천문학적인 수의 산호, 그 각각의 산호가 가진 폴립 속에 사는 헤아릴 수조차 없는 편모조류들…. 그들이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들의 광합성이 활발해지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자연 줄어들게 되며 지구의 열도 내려간다. 실제로 단위 면적당 산호초의 광합성능력은 열대 지방의 밀림보다 뛰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산호의 폴립 속에서 공생하는 편모조류들이 광합성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해양 오염이 심해지면서 산호초지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온난화 등 지구가 당면한 환경적 위기는 지구라는 유기체가 가지는 자정 능력을 상실할 때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열대 바다의 산호초를 보호하는 것은 인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순환하는 바다를 끼고 사는 지구인 모두의 당면과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다양한 산호초의 모습, 왼쪽부터 거초∙보초∙환초
찰스 다윈이 밝혀낸 열대 산호초의 성장과정 : 거초∙보초∙환초
산호초가 형성되는 과정의 신비를 처음으로 밝힌 사람은 찰스 다윈이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전 세계를 탐험하면서 다양한 열대 산호초 지역을 관찰, 산호초의 성장 과정을 추론해냈다. 그의 발견은 1842년 [산호초의 구조와 분포(Structure and Distribution of Coral Reefs)]라는 책으로 엮어지기도 했다. 다윈은 산호초를 거초(Fringing reef)·보초(Barrier reef)·환초(Atoll)의 세 가지로 구분하며 그 생성 과정을 밝혀냈다.
거초는 섬의 둘레 얕은 곳에 퍼져 붙어 있는 것이고, 보초는 연안과 평행하게 놓여 있지만 육지와는 멀리 떨어진 채 육지를 에워싸고 넓게 퍼져 있는 것이며, 환초는 섬이 가라앉고 그 둘레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다윈은 육지가 천천히 융기할 때 거초가 생기는 반면, 보초와 환초는 침강할 때 형성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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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학교 해양공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수중잠수과학기술을 전공했다. 남극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1,300회 이상의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보고 경험한 바다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저서로는 [수중사진교본],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바다이야기], 제 24회 과학기술도서상을 수상한 [재미있는 바다생물이야기], 2008년 환경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바다생물 이름풀이사전],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북극곰과 남극펭귄의 지구사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