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貴妃(양귀비)
양귀비는
원래 壽王(수왕) 李瑁(이모)의 비로
현종의 며느리였다.
17세 나이에
수왕에게 간 택되어져 입궁한 뒤, 정원에서 화려하게 핀 꽃을
감상하다가 덧없이 지나가는 청춘이 아쉬 워 꽃에게 말했다.
“꽃아
너는 해마다 피어나지만 나는 언제
빛을 보겠느냐?”
이렇게 탄식하며
꽃을 어루만지는데 含羞花(함수화)
를 건드렸다.
함수화는
잎을 스르르 말아 올렸다.
이때 궁녀가
그 광경을 보고 ‘양귀비가 꽃과 아름다움을 견주었는데
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더라’는 소문을 냈다.
그래서 양귀비에게는
羞花()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당시 당나라에서
三白(하얀 이마, 하얀 코, 하얀 턱)과 三紅(붉은 입술,
붉은 뺨, 붉은 손톱) 이 미인의 기준이었던데
미루어보면
양귀비가 그런 요소를 갖추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양귀비는
서시보다 1200년쯤 뒤의 인물인데 정사에는
그녀가 절세의 풍만한 미인이며
가무에
뛰어나고 총명함을 겸비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어느 환관이
이런 수 왕비의 아름다움을 현종에게
진언했다.
현종은
운천궁에 온 기회에 양 귀비를 보게
되었는데 첫눈에 반했다.
그런데 장차 아들의 부인,
즉 자신의 며느리가 될 여 인인데 자기가
어떻게 할 것인가?
현종은 세인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그녀를 女冠(여관; 여 자도사)
으로 지내게 했다.
그 뒤 다시
그녀를 궁중으로 불러들여 27세에 정식으로
귀비로 책립 하였다.
귀비가
된 이후에도 그녀와 꽃에 얽힌 일화가
전하는데 다음과 같다.
현종이 양귀비와
궁녀 들을 이끌고 太液池(태액지)라는 연못을
산책하다가 물었다.
“연꽃의
아름다움이 여기 있는 비보다
아름답겠는가?”
궁녀들은
이구동성으로 양귀비가 더 아름답다고 했다.
옛날 중국에서는
미인을 가리켜 解語 花(해어화: 말을 할 줄 아는 꽃)라고 했는데
이 말은 바로 양귀비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되었 던 것이다.
물론 세월이 지나
이 말의 뜻이 변하여 후대에는 기생을 해어화라
부르게 되었 다.
이렇게 양귀비는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황후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다.
현종이 얼마나
양귀비를 아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일화가 전한다.
그녀는 특히
남방 특산의 荔枝(여지)라 는 과일을
좋아했다.
여지는 신선함이
몇 일 못가기 때문에 현종은 신선한
여지를 그녀에게맛보이기 위해
산지에서 長安(장안)까지
여러 곳에 역을 설치하고 몇일 밤 몇일 낮 말을
달 려 실어오게 했다.
이런 현종의
총애를 배경으로 그녀의 사촌오빠 楊釗(양소)는 재상의
자리에 올랐고 일족들 도 전부 고관이 되었다.
그녀는 李白(이백)같은
궁정시인들한테 둘러싸여 호사스런
생활을 했다.
당대의 고관이었던
安祿山(안록산)이나 高力士(고력사)도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경쟁 을 했다.
현종은
중국 山西省(산서성)의 온천에 華淸宮(화청궁)을 짓고
양귀비와 겨울을 함께 보내는 등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이 와중에 양귀비의 오빠
楊國忠(양국충)이 국정을 좌지우지했고 李林甫(이임보)가
권력을 잡았다.
현종이 국사는
뒷전이고 날마다 환락에 빠져 지내니 당나라의
국세는 점점 기울어만 갔다.
그러다 范陽
(범양: 현재의 북경)에서 安史(안 사)의
난이 일어났다.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현종은 놀라서 소수의 호위병과 양국 충, 양귀비
등을 데리고 장안의 서쪽 馬嵬驛(마외역)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경호하던
현종의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양씨 일족
모두를 죽이라고 강요했다.
결국 양국충을
비롯한 일족들의 목이 베어졌고 양귀비는 스스로
마외역관 앞 배나무에 목을 메어 죽었다.
이 때가
양귀비의 나이 38세였다.
9년 간의
내란이 끝나 수도 장안으로 돌아온 현종은 양귀비의
화상을 보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
훗날 수많은 시와 소설,
희곡에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읊어졌다.
비운에 간 그녀를
이백 은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고 白樂天(백락천)은 長恨歌(장한가)에서
현종이 양귀비와 보낸 정겨운 시절을 노래하고 있다.
장한가란
‘오랜 슬픔의 노래’라는 뜻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헤어질 무렵,
간곡히 다시금 전할 말 부탁했는데 그 말에는
두 사람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네.
7월 7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하늘에서는 比翼鳥(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는 連理枝(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이들의 슬픈 사랑의 恨(한)
끝없이 계속되네.
이 시에는
사랑의 기쁨과 함께 홀로 남겨진 자가 살아 있는 한 품고
있어야 하는 외로움과 슬픔도 잘 드러난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의 남쪽 땅에는 비익조가
산다고 한다.
비익조는
눈 도 날개도 한 쪽에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암수가
좌우 일체가 되어야 날 수 있는 새다.
즉 비익조는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하는 새
’인 것이다.
그리고 위의 시에
나오는 연리지는 ‘원래 다른 나무지만 서로 가지가
맞닿아 하나가 된 나무’를 말한다.
이렇게 천하절색
양귀비는 짧은 생을 마쳤지만, 비익조와 연리지에 비유 될
만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은 오랫동안 가송되었다.
[출처] 楊貴妃(양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