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제 온 하비에 죽지도 않고 또 온 하비에입니다.
우선 게시판이 제 이름으로 도배가 된 것 같아서 송구하단 말씀 올립니다. 다른 분들께서도 이야기 보따리 풀어주시고 떡담도 같이 나누고 하면 도배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을텐데요...
머..어쨌든..이 놈의 비가 그칠 때까지는 당분간 글을 계속 써댈 듯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
저번 편을 쓸 때 보라카이에서 약 한 달 정도를 살았다고 말씀 드린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때의 기억을 불러 쓰는 이야깁니다. 보통 필리핀의 매력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편안함.. 일과 인간관계 등 숨통을 조이는 대부분의 것들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보라카이에서 보낸 한 달은 좋았던 필리핀 생활 가운데서도 가장 '자유'라는 단어를 만끽하며 살았던 시간입니다. 많은 일들을 겪은 만큼 이 시리즈 연재는 좀 길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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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버스를 타고 짐을 꾸역꾸역 풀고 또다시 방카를 타고...너무 힘든 여정이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보라카이의 풍광은 그간의 수고를 잊게 해줄만큼 아름답습니다. 6월이라 아직 우기이긴 했지만 그날만큼은 마침 눈이 부실 정도로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습니다.
신발을 벗어 옆구리에 끼고 뭍으로 상륙합니다. 종아리께 찰박찰박 바닷물이 들이치는 느낌이 싫지 않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즐거운 일들을 예고하는 메시지 같습니다. 내린 곳은 스테이션 2. 하얀 모래를 밟으며 스테이션 1쪽으로 이동하는데 호객꾼들이 줄줄이 달라붙습니다. 귀는 열어두되 기울이지 않습니다. 눈은 쉬지 않고 얘쁜이들을 탐색했겠지요. 역시 세계적인 휴양지답게 색색의 인종들이 즐겁게 노닐고 있네요. 그래도 필리피나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내 눈에 '필리피노'들은 보이지 않는다
여러 곳을 둘러보며 흥정을 거듭한 끝에 숙소로 정한 곳은 선샤인 모텔. 1박에 800페소 정도 했을 겁니다. 일행은 같은 보딩하우스에 사는 여자 동생 J, 누나 A 그리고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동반 연수를 온 형네 부부(D와 H)입니다. J는 학원에서 이른바 '코리안 퀸'으로 불리는 아이입니다. 예쁜 얼굴에 몸매가 훌륭했고(쇼핑몰 피팅모델을 했었습니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털털한 아이였습니다. 확신하건대 많은 남학생들이 J를 생각하며 자위를 했을 겁니다. 저도...사실 몇번 한적이 있습니다.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제 앞에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엉덩이가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면 코피가 주르륵 흐를 지경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냥 찬장 속 아끼는 도자기처럼 보면서 감상만 하던 그런 사이였습니다. J도 제가 밤이면 실종, 낮에는 준 변사체로 살고 있다는 걸 아는 아이였으니까요...
새벽부터 일어나 서둘렀던 탓인지 다들 피곤합니다. 방에서 잠깐 눈을 붙인 뒤 쇼핑부터 하러 간답니다. -_-;; 보라카이에까지 와서 젤 먼저 하는 일이 쇼핑이라니 절대 휘말릴 수 없습니다. 대충 핑계를 대고 빠져나옵니다. 스테이션1부터 3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 해변 수질은 어떤지 꼼꼼히 지리와 수운을 점검합니다. 사람 사는 기본이지요. 해변에는 사람들이 점점이 섞여 넘실댑니다. 물반 사람반인 해운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풍광입니다. 얘쁜이들도 종종 눈에 띕니다. 스테이션1에서 막 2로 접어들 무렵 서양 여자 하나가 해먹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 게 눈에 띕니다. 신발 밑에는 맥주캔 하나도 놓여있습니다. ㅅㅂ..혼자 올 걸...하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대충 해변가를 탐색하고 돌아오는 길에 디몰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몽골리안 바베큐 냄새가 확 끼쳐옵니다. 사람들이 북적대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네요. 오른편으로 한무리의 한국인 남자들이 필리피나들을 상대로 수작을 걸고 있습니다. 뭐가 좋은지 낄낄대고 있네요. 예 원래 이래야 하는 겁니다. 왜 보딩 식구들이랑 같이 왔을까요. 스스로에게 저주를 내리며 수영복을 입은 채로 돌아다니는 서양 아가씨들의 몸매를 감상합니다. 기념품, 씨푸드 이런 건 눈에 안 들어온 게 분명합니다. 기억이 안나니까요. 목이 말라서 뭐라도 하나 시켜 먹으면서 갈까 하던 순간 누가 제 이름을 부릅니다.
"야! 하비에"
휙 뒤를 돌아보니 같이 온 일행들이 손에 한 무더기씩 뭘 사들고 있네요.
"여기까지 와서 개인플레이 하냐??"
...A 누나입니다. 외모는 묘사하지 않겠습니다ㅋ. 그러는 니들은 여기까지 와서 쇼핑질이냐
일행들에게 검거를 당해 강제로 짐을 들고 숙소로 이동합니다. 힘이 드니 풍경과 사람 감상이 힘듭니다. 앞에서 걸어가는 J의 엉덩이를 위안 삼아 발걸음을 옮깁니다. 숙소 곁 현지 식당에서 적당히 밥을 먹고 제트 스키를 탑니다. 바나나 보트를 또 탑니다. 2박3일 일정이라 짧은 시간 내에 모든 걸 다 경험하고 돌아가겠다는 기세입니다. 여행 이런 식으로 하는 거 정말 싫어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요. 마찬가지로 초행길인 저를 가이드 삼아 길을 나선 사람들입니다. 책임은 져야지요. 내내 '혼자 왔으면 정말 좋았겠다.'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던 이튿날 점심 무렵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사람들이 씻고 또 쇼핑을-_- 나간 틈을 타서 저도 또 개인행동을 펼칩니다. 해변가 해먹이 언제 비는가...만 기다리고 있던 저는 드디어 기회를 잡았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해먹에 몸을 누이자 조그만 웨이터 하나가 메뉴판을 들고 다가옵니다. 피나콜라다 한잔을 시켜 놓고 눈을 감습니다. 몸을 좌우로 살살 흔들면서 담배를 피웁니다. 꿀맛입니다. 쓰고 있던 모자로 대충 얼굴을 덮고 낮잠을 청합니다. 눈을 감은지 1분도 안됐는데 누가 "음음!"하는 헛기침 소리가 들립니다. 선글라스를 낀 서양 여잡니다. 어제봤던 걔인가.. 모르겠습니다. 왜 부르는거지..
"you just called me?"
"ah? yeah hi~"
머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지가 먼저 헛기침 하면서 깨워놓고 마치 내가 먼저 말 걸었다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약간 쑥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우려하는데 해먹 위라 잘 안됩니다. 일어난 것도 아니고 누운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묻습니다.
"왜? 나한테 할 말 있냐?"
"실례인 건 알지만.. 언제 일어날 건지 알 수 있을까?"
-_-이년이 지금 장난하나;; 해먹 전세냈나 머가 이렇게 버릇이 없나...생각하면서 그냥 웃습니다. 서양 것들은 대체적으로 매너가 괜찮은 편인데 가끔씩 이렇게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이 있습니다. 개드립엔 개드립으로 받아쳐줘야지요. 유러피안인 모양인지 영어도 막 자연스럽진 않습니다. 상황도 상황이고 꿀릴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가 이 해먹 주인이냐?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는데.. 오늘은 내가 여기서 자야겠다. 미안."
"오우...그런 뜻으로 말한게 아닌데..미안."
"그럼 무슨 뜻으로 말한 건데?"
"아.. 며칠동안 여기 누워서 계속 쉬었는데 너무 좋아서 말이야..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바이"
"야! 잠깐 기다려바."
"응 왜?"
"어차피 나 일어날 참이었어. 어제 누가 여기서 책 읽는거 봤는데 그게 너구나. 그냥 니가 여기 써라"
"정말? 고마워 고마워! 내가 맥주 한잔 살게"
아...이렇게도 엮일 수가 있구나..하면서 속으로 쾌재를 부릅니다. 근데 그러면 뭐합니까..어차피 좀 있으면 일행들이 전화를 해댈테고 안 받으면 찾아나설 게 뻔합니다.
"아 고마운데 혹시 너 전화는 없어?"
"응? 전화? 없는데.."
역시 없습니다. 아니 물어본 제가 바보지요. 갑자기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럼 너 이름은 뭐야? 숙소 어디야?"
"아 데벨!#$(프랑스식이름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어요) 그냥 데비라고 불러. 숙소는 저쪽!"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봐봤자 어딘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충 스테이션2 골목 안쪽인 거 같습니다. 주머니에서는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급한 티가 났는지 얘도 덩달아 설칩니다.
"무슨 일이야? 전화는 왜 안받아?"
"내가 좀 있다가 너 찾을 테니까 책 읽고 있어. 맥주는 꼭 사야 돼!"
"오 알겠어"
첫댓글 와우~~! 드디어, 새로운 에피소드의 시작이군요 ? 하비에 프로님...^
하비에님 덕에 몇일이 즐겁겠네요
글 잘읽어 볼게요^^
기대됩니다
늘 감사합니다~~^^
역시~~ ㅎ
여행의 묘미 . .
보라카이 정말 멋진곳이죠...
오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