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4 눅15:1~7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우리나라는 1988년 즉 서울올림픽 개최 이후에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생산직이나 노동직이나 청소업 등을 피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업종 즉 3D 업종(3D 業種, three D types of industry)을 피하기 시작했지요(Daum 백과). 이스라엘도 3D 업종이 있었습니다. 목자가 3D 업종이었어요. 목자는 선잠을 자면서 양 떼를 지키느라 힘들었고, 푸른 풀밭을 찾아 광야를 떠돌았기 때문에 씻지도 못하고 더러웠고, 들짐승과 싸워야 해서 위험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3D 업종에 종사하는 목자가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마 새끼 양을 잃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가복음 15장 3~4절에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목자들은 한 가정 당 약 100마리의 양을 쳤다고 합니다(IVP 배경신약, 267쪽). 케네스 베일리 박사는 양 백 마리라면 상당한 재력가라고 하네요(선한목자, 181쪽). 목자는 양 99 마리를 남겨 두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문화를 모를 때는 목자가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고 99 마리를 남겨 두고 찾아다니는 것은 경제적인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목자는 3D 업종이다 보니 주인이 양 떼를 맡길 때 한 사람당 30마리에서 75마리를 맡겼다고 합니다. 양이 100마리라면 목자가 적어도 2명에서 많게는 4명이 있다는 말이지요. 거기다 광야는 위험천만했기 때문에 양 떼를 맡길 때 20%의 손실을 참작했습니다. 20마리를 잃을 각오를 했지요(열린다 광야, 212~213쪽). 양을 잃어버린 목자는 아마도 남의 양 떼를 치는 삯꾼 목자 즉 악한 목자일 것입니다. 반대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선 목자는 아마도 주인 목자 즉 선한 목자일 것입니다(선한목자, 196쪽). 삯꾼 목자는 양을 잃어버려도 어쩔 수 없다고 핑계를 대지만, 선한 목자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으로 눈에 불을 켜고 양을 찾아다닐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목자가 양을 찾아 나서는 게 여간 수고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목자는 이른 아침에 양 떼를 이끌고 나가 여기저기에 방목했다가 늦은 오후에 우리간이나 천연동굴로 데리고 가기 위해 숫자를 헤아렸습니다. 군대에서 잠자기 전에 인원을 파악하기 위해 취침 점호를 하듯이 말입니다. 목자는 아무래도 밤에는 들짐승이나 도둑들이 들어오기 쉽다 보니 다른 목자들의 양 떼와 함께 모아놓고 교대로 양을 지켰거든요. 목자는 양 떼를 데리고 가기 전에 먼저 자기 양 떼가 다 있는지 숫자를 파악했습니다. 만약 양 한 마리가 없어졌다면 목자는 기억을 되살려 양을 쳤던 길로 역추적해서 갔습니다(선한목자, 180쪽). 그 시간은 당연히 깜깜한 저녁이었죠. 목자가 아무리 횃불을 밝혔다고 하더라도 가시와 덤불에 옷이 찢기고 팔다리는 생채기가 났을 것입니다.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목자가 양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엄청난 수고가 필요했습니다. 양은 평소에도 겁이 많아서 들짐승이 주위를 배회하면 무서워서 풀을 뜯지도 못하고 벌벌 떤다고 합니다. 그런 양이 목자를 잃어버렸다면 아마도 공황 상태에 빠졌을 것입니다. 양이 길을 잃으면 덤불로 들어가거나 동굴로 숨어서 파르르 떨면서 ‘메~에’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선한목자, 61쪽). 목자는 골든타임 안에 양을 찾기 위해 자기 몸을 사리지 않고 찾아 나섰을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찾아 나서는 모습은 예수님을 연상시킵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으로 내려오셔서, 양이 사람의 죄를 대신해 피를 흘리고 죽듯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목자가 자기 몸을 헌신해 잃은 양을 찾듯이, 예수님도 우리를 살리시려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목자가 온갖 고생을 해서 잃은 양을 찾으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양도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가 목자를 만났으니 긴장이 풀리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심장마비로 쓰러지면 심폐소생술을 하듯이, 목자도 기력이 쇠한 양에게 응급처치술을 했다고 합니다. 목자는 수고는 했지만, 잃은 양을 찾은 기쁨이 넘쳤습니다.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까지는 힘겹지만, 배냇저고리를 입은 신생아를 품에 안는 순간 모든 수고가 사라지듯이 말입니다. 목자는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누가복음 15장 5~6절에서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는 양손으로 양의 다리를 잡고 자기 목 뒤로 넘겨서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목자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은 것이 너무나 기뻐 양 한 마리보다 더 많은 짐승을 잡아 잔치를 벌였을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잃었다가 찾으면 사례를 하듯이, 목자는 잃은 양을 찾은 게 기뻐서 친구들을 불러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목자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선 말씀은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알려주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문화로 식사는 자기와 신분이 비슷한 사람끼리 했습니다(굿뉴스, 164쪽).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예수님도 죄인과 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유대교의 음식법은 죄인들과 식사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식탁 교제를 시기해서가 아니라 정결법 때문이었습니다(누가복음서 다시 읽기, 323쪽).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못마땅해서 수군거렸고, 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악한 목자는 잃은 양을 찾지 않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지칭합니다. 잃은 양은 세리와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돌보라는 백성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동생을 보면 관심을 끌려고 아기 짓을 하듯이,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죄인을 살리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거든요. 선한 목자는 양을 찾기 위해 대가를 지급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선한 목자가 양을 찾기 위해 온갖 수고를 하듯이,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목자는 들짐승이 양을 발견해 뾰족한 이빨로 목을 물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몸을 찢기 전에 양을 찾아 나섰잖아요. 예수님도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 마귀의 아가리로 들어가기 전에 하늘 보좌를 떠나 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자가 잃은 양을 찾으면 잔치를 베풀 듯이, 죄인이 회개하면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가 양을 잃어버리고, 찾아 나서고, 발견하고, 기뻐하듯이, 예수님도 죄인이 버려지고, 예수님이 찾아 나서고, 예수님이 발견하시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무디성경주석, 1,789쪽). 예수님은 목자 품 안에 있는 교인들 즉 교회를 즐겁게 다니는 교인들도 사랑하시지만, 잃어버린 양 즉 회개하고 돌아오는 영혼들을 더 기뻐하십니다(IVP 성경주석, 1,383쪽). 목자가 너무나 기뻐서 잃은 양 한 마리보다 더 많은 잔치 비용을 들였듯이, 하나님은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더 큰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서까지 살릴 정도로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즉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교인들도 잃은 양을 찾으면 즉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ESV 스터디 바이블, 2,020쪽). 새가족이 나오면 내게는 관심이 줄어든다고 염려하지 말고, 죽어가는 영혼이 생명을 얻었으니 함께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영혼 구원을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의인이라 회개할 필요가 없다’라는 사람들보다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 율법을 엄격하게 지켜서 의인이라고 자부하는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보다는,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고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세리들을 기뻐하십니다(굿뉴스, 164쪽).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선한 목자 시즌1 시편 23편에서 선한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인도하는 단어가 슈브(שוב), 시23:3)입니다. 시즌2 예레미야 23장에서 선한 목자가 양 떼를 우리로 돌아오게 한다는 단어도 슈브(שוב, 렘23:3)입니다. 시즌3 에스겔 34장에서 목자가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한다는 단어도 슈브(שוב, 겔34:16)입니다. 시즌4 누가복음 15장에서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한다는 단어는 히브리어 슈브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헬라어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 눅15:7)’입니다. 메타노에오는 슈브의 배경으로 번역이 이루어졌습니다. 시편 23편과 예레미야 23장과 에스겔 34장에서 목자는 능동적으로 양을 찾아 나서는데, 누가복음 15장에서도 목자는 능동적으로 양을 찾아 나섭니다. 구약성경에는 양은 수동적으로 기다리지만, 신약성경에서 양은 능동적으로 회개합니다(선한목자, 198~199쪽). 목자가 잃은 양을 데려오는 것은 회개의 상징이고, 하나님은 회개한 자를 기쁘게 맞아주십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나오는 영혼을 귀하게 여깁시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서의 ‘하늘’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용어입니다. 결국 선한 목자가 양을 찾아 나섰기 때문에 죄인이 회개하고 하늘에서는 기쁨이 넘쳐납니다(선한목자, 202~203쪽). 양이 구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듯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목자가 양을 구하기 위해 대가를 치르듯이,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시즌1에서 양을 찾으면 잔치를 벌이듯이, 시즌4에서도 영혼을 찾으면 잔치를 벌입니다. 영혼 구원에 나서는 목자를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반응은 회개입니다. 우리도 죄로 가는 발걸음을 하나님께로 돌려서 천국 잔치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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