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젖염소보내기운동본부 대표단 9명이 지난 18일부터 21일까지 3박4일간 북한 젖염소목장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에는 평양시내 뿐 아니라 북한 젖염소보내기운동본부에 의해 홍천산 젖염소가 보내진 황해북도 봉산군 은정리 젖염소목장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강원일보 창간 58주년 특별기획 `북한 젖염소목장을 가다'를 시리즈로 싣는다.
-(1)평양역앞의 주민들
-변화의 바람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북한 젖염소보내기운동본부 대표단은 지난 18일 중국 북경에서 고려항공에 올랐다. 만석이었다. 출발한지 1시간30분만에 순안공항에 착륙할 준비에 들어갔다.
멀리 북녘 산하가 한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산하지만 낯설지 않았다. 다르다면 땔감 등으로 사용한 탓인지 민둥산이 많았다.
대표단은 비행기가 활주로를 지날때 연신 창밖의 가을걷이를 끝낸 넓은 들녘을 보며 상념에 잠겼다. 우리의 60~70년대 농촌냄새가 물씬 풍겼다. 비행기 트랩에서 바라본 `평양'이라는 큰 글자가 반갑게 느껴졌다.
북 민족화해협의회에서 나온 안내원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승합차에 올라 평양 시내로 향했다. 북 안내원이 “강원일보에서 온 기자가 누구냐”고 묻기도 했다.
순안공항에서 평양시내로 향하는 동안 다소 낡고 오래 된 기와집과 연립주택식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로변에는 등짐을 지고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주민들이 많았다. 멀리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모습은 이채로웠다.
가을걷이를 끝낸 들녘에서 나물을 캐는 모습…. 평양으로 들어가는 대로변에서 북한 주민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노랗게 물든 단풍은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뽐냈다.
금수산기념궁전 김일성종합대학 개선문을 돌아 평양시가지를 가로지르며 만수대 김일성동상에 이르렀다. 남쪽사람이 오면 빠지지 않는 코스. 일종의 신고식인데 종교를 감안, 강요하지는 않았다.
고려항공을 함께 타고 평양에 온 북한의 한 주민은 이 동상에 올리기 위해 중국 북경에서 꽃다발을 사 가지고 오기도 했다. 미처 꽃을 준비하지 못한 방문객을 위해 순안공항에서도 꽃을 팔았다.
처음 방문한 평양거리의 풍경은 도로가 넓고 신호등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신호 대기와 극심한 정체는 없었다. 신기했다. 다소 오래된 차량이 많았다.
평양시내 건물은 리모델링이 한창이었다. 고층건물인데도 몇개의 밧줄에 몸을 의지한채 작업하는 장면은 정말 아찔했다. 70년대식 건물이라고 안내원이 설명했다.
대부분 건물에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회색도시 같았다. 벽돌만 쌓고 미장을 하지 않은 집, 겨울철에 대비해 손으로 직접 연탄을 빚는 모습은 안쓰러웠다.
공중전화앞에는 수십명씩 줄을 서서 기다리고 대중교통수단인 궤도전차 승·하차 정거장에는 수백여명의 사람들로 붐볐다. 아이를 데리고 출·퇴근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고려호텔 44층 회전전망식당에서 본 평양의 밤거리는 어두웠다. 가는 곳마다 전력사정이 안 좋은 탓인지 야간조명이 없고 호텔복도 등에는 아예 불을 켜지 않았다. 고층건물 아파트 역시 밤10시가 넘어서면서 불이 꺼졌다. 멀리 주체사상탑의 불빛과 `일심' `단결'이라는 큰 글자만 평양의 밤을 밝히는 것 같았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로 책을 보며 걸어가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밤 9시만 되면 거리는 한적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대동강 기슭에 있는 모란봉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평양 8경의 하나인 을밀대를 화폭에 담고 있었다.
남쪽에서 왔다는 말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반갑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디지털카메라에 찍힌 자신들의 얼굴을 보며 무척 신기해 했다.
이젤이 없어 베니어 합판에 도화지를 고정시켰고 붓 물감 팔레트 등 그림도구 역시 빈약했으나 그림수준은 뛰어났다. 대체로 신중하면서도 솔직했으며 남쪽에 대해 유연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평양 부흥역에서 영광역 구간의 지하철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많았다. 수직 100m깊이에 있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150m 길이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했다.
지하철안은 조명이 희미했다. 지하철에서 내린 주민들은 황급히 어디론가 사라져 얘기할 틈 조차 없었다. 평양 지하철은 2개 노선 17개 역이 있다고 했다. 지하철 입구에는 1987년 4월10일 김일성 김정일이 사용한 승강기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인민대학습당에서 만난 주민들은 영어 중국어 등을 공부했다. 이들이 공부하는 책은 우리나라 고서점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이 바래고 낡았으며 손때가 많이 묻어 있었다.
인민대학습당은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된다. 평양 한복판에 건설돼 주체사상탑 김일성광장과 함께 평양의 축을 이루고 있다. 연건평 10만㎡, 장서 3,000만권 규모.
고려호텔에서도 NHK BBC 등 5개 채널의 외국방송을 볼 수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올해부터 조선중앙방송외에 외국방송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북 안내원이 대표단의 `목사님'을 지난해에는 `목사선생(동무)'이라고 불렀으나 올해부터 `목사님'이라고 호칭했다.
만찬에서 “목사님이 기도해 주셔야 식사를 하죠”라며 그동안 사석에서만 가능했던 대표기도를 공식요청할 정도였다. 함께 눈을 감고 두손을 모으기도 했다.
한 음식점은 독립채산제로 운영됐다. 수입을 더 올리면 그만큼 인센티브를 준다고 했다. 식당의 한 과장은 테이블을 찾아 “이용해 줘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