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cafe.daum.net/egilok49/aSJP/1423
해석적 글쓰기로서 수필
수필 쓰기는 화제에 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해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수필가는 자신이 선택한 소재, 즉 이야깃거리에 자기 나름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수필 쓰기를 도식화하면, '화제에 의미 부여하기'이다. 수필 작품의 화제는 수필가 개인적 경험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것에 부여하는 의미도 수필가의 주관적 관점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외부의 객관적 사물이나 사건을 화제로 삼았다 하더라도, 수필 쓰기는 화제의 객관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주관적 의미를 투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필을 주관적 문학이라고 규정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화제 선택도 수필가의 개인 체험 안에서 이루어지고 부여하는 의미도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수필이 전적으로 수필가의 주관적 체험이나 의미 안에 머물고서는 문학이 되기 어렵다. 문학은 작가의 자기 표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공유하는 의미 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독자와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즉,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작가의 경험과 의미가 독자에게 전달되어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 문학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작가의 개인적 체험과 그것에 부여된 의미는 주관성의 벽을 허물고 보편으로 나아가야 한다.
작가의 주관적 경험과 의미는 보편성을 확보함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작가의 생각이 독자에게 다가가 상호소통을 이루어낼 때 문학작품이 된다. 따라서 수필 쓰기가 화제에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 작업이라고 한다면, 수필 쓰기에서 가장 중요 한 것은 그 해석이 보편성을 확보하는 일일 것이다 해석적 수필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제와 의미의 밀접성이다. 작가는 어떤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화제를 선택하기도 하고, 경험한 화제를 먼저 정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서를 밟기도 한다. 어느 경우도 화제와 의미는 상응해서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 틈을 보이면 관념이나 교훈이 두드러질 가능성이 크다. 화제/일화/경험은 구체적이고, 의미/해석은 추상적인 관념 이다. 양자가 긴밀한 연관성을 지닐 때 화제의 의미가 창조적으로 해석되고, 해석의 의미가 공감을 불러올 수 있다. 작품 구성상 화제와 해석의 경계가 드러나지 않게 하나로 섞일 때도 있고, 뚜렷한 경계를 보일 때도 있다. 후자는 화제나 해석 중 서술의 길이가 어느 한쪽으로 쏠릴 수 있다. 화제가 짧고 해석이 길면, 작가의 주관적인 관념과 정서가 과다 노출되어 관념 편향성을 드러낸다. 이를 극복하려면 해석 가운데 들어갈 구체적 일화가 필수적이다
화제를 해석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개인 체험을 보편적 차원으로 높이는 일이다. 이러한 보편화 과정은 대체로 수필에서는 주장을 펴거나 사유와 정서를 진술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해석을 통한 수필의 주제화 과정은 비문학적이다. 일반적으로 문학은 특정한 관념, 주제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럴 때는 주제가 작가의 직접적인 진술을 통해서 작품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수필의 해석 과정은 대체로 관념적 진술로 이뤄진다. 이런 연유로 수필을 교술 문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교술'이라는 의미 안에는 벌써 비문학적 속성을 전제한다. 이렇게 볼 때, 수필은 작가 체험의 형상화를 통해 주제를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문학의 본령과 맞닿은 부분이 있는가 하면, 주제를 직접 진술하는 교술의 비문학적 부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양자가 뒤섞인 것이 수필의 기본 형식이다. 문학을 닮으려고 완전한 형상화 쪽으로 가면 주제의식이 약화하고, 의미의 보편성을 위해 관념적인 진술 쪽으로 나아가면 문학이라기보다 철학 혹은 사상에 관한 논의가 되고 만다. 이 둘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수필가의 개인의 능력 문제다
문학은 인간 삶에 대한 해석이다. 인간 삶의 현실을 하나의 텍스트로 견제하고 해석하는 것이 문학이다. 문학 창작은 텍스트를 분석하고 그곳에 숨은 의미를 찾아내고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해석이고 비평이다. 따라서 문학의 텍스트는 사실 메타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이 말하는 삶은 작가가 해석하고 구성한 결과물이다. 실제 현실이라는 일차적 언어에 대한 이차적 언어가 문학인 셈이다. 문학의 언어는 무의미한 상태로 무질서하게 혼재하는 실제 삶의 현실을 작가의 상징화와 구성 능력으로 의미와 질서를 부여한다. 언어에 의해 무의 미한 현실은 유의미하고 분절된 현실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학은 현실에 숨은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기보다는 실제 현실이라는 일차 텍스트의 의미를 해석하고 구성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수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문학에서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면, 수필은 작가가 텍스트의 의미를 직접적인 진술을 통해 설명하거나 주장할 때가 많다는 말이다. 수필은 화자가 직접 나서서 독자에게 의미를 말해주는 방식이다.
수필의 글쓰기 방식은 문장 기술에서 묘사보다는 설명적 진술이 기본이다. 물론 수필에서 설명적 진술은 수용하고 묘사적 기술은 배척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수필은 작가 체험을 화제로 삼아 하나의 완결된 구조물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하나의 구조물을 만드는 방식은 세가지다. '기록> 해석->형상화'가 그것이다. 문장 표현 방식에서 설명적 진술은 '기록'에서 '형상화'쪽으로 다가갈수록 그 농도가 얕아진다. 예술이나 문학의 본성이 사실과 실재의 변형이고 창조적인 재구성라고 한다면, 설명적 진술은 비문학적이고 반예술적인 요소다. 문학으로서 수필 쓰기는 당연히 '형상화'를 지향해야한다. 그런데 수필이 형상화를 지향하면서도 온전히 그쪽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기록'과 '해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 이다. 일부에서는 '수필은 문학이다'라는 명제를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오직 형상화만을 수필 전부라고 고집하는데, 이는 수필의 고유한 성격인 '기록과 해석'의 측면을 고려하지 못한 결과이다. 수필 쓰기의 기본은 나에게 일어난 사건과 내가 경험한 사실을 무리 없이 언어구조물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 구성 작업은 기록과 해석에서부터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