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장 1절 ~ 5절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광주 제자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교회는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가?
지금부터 2000여 년 전에 처음 교회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셔서 이 세상에 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맨 처음 시작된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 교회였다.
예루살렘 교회의 뒤를 이어 이 지구상에 두 번 째로 세워진 교회가 있는데 바로 그 교회가 안디옥 교회였다.
이 지구상에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 예루살렘 교회,
이 지구상에 두 번 째로 세워진 교회 안디옥 교회,
그리고 3호 교회, 4호 교회, 5호 교회... 수십, 수백 개 교회, 그리고 그 교회의 흐름 가운데 우리 제자교회가 있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을 하는 공동체인가?
사도행전은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들을 상세하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 말씀은 안디옥 교회의 모습을 소개 하고 있다.
이 지구상에 두 번 째 세워진 교회였다.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이 안디옥 교회는 어떻게 세워졌을까?
[행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이 말씀은 예루살렘 교회에 관한 말씀이다.
우리들이 잘 아는 대로 스데반은 예루살렘 교회 안수집사였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 붙잡혀서 죽었다.
돌에 맞아 비참하게 죽었다.
이것은 스데반 개인의 아픔이지만 또한 예루살렘 교회의 아픔이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 환난이 극심하여 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남아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환난이 너무나 극심하여 그 땅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흩어진 성도들 가운데 일부가 안디옥에 왔다.
안디옥에 와서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처음에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다.
후에 그곳에 다른 성도들이 와서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한다.
[행11: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행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이렇게 해서 안디옥 교회가 시작되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성도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그곳에서 이방인들에게 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안디옥 교회가 시작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역사적인 사실이 있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왜 환난이 임했고 왜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을까?
우리들이 잘 아는 대로 예루살렘 교회는 참으로 대단한 교회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렇게 시작된다.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이 있었다.
회개한 그들은 성령을 받았다.
[행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이렇게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된다.
그 예루살렘 교회는 참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교회였다.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모여서 지속적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인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부활의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전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그들은 가르침을 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서로 교제하는 신앙생활을 했다.
그들은 날마다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그 가르침을 따라 성도들은 서로 교제를 했다.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그들은 또한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했다.
기도하기를 힘썼다.
예루살렘 교회는 참으로 모범적인 교회였다.
그들의 신앙생활을 참으로 아름다웠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는 교회.
그 결과로 그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고 있었다.
유무상통하는 교회,
날마다 모이는 교회,
기쁨이 넘치는 교회,
찬송이 넘치는 교회,
그리고 구원 받는 성도들이 날마다 더 해지는 교회.
주 예수님은 이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셨을 것이다.
주 예수님은 이 예루살렘 교회를 사랑하셨을 것이다.
그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에 좋은 것을 주시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 하는 예루살렘 교회에 엄청난 환난이 임한다.
그 환난 중에 하나가 바로 스데반 집사의 죽음이다.
스데반 집사만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에 남아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한 환난을 만난다.
주 예수님은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하는 예루살렘 교회에 왜 이런 환난을 허락하셨을까?
그것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과 연결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다.
예수님을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주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부어 주셨다.
그런데 왜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온 세계 땅 끝까지 주의 복음이 전파되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님이 오셔서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했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잘 했다.
어찌 생각하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100점짜리 성도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단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들은 선교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같이 모여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서로 교제했었고, 기도하기를 힘썼다.
그런데 선교하러 나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 예루살렘 교회를 보시고 주 예수님을 그 예루살렘 교회에 극심한 환난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렇게 예루살렘 교회에 환난이 임했고, 그 환난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흩어졌고 그렇게 흩어진 교회 성도들이 모이고 전도하여 세워진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였다.
그렇다면 안디옥 교회는 어떤 교회였을까?
그 교회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
다섯 명의 말씀의 일꾼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렇게 금식하며 기도했더니 성령님이 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의 역사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웠고,
성령의 역사로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 한다.
안디옥 교회는 모여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교회였지만 교회가 시작되자 바로 이어서 선교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루살렘 교회는 선교하는 일에 관심이 없으니 하나님이 그 교회에 환난을 내려 그 교회 교인들이 흩어지게 했다.
선교하는 일을 하게 하려고 흩어지게 한 것이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물 흐르듯이 그냥 선교사들을 세우고 선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주 예수님은 굳이 안디옥 교회에는 환난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큰 환난이 없이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안디옥교회가 파송한 바나바와 사울의 선교사역을 통해서 드디어 이 복음이 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파되기 시작한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
안디옥 교회야 말로 이스라엘 민족 안에 갇혀 있었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하여 세계 복음화의 문을 연 교회였던 것이다.
그 안디옥교회의 선교 사역을 통해서 계속해서 이방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
안디옥 교회의 뒤를 이어서 3호 교회가 세워지고, 4호 교회가 세워지고, 5호 교회가 세워지고... 그 흐름 속에 지금 우리들이 예배하고 있는 이 제자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교회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교회는 예배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교회는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이 교제를 해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도 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그것이 아니다.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은 바로 선교다.
교회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예배하고, 교제하고, 기도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바로 선교사역이다.
선교사명이야 말로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인 것이다.
우리 교회 가까이에는 기아자동차가 있다.
이 기아자동차는 무엇을 하는 공장인가?
당연하게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이다.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것이 기아 자동차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그런데 그 기아자동차 직원들이 날마다 모여서 체력단련을 하고, 공장을 깨끗이 청소하고, 또한 모든 자동차를 만드는데 필요한 공구들을 잘 정비한다고 생각해 보자.
날마다 모셔서 체력 단련, 공장 청소, 공구 정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자동차 공장이 아니다.
자동차를 만들어 내야 자동차 공장인 것이다.
이것이 기아자동차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모여서 말씀을 배우고, 교회가 모여서 교제하고, 교회가 모여서 기도하고...
오늘도 그렇게 하고, 내일도 그렇게 하고, 모레도 그렇게 하고...
그렇다면 그것이 진짜 교회인가?
아니다.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은 선교 사역이다.
모여서 힘을 얻는 대로 선교사역에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우리 제자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예배하는 교회. 맞다.
교제하는 교회. 맞다.
기도하는 교회. 맞다.
이 모든 것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선교사역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이 필요한 것이다.
제자교회는 바로 선교하는 공동체인 것이다.
제자교회는? 선교하는 공동체!
제자교회는? 선교하는 공동체!
이것이 바로 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사명이다.
교회가 선교하는 공동체라고 하면 교회 성도는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그것은 당연하게 선교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자교회 성도들은? 선교하는 성도들!
제자교회 성도들은? 선교하는 성도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인 것이다.
이것이 성도들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그렇다면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두 가지 방법으로 한다.
직접 가든지 아니면 보내든지 하면 되는 것이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두 사람을 보냈다.
바나바와 사울이었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 성도들을 대표하고, 대신해서 선교 현지로 갔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 모든 성도들은 그 선교사들을 뒤에서 도왔다.
뒤에서 도왔다고 말해도 되지만 뒤에서 동역했다.
어떻게 동역했는가?
기도로 동역했고, 물질로 동역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우리 제자교회를 대표해서 누가 선교현지에 나가 있는가?
방글라데시에 정익모 박금란 선교사님이 나가 있다.
인도네시아에 김종만 김은혜 선교사님이 나가 있다.
인도에는 손순옥 로버트 선교사님이 나가 있다.
우리를 대표해서 우리들을 대신해서 나가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저 선교사님들과 함께 뒤에서 기도로 동역하고 물질로 동역하는 것이다.
선교에 동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시대 세계 선교를 일등으로 하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세계 모든 경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온 세계에서 가장 축복을 받은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하나님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열심히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니 그 나라를 그렇게 축복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2등으로 선교를 많이 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세계에서 2등으로 선교를 많이 하는 나라.
하나님은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을 이렇게 축복하신 것이다.
선교하는 나라를 이렇게 축복하신다.
그렇다면 어떤 성도들을 축복하실까?
선교하는 성도를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교만이나 자랑이 아니라 선교사역에 도전을 주기 위해서 나의 가정의 선교사역을 공개한다.
제자교회 목사인 나는 매월 210만원의 사례비를 받는다.
그런데 이렇게 사례비를 받는데 얼마 정도의 선교비를 드리는가?
매월 선교비로 16만원을 드린다.
매월 선교지의 기숙사 사역을 위해서 11만원을 드린다.
매월 선교사님의 자녀들과 어려운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15만원 사랑실천헌금을 드린다.
그리고 매월 선교하는 제자교회 건축헌금으로 10만원을 드린다.
이렇게 매월 52만원을 드린다.
“이렇게 드리면 목사님 가정은 무슨 돈으로 먹고 사세요?”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무슨 돈으로 먹고 살까?
이렇게 선교하는 일에 헌신했더니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경제적으로 축복하셨다.
넘치는 축복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우리 가정이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지는 나와 함께 제자훈련을 하는 성도들은 잘 안다.
선교하는 나라, 선교하는 교회, 선교하는 개인을 하나님은 이렇게 축복하신다.
그것이 주님의 소원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무엇인가?
성도들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은 무엇인가?
주님은 우리 교회와 우리 교회 성도들을 어디에 쓰기를 원하시는가?
나는 20살에 주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셨다.
나의 주인 되신 그 예수님은 내 나이 20대 중반에 나에게 꿈과 비전과 사명을 주셨다.
그것은 제자를 세우는 사명이요, 그 제자들과 함께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었다.
나는 그 예수님과 함께 이 사명을 갖고 50년의 세월을 살아 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기에 이렇게 서 있다.
지나온 나의 인생은 어떤 인생이었는가?
지금 현재의 내 인생은 어떤 인생인가?
그리고 내 나이 70을 넘어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지난날에도 축복을 받았고, 현재도 축복을 받았고,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도 크고 놀라운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선교의 사명을 더욱 힘 있게 감당하게 할 것이다.
나는 새벽마다 내 인생을 뒤돌아보며 감사 기도한다.
제자를 세우는 일과 선교사역에 쓰임 받게 된 일에 대해서 감사하며 기도한다.
나는 새벽마다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그 사역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리고 나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한다.
더 많은 축복을 받고 더 영광스럽게 선교사역에 쓰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이다.
그리고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도 바로 선교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오셔서 이 귀한 일에 우리들을 부르신다.
나는 이 부름에 응답했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았더니,
지금 여기까지 축복을 받았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는 나의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