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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퇴직
조미경
공무원으로 정년 퇴임을 앞둔 이수는 자격증에 관련된 책을 사서 공부하고 있다. 노안으로 책을 읽을 때면 돋보기를 껴야만 볼 수 있는 작은 글씨에 집중하다 보면 눈이 너무나 피곤했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가족들 식사가 모두 끝날때 식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런 이수는 늘 뭐든지 열심히 하는 성격이었다. 몇 달 후 치러질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직장 근처 국비 지원받는 바리스타 학원에서 커피 내리는 일을 배웠다. 바리스타 자격증은 이론과 실기 수업으로 일주일에 두 번 수업했다. 처음에는 커피 향이, 커피 내리는 일이 재미있어 즐거웠다. 함께 바리스타 과정을 공부하는 학생 중에 이수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공무원 시험 합격 후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까지 한 가지 일만 하는 그녀는 바리스타 일이 자신 적성에 맞는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직장이 끝난 후 학원 다녀야 해서, 처음엔 몸살이 나고 아팠다. 직장과 학원을 오고 가던 이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적응이 되는지 힘들다는 말 대신에 재미있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학원이 없는 날 통화 할 때면 금방이라도 카페를 창업해도 무리가 없다는 듯이 자신감에 차 있곤 했다. 이수의 목소리는 언제나 활기에 넘쳐 있었다. 그런 이수를 바라보며 나 역시 위안이 되었다. 어느 정도 커피 내리는 일이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제빵 학원에 등록했다. 이수의 입을 빌리면 뭐든지 사장이 직원보다 똑똑하고 일머리가 있어야 하고 직접 커피를 내리거나 빵을 굽지 않아도, 조금은 알아야 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정말 이수는 시간을 그냥 보내는 일이 없었다. 나중에 그녀는 카페 사장이 되기 위해 시장 조사하면서 분위기 있고 가성비 좋은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셨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이 조사하고 기록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수는, 아담한 공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빵과 커피를 제공하는 베이커리를 겸한 카페를 창업하고 싶어 했다. 그녀의 소박한 꿈을 차마 말릴 수 없는 나는 이수에게, 창업은 직장 생활하는 것보다 몇 배는 고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수는 자유롭게 출. 퇴근하는 나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카페 창업이 꿈이었다고 말했다. 이수는 잔잔한 음악에 햇빛이 잘 드는 투명한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계절의 변화와 길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보는 게 로망이라고 말했다.
이수는 공무원 퇴직 후 퇴직금과 월급을 푼푼이 모은 돈으로 자신만이 가진 노하우를 녹여 창업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서울의 소시민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엄마를 보면서 자신은 큰 꿈을 꿀 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고교 졸업 후 공무원 생활하면서 방송통신대를 졸업한 이수는, 동생들은 자신처럼 고생하기보다 조금 더 학업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동생들의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선물할 수 없었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이수는 틈만 나면 운동을 핑계 삼아 주말이면 서울 근교 베이커리 카페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자동차에 필요한 것을 싣고 떠났다. 그것이 이수가 정년 퇴임 후부터 시작된 우리들의 루틴이다. 그녀는 특유의 뚝심과 성실함으로 빵을 배웠다. 베이커리 학원에서 이수는 자격증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우선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면, 직접 빵을 만들지 않는다 해도, 또래 주부들처럼 취미가 아닌 직업을 갖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기에, 강사의 설명을 열심히 들으며 공부했다. 빵 관련 이론 시험을 당당하게 합격하고 나서, 이번에는 실기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 집에 있는 오래된 오븐을 교체했다. 이때 이수 남편 민기는 멀쩡한 오븐을 바꾸게 되니 돈을 낭비하고 있다고 잔소리했다. 이수에게 있어 오래된 오븐은 이수의 빵을 만드는데 전혀, 도움 되지 않았다. 이수는 날마다 학원에서 배운 빵을 집에 와서 실습했다. 이수는 빵 만드는 데 필요한 계량컵, 거품기, 믹싱기, 제빵 숙성기, 발효기 등을 갖추어 놓았다. 평상시 그녀의 식탁은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맛있는 반찬을 만들던 부엌은 순식간에 빵 공장이 되었다. 학원 수업이 없는 날은 부엌에서 전날 배운 빵을 시연하여 가족들에게 밥 대신 빵을 먹이면서, 품평회를 했다. 이수는 빵을 만들어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아파트 경비실에도 나눈다고 했다. 이수는 늘 빵을 만들면서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그녀의 손에서 만들어진 팥빵은 달콤하면서, 식감이 부드러웠다. 어느 날은 이수가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 직접 구운 빵을 가지고 찾아왔다.
그녀가 들고 있는 쇼핑 백에는 팥빵, 곰보빵 슈크림 빵. 버터 빵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수는 나를 만나자마자, 어서 먹어 보라고 채근했다. 그녀가 포장된 빵을 내 앞에 내밀었을 때 포장을 뜯고 빵을 보았다. 나는 하마터면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이수가 만든 팥빵은 일반 베이커리에서 파는 빵과 살짝 모양이 달랐다. 팥빵의 모양은 이수가 빵의 모양을 성형할 때, 서둘렀는지 아니면 손에서 모양을 잡을 때 한쪽 손에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갔는지. 찌그러져 있었고, 빵 겉면이 거칠고 울퉁불퉁, 못난이 빵으로 보였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수가 나에게 물었다.
“어때 내가 만든 빵… 잘 만들지 않았니?”
나는 이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는 이게 잘 만든 빵으로 보이니?”
나의 말에 이수는 샐쭉 토라져서
“너 모양 말고 그럼 맛을 보고 평가해줘.”
나는 우선 팥빵을 반으로 쪼개 한입 먹어 보았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휴지에 빵을 모두 뱉었다.
“소영아 너 왜 그래?”
내가 마치 못 먹을 것을 먹은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자 이수가 자신이 만든 빵을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너는 어떠니 네가 만든 빵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 이게 왜 이 맛이 나지 나는 분명 레시피 대로 했는데, 정말이야.” “너 말이야 뭘 잘못 적은 거 아니야.”
내가 다그치듯이 말하자 이수가
“나 어제 학원에서 말이야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설탕과 소금을 정확하게 눈금을 재어서 반죽했거든.”
이수는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하지만 가끔 덜렁거리는 성질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것인지 빵을 만들면서 소금을 더 넣었는지, 빵 맛이 살짝 짰다. 마치 소금 빵처럼.
소금 빵은 빵 표면에 살짝 소금을 뿌리고 구워낸 빵이라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팥빵은 팥소에 설탕이 들어있어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었다. 그런데 이수가 만든 팥빵은 팥을 집에서 삶았는지, 무르지 않았고 어딘가 모르게 덜 삶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이후 이수는 팥빵을 매일 집에서 만들었고, 이수 남편은 팥빵에 대해 너무나 지겨워했다‘ 한다. 다음에 팥빵 시식을 마친 나는 슈크림 빵 맛을 보았다. 이수가 만든 슈크림 빵은 일단 겉모양은 합격점을 주었다. 빵은 맛도 중요하지만, 특히 빵 표면이 반짝이면서 윤기가 흘러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한눈에 보았을 때 먹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슈크림 빵을 둘로 쪼개었을 때 안에서 부드러운 슈크림이 부드럽게 흘러야 하는데, 슈크림이 죽처럼 걸쭉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크림은 살짝 단맛이 느껴지면서 약간의 바닐라 향이 입안에서 퍼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수에게 짝짝짝 축하의 의미로 박수 쳤다.
“이 슈크림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그렇지만 조금 더 연습이 필요하겠다.”
이수는 만족한 듯 입꼬리에 미소가 번졌다.
“사실 나 말이야 학원에서 날마다 칭찬받아
너는 믿지 않겠지만…” “어련하겠니, 너 어릴 때부터 덜렁거리고 맨날 흘리고 그랬잖아.”
내가 흐흐 웃으며 이수를 놀리자 이수는 애는 별걸 다 기억하고 있어 하면서 눈을 흘겼다.
그날 우리 두 사람은 점심 대신에 이수가 만들어 온 빵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이수의 두 자녀는 모두 독립해 살고 있다. 이수는 지금 홀가분하게 자신만의 인생 2막을 준비 중이다. 젊어서는 남편과 자식 키우느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다. 이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성공에 대한 열의를 다지는 중이다. 오직 자신 일만 하는 자기중심적 사고인 남편 때문에 때로는 대화가 통하지 않아 답답한 면도 많지만, 요즘은 서로의 일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니 차라리 편하다 그랬다. 이수 말처럼 남편이 옆에서 지나치게 간섭해서 잘되고 있는 일도 안 될 수도 있기에 이수는 많은 부분을 주위 지인들과 선배들을 찾아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고군분투할 때는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혼자서 카페 창업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향기롭고 우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수의 이름이 뜨면 나는 반가움에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며칠 전 가을 하늘이 아주 높은 날이었다. 가로수길에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책갈피에 꽂아 두고 음미하고 싶은 날 오후였다.
"소영아. 뭐해?"
이수 특유의 코맹맹이 소리에 나는 "나! 일하고 있지."
"얘, 우리 낙엽 밟으러 가자.
"낙엽?"
"갑자기 웬 낙엽?"
"어쩜 너는 그렇게 감성이 죽었니?"
“내가 감성이 죽었다고, 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니?”
“얘 소영아?” 이수가 나를 은근한 목소리로 불렀다.
속으로는 또 애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내심 궁금했다.
“우리 이번 주말 파주 한 바퀴 돌고 오자. 별일 없으면, 라운딩 끝나고 커피 마시러 베이카에 가자.” 이수가 자기 남편 대신 나를 끌고 시장 조사를 다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수 남편 민기는 주말과 휴일에도 바쁘기도 했지만, 아내인 이수하는 일에 무관심했다. 그런 남편과 창업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아, 시간이 되는 주말이면, 운동을 핑계로 콧바람을 쐬러 야외로 나갔다.
“또 시작이니?” 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쪽에 맛있는 베이커리가 오픈했대. 한 번 가서 구경하고 오자 우리 둘이서만…”
파주 쪽은 골프장이 많아서 겸사겸사 한번 다녀와도 좋을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두 사람 골프 조인하면 되는데, 어느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를 받을 것 같아서 물었다.
“다른 사람은 안 가고?” 내가 묻자 이수는 “커피와 맛있는 빵은, 내가 쏜다.” 이수가 달콤한 말로 나를 설득하려 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못 살아”
그리고 그 주말 아침 집을 나와 자유로를 따라 달렸다.
지난봄 벚꽃이 향기를 피우던 가로수길에는 나뭇잎들이 오색 옷을 갈아입고
나그네를 반겨 준다. 나는 몇 달 앞으로 다가오는 남편 인호의 정년퇴직을 생각하며 자동차를 몰고 있었다. 이수는 정말 인생을 열심히 사는 친구라 생각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인호는 예전에 하지 않던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용건도 없이 전화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전화를 받아 주는데, 어느 땐 급하지도 않고 아주 사소한 일로 전화하는 남편 때문에 짜증이 난다. 이수는 이렇게 미리미리 자신의 꿈을 위해 인생 2막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공직 생활하는 남편 인호가 떠올랐다. 이수와 인호 두 사람을 비교하다 하마터면, 인터체인지를 놓칠뻔했다. 파주로 가는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지 못하면 한참 돌아서 가야 한다.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아침에 친구들과 운동 약속이 있어 현관을 나서는 인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짠한 마음이 되었다. 그동안 자식들 키우고 집안을 건사하느라 자신에게 잠시도 휴식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퇴직하면 무조건 얼마 동안은 쉬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수가 부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아는 이수는 어린 시절부터 성실함이 몸에 있었다. 이수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어느 곳에 베이커리 카페를 창업할 것인지 염두에 둔 사람처럼 만나면 오로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빵과 커피에 관심을 쏟았다. 그녀가 이렇게 베이커리 카페에 관심이 많은 것은 배고프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꿈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수와 나는 같은 여고를 졸업했다. 이수는 공무원 시험을 치른 후 바로 동사무소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남편 인호는 친구 M의 근황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직장 생활하던 어릴 적 친구가 퇴직했는데, 모처럼 자신만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했다고. M은 주말이면 아내와 서울에 있는 산을 오르며 그동안 아내와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니 늘그막에 부부 관계가 더 좋아 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예전 직장에 얽매여 있을 때는, 주중 점심시간 외에는 자영업 하는 친구들처럼 카페에 앉아 담소를 나누지 못했는데, 지금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니 너무 좋다고 했다. 인호의 대학 동창들은 정년이 되자 하나둘 직장을 떠났다. 그들은 직장을 떠나기 전에는 사업 구상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냈는데 막상 퇴사하고 나니, 창업이나 새로운 직장에 재취업에 실패했다. 몇 명은 퇴사 후 뚜렷하게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더니 가끔 단톡방에 공원 풍경 사진을 보내는 것으로 소일했다. 회의 중 울리는 카톡 알림은 은근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때로는 부러움을 느꼈던 적도 있다.
인호 자신은 아직 직장에 남아 있으니 현실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다. 현대 사회의 노예근성이 뼈에 새겨질까 두려워 얼른 퇴직하고 훨훨 날고 싶은 꿈을 꾸다, 일 할 수 있다는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그러나 직장 일이란 매일 스트레스의 연속이라 어서 빨리 정년퇴직을 맞아 퇴직금 받아서 남들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남편 인호를 바라보면 가끔은 직장 생활이 얼마나 지겨우면 그런 말을 할까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가끔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짜증도 났다.
얼마 후 인호 대학 동창인 M은 제2 인생을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서 빌딩 관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비록 급여는 전에 다니던 금융권보다 약하지만, 아침이면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정년이 없어 안정되고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다며, 동창회에 나오면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았다.
인호는 정년퇴직이 다가오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집에서 밥 세 끼 먹는 삼식이로
살기보다는 취미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영부영 어물거리다 퇴직했다.
작은 상자에 그동안 쌓인 물건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홀가분했다
집에서 지내보니 몸이 마치 새처럼 가볍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부터 휴대전화 알람 설정을 지웠다.
습관처럼 일어나던 아침의 일과가 건전지가 다한 시계처럼 아침이
더디게 흘렀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조간신문을 눈길을 주던 아침이 지났다.
가족들이 모두 빠져나간 집안은 정적만이 남아 있는데 거실 벽에 걸린 벽시계
만이 홀로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며칠 동안 집에 앉아 있으니 좀이 쑤시는 것 같아 골프 백을 메고 근처 인도어 연습장에 갔다. 어쩌다 동창들과 라운딩을 나가면, 연습하지 않아 근육이 굳었는지 거리가 도통 나지 않았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연습장에서 땀을 흘릴 생각을 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채를 휘둘렀다. 그러나 20분 하고 나니 금방 지치는 것 같다. 자동판매기에서 음료수를 한 개 뽑아 들고 타석으로 왔다. 음료를 마신 인호는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드라이버를 쳤다. 그물망에 맞은 공은 시간이 흘러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반면 인호 앞에서 연습하고 있는 자신 또래의 건장한 남자는 드라이버 거리가 눈으로 대충 보아도 200미터 이상은 날리는 것 같다. 속으로 자존심이 상한다. 인호는
입술을 깨물며 앞 타석에서 연습하는 남자보다 멀리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연습 시간 1시간이 종료되어 골프채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피곤이 몰려온다. 골프 연습장에서 쉬는 시간이 아까워 미친 듯이 골프채를 휘두르다 집으로 돌아오니 온몸이 뻐근하다. 욕조에 물을 채우고 피로를 풀었다. 샤워를 마친 인호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집안은 오로지 가전제품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리고 자신의 발소리만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휴대전화를 열었다. 그동안 바빠 연락이 뜸한 동창들에게 전화 통화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동창들 몇 명과 통화했지만, 시계는 아직도 11시에 가깝다. 지금쯤 회사에서는 동료들이 분주하게 서류철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증권 시세를 보고 있을 것이다. 직장에 있을 때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퇴직하고 나니 갑자기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다. 새벽에 일어나는 루틴에서 벗어나려 알람 설정을 해제했지만, 몸의 기억은 수십 년 동안 이어온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지 저절로 눈이 떠진다. 텅 빈 거실에 앉아 휴대전화만 멍하니 바라보다 옷장에서 웃을 꺼냈다. 달리 갈 곳도 없다. 저녁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점심을 먹자고 약속을 잡는 것도 귀찮다. 일단 밖으로 나가면 어디든지 발걸음 닫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왔지만, 딱히 갈 곳이 없다. 한참 걷다 보니 지하철역에 와 있다. 지하철은 한산하다. 빈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덜커덩거리며 달리는 기관차 소음을 듣고 있었다. 예전에 느끼지 못한 새로운 것이 들린다. 안내 방송에 귀를 기울이다
생각 없이 지하철을 타고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계절은 이미 봄으로 향하는지 나무에는 초록의 생기가 올랐다.
이수가 베이커리 학원에서 빵을 배우면서 시장 조사를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팔았다. 가장 먼저 염두에 두는 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자주 베이커리에 드나드는지 동선을 그리고, 자주 찾는 손님의 연령대를 실시간으로 표를 만들어서 연구했다. 그리고 약 육 개월의 준비 끝에 드디어 이수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베이커리 카페를 창업하려 했다. 창업하기 위해 이수는 가장 먼저 신경 쓴 것은 첫째는 유동 인구가 많고, 근처에 사무실이 있어서 점심이나 저녁 식사 후, 디저트 개념으로 가볍게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신경을 쓰면서 조사에 나섰다. 입지가 좋고 평수가 큰 점포는 권리금이 비쌌다. 권리금이 비쌀수록 장사가 잘된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러나 권리금이 없는 신축 건물은 근처에 오피스 건물이 없어, 수요가 없을 것 같았다. 신축 건물은 권리금이 없는 대신, 광고나 홍보에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쓰고 투자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이수가 퇴직 후 제2 인생의 목표로 삼은 베이커리 카페 창업은 동네에 많은 커피 전문점과 카페가 많지만, 매일 먹는 빵과 함께 가까운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정겨움을 나누는 그런 장소로 하기 위함이었다. 이수가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꿈인 베이커리 카페 사장이 되는 것은, 그녀가 잠시 아르바이트 하면서 알게 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강남역에 있는 뉴욕제과였다. 그 당시 강남역 뉴욕제과는 청춘 남녀의 데이트 장소이면서, 대학생들의 미팅 장소로 유명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일하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라 생각하여 그 후 지금까지 잊지 않고, 베이커리 카페 창업에 관심을 쏟았다. 이수는 창업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체인점이 많은 베이커리 카페 창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름을 딴 베이커리 카페를 창업할 것인지 고민했다. 전국적으로 체인이 많은 체인점은 투자에서부터 창업에 이르기까지 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자신의 이름을 딴 베이커리 창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선 대표인 이수 자신이 빵을 배웠지만, 자신만의 노하우가 없다. 그것이 이수에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완벽한 기술을 익힌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 있었다. 빵을 배우는 과정도 오래 걸리지만, 대중들에게 맛과 신선함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젊은 사람도 힘든 일을 하겠다고 의지와 투지를 불태우는 이수를 보면서 나도 함께 젊은 시절의 꿈을 이루겠다고 하늘에 대고 소원을 빌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는 누구나 자신감에 불타올랐던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는 만나면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서로를 보듬어 주었다. 이수가 한창 창업 준비에 박차를 가할 때, 미국이 금리 인하를 시사하고 한국은행에서 금리 인하하겠다고 발표하는 덕분에, 이수는 창업 자금을 조달하는데, 숨통이 트였다. 이수는 결국 출. 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신축 건물을 임대차 계약 준비에 돌입했다. 그녀에게는 경험이 부족했다.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국내 유명 베이커리 체인점 방문 후 가맹점 조건을 알아보고 자신과 맞는 것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수는 자신이 아는 지연과 학연을 동원해서 베이커리 관련 일하는 동창생들과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오픈에 필요한 것들을 보다, 저렴하게 장만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다녔다. 친구들은 베이커리 카페 창업할 때 신품 보다는 신품 같은 중고도 괜찮다는 조언해 주었다. 그녀는 황학동과 주방 가구를 싸게 파는 곳을 돌아다니면서 견적을 뽑았다. 매일 서울과 경기도를 돌아다니면서 실용적이며 튼튼한 집기류와 자신이 꿈꾸는 가게를 열기 위해 꼼꼼하게 메모하면서 이어갔다. 실내인테리어 하기 위해 잡지를 참고했으며 유명한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컨셉을 연구하고 지역과 동네 특성에 맞는 제품을 살기 위해 사진을 찍고 공부했다.
이수가 SNS에서 가장 핫한 베이커리 카페를 찾아 실내 장식을 연구하다 보니 자신이 그동안 모르고 지나친 것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이수는 경기도 양평까지 다녀온 후 기진맥진해서 거실에 쓰러져 있었다. 서울에서 경기도 양평에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카페를 찾아 빵을 시식하고 커피를 마셨다. 이수는 가는 곳마다 빵의 특징과 커피 맛을 노트북에 메모해서 정리했다. 그리고 작은 스케치북에는 자신이 꿈꾸는 매장의 그림을 간단하게 스케치하는 것이 일과였다. 몇 달 동안 창업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몸이 지친다. 이수 남편 민수는 천천히 움직이라 하는데, 이왕 할 바에는 잘하고 싶고 꼭 성공하고 싶다. 이수가 저녁도 굶은 채 거실 소파에 누워 있을 때 민기도 밖에서 들어왔다. “당신 언제 들어왔는데 이렇게 늘어져 있어? 어디 아픈 거야?” 민수는 운동하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이수가 거실에 누워 있으니 걱정이 된다. 행여 몸이 아프면 어쩌냐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게, 내가 뭐라 그랬어. 너무 성급하게 하지 말라 했잖아.”
“아니야 오늘은 양평에 다녀왔더니 피곤한가 봐.”
이수는 남편 민기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괜히 혼자 미안해진다.
민기는 이수가 베이커리 카페를 창업하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퇴직 후 쉬면서 천천히 새로운 일거리를 찾으면 되는데, 성미 급한 이수는 퇴직하기 전부터 학원 다니면서 창업 준비했다. 자신은 이수처럼 일에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 적성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그런데 반대로 이수는 자신 적성 보다도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벌리는 바람에 쉬고 싶어도 마음대로 쉬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수는 오픈 준비로 매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새벽에 일어나 현장에 도착 미비한 사항이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를 했다. 실외 인테리어의 경우 간판 위치와 색깔 등 글자 크기와 내용이 빠진 것이 없는지, 눈으로 보면서 현장 감독과 매일 미팅을 이어 갔다.
공무원 생활하면서 몸에 베어 있는, 철저한 감독은 실제 일하는 사람들을 한숨 쉬게
했지만 이수는 자신이 한 번 마음 먹은 것은 꼭 해내고야 마는 성격 탓에, 실수를 줄일 수 있었다. 이수는 틈나는 대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직원들 채용과 어떤 사람이 좋은지 자주 상담했지만, 나 역시 정답을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웠다.
오픈 날을 며칠 앞두고 매장 직원 면접이 있었다. 이수는 메일로 온 이력서를
한 장씩 넘기며 신중했다. 매장에서 일한 경험과 서비스직에 어울리는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서는 매의 날카로움이 필요했다. 그녀는 면접자들이 자신 앞에 섰을 때 첫인상과 그동안 비슷한 직군에서 일했는지 질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실하게 일할 사람인지 아니면 반대로 책임감 없이 시간 만 대충 때우는, 안일한 사람이 아닌지 판단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들은 채용만 되면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는 있었지만, 근면이나 성실과 거리가 먼 사람은 점수를 낮게 매겼다.
인호는 퇴직 후 한동안 친구들을 만나면서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이 좋은지, 늦잠을 즐기기까지 했다. 이수는 크리스마스를 겨냥 카페 오픈 날짜를 맞추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동분서주했다.
정직원과 파트타임 직원 채용 후 교육과 업무 협약에 관한 메뉴얼을 비치 설명하고 지시했다. 오픈하기 전 현수막을 설치하고 매장 앞에 벤허 광고물을 세우는 등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날을 보냈다. 드디어 오픈하는 날 이수는 설렘에 밤잠을 설쳤다.
난생처음 자신의 힘으로 창업했다는 뿌듯함에 그동안의 고생이 아닌 감격으로 다가왔다.
이수는 오픈 하루 전날까지도 새벽부터 매장에 출근 테이블을 닦고 커피머신을 물티슈로 닦는 등 한시도 쉬지 않고 정리하고 일했다.
싱크대를 열고 손님 맞을 준비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그녀가 테이블에 앉아 직원들 신상 카드를 정리하고 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직원들을 독려하며 분주하게 지시했다. 손님들이 한 명씩 매장을 찾아 주문하자 이수는 자신도 모르게 울컥 치미는 게 있었다. 개업 준비하기 전 실질적으로 직접 빵을 만드는 파티셰 학원과
커피를 배우는 순간의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남편 민기가 보낸 축하 화환이 도착하고, 내가 보낸 축하 화분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비치 했다는, 이수의 전화에 기분 좋게 축하했다. 이수의 친구들과 함께 일한 동료들이 보내준 화환으로 매장은 금방 화사하게 북적거리며 분위기를 띄웠다.
매장에서는 지나는, 행인 발길을 붙들기 위한 음악까지 달콤한 빵 냄새 사이로 커피의 향긋함까지 더해지니 사람들의 식욕을 부추겼다.
이수는 직원들보다 삼십 분 일찍 출근 매장을 확인하고 직원들이 모두 퇴근 후 혼자 남아
재고 확인 후 퇴근했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연말을 맞아 이벤트 프로모션을 준비하느라
골똘히 생각에 잠긴 저녁 아침부터 내린 눈은 밤이 되자 녹았던 눈이 얼어 빙판길로 바뀌었다. 손이 시린 이수는 손을 코트 호주머니에 넣고 걷다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곳은 이수가 자주 다니던 길이었지만 어둠에 익숙지 않아 내리막길을 인지 하지 못하고 순간 딴, 생각에 빠져 걷다 그대로 미끄러졌다. 순간 ‘아 얏’ 하고 비명이 터지고 통증이 전신으로 퍼지는데 길바닥에 주저앉아 지나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땅바닥에서 일어 쉴 수조차 없었다.
순식간에 당한 사고라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순간 정신이 멍하면서 눈앞이 깜깜하다.
이수는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통증으로 인해 다리에 힘을 주어도 손으로 땅바닥을 짚으며 일어서려고 했지만, 일어설 수 없었다. 날씨는 춥고 119를 불러 응급실에 가는 것도 편치 않아, 휴대전화를 열고 남편 민수에게 전화했다.
“여보? 나 어떡해, 나 아무래도 많이 다친 것 같아.”
이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뭐라고 어디를 얼마나?”
민기는 아내 이수의 전화를 받고 불안감에 빠졌다. 아내는 젊은 시절부터 욕심이 많았다. 남들보다 부지런했고, 일분일초도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없을 만큼 자신을 호되게 담금질했다. 남편 도착하기 전 추운 도로에 앉아 있으니 손끝이 시리고 다리에 감각이 없다. 그날따라
바람까지 거세어 온몸을 웅크리고 있자, 검은 그림자가 성큼성큼 다가온 사람이 있어
순간 긴장했지만 남편이었다. 민기 부축으로 겨우 자동차를 탔지만,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다. 남편 팔을 붙잡고 걸었지만, 통증으로 인해 견딜 수가 없다. 근처 종합 병원 응급실은 환자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수는 엑스레이를 찍었다. 허리와 다리 골절이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결과를 확인한 이수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의사는 이수가 골다공증으로 인해 약해진 뼈가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도로 보도 블럭과 부딪쳐 뼈가 찢어지듯이 갈라졌다 했다’.
이수는 난감했다. 카페 오픈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 사고로 인해 당분간 병원 신세 져야 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그날 저녁 병원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으니 그동안 고생한 일이 스친다.
앞으로 한 달은 움직이면 안 된다는데, 다리에 깁스하고 허리를 압박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팔은 타박상으로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병원 침대에 누웠지만, 통증으로 쉬 잠들지 못했다. 진통제를 처방받아 먹었지만 터져 나오는 통증을 참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음 날 새벽 휴대전화로 매장 내에 설치된 cctv를 보고 있었다.
이수가 없는 매장. 직원들은 느릿한 몸짓으로 일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순간 속이 터지려 한다. 손님들이 연이어 밀려 들어오는데 직원들은 민첩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 전화로 한바탕 잔소리를 쏟아 내고 싶은 마음을 꿀꺽 삼키고 한참을 궁리했다. 가뜩이나 오른손을 깁스해서 쓸 수 없어 부자연스럽다. 잠시 화장실을 가려 해도 옆에서 부축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조차 없다. 한숨이 나온다. 이수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병문안을 갔다. 이수는 다리에 깁스하고 누워 있는데, 얼굴은 죽어가는 사람처럼 핏기가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됐어? 우리 나이에는 이제 뭐든지 조심해야 하는데.”
나는 여기까지 말을 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수처럼 부지런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인데, 자신의 사업장에 출근 못하는 심정이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퍼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수 남편 민수는 지금 정년 퇴임 후 집에서 쉬고 있다. 매장 관리를 매니저에게 맡기는 것도 좋지만 전체적인 총괄은 가족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 당장 이수는 남편 민기에게 전화했다.
이수는 생각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지만 자신이 그동안 꿈꾸었던 일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데 암초를 만나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멈춰있다. 병실에 꼼짝할 수도 없고 휴대전화로 연결된 자신의 매장을 cctv로 보고 있으니 미치겠다. 소리는 들을 수 없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도 신경이 쓰이는 이수였다.
매니저가 매일 전화해서 보고받고 있지만, 직접 현장을 볼 수 없어 미칠 것만 같다. 이수 남편 민기는 그런 이수를 나무랐지만, 꼼짝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간신히 화장실을 갈 수 있고 식사 시간에도 불편한 왼손을 써서 식사하는 불편함 때문에 짜증이 솟구쳤다. 저녁이면 어둠이 주는 암흑이 싫었다. 병원에 입원한 지, 3일이 지나자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골절된 다리와 팔은 약 기운이 떨어지면 쑤시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잠시 통증이 사라지면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가뜩이나 불편한 왼손으로
cctv를 돌려 보려니 답답하다. 직접 매장에 들러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많은데 전화로 매장 관리하는 매니저에게 일을 지시하다 보니, 감정이 앞선다. 이수는 감정을 숨기려 했지만, 순간순간 폭발할 것 같은 자신을 숨길 수 없어 그만 자신도 모르게 욱하고 말았다.
오픈 일주일이 지났는데, 매출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처음 오픈 준비할 때의 설렘보다
이젠 걱정이 앞선다. 혼자 정신이 돌아버릴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았다. 시간제 아르바이트생까지 문자 한 통 날리고 출근하지 않자 이수는 뚜껑이 열리고 말았다. 궁리해 봐야 뾰족한 수가 없다. 침대에 몸이 묶여 있으니 더욱 화만 치민다.
일일이 전화로 지시하는 것도 힘들다. 몸이 아프다 보니 감정이 예민해지고
툭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수는 나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했다.
나는 진심으로 이수를 아꼈다. 현실적으로 오너가 장시간 매장을 비우면 아무리 직원들이 잘한다 해도 펑크가 나게 마련이다. 결국 이수는 정년 퇴임 후 쉬고 있는 남편에게 매장 관리를 맡겼다. 이수는 수시로 남편 만수와 통화하며 매장을 이끌어갔다.
민기는 이수를 대신 해서 카페에 출근해서 매장 관리며 직원 관리를 꼼꼼하게 해냈다. 그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문자 한 통 보내고 무책임하게 결근하고 그만두는 것을 철저하게 방지하기 위해 미리 문서로 흔적을 남겼다. 이수는 병원에서 깁스 제거하고 물리 치료를 받으며 재활했다. 아직은 완전하진 않지만, 목발에 의지한 채 자신의 베이커리 카페에 출근했다.
출근하기 전 오랜만에 거울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다. 머리를 셋팅 하고 색조 화장하고
옷차림도 산뜻하게 차려입었다. 아직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스치는데도 마냥 기분이 좋았다. 30분을 택시를 타고 달려 도착, 자신이 가꾼 그곳에 서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직원이 인사를 건넨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순간 이수는 멍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뽑은 직원이 분명한데도 이수 얼굴을 몰라보는지 손님 취급한다. 직원의 시선을 무시하고 이수가 매장 안쪽 빵을 굽는 공장으로 가려 하자 옆에서 빵을 포장하던 직원이 가로막는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지 정말 기가 막힌다.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직원들제빵 기사들도 오너인 이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직원들과 티격태격하는 사이 남편 민기가 어디선가 나타났다. 그리곤
“당신이 여기는 웬일이야.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이수는 남편 민기의 말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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