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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7.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사귐, 기쁨이 충만하리라 유백선 목사
요한일서 1: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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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예일대 MBA학생이 졸업하기 전에 필수로 들어야 하는 최고 인기 수업이 있습니다. 예일대 마리사 킹 교수님의 “전략적 네트워크 관리하기”라는 과목입니다. 그가 첫 번째로 쓴 <인생을 바꾸는 관계의 힘>이란 책에서 말했습니다. “인생을 반전시키는 놀라운 기회가 사람을 타고 온다. (그래서 누구를 대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인맥의 크기가 몇 명일까? 인류학자 로빈 던바가 말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안정적 친분 관계가 150명이다. 메소포타미아 신석기 시대 마을부터 현대 군대에 이르기까지 서로 주고받으며 편안함을 느끼는 관계가 평균 150명이라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10%인 15명과 정서적 친밀감을 느끼는 깊은 유대관계를 갖게 된다. 10배에 해당하는 1500명과 안면만 있는 사이가 된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 총량이 모두 비슷하다고 할 때 차이를 만드는 것이 에너지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관계 유형을 세 가지고 구분한다. 소집자형(Convener)은 소수와 좁고 깊은 관계를 편안하게 여긴다. 중개자형(Broker)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을 선호한다. 마당발형(Expansionist)은 다수와 넓은 친분을 쌓는 것을 즐긴다. 나는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가? 타인과 관계를 맺기에 적용할 수 있는 노하우와 위로와 공감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아사히 맥주 히구치 히로타로 회장이 사상가 세네카의 말을 인용하여 말했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여러분!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구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관계를 통해서 성장하고, 발전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누구와 사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인맥이 인생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인맥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인맥이 산삼이 아니라 6년 근 인삼이다.“ 이 말은 인맥이 어쩌다 우연히 발견되는 산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6년 이상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아끼고 키워야 하는 6년 근 인삼이라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가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벗(붕)이 되려면 나이를 따지지 않고, 직업의 귀하고 천함을 따지지 않고, 집안의 배경을 따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알려면 그가 사귀는 친구를 보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크기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인생 50세가 넘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기를 쓰지 말라.“ 누구를 만나고 싶고, 누구를 사귀려고 합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말씀을 보고 만지라. 영원한 생명을 보라. 그리스도와 사귀라. 주의 기쁨이 충만하라.’ 전직 어부였던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말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다. 이 생명이 하나님의 빛이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한 아들의 영광이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요 1:1-3,14)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요일 4:2)
여러분!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있으면 생명의 말씀을 어떻게 합니까? 생명의 말씀이 들리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이 들려야 영안이 열립니다. 생명의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육체의 눈이 밝아집니다. 본문 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태초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모든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사람들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을 사람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성을 만물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핑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왜 핑계를 댑니까? 하나님의 진리를 불의로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불의로 가로막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만 영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허망해졌습니다. 마음이 미련하고 어두워졌습니다.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말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으로 바꿨습니다.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뀌었습니다.(롬 1:19-22)
오늘날 행복하기를 원합니까? 행복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축복지침서요, 행복지침서요, 건강지침서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합니다. 하늘과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모든 만물이 본래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신 10:13-14)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만물을 얻기 위해서 피곤하게 사는 것입니다. 만물을 눈으로 보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귀로 들어도 차지 않습니다.(전 1:8)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만물보다 거짓됩니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해집니다.(렘 17:9)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없으면 거짓된 영성을 추구합니다. 영국의 시인, 극작가 조지 채프먼(George Chapman)이 말했습니다. “거짓된 인간 사회에서는 속세의 부를 좇느라 거룩한 모든 위안은 허공에 흩어질 뿐이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서로 미워합니다. 서로를 원수로 여기고, 죽이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부패하면 비난하고 조롱합니다. 반면에 마음이 깨끗해야 진실한 사랑을 합니다.
사도 요한이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의 눈이 열렸습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자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봅니다. 영안이 열리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은 것입니다.(엡 1:17)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고후 1:20)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가 충만하면 불같은 성격이 변화됩니다. ‘보아너게(우뢰의 아들/막 3:17)’가 사랑의 사도로 변한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몸소 체험한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을 느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넘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감사하는 것입니다.(고후 4:15) 반면에 이 세상의 신(사탄)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합니다.(고후 4:4)
어부에서 제자로 부름을 받았던 요한이 예수님을 만졌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들이 요한을 만졌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며 천국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약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을 말씀으로 고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많은 기적들과 표적을 행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예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것이다. 곧 이때다. 듣는 사람이 살아날 것이다.”(요 5:25) 예수님을 3년 믿으면 가치관과 인생관이 바뀝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그 사람들을 만졌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말했습니다. “너희가 예수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사랑하는구나.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 믿음의 결국이 영혼의 구원을 받은 것이다.”(벧전 1:7-9)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사랑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실망했던 글로바와 다른 제자가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두 제자와 동행하시면서 성경을 풀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두 제자의 마음이 뜨거워진 것을 느꼈습니다.(눅 24:32) 생명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에 들리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납니까? 천국복음을 들으면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천국복음이 내 마음을 만질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과 사귈 수가 있습니까? 내가 주의 말씀 안에 사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내 안에 항상 있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으로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의 말씀과 기도의 열매가 많이 맺어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요 15:15-18) 레슬리 뉴비긴이 말했습니다. “성도에게 성경에 관해 무엇을 믿는가를 묻기보다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제도 예수님을 보지 못하나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주의 말씀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 복입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여러분! 사도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지속적인 사귐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영원한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본문 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여기서 “생명이 나타나다(헤 조에 에파네로떼/‘η ζωη εφανερωθη/he zoe ephanerothe)”는 말은 “그 생명이 명백하게 나타나다, 그 생명이 명백하게 선언하다, 그 생명이 보이게 하다, 그 생명을 명시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길을 믿음의 사람에게 보여주십니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습니다. 주의 오른쪽에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주 앞에 있는 충만한 기쁨을 얻은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증언합니다. 주의 영원한 즐거움을 맛본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증언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함께 즐거움을 맛본 사람과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강릉아산병원 최건무(64세/여) 외과 교수님이 의료취약지역 강릉에서 20년 동안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강릉에 오게 된 경위가 있습니다. 과거에 영동지역민들이 아파도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서 긴급한 상황에서 응급과 수술을 받지 못해서 사망한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환자들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96년 병원이 개원할 때 개원멤버로 강릉에 왔습니다. 저는 매일 수술을 하고, 환자를 돌보면서 기도노트를 써왔습니다. “하나님, 오늘은 이00 환자를 수술하는 날입니다. 제 손을 붙잡아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을 주도해 주옵소서. 같이 수술하는 팀원에게 평안을 주소서.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야 안전하게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건강을 빨리 회복할 수 있습니다... 수술을 잘 마치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과 사귐이 있으면 성공의 기준이 다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 그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이 영생을 증언해야 합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 17:3) 영원한 생명을 증언해야 하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우리와 사귐이 있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여기서 “사귐(코이노니안/κοινωνιαν/koinonian)”은 “교제, 참석, 상호교류, 분배, 우정, 공유, 참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은혜로운 교제를 나눕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사람이 진리로 자유롭게 교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풍성한 사랑의 교제를 나눕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사귐의 종착지가 행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천국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교제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십자가 사랑을 전하는 사람과 교제하는 것이 화목의 복입니다.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교제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논어에는 없고 장자에만 있는 공자 이야기>라는 책에 “산목(山木)”편에 나온 말입니다.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백하다.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 군자의 사귐은 담백하기 때문에 친해진다. 소인이 사귐은 달콤하기 때문에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익을 중심으로 뭉친 사람들은 서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아주 끈끈합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빨아먹을 단물이 남지 않은 사람 옆에 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서 떠납니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이익을 찾아다닙니다. 늘 양지를 찾아다닙니다. 이것을 이권, 기득권 카르텔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내(우리)가 누구와 사귀고, 누구와 교제하고 있습니까?
다른 하나는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그 기쁨(헤 카라/‘η χαρα/he xara)”은 “은은한 기쁨, 유쾌함, 기쁨의 원인”이란 뜻입니다. “충만하다(페플레로메네/πεπληρωμενη/pepleromene)”는 말은 “가득 차게 하다, 꽉 채우다, 영향을 주다, 만족하다, 성취하다, 수행하다, 완성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기쁨을 주신 것이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합니다.(시 4:7) 하나님께서 주신 기뿜이 물질보다 더 큽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시기를 원하십니다.(사 12:3) 영원한 기쁨을 얻어야 슬픔이 달아납니다. 영원한 즐거움을 얻어야 탄식이 달아납니다.(사 35:10)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말씀을 보고 예수님과 교제하여 영원한 아름다움을 얻습니다. 예수님과 교제하는 사람이 대대의 기쁨을 얻습니다.(사 60:15)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때 그 영광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얻은 기쁨과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여 받은 사람들도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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