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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산책길♬ 스크랩 나미/ 슬픈 인연
익명 추천 2 조회 120 15.06.23 18:1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슬픈인연 - 나미| 좋은 음악/ 글
호산 | 조회 140 |추천 0 | 2014.06.02. 08:37

 

나미 슬픈인연 나미가 부른 일본어버전 ナミ- ?(기즈나)

 

한국 가수 나미의 공전의 히트곡 "슬픈인연" 의 원곡
일본 하시유키오 "키즈나(絆)입니다.

韓?の歌手 ナミのヒット曲"悲しい?(スルプンインヨン)"の原曲
日本 橋幸夫 "?"(キズナ)です。

 

멀어져가는 저 뒷 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아직도 이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달콤했었지 그 수 많았던 
추억속에서 흠뻑젖은 두 마음을 
우리 어떻게 잊을까 
아 다시 올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 올꺼야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흐르는 그 세월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슬픈인연이 일본곡을 표절했다고 많이 아시는데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1985년에 이노래를 일본에서 나미씨도 킹레코드사를 통해 "絆"기즈나(인연)라는 제목그대로 일본어버전 한국어버전(슬픈인연)두가지버전을 정식으로 싱글앨범으로 발표했었읍니다...

 

이노래를 한국에서는 1985년 나미씨 4집앨범에 박건호씨가 가사를써서 김명곤작곡으로 발표했었구요.당시에는 일본문화가 전면 금지시 되있던때라 김명곤작곡으로 나갔었구여... 10년전쯤에 일본문화 전면대개방으로 작곡가가 원래 일본작곡가 우자키류도우로 고쳐졌습니다...

 

슬픈 인연의 경우는 나미씨가 정식으로 일본인 작곡가에게 곡을 받았고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음반으로 발표를 했어요. 만약 불법적인 표절이라면 일본에서 나미씨가 슬픈인연을 발표했을까요? 다만 한국에서 발표할때 한국정부의 일본문화수입금지 정책에 따라 일본인 작곡가를 표기할수 없었을 뿐이에요.

 

1997년까지는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일본 문화(영화,드라마,가요등등)의 수입이 금지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일본 작곡가가 작곡한 슬픈인연을 한국에서 취입할때 일본인 작곡가의 이름으로 등록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나미씨의 음반을 프로듀싱했던 김명곤씨의 작품으로 발표했고, 일본 문화의 수입이 공식적으로 승인된 1997년 이후에 한국 저작권협회에 원래의 일본인 작곡자의 명의로 이전이 된겁니다. 일부러 표절한걸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네요.

 

슬픈인연이 이곡을 표절했다고 많이 아시는데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1985년에 이노래를 일본에서 나미씨도 킹레코드사를 통해 "絆"기즈나(인연)라는 제목그대로 일본어버전 한국어버전(슬픈인연)두가지버전을 정식으로 싱글앨범으로 발표했었읍니다.이노래를 한국에서는 1985년 나미씨 4집앨범에 박건호씨가 가사를써서 김명곤작곡으로 발표했었구요.당시에는 일본문화가 전면 금지시 되있던때라 김명곤작곡으로 나갔었구여.10년전쯤에 일본문화 전면대개방으로 작곡가가 원래 일본작곡가 우자키류도우로 고쳐졌습니다.

 

나미(본명 : 김명옥, 1958년 10월 1일경기 양주~)는 1980년대 〈빙글빙글〉등 댄스곡으로 큰 인기를 얻은 한국가수이다.

동두천 미군기지 부근의 레코드 가게집 딸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미8군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국민학생이었던 1967년엔 이미자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엘레지의 여왕》에서 이미자의 아역을 이듬해 윤복희의 일대기를 다룬 《미니 아가씨》에서 윤복희의 아역을 연기하기도 한다.

 

청소년 시절에는 〈해피돌즈〉라는 그룹의 보컬로 베트남 위문공연을 비롯하여 미군부대 무대에서 활동했다. 1978년 〈해피돌즈〉가 해산되고, 나미라는 예명을 사용하여 본격적으로 솔로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의 밴드와 함께 하는 이름은 〈나미와 머슴아들〉이었다.

 

나미는 콧소리가 강하기 들어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활동하며〈영원한 친구(장세용 작사/작곡)〉, 〈슬픈인연〉(작사:박건호/작곡:오자키류도우),〈빙글빙글〉(박건호 작사/김명곤 작.편곡), 〈마지막 인사〉(박춘석 작사/작곡)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1989년 6집에서 처음에는 트로트풍의 발라드 〈미움인지 그리움인지〉로 활동하다가 수록곡이었던 〈인디언 인형처럼〉(김순곤 작사/이호준 작.편곡)이 반응이 왔고, 나미는 새로운 시도를 위해 1990년 붐붐과 함께 〈나미와 붐붐〉을 결성하여 〈인디언 인형처럼〉을 리믹스 싱글로 다시 내놓아 크게 히트시킨다. 붐붐은 신철과 이정효로 이루어진 더블 DJ로 독립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검은 옷, 바가지머리에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춤과 랩을 했고, 토끼춤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매니저였던 최봉호씨와 결혼 했으며 두 아들을 두었고, 아들 중 정철은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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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익명
    15.06.23 18:37

    첫댓글 나미는 7080콘서트에도 안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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