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쑤저우 최남단에 있는 물의 도시 주장. 작은 마을로 운하가 있고 10여 개의 돌다리가 놓여 있으며 운하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배가 있는 아주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곳이다. 사진: 김승현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네티즌들 사이에서 ‘대륙 시리즈’가 유행이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사진들을 모은 것이다. 이 사진들로 베이징 올림픽으로 한껏 고조되었던 중국의 세련된 이미지가 한 번에 구겨졌다. 이런 현상에서는 또 한국인들이 중국을 좀 낮게 보려는 경향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다르게 우리는 중국을 한 수 아래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중국보다 근대화가 더 빠르고 경제적으로 앞섰다는 우월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중국을 앞섰는가? 자문해볼 일이다. 또 불과 한 10여 년 더 빨리 성장했다고 우리가 중국을 한수 아래로 볼 수 있을까?
중국은 인구나 면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지 결코 만만하게 볼 대상이 아니다. 또한 중국은 우리 기업들이 앞 다투어 진출하려는 거대한 시장이기도 하다. 그런 중국은 무시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존중과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구 문명을 좇는 데 온 정열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생활양식에서 , 또 문화적으로 조금 흉내 내는 수준까지 와 있다. 그런데 그런 노력으로 우리가 서구를 앞설 수 있을까? 아마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만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또 같은 동양화문화권인 중국도 알아야 할 것이다. 특히 중국 진출에 우리 미래가 달려 있다면 더욱 그들의 전통과 문화, 그들의 생활양식, 그들의 미적 감각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런 취지로 한샘과 디자인하우스 주최로 중국 건축・디자인 기행을 마련했다. 이 기행에는 한샘의 조창걸 회장과 디자인하우스의 이영혜 발행인이 직접 참여하는 열의를 보였으며, 건축가와 디자이너 등 30여 명이 함께했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중국에서도 강남 문화의 중심지인 항저우와 쑤저우다.
이곳은 물이 많은 지역으로 옛날부터 곡창지대가 많고 부가 쌓여서 수준 높은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항저우의 호설암고거(胡雪巖姑倨)는 청나라 말기의 전설적인 거상인 호설암의 사택으로 ‘강남 제일 호택’이라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치밀한 디자인으로 이름 높다. 또 다른 방문지인 쑤저우의 졸정원(拙政園)은 중국의 4대 명원으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인공 정원이다. 이 정원 바로 옆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I. M. 페이가 디자인한 쑤저우박물관이 있다. 쑤저우의 또 다른 명소인 주장(周莊)은 ‘중국의 베니스’라 불리는 물의 도시다. 이 기사에서는 이번 기행에 참여한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의 짧은 감상과, 중국 전통 건축과 디자인으로부터 우리가 무얼 얻어야 할지에 대한 글을 싣는다.
중국-한국 디자인의 길
김영기 계원디자인예술대학 학장|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방문하여 보고 느끼고 온 항저우, 쑤저우의 사적들은 이미 역사 속에 유산으로 남겨진 중국이라는 것이다. 인민중심사회인 오늘의 중국인들은 그 시대와는 전혀 다른, 현대인이라기보다는 인민으로서의 중국인들이다. 인민중심사회에서 예술은 모두 화려한 장식이 없는 아주 낮은 수준의 저급한 감각으로 전락한 것들이다. 오늘날 인민으로서 교육된 중국인은 우리가 돌아본 그 시대의 중국인으로 돌아갈 수 없는 중국인들이다. 이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중국인들이 바라고 믿고 달려가고 있는 감각은 인민중심주의 감각일까? 아니면 시민중심사회의 현대 감각을 향하여 나아가는 탈 인민주의일까? 그것도 아니면 역사시대로의 지향성 감각일까? 역사적 감각의 방향을 가늠하지 않고는 어떠한 길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부정할 수 없는 매력, 현대 감각 오늘날 중국의 문제는 손상된 역사적 자존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현대’라는 시민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감각을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은 바로 아직도 인민중심사회가 지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시민정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19세기 이전 중국인의 역사적 자존심과 세계의 중심이 중국이라는 중화사상으로 인한 반현대정신의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공산혁명 이후 인민중심사회에서 학습된 사회주의적 저항이 제도적으로 작동하고 있어 ‘현대’ 시민정신은 반인민주의라는 가치관이 존재하는데, 이 가치관과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관 사이에서 나타나는 대립 각에 의해 받아들일 수 없는 모순이 존재하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매력의 현대 감각’은 두 저항체가 엄연히 존재하는 부조화의 세계 안에서 길을 찾고 있지만,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기름에 튀겨지는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들이 자본주의의 뜨거운 맛으로 열이 달아오르고, 부조화의 갈등으로 인하여 누적되어가는 문제들이 퇴적층을 이루면서 불길한 예감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이 자본주의 인민사회로 나아가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지만, 그것에 저항하는 적들은 외부가 아니라 그들의 내부 안에 휴화산같이 존재한다.
중국의 지도부가 걱정하는 것은 15억의 거대한 인민들과 자본주의에 의하여 등장하는 소수 자본가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괴리를 좁힐 사상이나 철학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본다. 그 방편으로 문화혁명을 통해 중국에서 완전히 몰아낸 공자를 다시 살려내어 유교적 정신으로 새 질서를 삼고, 자본주의 윤리관을 세우면서 해결하려고 교육을 전개하고 있으나 그 결과는 미지수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디자인의 사회적 배경을 모르고서는 우리가 중국의 시장과 그에 합당한 디자인 접근의 길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물질적・심리적으로 아직은 인민중심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회라는 것 때문에 디자인 전략 수립에서 오늘날 중국의 사회 감각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중국이 자유로운 시민중심사회로 넘어오지 못하면 중국은 어떻게 될까? 오늘날의 중국에서 디자인이 제공하는 ‘매력적인 현대 감각’이란 어떠한 감각일까를 생각하여야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민중심사회가 성숙되지 못하면 자본주의도, 디자인이 기여할 시민사회의 감각도 이루어질 수 없다.
디자인 시장 접근의 문제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중산층’이 얼마나 형성되어 있느냐 하는 것은 디자인을 무기로 접근하려는 길에서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만일 안정된 중산층이 아직 형성되어 있지 못하거나, 형성될 가능성이 없다면 디자인에 의한 접근은 어려움이 매우 크다. 시장에서 주 고객이 형성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추구하는 감각의 흐름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에서는 기존에 알려진 챔피언 브랜드 이외에 ‘아무것도 장기 지속적인 디자인 브랜드는 없다’는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더구나 애써 연구 개발한 새로운 디자인도 그다음 날이면 모방 디자인이 출현하는 현실은 시장보호막이 제도적으로 없는 사회에서 디자인 브랜드로 승부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생각이다. 정부나 관료들은 오히려 제제보다 방관하면서 시장학습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조장하는 듯한 ‘모른 척’ 태도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중국에 진출하는 기존의 우리 기업들은 중국 사회 환경의 저항체들이 가로막고 있는 많은 관습과 관행의 문제들을 헤쳐가기 위한 ‘수수께끼-풀이’를 하며 디자인과 브랜드를 입성시켜야 한다. 많은 우리 기업들이 야반도주하는 것을 무심히 넘길 수 없다. 그러므로 디자인을 통해 시장의 수수께끼-풀이를 하려는 것은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혼탁하게 움직이는 목표물을 향해 과연 어떠한 디자인-브랜드 전략으로 접근할 것인가?
디자인의 길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중국의 시장에 맞추려는 노력이 아니라, 그들이 지향하고 있는 ‘매력적인 현대 감각’ 그 자체로 접근하는 길이다. 중국인의 감각에 맞추려는 노력은 많은 위험이 따름과 동시에 비용을 많이 지불해야 한다. 그 이유는 중국을 알고 접근하기에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들이 마음속에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는지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서투른 이해로 접근하는 ‘디자인 브랜드’가 오히려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래서 ‘부인할 수 없는 현대 감각’으로 디자인한 한국의 브랜드들이 그들이 바라고 믿으며 나아가는 지향 감각에 적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다음은 중국에 맞추기보다는 서구의 현대 감각에 부합된 동북아의 사상이 부여된 감각으로 ‘새로운 매력의 디자인’을 도모하는 것이 적절하고, 미래를 향한 우리의 준비도 함께 이루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미래지향적 의지의 결단으로 성취되며, 결단에 의해 성장해가는 분야이다. 21세기 우리가 바라는 목표를 바라보며 어떻게 중국을 향해 갈 수 있을까? 노동력도, 기술 능력도,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도 준비되어 있다면 그다음은 무엇으로 우리의 잠재 능력을 일으키고 집중할 수 있을까? 더 철저히 우리를 알고 고유한 우리 디자인을 찾는 것이 중국은 물론 세계 시장을 향하여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것을 중국의 여행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맺음 미래는 중국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세계 안에 있어야 하며, 그 중국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에 의하여, 만들어가는 길에서 우리가 세계를 향해 제안하는 미래 디자인 안에 녹아 있어야 한다. 이러한 미래를 세계와 함께하려는 우리의 가치관, 그러한 디자인 시대를 앞당기려는 가치관 속에서만이 중국의 길도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알아야 중국이 보이고 나를 알아야 중국을 알 수 있는 것이므로 나를 모르고 중국을 알려고 한다면 그것은 더 많은 위험을 내포하게 될 것이다.
시인은 언어의 껍질을 벗겨 느낌(feeling)이 있는 감각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언어의 한계와 싸우며,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은 언어의 껍질로 덮이지 않으려고 감각(feel)을 존중한다. 그래서 중국을 언어의 설명으로, 지식으로 알려고 하면 할수록 이해가 어렵고, 언어를 버리고 느낌으로 얻으려고 집중할수록 영감이 매력적인 디자인을 낳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느낌은 영감을 낳고 영감은 느낌을 자극한다. 그러므로 느낌과 영감 사이에 언어가 개입되면 느낌과 영감은 언어에 의해 왜곡될 위험성이 커진다.
이제 우리의 기적 같은 오늘을 이룬 지각의 통합적 능력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뚜렷한 창조적 기질과 성향에 따라 겸손히 전체적이며, 전체적 느낌으로 중국의 현실과 부딪쳐야 추상적 감각을 이해할 수 있으며, 결국 그들의 보편적 감각의 세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담박명지 澹泊明志
김원 건축가, 광장 대표|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 가운데 ‘담박(澹泊)’이란 말이 있다.
담박(淡泊)도 비슷한 뜻이다. 그들이 담박해서이거나, 그렇지 못해서이거나, 또는 양쪽 다이거나, 하여튼 우리에게도 듣기에 좋은 말이다.
이 말은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 담백하고 밝은 뜻, 안락한 고요함이 먼 곳에 이른다)에서 따왔다.
청두(成都)의 무후사(武侯祠: 공명의 사당)에 쓰인 제갈량의 평생 좌우명이라 하는데, 이를 따서 정원당(靜遠堂)이라고 당호를 한 사당이 있었다. 아름다운 이름이다.
공명이 천하를 구상하고 유비가 삼고초려를 했다는 곳이 후베이성(湖北省) 샹판(襄樊)의 고융중(古隆中)이다.
여기에도 초입 좌우에 ‘담박명지 영정치원’을 새겨놓았다.
‘담박명지’라고 각(刻)을 한 추사의 현판과 제갈무후의 묘비 탁본이 내 방에 있다.
나는 늘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담박’이라는 말을 되새긴다.
‘여수동좌헌(與誰同座軒)’이라는 마루방에 미인 셋이 모였다.
‘누구든지 함께 앉을 수 있는 툇마루’라는 뜻이다.
이것도 ‘담박명지 영정치원’이다.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한국의 건축 정서와 다르게 중국의 건축은 철저히 자연을 가공하여 조립하고 관리하는 것이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다.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중국 건축
유걸 건축가, 아이아크 소장|호설암고거나 졸정원을 보면서 떠오르는 의문은 청대의 중국 문화는 서구 문화와 얼마만한 교류가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건축을 좀 일반화하여 생각할 때 한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그 틀이 논리적인 점이 크게 구별된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건축 공간의 구성, 상세 그리고 정원의 의장까지가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다시 확인하면서 이것이 중국의 고유한 문화겠지만 서구와의 교류에서 만들어진 부분은 없는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은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고 그런 사고 속에서 한국인의 정서와 심미안이 형성되었다면, 중국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생각이 된다. 건축 재료를 사용하는 데에서부터 부재를 엮는 방법 그리고 조경까지 모든 것에서 철저히 자연을 가공하여 조립하고 관리하는 것이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다. 나는 기암으로 만들어놓은 중국의 정원을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이 정원을 주위의 건축과 정원을 만드는 논리와 함께 볼 때 새로운 즐거움을 느꼈다.
놀라운 것은 요즈음 장 누벨이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 계획에 사용하기도 하였고 서구의 조경가들의 화두이기도 한 인위성(artificiality)의 모형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였다. 또한 나는 호설암고거를 보면서 병산서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설암고거에 사용된 목재가 원형 철강재를 사용하듯 완벽한 형태로 가공되었다는 점들이라든가 외곽을 두른 높고 표정 없는 벽을 배후에 사실대로 노출시킨 점들 그리고 건축이나 조경의 구석구석에서 보이는 논리성과 정확성, 이런 것들은 이들 건축물이 서로 그 사용 목적이 다르고, 서 있는 환경이 도시환경과 자연환경이라는 차이가 있음에도 주변과의 관계나 또는 건축의 구축에서 자연이 주는 재료를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병산서원과는 극한적으로 대비되어 보이는 것이었다.
호설암고거와 졸정원을 보면서 느낀 또 한 가지는 졸정원이라는 검박한 이름을 붙였음에도 그 내용이 대단히 부유하다는 것이다. 호설암고거의 깊은 건축 공간과 더불어 모든 벽면과 바닥면의 문양이 제각각인 것과 졸정원의 모든 바닥면의 마감 문양이 다양한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소박함과는 거리가 먼 부유한 것이었다.
나는 사치한 환경은 불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생활에 해가 된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풍요한 생활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호설암고거와 졸정원의 부요함을 놀라움으로 즐겼으나 학습하듯 둘러보는 대신 시간에 쫓기지 않고 구석구석을 음미하고 즐길 수 없었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I. M. 페이가 디자인한 쑤저우박물관의 내부 벽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차이’를 읽는 즐거움
민현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 한동안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을 한데 묶어 ‘한자문화권’ ‘동북아시아 문화권’ 등으로 세 나라를 하나로 묶거나, 더 크게는 ‘아시아문화권’ ‘동양문화권’ 등으로 엮어서, 각각이 지닌 유사한 점이나 공통점을 추출하여 일반해를 구하려는 경향이 일반적이었고, 나 역시 거기에 익숙했다. 그것은 충분한 논리적 설득력을 가지고 있으며, 일견 세상을 이해하고 진단하는 효율적인 방법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러한 범주를 경계 지우는 조건들에 대해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러한 문화권을 규정하는, 어떤 특정 시각에서 투사(投射, projection)하여 구획하는 경계에는 특정(지역 또는 국가) 문화 중심주의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한 발짝 더 나아가면 대부분의 경계 지움 근저에 ‘객관적’ ‘과학적’이라는 합리화로 포장된 ‘권력’의 문제와 결부된 음모의 기미가 읽히기 때문이다.
이런 뜻으로 요즈음, 특히 이번 여행에서, 내 속에 그어진 선입견과도 같은 경계선을 지우고, 각각이 지닌 공통점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데 천착하고 있는 편이다. 그것은 ‘차이’ 자체이기도 하고, 더불어 ‘차이’를 생성하게 한 시간적, 지역적, 그것을 만든 개인의 철학 등의 ‘차이’이다.
특히 ‘졸정원’을 둘러보면서 이것과 유사한 담양의 ‘소쇄원(瀟灑園)’과의 ‘차이’를 읽고자 했다. 물론 이 두 정원은 담장을 둘러치고, 이상향(utopia)을 만들고 있음이 같으며, 또한 동양(韓・中・日)의 정원에 대한 정설(자연숭배사상을 배경으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경관의 주격으로 삼고 다른 인공적인 요소는 이에 종속되는 것으로 다루는 자연풍경식 정원이다. 또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뜰 안에 재생시키는 사실적(寫實的) 정원이 아니라, 자연의 경관이 이루고 있는 뜻(image)을 가장 잘 상징하는 장소만을 옮겨놓아 이를 이상화시키는 사의적(寫意的) 정원이다)이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대지의 선택, 소재를 차용하는 방식, 소재를 편집하고 배열하는 순서, 그것을 향유하는 방식, 감지하는 감각의 범위, 그리고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목적 등에서 섬세한 ‘차이’를 읽는 즐거움이 컸다.
I. M. 페이가 쑤저우박물관 입구에 펼쳐 보인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을 마주하면서, 충격적인 감동과 그분에 대한 존경심, 더불어 그 감동을 반추하면서, 점차 극명하게 드러나는 ‘차이’를 읽어보는 즐거움 또한 큰 기쁨이었다. 물론 이것은 페이의 개인적 사유와 독자적 표현 기법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고, 나와는 다른 그분의 문화적・정신적 배경의 ‘차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자연풍경을 추상하면서, 소재의 선택, 그것들의 계층화(stratification)・분절화(articulation) 과정의 정도 그리고 결과물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 너머의 무엇, 소위 ‘이상향’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 등에서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본다. 물론 그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할 지적 소양이 나에겐 아직 크게 부족하다는 자괴감이 앞서지만, 내가 앞으로 더 깊이 천착해야 할 큰 과제임은 확실하다.
호설암고거 내부 건물과 정원. 중국과 한국은 한자문화권으로 묶이지만, 중국의 건축과 가구는 한국보다 훨씬 화려하고 사치스러울 정도로 세밀하다.
한국적인 디자인을 넘어 동양적인 디자인으로
손주희 세라디자인 소장|1박4일의 여행이 끝났다. 십수 년 만에 35명과 같이 가는 해외 단체 여행이었다. 가기 전에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생각보다 순조로웠던 여행이었다. 사람들은 디자이너라 하면 항상 언제 어디서든지 ‘영감’을 느낀다고 착각하는 듯하다. 어떨 때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느끼고, 먹고, 마시는데…. 중국 여행은 나름대로 여러 번, 여러 곳을 다녀왔지만, 매번 중국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특히 여자들의 외모가 상당히 세련되고 말쑥해진 것을 느꼈다.
국력이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또한 많은 중국 관광객들을 보고, 중국이 점점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고, 문화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중국을 시장으로 봐야 하는 관점에서 중국 남방의 일부분을 본 여행이다.
나는 계속 ‘한국적’인 디자인을 고집했고, 그것에 대한 공부와 디자인 변형을 꾀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국적으로 국한하기보다는 ‘동양적인’ ‘오리엔탈(oriental)적인’ 디자인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느꼈다. 많은 디테일과 문양의 형태와 입식생활의 중국 건축과 가구는 훨씬 더 화려함이 있다. 화려한 동양적인 디자인, 한국적인 절제와 소박함에 중국의 사치스러울 정도로 많은 디테일이 잘 조화된 디자인을 하고 싶다. 동양의 풍부한 문화를 기본으로 하는 디자인에 승부를 걸어야겠다. 좌식생활을 하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주거건축이다. 또한 햇볕에 대한 배려는 별로 없는 듯했다.
정원이나 앞마당이 집과 같이 있지 않고,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도 많이 다른 점이다. 한국 주거 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패턴의 다양함, 화려함이 있다. 또한 많은 레이어(layer)의 공간분할이 다르다. 주거 형태에서는 많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I. M. 페이가 디자인한 쑤저우박물관을 보고 중국적인 현대건축의 조화를 느꼈다.
담 안에 있는 영원한 우주
송지성 한양대학교 디자인대학 교수|호설암고거와 졸정원을 만든 사람들은 외부와 단절되는 높은 담을 쌓고, 그 담 안에 인공 연못과 전각을 지은 후 자신만의 세계에 매몰되어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내부와 바깥이 담을 경계로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그 분리된 공간 안에 갖은 기교로 자신만의 세상을 화려하게 만들어놓았다.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려고 했던 담 안의 작은 우주는 장수의 상징과 대자연의 축소로 인식되어온 태호석(太湖石)을 통해 형상화되었다.
중국 사람들은 태호석을 장수와 영원함, 불변함의 상징이라고 하여 예로부터 좋아했다고 한다. 마치 돈을 번다는 뜻의 발(發)과 발음이 같은 숫자 팔(八)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졸정원, 한국의 소쇄원, 일본의 료안지(龍安寺)를 비교해보면 정체성이란 것이 형태로 나타날 때 얼마나 다르고 명확하게 구분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일본은 단순하고 인위적이고, 중국은 복잡하고 인위적이라는 말을 하고 ‘어느 것이 자연적이고 좋은가?’라고 묻는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료안지의 정원을 자연적이라고 느끼고, 중국 사람들은 졸정원을 자연적이라고 느낀다. 이것은 비교할 수 없는 각각의 독창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졸정원을 보는 관점은, 그것을 만들었던 그 당시의 기술과, 소재 등을 느끼면서 ‘그 시대 그들이 추구했던 정신이 얼마나 미래지향적이었는가?’ ‘어떤 것이 계승 발전되어야 할 요소인가?’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것은 형태가 아닌 그것을 만든 정신이 우리의 디자인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철학적인, 문화적인 뿌리를 근거로 한 디자인을 알려면, 무엇보다 중국의 사상과 정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서양의 문명은 지구를 파멸로 몰고 가는 지속 불가능한 사회로 만들고 있다. 이런 서양의 문명을 답습한다면 중국의 미래뿐만 아니라 세계의 미래도 없기 때문에, 중국의 도시화의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신의 디자인 화두가 반드시 필요하다. 패러다임이 바뀌고, 한 사회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상황에서 동양에서 위대한 디자이너들이 태어남으로써 지속 가능한 세계가 태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왼쪽) 호설암고거는 많은 부분에서 태호석을 재료로 썼다. 태호석은 쑤저우 부근 타이호(태호) 주변에서 채취하는 까무잡잡하고 구멍이 많은 복잡한 기석이다. 화려한 정원에 많이 쓰였다.
물의 도시 주장의 아름다운 수로와 건축물.
인간과 자연,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디자인
오서연 가구 디자이너|이번 여행에서 강하게 인상에 와 닿은 것을 이야기하자면, 첫째, 물의 도시에서 느낀 편안함. 쑤우저 주장은 처음 방문한 곳이었지만,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이 물의 도시에서 고향에 온 것 같은 깊은 편안함을 느꼈다. 새삼스레 물은 강인한 생명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구체적 현실로 보여주었다. 이런 물의 도시가 구현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현대 도시에 응용한다면 훨씬 더 풍성하고 재미있는 도시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둘째, 다양한 모습으로 자연을 끌어들인 완성도 높은 디자인. 자연의 다양함을 건축・조경・인테리어・가구에까지 끌어들인 호설암고거, 졸정원. 그곳에서 우리가 본 것은 자연을 본뜬 지형, 기암괴석을 이용한 조경, 다양한 건물의 형태와 동선의 유형, 모두 다른 문양의 창, 창호 곳곳에 새겨진 자연을 담은 문양, 동물의 모양을 형상화한 창호 철물, 아름다운 바닥 마감 패턴 등이었다. 그들이 처한 환경에 걸맞게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끌어들여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현대에 벌어지는 장소의 기억을 이어가는 문화지구개발. 타이캉루에서 쇠락해가는 거주지에 문화가 이식되어 자연스럽게 문화지구로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문화시설과 상업시설과 주거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조합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결국 장소의 기억을 이어나가는 개발은 도시에 강한 생명력을 부여해주고 있었다.
나는 이번 중국 디자인 기행에서 인간과 자연이 소통하고,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디자인의 가능성을 보았다. 인간과 자연 간, 인간 간, 역사 간, 지역 간, 문화 간의 자연스러운 소통! 이러한 자연스러운 소통을 유도하는 디자인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대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장 건물 벽에 장식한 빨간색 그림.
홍일점의 미학을 찾아서
박영미 소디움파트너스 공동 대표| 만다리나 덕에 온통 빨강 숄더백을 메고 출발한 탓인지 나의 카메라 셔터는 자연스레 중국의 상징 컬러 ‘빨강’을 향해 포커스가 맞춰지곤 했다. 기실, 중국다운 빨강이 처음 내게 다가온 건 북송시대 왕안석의 영석류시에서 읊조린 ‘홍일점’에 매료되어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만록총중 홍일점(萬綠叢中 紅一點: 많은 푸른 잎 가운데 한 송이 붉은 꽃)
동인춘색 불수다(動人春色 不須多: 사람을 움직이는 봄빛, 많은들 무엇 하리.)
이러한 홍일점 혹은 일점홍의 미학은 다분히 중국적・동양적 정서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동안 여기저기서 체험한 중국적 사인물 및 실내 장식 등등은 온통 무절제한 빨강의 물결로 시감각을 마비시킬 지경이다.
왕안석의 홍일점에 함의된 미학적 재현 현장을 확인하고픈 마음 간절하던 중 마침내 이번 기행의 첫 번째 행선지인 호설암고거 회랑에 걸려 있는 등갓 아래 빨간 술에서 그 흔적을 아련히 떠올릴 수 있었다. 호경여당 약첩 위에 가지런히 봉합된 저방지에서도 붉은 컬러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고, 쑤저우 졸정원 회랑 프레임을 통해 보이는 정원 풍경에서도, I. M. 페이가 설계한 쑤저우박물관의 사인에서도, 운하 마을 주장의 어느 벽체에서도, 일점홍의 미학이 생활 속에 구현되는 현장을 발견하고 ‘바로 그 느낌!’이라고 쾌재를 부를 수 있었다.
오늘날 ‘홍일점’은 많은 남자들 틈에 오직 한 사람의 여자가 있는 것을 일컫는 상투어로 쓰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뭇 봄빛을 무색케 하는 일점홍의 미학은 간과되기 일쑤다. 이 시점에서 중국에서 빨간색에 내포된 문화적 함의를 더듬어본다면, 홍색은 ‘朱(주), 赤(적), 丹(단)’ 등으로 불렸는데, 중국인이 예로부터 가장 좋아하는 색상으로 태양과 불을 연상해서 자연스레 빛과 따스함 그리고 행복감 때문에 예부터 지금까지 행복, 경사, 기쁨, 열렬함 등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홍색 등불, 홍색 폭죽 등을 원단, 춘절 및 각종 경사 등에 사용했다.
또 거기서 흥왕, 순리, 성공, 성취 등의 의미가 생겨났다고 한다. 또 결혼은 홍경사라고 하여 신부는 붉은 옷에 족두리를 쓰고, 신랑은 가슴에 붉은 꽃을 달았다. 또 임산부는 붉은 계란을 먹고 붉은 허리띠를 매어 아이가 장래에 운이 트이기를 기원하였다 한다.
각설하고 나의 빨강 숄더백 안에 빼곡히 채워 넣은 각종 팸플릿보다도 더 가득한 무엇은 그동안 ‘중국에 관해서’만 듣고 보았던 여러 내용을 넘어서 비로소 ‘중국’을 보게 되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더불어 ‘바로 그거야!’라고 그들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점홍’적인 우리만의 표현을 창출할 방법은 없을까라는 강렬한 물음느낌표(interrobang: ? +! = !?) 하나를 마음속에 품고 돌아왔다.
많은 비주얼 디자이너(graphic, product, interior & architecture) 가운데 only one verbal designer(brand naming & strategy consulting)로서 나 자신 ‘일점홍’이 되었던 체험을 무엇보다 귀하게 간직하며….
호설암고거의 마당 바닥 패턴.
인간과 사물을 예사로 보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
최시영 리빙액시스 대표|우리의 삶과 생활 패턴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거기에 따르는 가치관 또한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비일상적인 체험이나 이국적인 경험을 원하는 것도 그 예일 것이다. 주택을 전문으로 디자인하는 나로서는 새로운 리빙 테마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여행을 통해서 자연이나 건축물,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공간에 담아내기도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부를 축적한 중국의 거상(巨商)들이 자신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꾸민 오래된 두 저택을 방문했다.
좀 과다하다 싶은 높은 담과, 열리며 닫히고, 닫힌 듯 열리며 끊임없이 펼쳐지는 생활 공간. 특히 인상적인 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도 신경을 쓰고 다듬고 표현한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과 사물을 예사로 보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었다.
규모의 차이는 있었으나 호설암고거, 졸정원 모두 독자적인 공간 체계를 이루었으며 풍요롭고 감각적인 생활을 담으려 했다. 낮에는 따스한 햇볕을 충분히 받고 밤에는 달과 별들이 호수에 어우러져 빗물은 물론 바람의 향기까지 담으려 했던 것 같다. 또한 그들은 넉넉한 집, 멋스러운 공간을 통해 자연과 인간에 대해 서정을 노래하고 싶은 듯했다. 이 모든 것이 색다른 체험이었으며 좋은 경험이었다. 옛집을 보고 경험하는 것은 중요하다. 집은 그 시대와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흔적을 고스란히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 했다. 우리의 삶을 바꾸고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디자인은 진화해야 한다. 때론 창작으로 인해 여러 가지 것와 충돌하며 고통스럽긴 해도 아름다운 선택이어야 하며 그 선택은 꿈의 메시지여야 한다.
졸정원 담벼락.
우리다운 고집으로 우리다운 것을 만들고 있는가?
김선태 가구 디자이너|중국인들의 얼굴은 매우 당당해 보였다. 자신감이라 할까, 과일을 파는 꼬마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풍성함과 과장, 자기중심과 자부심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중국. 대담하고 상징적인 표현과 과장. 많은 것을 담으려는 그들의 욕심. 이러한 특징이 중국 전통 건축을 보면서 느낀 점들이다. 이러한 특징을 축소해놓은 항저우의 호설함고거와 쑤저우의 졸정원을 방문했는데, 호설함고거 내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특히 중국 정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태호석이라는 특이한 모양의 돌을 가져다 놓고 무언가 계획적으로 압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또한 한 집에 많은 공간과 다양한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도 흥미가 있었다.
상하이는 대도시이며 현대적인 장소이다. 하지만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교차하는 곳도 많이 있다. 예술촌인 타이캉루와 모간산루는 중국의 젊은 작가들이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었다. 낡은 장소처럼 보였지만 멋스럽게 그리고 조화롭게 만들어놓았다. 이런 허름한 곳에서 그들의 미래와 열정을 느낄 수 있다니…. 거리에 아무렇지 않게 걸려 있는 속옷 빨래들. 외국 브랜드도 한자로 바꾸어 표기한 간판들. 이 작은 것들이 그들의 자신감이며 고집으로 보였고 중국다웠다. ‘우리도 우리다운 고집으로 우리다운 것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다시 생각해본다.
호설암고거내부 담벼락의 연결 통로.
중국은 중국적이다
정규태 디자인꾸떽 대표|세계 어딜 가도 중국인에 대해선 그 나라 고유의 명사를 붙여 약간은 비하된 표현으로 그들을 지칭한다. ‘중국적’. 무엇이 그들을 중국적이라고 부르게 하였을까? 오랜 역사와 그들의 흔들리지 않은 대륙 기질은 그들의 문화, 생활 곳곳에 묻어 있다.
우리가 뭐라든. 모던한 상하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에서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그들의 그림에서도 중국냄새가 난다. 세계적인 건축가는 물론 이름 없는 디자이너조차도 그들의 작품 속에서 중국을 볼 수 있다. 왜일까? 필터링 없이 외국 문물을 그냥 수용하는 우리의 문화와는 그릇의 크기가 다르다. 글로벌한 디자인. 우리는 글로벌을 좇아가고, 중국은 글로벌을 품는다. 만만디한 그들의 시각으로. 중국적 기질은 그들의 강한 주체의식으로 그들만의 디자인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세계적으로 각인된다.
중국적으로. 우리는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일본은 인위적으로 자연을 집 안에 들이고, 중국은 자연을 움직인다. 집 안의 복도가 아닌 집 경계를 복도로 만들며 중정과 이어지거나 자연을 흡수하는 배치 등에서 그들의 여유로움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다. 경계의 소통 또한 그들만의 창으로 연결되어 있다. 합리적이다. 합리적인 멋, 중국적인 멋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인가?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세계 사람들이 욕을 해도 좋으니 ‘한국적’이란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만의 꿈을 표현하는 나라, 중국
오세환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중국 오월(吳越) 문화 지역인 수향(水鄕: 못과 하천이 발달된 곳)을 방문했다. 중국이란 나라는 서고동저의 지형적 특징 때문에 수향 쪽에서는 거의 산을 보기 힘들다. 이런 지형적 특징 때문인지 수향 지역은 평야에 해당하여 산과 같은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자연 속에 좋은 자리를 찾고 그 자연과 함께하는 한국적 방법이 아닌 인공적인 방법으로 산을 만들고 정원을 꾸미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심의 표현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특히 이런 이상향에 대한 동경은 표현의 과장된 방식을 불러들여 하나의 표현을 하더라도 극치에 가까운 방법을 취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공간 속의 표현은 잠시 숨을 돌릴 틈새도 없이 다음 표현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이러한 방식의 표현이 중국이라는 나라의 조형 근간을 만들고 그들이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하는 겁 없는 추측도 해본다. 모두 인공적인 표현이지만 일본과 중국의 표현은 판이하게 다르다. 일본이 직선적이라면 중국은 곡선적이다. 그 표현의 정도가 아주 과장될 정도로 과감한 중국의 곡선적 표현은 자연적인 곡선의 미를 추구한다는 한국적인 시각에서 보면 현란할 정도다.
비움의 미학과 자연을 존중하는 한국의 조형적인 입장에서 보는 중국은 거침없이 많은 요소들이 과하게 표현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절제의 미학이 아닌 표현의 미학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면 그들의 과감성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중국이 보여주는 과감한 표현 뒤에는 무언가를 이루려는 강한 의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지의 표현이 문명을 만들고 과거 막강한 권력을 쥐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른쪽) 호설암고거 건축에서는 이처럼 세밀한 장식과 극치의 표현을 잘 느낄 수 있다.
서양과는 또 다르게 발전하는 중국의 현대 건축.
중국의 현대 디자인이 한국 디자인을 반성케 했다
장민승 조각가| 나는 이번 중국 건축 기행에서 씁쓸함과 희망을 같이 갖고 돌아오게 되었다는 말로 이 글을 시작해야 할 듯싶다. 여정 내내 이웃이자 근대화의 막차를 탄 중국이라는 대국이 자원 소비적 개발을 배경으로 한 근대화 작업에 사력을 다하는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들의 경제성장과 비례해 발생할 무지막지한 자원 소비가 인류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했다.
나와 외모가 비슷한 중국인들의 모습은 결국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돌아보게 했다. 얼핏 보면 단순히 진화도식에 따라 단순히 후발세대인 듯 보이는 중국의 문화접변(acculturation)은 철저하게 자민족 중심주의에 기반해 개편되고 있는 듯 보였다. 얼핏 둘러본 그들의 현대 미술이 그러하고 심지어는 작은 카페를 가보아도 청담동의 유사 유러피언 찻집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개편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근대화란 곧 서구 가치와 문화의 원형을 유사하게 재현하는 것인 양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래서 “우리 중국인이 너희 한국인으로부터 배우고 싶은 것은 서구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다”라는, 한 중국인 건설업자의 말은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심지어 아 자신에게 그것은 또 다른 민족적 열등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실제로 우리 사회는 서양식 가치의 재현과 모방에 많은 지식인, 교육인, 행정가, 기업인을 비롯한 디자이너까지 앞장서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의 건축・자동차 디자인을 보면서 국경 없는 디자인이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원산지가 다양할수록 원산지 표기를 강화하듯이 자국의 디자인 언어를 확실하게 구사해야 비로소 시장이 생길 것이며 지긋지긋한 모방과 재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동서 혹은 특정 국적의 디자인으로 구분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과연 동양인인가 서양인인가? 자기의 디자인 언어를 찾는다고 가구에 비천상을 그려 넣는다거나 개량 한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에어컨에 몬드리안을 찍어 넣는 것보다 더 작위적이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사실 우리 젊은 예술가들에게 전통이라는 것은 낯선 것이었다.
우리는 서구의 기술을 재빨리 모방하고 익혀야 하는 동시에 결국은 근본도 없는 문화 오퍼상이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이중의 성장통을 치러내야 했다. 이렇듯 우리의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전통은 보편화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었다. 그것을 아는 척, 익숙한 척하는 것은 오히려 더욱 거짓된 자기기만일 것이다.
우리는 한국적인 것, 순수한 한국성이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서구열강의 식민주의가 입성하기 전의 과정에서만 찾으려는 반사적 성향을 보이곤 한다. 한국인다운 심성을 간직한 디자인이란 과거 한국인들이 어떠한 공예기술을 가졌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인의 심성은 새로운 문물이 닥쳐올 때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선택하고 수용하며 저항하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의미와 작위
문준기 M.I 디자인 대표|그동안 2년 정도 중국 비즈니스를 해오면서 중국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봐왔지만 내게 중국은 도대체 일관적 궤를 가지는 그 어떤 모습도 현상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나는 중국의 문화는 오랜 기간의 정치적 변화와 왕조의 다툼에서 기인한 ‘다양성’으로 두루뭉술하게 정의해왔다.
이번 디자인 기행에서 중국을 너무 알려고 과거로 날아가서 현대까지 오는 노력이 무의미해 보이기 시작했고 그저 지금의 중국이 내가 상대해야 하고 관심 가질 마케팅의 대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계획되었든 자연히 이루어졌든 과거의 중국이 현대로 스며들어가고 적용되어온 것은 팩트(fact)라는 결론이었다.
디자인이란 관점에서만 기행을 정리해보면 과거의 디자인이나 현재의 디자인이나 항상 모든 대상에 많은 ‘의미’를 두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건축의 공간 구성, 소재, 형태, 모든 것이 의미로 새겨져 있었다. 그런 모습은 현대 디자인에서도 ‘그대로’ 쓰이기도 하고 번역되어 있기도 했다. 이러한 의미의 결과 외에도 기능적인 구성과 디테일은 사용자, 주거자의 생태적, 심리적으로 고려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문화는 아이덴티티가 유지되고 잘 계승되는 ‘전체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 지금의 중국은 그들의 문자가 ‘의미’로 만들어진 것에서 기인한 것인지, 모든 것이 ‘의미’로 이루어져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 부여’가 잘 해석되지 않았을 때 그것이 ‘작위’로 보인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인 것 같다. 내가 본 상하이의 현대 건축 지구인 D50, 타이캉루 등은 ‘과거와 현대의 작위적 결합’이었고 거칠음을 지나치게 의도하다 보니 자칫 키치로 흐르는 모습도 보였다.
중국을 좋게 해석하는 분들은 중국의 현대 건축은 똑같은 디자인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아서 도시에 모든 건물이 다 다르다고 극찬하지만 ‘획일’의 다른 한쪽 끝으로만 추구하는 것 또한 ‘의미’와 ‘작위’의 소산이지 않을까.
다시금 ‘중용’과 ‘관조’의 의미가 떠오른다.
무자년 초가을 디자인 기행의 어슬픈 소회.
(왼쪽) 형태와 지붕이 제각각인 상하이 마천루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