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싸발리따, 오늘 바뚜께를 무사히 구해 왔으니 아나는 모든 걸 이해해주는구나.
그는 생각에 잠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복한 모양이야.
"내가 돈 빌려 올 테니까 영화 보러 가.
그 대신 다시는 연락도 없이 친구들하고 술 마시지 않겠다고 약속이나 해."
미소를 짓는 아나의 얼굴이 점점 더 멀게만 보인다.
그는 생각한다. 물론 약속하지.
우연히 커튼 한쪽 구석이 접혀 있어서 어두운 하늘이 손바닥만큼 보인다.
그는 우울한 이슬비가 저 밖, 저 하늘 위에서 리마로, 미라플로레스로, 그리고 요정의 오두막 위로 힘없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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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컨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요. 도련님." 암브로시오가 웃 으며 말한다.
"혹시 절 놀리시는 건가요?"
"떼떼는 집에 없어." 싼띠아고가 말했다. "친구들하고 베르무트 마시러 갔어."
"이봐, 말라깽이, 치사하게 왜 이래” 뽀삐예가 말했다.
"너 지금 거짓말하는 거지? 나하고 약속했잖아. 안 그래?"
"암브로시오, 결국 정말로 한심한 개자식들은 겉보기엔 한심한 개자식으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야." 싼띠아고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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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리아는 퇴원하자마자 곧바로 뜨리니다드의 무덤으로 향했다.
붓꽃 몇송이라도 바치고 싶어서였다.
입관하던 날 로사리오 부인이 가져온 성화와 사촌인 뻬드로 플로레스가 석고판에 연필로 쓴 편지가 무덤 옆에 놓여 있었다.
그 앞에 이르자 그녀는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돈이라도 있었다면 묘비라도 사서 금색 글자로 뜨리니다드 로삐스라고 새겨주었을 텐데.
그는 남편의 무덤을 보고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뭐가 급하다고 그렇게 서둘러 간 거야?
어려운 시절도 다 지나가고 이제 남부럽지 않게 살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러곤 남편에게 원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뭣 때문에 그딴 거짓말을 해댄 거야?
아말리아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당신이 세상 뜨자마자 난 마페르니다드 병원으로 실려 갔어.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낳았는데, 이미 죽어 있더라고, 곧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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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이야기를 나 누는 동안, 아따나시오 씨는 주머니에서 작은 술병을 꺼내 마시곤 했다.
아저씨, 정말 경찰 끄나풀들이 뜨리니다드를 때렸을까요?
때리다 죽을 것 같으니까 접이 나서 싼후안 데 디오스 병원 앞에 몰래 버리고 간 걸까요?
아따나시오 씨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게 아니면 그 친구가 몸이 안 좋아져서 혼자 병원에 가려고 하다가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고. 근데 아말리아,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 친군 이미 저세상 사람이야.
힘들겠지만 남편 생각일랑은 잠시 잊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궁리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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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금요일마다 미사에 참석하면서 고해성사는 물론 영성체도 했어.
하지만 그때도 기도하면서 다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넌 귀가 어두운 여자의 하숙집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갔어.
질적인 변화. 뭐든지 축적되면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야.
그래, 넌 그렇게 믿었어.
맑스 이전에 가장 위대한 유물론자 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디드로야.
그래, 맞아. 그러자 그 순간 갑자기 배 속의 벌레가 떠올랐지.
그래, 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야.
지금도 난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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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싸발리따, 만약 그날 입당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그는 생각에 잠긴다.
투쟁의 의지를 불태우며 모든 일에 앞장서서 싸웠을까?
그리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모든 회의를 떨쳐버린 채 몇달, 아니면 몇년 만에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간, 낙관주의자, 혹은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영웅적인 풍모를 지닌 또따른 순수한 인간이 되었을까?
싸발리따, 그랬더라면 하꼬보와 아이다처럼 고생이 심했을거야.
그는 생각한다.
감옥에도 여러번 들어갔을 테고, 지저분한 공장에 갔다가 쫓겨나기도 했겠지.
그리고 어느정도 경제적 여유도 있고 경찰의 제지만 없었다면, 『끄로니까』에 미친개에 대해 사설을 쓰는 대신 사회주의 조국의 과학적 발전에 대해, 또 혁명 노선을 취하고 있던 루린 지구의 제빵사 노동조합이 친기업적인 아쁘라 당의 패배주의에 맞서 거둔 승리에 대해 인쇄 상태가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우니다드』에 글을 썼을 테지.
아니면 쏘비에뜨의 수정주의와 『우니다드』의 배신자들에 맞서 인쇄 상태가 최악인 『반데라 로하』에 글을 썼을지도 몰라.
그는 생각한다.
아니면 더 숭고한 마음을 먹고 무장투쟁 운동에 뛰어들어 꿈을 꾸면서 게릴라 활동을 하다 결국 실패하고 지금쯤 감옥에 갇혀 있겠지. 엑또르처럼 말이야.
그는 생각한다. 그도 아니면 촐로 마르띠네스처럼 싸우다 죽어 밀림에서 썩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또 비밀리에 청년 회의 참석차 어딘가 해외로 가 있을 수도 있겠지.
가령 모스끄바로 말이야.
언론인 회의에 동지로서 인사말을 전하러 부다페스트에 가거나 군사훈련을 받으러 아바나나 베이징으로 갔을지도 모르고.
그는 생각한다.
반대로 만약 무사히 대학을 졸업해서 변호사 자격증을 얻은 뒤 결혼해서 노동조합 법률 자문이 되고 나중에 하원 의원이 되었다면, 지금보다 더 불행해졌을까? 그냥 똑같을까? 아니면 더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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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지막 남은 술을 들이켜고 불을 껐다.
그러곤 아들과 함께 계단을 올라갔다.
방 앞에 이르자, 페르민 씨는 고개를 숙여 아들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말라깽이야, 부디 이 아빠를 믿어다오. 네가 무엇이든 간에, 네가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넌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라는 것을 말이다.
싼띠아고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동이 틀 때까지 창문 너머 하늘을 쳐다보았다.
방 안으로 햇볕이 들어오자,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갔다.
철사가 지난번 숨겨두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내가 내 물건을 훔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지, 까를리또스." 싼띠아고가 말했다.
뚱뚱하고 툭 튀어나온 주둥이에 돌돌 말린 꼬리까지 달린 돼지 저금통이 고등학교 페넌트 옆, 치스빠스와 떼떼의 사진 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가 거기서 지폐를 꺼내는 동안 우유 배달부와 빵 장수가 다녀갔다.
암브로시오는 차고에서 차를 닦고 있었다.
"그럼 끄로니까에는 언제 들어간 거지?" 까를리또스가 물었다.
"그로부터 보름 후였다네, 암브로시오." 싼띠아고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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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 올 때마다 빠리에 온 것 같았어." 까를리또스가 말했다.
"언젠가 빠리에 갈 거라고 생각했지.
어느날 거짓말처럼 홀연히 이곳을 떠날 거라고.
그런데 결국 가지 못했네, 싸발리따.
그 대신 자네와 함께 여기 있잖은가.
진통이 온 임산부처럼 배를 움켜잡고 말이야.
그건 그렇고, 자네 『끄로니까』에 발을 담그기 전에는 뭐가 되려고 했지?"
"변호사." 싼띠아고가 말했다."아니, 그보단 혁명가. 공산주의자."
"공산주의자와 기자는 어느정도 어울리는데, 시인과 기자는 영…” 까를리또스가 웃으며 말했다.
"공산주의자? 나도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났지.
그 일만 없었더라도 신문사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리고 지금쯤 시를 쓰고 있을 테고 말이야.”
"자네 혹시 진전 섬망증이 뭔지 아나?" 싼띠아고가 묻는다.
"뭔가를 알고 싶어 하지만 않으면, 아무한테도 뒤지는 법이 없지, 암브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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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석달 반 됐어." 싼띠아고가 대답했다.
"이제 막 수습을 뗐으니까. 이번 월요일에 정식으로 계약했지."
"가엾은 친구." 까를리또스가 말했다.
"이제 자네는 평생 기자로 남을 수도 있어.
내 말 잘 들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안되니까 이리 가까이 좀 와봐.
엄청난 비밀을 알려줄 테니까.
싸발리따,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건 詩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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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건…”
그는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 중얼거렸다.
"란다처럼 돈이 많은 자가 어쩌다 그런 나쁜 버릇이 들었냐는 거야.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그런 자가 대체 무슨 이유로 도박에 손을 대는 거지?
더 많이 갖고 싶어서?
아니면 가진 걸 다 탕진하고 싶어서?
하기야, 이 세상에서 현실에 만족하는 이는 아무도 없으니까.
항상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둘 중 하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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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헹군 다음, 그는 온몸을 구석구석 닦고 화장수를 적신 수건으로 머리를 문질렀다.
느릿느릿하게 옷을 입었지만 여전히 머리가 멍하고 귓속에서 윙 소리가 들렸다.
그는 다시 침실로 갔다.
두 여인은 시트를 덮고 있었다.
방 안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지만 그들의 헝클어진 머리와 쾌락에 물린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루주며 마스카라 자국, 그리고 졸음이 쏟아지는지 반쯤 풀린 눈이 분명하게 보였다.
께따는 자려는지 몸을 웅크렸고, 오르뗀시아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안 자고 가게?" 그녀가 희미한 목소리로 심드렁하게 물었다.
"잘 데가 없잖아." 그가 문간에 서서 말했다.
그러곤 방을 나서기 전에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쩌면 내일 다시 들를지도 몰라."
그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거실 양탄자 위에 던져놓았던 가방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루도비꼬와 암브로시오는 정원 담벼락에 앉아 경찰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그를 보자마자 입을 다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고 많네." 그가 경찰들에게 2리브라를 쥐여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밤새 추위에 떨었을 텐데, 이걸로 요기라도 하게나."
그는 그들의 얼굴의 핀 웃음꽃을 보면서, 또 고맙다는 말을 수차례 들으면서 차에 탔다.
치끌라요까로 가지.
그는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양복 깃을 올리며 앞 창문을 닫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뒷자리에서 꼼짝도 않은 채 암브로시오와 무도비꼬가 두린두린 나누는 이야기 소리를 들었다.
이따금씩 눈을 뜰 때마다 익숙한 거리와 광장, 어둠에 잠긴 거리의 모습이 보였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윙윙 소리가 올려댔다.
차가 멈추자 두개의 서치라이트가 그 위로 눈부신 빛을 쏟아부었다.
누군가 명령을 내리고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두 눈에 정문을 여는 초병들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내일은 몇시에 올까요, 까요 나리? 암브로시오가 물었다.
9시.
암브로시오와 루도비꼬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집 앞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니 차고의 문을 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그는 잠시 책상에 앉아 수첩에 내일 할 일을 메모했다.
이어 주방에 가서 유리잔에 얼음물을 채운 뒤 느릿느릿 침실로 올라갔다.
손에 든 유리잔이 가늘게 떨리는 것 같았다.
수면제는 욕실 선반, 면도기 바로 옆에 있었다.
그는 두알을 삼키고 물을 쭉 들이켰다.
짙은 어둠속에서 그는 시계태엽을 감고, 자명종을 오전 8시 30분에 맞추어놓았다.
그러곤 침대 시트를 턱까지 끌어당겼다.
하녀가 커튼 치는 것을 잊은 바람에, 반짝이는 작은 별들이 총총히 박힌 네모난 밤하늘이 보였다. 평소 약을 먹으면 십분 혹은 십오분 후에는 잠이 들곤 했다.
오늘 그가 잠자리에 든 것은 3시 40분, 그리고 그가 잠든 순간 자명종 시계의 야광 바늘은 3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결국 약을 먹고 고작 오분 정도 깨어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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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애를 죽이라고 시킨 사람은 볼라 데 오로예요." 께따가 말했다.
"그리고 그애를 죽인 건 그와 동성애 관계를 맺고 있는 놈이고요. 이름은 암브로시오예요."
"볼라 데 오로?" 그가 놀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군, 까를리또스.
그러곤 눈을 깜박이면서 뻬리끼또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지.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께따를 보다가, 이어 바닥을 내려다 보면서 바보처럼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거야. "볼라 데 오로? 볼라 데 오로라고?"
"페르민 싸발라를 말하는 거야. 보다시피 얘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고.”
이본이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베세리따 씨, 왜 이런 바보짓을 하는 거야?
설령 이 아이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이제 와서 그걸 밝혀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애가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쓸 것 없어. 다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니까."
"오르펜시아는 그를 협박하면서 돈을 뜯어냈어요.
운전사와의 부끄러운 관계를 부인한테 고하는 건 물론이고 동네방네 다 떠들고 다니겠다면서 말이죠.” 께따는 거의 울부짖다시피 했다.
"거짓말 아니에요. 그는 그애에게 멕시꼬행 비행기표까지 사줬어요.
그래놓고 자기 운전사를 보내 죽인 거예요. 지금 내가 한 이야기를 모두 밝힐 건가요?
신문에 다 실어줄 건가요?"
"아무한테나 무턱대고 똥물을 튀길 수는 없어." 그가 자리에 털 썩 주저앉더군, 까를리또스.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안절부절못하면서 모자를 푹 눌러쓰더라고.
"증거가 있어? 그런 얘기를 다 어디서 들은 거지? 도무지 앞뒤가 맞질 않잖아. 뚜렷한 증거도 없이 신문에 실었다가 놀림감이 되기밖에 더하겠어? 께따, 나는 그런 꼴이 되기는 싫어."
"그것 보라니까. 다 헛소리라고 백번도 넘게 말했잖아." 이본이 나서며 말했다.
"아무 증거도 없다고. 더군다나 그때 얜 우아치까나에 있었는데 무슨 수로 그런 걸 다 알겠어?
또 설령 증거가 있다 해도, 누가 저 아이의 말을 듣겠어? 누가 저 아이의 말을 믿어주겠냐고!
그렇게 재산이 많은 페르민 싸발라 씨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해?
베세리따 씨, 더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저 아이가 알아 듣게 차근차근 설명 좀 해줘.
그리고 그런 말을 자꾸 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좀 알려주라고."
"께따, 너는 지금 너 자신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똥물을 튀기고 있는 거야."
그가 툴툴대면서 말하더군, 까를리또스.
그러곤 인 상을 쓰면서 모자를 매만졌지.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정신병원에 갇히는 꼴을 보고 싶으면 네가 한 이야기를 신문에 싣도록 하지.그렇게 할까, 께따?"
"보면 볼수록 참 대단한 인물이야." 까를리또스가 말했다.
"개똥도 약에 쓴다더니만, 그런 추접스러운 인간도 쓸모가 있다니까. 베세리따와 함께 일하면서 느낀 건, 그 역시 인간이라는 점이야. 그도 똑바로 처신할 때가 종종 있다는 거지.”
"자네, 한 일이 있지 않아?”
베세리따가 시계를 보면서 투덜거리 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러웠다.
"싸발리따.그만 나가보게..”
"이런 한심한 겁쟁이 같으니." 께따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어. 이렇게 꽁무니 뺄 줄 알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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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거기서 자네를 만나 다행이었지." 싼띠아고가 말했다.
"까를리또스, 정말이지 그날밤 자네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니까."
맞아, 그때 그를 만난 게 천만다행이었지.
바랑꼬의 하숙집 대신 싼마르띤 광장으로 간 것은 정말 잘한 일이야.
괜히 적적한 하숙집 방에 있어봐야 베개로 입을 막고 울기밖에 더 했겠어?
아마 세상이 무너진 듯한 허탈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아버지를 죽일 생각만 했을 거라고, 싸발리따.
어쨌든 멀쩡히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건네고 나오다 복도에서 로베르띠또와 마주쳤지. 넌 택시를 잡지도 않고 도스 데 마요 광장으로 걸어갔어.
입을 벌린 채, 차가운 공기를 가슴 깊숙이 들이마시면서 말이야, 씨발리따.
그러자 심장이 뛰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이따금씩 뛰기도 했지.
너는 합승 택시를 타고 라 꼴메나 거리에서 내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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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슬퍼 보이지 않는군, 까요.” 빠레데스 소령이 말했다.
"안타깝지만, 그 이상 자네를 도울 수가 없었네. 정치의 세계에서는 가끔 우정을 외면해야 할 때가 있는 모양이야."
"자네의 마음은 이해하고도 남으니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네." 까요 베르무데스가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오래전부터 여기를 떠나려고 했어.
그래, 내일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떠날 예정이네."
"더군다나 내가 자네 뒤를 이어 내무성 장관으로 임명되니 기분이 참 묘하군"
빠레데스 소령이 말했다.
"경륜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자네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하는 처지인데, 곧 떠난다니 애석할 뿐이야."
"그렇다면 내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지." 까요 베르무데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 자리에 있는 이상, 자네의 모친도 믿어선 안되네."
"정치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작은 실수라도 용납되지 않는 것 같더군.
반드시 큰 댓가를 치르게 되니 말이야."
빠레데스 소령이 말했다.
"전쟁이나 다름이 없어,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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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어떻게 이 결혼을 받아들일 수 있겠어?
내 귀한 아들이 하녀 같은 아이와 결혼했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으라는 말이야?"
"쏘일라,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버지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지, 싸발리따.
그리고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어.
"왜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여보? 저 아이가 다 듣겠어. 쏘일라, 저 아인 이제 싼띠아고의 아내라고." 아버지의 쉰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지, 씨발리따.
아빠와 치스빠스는 흐느껴 우는 엄마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어.
뽀삐예의 주근 깨투성이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지.
까리는 의자에 웅크리고 앉은 채 바들바들 떨었고.
"엄마 말씀대로 이제 더이상 볼 일 없을 테니 그만 진정하세요."
마침내 싼띠아고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더는 아나를 모욕하지 마세요. 아나가 엄마한테 뭘 잘못했다고…”
"잘못한 게 없어? 잘못한 게 없다고?"
쏘일라 부인은 치스빠스와 페르민 씨의 손을 뿌리치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울부짖었다.
"어떤 여우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순진한 너를 꾀어서 결혼했잖니.
저런 천한 것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발을 들여놓느냔 말이야.
그런데도 나한테 잘못한 게 없어?"
멕시꼬 영화의 한 장면 같았지. 그는 생각한다.
아나,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멜로드라마가 현실이 된 셈이야.
마리아치와 차로만 있으면 정말 딱 영화의 한 장면 같았을 거야, 아나.
치스빠스와 페르민 씨가 쏘일라 부인을 끌다시피 해서 서재로 데려가는 동안 싼띠아고는 굳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때 너는 계단 쪽을 쳐다보고 있었어, 싸발리따.
눈으로 화장실을 찾고, 거기까지의 거리를 계산했어.
그래, 아나는 여태까지 우리들이 하던 말을 다 듣고 있었던 거야.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분노가 속에 끓어올랐지.
까우이데와 혁명운동 시절에나 품었던 고결한 분노를 말이야, 싸발리따.
==
"네가 스스로를 하인이라고 여기니까 무서웠던 거야."
께따는 다시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사람은 백인이고, 너는 아니야. 그는 돈 많은 부자고, 너는 아니지.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한테 제멋대로 굴어도 가만히 있는 게 버릇이 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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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발리따, 너는 부모님과 형제들을 만나기는커녕, 소식도 듣지 못한 채 보낸 신혼을 보냈지.
그 시절이 행복했던가?
그 몇달 동안 돈이 없어 늘 빚에 쪼들려 살았지.
과거는 잊히기 마련이지만, 힘들었던 시절은 어지간해서 잊기가 어려워.
그는 생각한다.
어쩌면 그때가 더 행복했을지도 몰라, 싸발리따.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고 그저 열심히 살았던 그 시절이 네게는 더 행복했는지 모르지.
신념과 열정, 그리고 야망이 적당히 없어진 상태, 모든 면에서 적당히 평범한 삶이 어쩌면 행복인지도 몰라. 잠자리에서조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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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은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요."
암브로시오가 말한다.
"루페 부인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서 비틀비틀 간신히 벽에 기댔습니다요, 도련님."
그사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웅성거 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러다 또 한동안은 정적이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
귓속에서 계속 무슨 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정적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물에 떠 있다가 약간 가라앉고, 또 물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잠기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아말리따 오르펜 시아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곤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발부터 털어야지.
그때 의사가 나오더니 여기에다 손을 얹으면서 말하더구먼요.
암브로시오가 말한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하느님의 뜻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그러고서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구먼요, 도련님."
갑자기 무언가가 그녀를 아래로 끌어당겨 물에 빠뜨리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 곧 보지도 못할 테고,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겠지.
서서히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면서 결국 물 위로 둥둥 떠오르게 될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데 난 다 지나간 일들을 어떻게 듣고 있는 거지?
흠칫 무서운 기분이 들더니, 또다시 가슴 저리는 슬픔이 꾸역꾸역 밀려왔다.
"저희는 병원에서 장례를 치렀구면요." 암브로시오가 말한다.
"모랄레스하고 뿌깔빠 주식회사 운전사들이 모두 문상을 와주더라고요.
심지어는 일라리오 씨도 조문을 왔습니다요."
물 밑으로 점점 더 가라앉자, 그리고 온몸이 빙글빙글 돌면서 추락하는 느낌이 들자, 그녀는 말할 수 없이 슬퍼졌다.
지금 들리는 저 말들이 영원히 물 위에 둥 떠 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물 아래로 가라앉아 끝 모를 심연 속으로 추락하는 동안 자신이 그 말들을 계속 듣게 되리라는 것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결국 아내를 림보관의 관에 넣고 땅에 묻었습니다요." 암브로시오가 말한다.
"묘지를 사는 데 얼마나 냈는지는 기억도 안나는 구먼요.
하지만 운전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몇푼씩 모아준데다 그 망할 일라리오 씨도 돈을 약간 내놓은 덕분에 무사히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요.
아내를 땅에 묻은 그날, 병원에서는 청구서를 내밀더라고요.
하기는 아말리아가 죽었든 살았든 간에 돈은 내야 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도대체 무슨 수로 그 많은 돈을 낸단 말입니까요,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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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아빠를 뵌 적이 한번도 없었어." 싼띠아고가 말한다.
"결혼 한 후로 말이지. 돌이켜보면, 내가 가슴 아팠던 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가 아니었어.
우리도 언젠가는 모두 죽을 테니까. 그렇지 않아, 암브로시오?
다만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내가 당신과 맞서려 한다고 생각하셨다는 게 통탄스러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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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정 주식을 원치 않는다면, 그게 가장 적당한 해결책일 듯 싶어." 치스빠스가 말했다.
"엄마와 떼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무엇보다 엄마는 앙꼰이라면 학을 떼시니까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거기가 그렇게 싫다는데 어쩌겠어.
떼떼와 뽀삐예는 싼따마리아에 자그마한 집을 짓고 있어.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뽀삐예가 하는 사업이 꽤 잘되는가보더라고.
하기야 벨라운데가 대통령이니 그럴 만도 하지.
나도 요즘 너무 바빠서 휴가는 꿈도 못 꿀 것 같고. 그러니까 그 아파트는…”
"가난한 사람들한테 기부하면 되잖아." 싼띠아고가 말했다.
"치스빠스 형,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너도 앙꼰이 싫다면, 굳이 그 집에 들어가 살 필요는 없어." 치스빠스가 말했다.
"그걸 팔아서 리마에 집을 사도 되고. 그러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잖아."
"편하게 살고 싶지는 않아." 싼띠아고가 말했다.
"이 얘기 계속하 다가는 결국 싸우게 될 거야, 치스빠스 형."
"애처럼 굴지 마." 치스빠스 형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지. 그는 그 때를 떠올린다.
"너도 이젠 어른이야. 결혼도 했고, 가족을 부양할 의무도 있어.
그러니까 이제 엉뚱한 짓은 그만할 때도 됐잖니?"
형은 차분하면서도 자신 있는 표정이었지, 싸발리따.
힘들고 혼란스러운 시간은 다 지나갔고, 그래서 이제는 네게 충고와 도움을 건넨 뒤 두 발 뻗고 편히 자겠다는 표정 말이야.
싼띠아고는 웃으며 그의 말을 살짝 건드렸다. 치스빠스 형, 정말이야, 이제 그만하자, 응?
그때 주인이 6을 떡이며 달려오더니 추페 요리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었다.
문제라뇨? 이렇게 맛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그러곤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두 사람은 주인이 보는 앞에서 얼른 몇스푼을 떠먹었다.
"그 문제를 두고 더는 왈가왈부하지 말자고." 싼띠아고가 말했 다.
"형하고 나는 맨날 싸우면서 컸지. 하지만 지금은 사이좋게 잘 지내잖아, 치스빠스 형, 안 그래? 부탁인데,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 지내자. 더이상 이런 문제로 나를 괴롭히지 말고. 알았지, 형?"
순간 형의 얼굴에는 짜증과 당혹감, 그리고 후회의 빛이 한데 뒤엉켰지만, 그래도 너를 향해 안쓰러운 미소를 보내고 있었지, 싸발 리따.
치스빠스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답답한 듯 안타까운 얼굴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곤 잠시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오리 볶음밥만 깨지락거렸다.
망하르 블랑꼬를 곁들인 팬케이크는 까맣게 잊은 채였다.
계산서가 나오자, 치스빠스가 돈을 냈다.
차에 오르기 전에 그는 소금기가 있는 눅눅한 공기를 가슴속 깊이 들이마셨다.
두 사람은 파도와 해변을 지나가는 여자들, 굉음을 내며 거리를 질주하는 스포츠카에 대해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몇마디 나누었다.
그러고는 미라플로레스로 가는 길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요정의 집에 도착해 싼띠아고가 차에서 내리려는 찰나, 치스빠스가 그의 팔을 잡았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너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거야, 만물박사."
그날 형이 속내를 숨김없이 털어놓은 순간은 그때가 유일했지.
그는 생각한다. 그 목소리에는 솔직한 감정이 담겨 있었어.
"너는 대체 어떤 삶을 원하는 거지? 왜 쓸데없이 고집을 피우고 사서 고생을 하는 거야?"
"마조히스트라 그래." 싼띠아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치스빠스 형, 잘 가! 엄마하고 까리한테도 안부 전해줘."
"그래, 너도 그렇게 계속 미친 짓 하고 살아라." 치스빠스도 따라 웃었다. “
하지만 살다보면 언젠가 돈이 아쉬울 때가 오리라는 걸 명심해."
"나도 알아, 그 정도는 나도 안다고." 싼띠아고가 말했다.
"낮잠 자야 할 시간이니까 이제 그만 가. 치스빠스 형, 잘 가!"
만일 그날 있었던 일을 아나에게 털어놓지 않았더라면 이후의 수많은 싸움들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생각한다. 백번, 아니 이백번의 싸움을 말이야.
그는 생각한다. 그놈의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고?
아나, 사랑하는 당신의 남편이 얼마나 떳떳한지 보라고.
가족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니까.
주식이나 집 따위는 개들한테나 줘버리라고 했어.
그러면 아나가 너의 행동에 감탄이라도 할 줄 알았던 거야, 싸발리따?
그녀가 어떻게 생각해주기를 바랐던 거지?
그는 생각한다. 월말도 안됐는데 돈이 바닥이 날 때마다, 중국인에게 외상을 잡힐 때마다, 그리고 독일 여자에게 돈을 빌릴 때마다 그 생각이 났겠지.
그래서 잔소리를 해대며 타박했을 거야. 불쌍한 아니따.
그는 생각한다. 불쌍한 싸발리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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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문 가까운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양파를 넣은 추라스꼬를 입에 욱여넣으며 아는 얼굴을 찾느라 줄곧 거리만 쳐다보았다.
그러나 온통 낯선 얼굴뿐이었다.
오래전 그날밤, 그러니까 그가 리마로 떠나기 전날 함께 밤길을 걷던 뜨리풀시오가 해준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나는 분명히 친차에 있는데, 친차에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은데, 진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어.
그때 그가 뭘 말하고 싶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는 계속해서 다른 동네를 기웃거렸다.
호세 쁘라도 학교, 싼호세 병원, 시립 극장, 조금은 현대화된 시장.
조금씩 작아지고 조금씩 납작해져 있을 뿐, 모든 게 똑같았다.
달라진 것은 사람뿐이었다.
저는 고향에 간 것을 후회하고 말았습니다요, 도련님.
그날밤 그는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리마로 돌아왔다.
도련님, 이젠 여기도 너무 짜증이 나는구먼요.
하지만 그날 고향에 가서는 짜증만이 아니라, 제가 너무 늙어 버렸다는 기분까지 들더라고요.
암브로시오, 광견병이 수그러들면 자네가 일하고 있는 유기견 보호소 일자리도 없어지겠지?
그렇겠지요, 도련님.
그럼 뭘 할 생각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빤끄라스한테 저를 불러오라고 한 그 공무원이 일자리를 주기 전에 하던 일을 또 하겠지요.
그러니까 증명서가 없어도 며칠은 버틸 수 있는 그런 일자리 말입니다요.
아마 또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일을 해야 하겠죠.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광견병이 도질 테고, 그러면 또 저를 부르지 않겠습니까요?
그다음에는 여기, 그다음에는 또 저기.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이 세상을 하직하지 않겠습니까요?
도련님, 안 그렇습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