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데, 트라키아 합중국은 전쟁을 시작했다.”
만화 〈플루토(PLUTO)〉 대사다. 〈플루토〉는 익히 알려진 〈철완 아톰〉 시리즈 중 ‘지상 최강의 로봇’편을 우라사와 나오키의 방식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인공지능 로봇들이 인간과 함께 어울려 생활하는 세계관을 지닌 만화 〈플루토〉는 전쟁 이후의 일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쟁이 끝나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전쟁에 참여한 로봇들은 저마다 깊은 상흔을 품고 있다. 인공지능이기에 오히려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전쟁의 참혹한 모습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는 까닭이다. 전쟁에 참여한 로봇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전쟁을 속죄한다. 전쟁고아를 위해 보육원에서 봉사하고, 부모 잃은 아이들을 입양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한다.
<플루토> 표지 / 서울미디어코믹스
지시에 따라 전쟁에 참여했지만 지독한 전쟁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 로봇은 강력한 힘과 발달한 인공두뇌로 인해 ‘세계 7대 로봇’이라 불린다. 강력한 능력을 가졌지만, 이들은 전대미문의 로봇에게 습격당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바로 ‘플루토’다. 플루토는 중앙아시아 분쟁과 관련 있는 로봇으로 사람들을 무차별 살해한다. 그는 대체 어떤 목적을 갖고 있으며, 누구의 지시로 움직이는 걸까? 〈플루토〉의 주인공인 경찰 로봇 게지히트와 아톰은 플루토의 진실을 좇아간다.
이 미스터리한 사건에 다가갈수록 아톰 일행은 중앙아시아 분쟁의 진상에 가까워진다(이 뒤부터 작품 스포일러가 있다). 트라키아 합중국은 페르시아 왕국이 거대 로봇 병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으나, 실제 파견 조사단은 그곳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오로지 페르시아 왕국의 성장을 저지하고, 트라키아 합중국의 국제적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설계한 전쟁이었다. 사막 같은 황무지에 꽃을 피우려 개발한 환경 로봇은 분노와 증오로 인해 죽음의 신으로 변모한다.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플루토〉의 대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침공당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데, 페르시아 왕국은 초토화됐다.” 이는 비단 만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소수의 야욕에서 시작한 전쟁은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가고, 전쟁 이후에도 많은 사람에게 극심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전쟁이 지금까지 얼마나 참혹하게 인권을 유린해왔는지, 얼마나 많은 땅을 폐허로 만들었는지는 인류의 역사가 충분히 입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사람들은 최대 7000만명으로 추정한다. 그 가운데 홀로코스트로 사망한 유대인만 약 600만에 달한다. 1950년 한국전쟁의 사망자는 137만명에 이른다. 대전광역시 인구수인 145만에 근접한 수치다. 사람만 죽어 나가는 게 아니다. 전쟁은 지구 생태계와 다른 종의 생명에도 커다란 악영향을 미친다.
인류가 지나온 수많은 역사가 눈앞에 있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텍스트가 이렇게 많은데도 어째서 전쟁은 계속 일어나는 걸까. 무력감을 느끼기 쉬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용기 내 평화를 외친다. 국가가 일으킨 전쟁에 반대하며 시위를 이어가는 러시아 국민, 국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목소리 높이는 우크라이나 지도자와 그 국민, 푸틴을 비판하는 전 세계 시민…. 이들의 목소리를 이어 그전엔 가자지구를 향해, 지난해엔 미얀마를 향해 외쳤던 해시태그를 다시 쓴다. 전쟁에 휘말린 모든 이들이 안전하기를 빈다. #Pray_for_Ukraine #Stop_the_war
조경숙 만화평론가
첫댓글 잘보고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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