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의정부교구장님으로부터 공모수기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하였으며 2011년 1월 나무그늘(월간지)과 평화신문에 게재 예정인 금촌성당의 이충순(도미니카) 자매님의 글을 신수동 성당의 모든 교우들과 같이 은혜를 받고자 미리 소개합니다. ================================================================================================================== 엄마 영세 받고나서
2007년 12월초 엄마 영세를 받기위해 성당에서 많은 신자 분들이 오셨다. 영세를 받기 전 엄마를 소개부터 하고 싶습니다. 2남5녀의 막내딸 집에 계시기 시작한 것은 오빠가 폐암으로 투병하기 시작해서 엄마 마음도 아프고 올케가 힘들어해서 우리 집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잘 걷지는 못하지만 방석을 깔고 앉아서 밀고 다닐 수 가있었습니다. 제가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점심은 뜨거운 보온밥통에, 찬 음식은 아이스박스에 준비를 해놓고 나갑니다. 그러면 잘 꺼내 잡수시고 대소변은 요강에 하시면서 강아지와 놀다, 주무시다, TV보다 하면서 하루를 보내십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촛불을 켜놓고 아침기도를 하면 글도 모르시는 엄마이지만 손을 합장하고 중얼거리셨습니다. 그럴 때 무엇을 하시냐고 물어보면 먼저 하늘나라에 간 넷째 딸 좋은 곳으로 가고 아들 아프지 않게 하고 남은 자식들도 모두 평안하게 해달라면서 당신 자신도 아프지 않고 하늘나라에 빨리 갈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엄마를 영세 받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가실 무렵에 대세를 주는 것 보다 엄마가 하느님을 잘 모르더라도 딸 가족이 하느님 자녀라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성당에 문의하여 영세를 할 수 있게 간단한 교리를 하고 오빠와 의논하여 드디어 영세를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엄마가 영세하는 날 영성체 모시는 것을 잘 못하실 것 같아 쌀 강냉이로 연습을 시켰더니 잘 하셨습니다. 영세식 때 저의 엄마 연세가 91세여서 더 나이 많은 대모님을 찾기가 어려워서 저의 88세 되시는 시어머님을 대모님으로 모시고 하정용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여러 신자 자매님들이 오셔서 영세식을 집에서 했습니다. 우리엄마 마냥 기뻐하시면서 아멘도 잘 하시더니 성체를 모실 때 강냉이로 연습할 때와는 달리 어린아이처럼 다 잊어버리고 당황하는 모습이 오히려 귀여웠습니다. 영세 후 성탄절 날 날씨가 따뜻하여 휠체어 타고 미사참례하고 성모님 앞에서 여러 자매님들과 사진 찍으며 즐거워하셨습니다. 그 이후 집에서 환자영성체를 했습니다.
가끔 시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시면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시고 대녀이며 사돈인 엄마의 요강도 비워주시고 식사할 때 앞치마도 해주며 대녀를 도와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사돈 간은 어려운 관계라는데도 그것을 초월하여 하시는 행동이 하느님 사랑이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10월이면 임진각에서 인삼축제가 열립니다. 그날 시어머님이 오셔서 친정엄마와 같이 구경을 갔는데 주차장이 만원이라 먼 도로에서 내려서 친정엄마는 휠체어를 타고 남편과 시어머님은 휠체어를 번갈아 밀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하느님 보시기에도 좋았을 것입니다. 89세인 시어머님이 92세의 사돈이지만 대녀라고 하시면서 휠체어를 밀고 가시는 그 차체는 하느님 사랑이 있기에 할 수 있었겠지요. 친정엄마가 영세를 받아 하느님 딸로 다시 태어났기에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저도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엄마를 모시는 것이 매우 힘들었지만 자식들을 위해 허리가 휘고 모든 손마디가 꼬부라지도록 평생을 희생하신 엄마를 요양원에 보낸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요양사를 재택근무 시키면서 엄마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할머니 제사 때마다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자식을 한 끼라도 더 주려고 허리띠를 밥으로 삼아 쪼여 매고 사셨다며 제사상을 차려놓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살아계실 때 한 끼라도 잘 해드리고 마음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남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기위해 또는 자식에게 효를 가르치기 위해 전혀 모르는 노인 분들도 모시는 경우가 있는데 하물며 내 엄마를 모시는 것쯤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효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혼자서는 안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몸도 힘들지만 착한 남편과 아들, 딸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같이 도와주었기에 해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가족이 더욱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엄마를 모시면서 인생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가는 과정이 포물선 모양을 그리며 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태어나서 누워있다→기고→걷고→기고→누워서 생을 마감하며 또한 먹는 것도 젖→죽→밥→죽 →물 순서로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옛 말에 부모는 열 자식 키워도 열 자식은 한 부모도 못 모신다는 말처럼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보내겠다고 고집할 때 저도 그런 충동을 느낄 때가 있었지만 하느님 사랑이 있었기에 모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자하신 하느님…(부모의기도)” 기도를 할 때마다 제 가슴은 요동을 쳤습니다. 믿음가진 사람이 어찌 내 부모하나 못 모시고 사랑을 실천하겠느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런데 부모를 잘 모셔도 핍박하는 사람과 칭찬하는 사람 두부류가 되더군요. 안 받은 사람들은 칭찬하고, 부모 재산을 다 가져간 사람은 모시기는 싫고 남이 모시는 것은 주위 눈이 껄끄러워 요양원 안 보낸다고 핍박만하는 그 소리도 나의 십자가가 되더군요. 이럴 때마다 고통의 신비를 하지요. 성모님 고통의 신비다음 영광의 신비 있겠지요? 하면서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리하여 엄마는“너희 집이 좋아”하면서 기뻐했습니다. 부모를 모시고 있는 형제, 자매님들 힘내세요. 부모를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날이 있어요. 성모님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예수님을 보내셨잖아요. 성모님 보다 낳으리라 생각하면 됩니다. 또 너무 힘들 때는 성가 “로사리오 기도드릴 때” 성가를 부르면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한테는 너무 잘 맞는 성가였습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엄마 맛있는 것 해 주려고 밤 2~3시에도 죽을 맛있게 해 드렸지요 그러면 좋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엄마를 모시면서 아들이 대학 졸업하고 취직 준비를 할 때에 아프신 외할머니가 깔끔해서 요강에 소변을 한다고 하시면 자다가도 일어나 도와드리고 내가 나가고 없을 때 대소변 보시고 일을 저지르면 아들과 딸이 닦아드리고 식사할 때는 앞치마 해주고 반찬도 놓아주곤 했습니다. 식사만 하시면 어린아이와 똑같이 대낮에도 주무시고 하다 보니 밤낮이 바뀌어서 가족 모두가 밤이면 돌아가면서 돌보아 드려야했습니다. 아들 야고보는 전례부, 딸 수산나는 성가 반주를 하면서 하느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환자 영성체하는 날은 아침 일찍 목욕시키고 미리 미사 보 쓰고 있다가 신부님이 좀 늦으시면 졸다가 일어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또 지난 환자 영성체 때는 봉헌이 무언지 모르시는 분이 손수 용돈을 봉헌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지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봉헌금 이었습니다.
2010년 1월 병원에 입원하셔서 병원생활하면서 종부성사하고 고맙다고 손을 움직여 제 볼을 두 손으로 비비셨습니다. 마지막으로“아멘”만 정확히 말씀하시고 저는 엄마 사랑해 하면서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운명 이틀 전에 퇴원하시어 봉사단원 자매님들의 많은 기도 속에서 2010년3월8일 고생 끈을 다 놓으시고 아프지 않는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엄마가 평소 최 토마스 신부님이 자상하시다고 좋아하셨는데 엄마 운명할 무렵 피정을 가셔서 엄마 장례미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했지요. 기도덕분인지 출관전날 신부님 피정이 끝나서 장례미사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장례미사 강론 중에 할머니가 신부님을 기다렸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출관 전날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왔는데 장례미사 하는 날은 날씨가 화창하고 나뭇가지에 눈꽃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장례미사에 참석한 사촌언니 부부가 그 모습을 보고 개신교에서 저희 천주교로 개종하여 지난 광복절날 영세를 받았습니다. 엄마가 두 명을 구원한 셈이 됐지요. 또한 아들 면접 보는데 긴장하여 목소리가 커졌더니 면접관이 목소리가 왜 그렇게 크냐고 질문하여 94세 외할머니를 모시면서 귀가 안 좋아서 크게 말하는 습관이 생겼나보다 답했더니 모든 면접관들이 웃으면서 분위기가 반전이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내가 속상한 일이 있으면 아들, 딸이 하늘나라에 외할머니가 도와줄 거라고 나를 위로하더니 정말로 아들과 딸이 동시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으로든지 꼭 갚아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부모 잘 모시고 하느님 사랑과 함께 축복받으세요. 그동안 도움을 주신 형제, 자매님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합니다.
2010년 11월01일
금촌 성당 이 충순(도미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