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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3)
아르헨티나 엘 찰텐, 피츠로이, 모레노 빙하
[연재] 임영태의 남미 여행기 (10)
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엘 칼라파테에서 엘 찰텐으로
1월 7일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7시 30분경 버스 터미널로 갔다. 피츠로이 산을 보기 위해 엘 찰텐(El Chalten)으로 가야 했다. 버스는 전날 이미 예약을 해 두었다. 엘 칼라파테에서 엘 찰텐까지의 거리는 250km 정도이고 버스로 2시간 40분가량 걸린다. 버스비용은 1인당 3만6천 페소(대략 38달러, 한국돈 51,300원)로 비싼 편이다. 물론 우리나라 우등버스보다는 못하지만 일반 고속버스보다는 좋다. 8시 10분경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20분쯤 가다가 공항에 들러서 승객 몇 명을 더 태우고 떠나 11시경 엘 찰텐 마을에 도착했다.
엘 칼라파테 마을 바로 앞에 있는 아르헨티노 호수를 끼고 동쪽으로 가다가 만나는 40번국도를 타고 북상하면 베에드마 호수가 나온다. 비에드마 호수를 끼고 잠시 북상하다가 40번국도와 갈라지는 23번 도로를 타고 호수를 따라서 서북방향으로 한동안 가다보면 엘찰텐에 이르게 된다. 도로 왼편으로는 호수가, 오른편으로는 강과 황무지, 계곡과 구릉이 펼쳐진다. 저 멀리 설산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칠레에서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들어와서 평원을 달리던 것과 달리 북쪽으로 갈수록 산과 계곡이 많아지고 풀조차 자라지 않는 편무암 지대가 능선을 따라 나타나기 시작한다. 칠레의 푸에르토 나탈레스, 아르헨티나의 엘 칼라파테, 엘 찰텐으로 이어지는 이곳 지형은 서쪽으로는 험준한 안데스산맥의 설산과 함께 빙하지대가 자리하고 있고, 동쪽으로 자갈과 편무암으로 이뤄진 황야에서 팜파스 초원지대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칠레 국경을 넘으며 타고 북상한 40번국도(루타40)는 북쪽 볼리비아 국경지대에 위치한 라 키아카(La Quiaca)에서 남쪽 끝 리오 가예고스(Rio Gallegos)까지 안데스산맥 동쪽지역의 남북을 종단하는 도로다. 길이가 무려 5,244km에 달하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긴 이 국도는 1935년에 건설됐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1번국도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려 90년 전에 이 같은 아르헨티나같이 큰 영토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아르헨티나가 세계적인 부국의 반열에 속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나라가 지금은 끊임없이 경제위기를 반복하며 헤매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엘 찰텐 행 버스. [사진-임영태]
엘 칼라파테-엘 찰텐 주변 지도. [구글 맵]
엘 찰텐 가는 길에 만난 풍경. [사진-임영태]
엘 찰텐 행 버스버스에서 본 엘 찰텐 마을. [사진-임영태]
엘 찰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공기가 달랐다. 엘 찰텐이란 지명은 원주민 말로 ‘연기를 뿜어내는 산’이라는 의미의 찰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마도 끊임없이 안개 속에 쌓여 있는 피츠로이 산을 비롯한 주변의 산들을 두고 그렇게 불렀던 모양이다. 엘 찰텐의 공기가 청량했다. 싸늘한 초겨울 날씨 느낌이 묻어났다. 하늘도 잔뜩 흐린데다가 빗방울이 살짝 떨어졌다. 이거 우의를 입어야 하나 고민했으나 금방 비는 거쳤다. 바람도 제법 강하게 불었다. 아, 이거 산이 가까워서 그런지 날씨가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마을은 크지 않았으나 깨끗해 보였다. 공기도 상쾌하고 깨끗한 게 스위스의 한 마을에 온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엘 찰텐은 파타고니아 거대한 빙하지대 북서쪽 가장자리 협곡에 위치해 있다. 세계적인 미봉으로 손꼽히는 피츠로이(Fitz Roy) 산과 세로토레(Cerro Torre) 산을 병풍처럼 뒤 북서쪽으로 두르고 동쪽으로는 라스 부엘타스(Las Vueltas) 강이 흐르고 있다. 세계적으로 풍광이 아름답기로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피츠로이 산 트레킹을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나도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에서 피츠로이 주변 트레킹 장면을 봤는데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정말이지 죽기 전 저곳을 한번 가볼 수 있을까 했는데, 실제로 오게 됐다.
엘 찰텐 시내 거리 모습. [사진-임영태]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엘 찰톈을 알리는 표지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천천히 거리를 가로질러 걸었다. 피츠로이 산으로 가는 트레킹 코스는 마을이 끝나는 지점 북쪽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마을을 관통해야 한다. 엘 찰텐은 70, 80년 전까지만 해도 궁벽진 산골 광산마을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마을이 돼 있다. 피츠로이 산과 그 주변 트레킹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마을은 트레커들의 숙박시설과 음식점, 카페 등으로 성시를 이룬다.
엘 찰텐의 인구는 1천 명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관광객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깔끔하고 조용하고 소박하다. 우리의 소읍 수준도 안 되는 이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피츠로이 산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걷기 위해서는 이곳 엘 찰텐에 베이스 캠프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도 이런 사정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엘 칼라파테에 숙소를 정하지 않고 이곳에 숙소를 정했을 것이다. 엘 찰텐에서 숙박을 해야 새벽 4시쯤부터 트레킹을 시작해 해가 뜨는 일출 광경을 적당한 곳에서 볼 수 있다. 11시경에 도착한 우리는 어차피 일출도, 일몰도 볼 수 없다. 그래도 걸을 만큼 걸어서 피츠로이 산 풍광을 잘 볼 수 있는 곳까지 가는 것이 오늘의 목표다.
엘 찰텐 마을에서 피츠로이 산으로 가는 트레킹
버스에서 내려 사진도 찍고 마을 집들도 구경하고 사람도 보면서 30분 정도 천천히 걸어서 마을 끝에 이르러니, 피츠로이 산까지 가는 트레킹 코스가 시작된다. 엘 찰텐 마을에서 피츠로이 산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의 트레킹 코스 거리는 10km, 왕복 20km다. 중간에 점심식사도 해야 하는 걸 감안하면 7〜8시간은 필요하다. 우리가 도착해 구경하고 사진 찍고 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나니 12시가 다 됐다. 6시 버스를 타야 하는 걸 감안하면 실제 우리가 트레킹에 쓸 수 있는 시간은 4〜5시간 남짓밖에 안 된다. 끝까지 가는 것은 무리여서 중간지점에 위치한 라구나 카프리(Laguna Capri) 호수까지만 걷기로 결정했다. 왕복 8km여서 넉넉잡아도 4시간이면 충분했다. 마을도 돌아보고 호수까지 트레킹 코스를 포함해 대략 14킬로 정도를 걸었다. 피츠로이 산 아래 전망대까지 가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호숫가에서 편하게 쉬면서 피츠로이 산과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피츠로이 산 트레킹 도중 내려다 본 엘 찰텐 마을. [사진-임영태]
피츠로이 트레킹 길. [사진-임영태]
트레킹 코스 주변 풍광. [사진-임영태]
트레킹 코스는 완만하고 평탄했다. 산길이지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산책길 수준이었다. 산길 초입에 짧은 경사구간이 잠시 나오지만 그 이후는 거의 완만한 능선 구간이 호수까지 이어졌다. 이 대표는 처음 가파른 구간을 월출산 구간이라고 명명했다. 영암 월출산처럼 엄청 큰 돌덩이가 하나의 산을 이루고 있다. 월악산(충북 제천) 정상 모양과도 닮았다. 그 뒤 완만한 산길은 지리산 구간, 그리고 나머지는 산정호수 구간으로 명명했다.
처음 출발할 때 빗방울과 함께 바람, 싸늘한 초겨울 날씨에 우리는 겨울옷을 꺼내 입었다. 나는 빵모자까지 쓰고 중무장했다. 하지만 산으로 출발해 30분쯤 걸으니 따스한 봄 날씨로 급변했다. 다시 겨울옷을 벗고 빵모자 대신 모자를 바꿔 써야 했다. 2.5km 정도 걸은 뒤 전망 좋은 곳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준비해간 샌드위치, 간식거리, 물 등으로 식사를 마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다. 설산과 협곡 사이를 흘러내리는 강, 고사목이 즐비한 산길은 그야말로 그림이다. 이 길을 천천히 사색하면서 그리고 음미하면서 걸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터이지만 시간이 제한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냥 스쳐가는 바람,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음미할 여유도 없이 그냥 걷는다.
우리나라 산천도 아름답지만 확실히 이곳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확실히 색감에서부터 산의 형상, 강, 나무들까지 색다르다. 여름에 설산을 보는 것도, 해발로는 백두산보다 높은 산이건만 산의 형태는 결코 가파르다는 느낌보다는 완만한 능선처럼 느껴진다. 강물은 푸른색보다는 흐린 옥색에 가깝다. 흙탕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맑지도 않다. 아마도 토양이 빙하가 녹아서 흘러내리는 강물과 함께 끊임없이 토양이 침식돼 흘러내리기 때문일 것이다. 나뭇잎이자 꽃잎, 풀잎들도 녹색, 푸른색, 노란색이지만 약간은 검은색이 섞여 있는 느낌이다. 비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사라지며 청정한 가을하의 푸른빛과 구름이 떠다닌다.
우리가 걷은 길옆에는 숲속 곳곳에 고사목들이 쓰러져 썩어 가고 있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 나무들이 살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골사람 티를 팍팍 내는 이 대표가 고사목들을 땔감으로 쓰면 좋겠다고 말한다. 시골에서 살 때 겨우내 땔나무를 하기 위해 산속을 돌아다녀야 했던 나도 생명을 다한 나무들을 볼 때면 자주 땔나무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렇게 걷다가 어느 순간 캠핑장이 나왔다. 호수도 보였다. 호수 주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호숫가에 제법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거나 누워서 쉬고 있다. 우리도 모래사장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돗자리는 없었지만 판초우의와 비닐우의를 자리삼아 깔고 배낭을 베개 삼아서 그냥 드러누웠다. 바쁜 여행 스케줄로 정신없던 중 가장 한가한 시간이었다.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1시간 반 동안 우리는 무념의 상태가 되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여유로왔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바라보는 정면으로 피츠로이 산이 바라다 보였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피츠로이 산(해발 3,3375m)을 바라보는 기분이 황홀하다. 피츠로이 산은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방 산타크루즈 주에 있는 로스 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로스 글래시아레스 국립공원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트레킹, 빙하 관광지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피츠로이 산뿐만 아니라 우리가 내일 가게 되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비롯한 13개의 빙하와 아르헨티노 호수, 비에드마 호수 등이 속해 있다. 우리가 누워 있는 이곳도 크게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카프리 호수 모래사장에 앉아서 피츠로이 산봉우리를 바라본다. 피츠로이라는 이름은 찰스 다윈이 참여한 2차 비글호 항해 때 함장이었던 로버트 피츠로이(1805〜1865)의 공적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남부 파타고니아의 최고봉인 피츠로이는 1952년 프랑스 전망대의 리오넬 테레이가 처음으로 올랐다. 암벽 등반가 출신의 이본 쉬나드가 만든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로고 도안도 피츠로이 산을 형상한 것이다.
트레커들에게 아침 일출 때 보면 고구마 모양을 한 산이 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불타는 고구마’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피츠로이 산 정상이 안개 속에 가려 보이지를 않는다. 거대하게 우뚝 솟은 세 개의 봉우리는 자신의 전체 모습을 보여줄 듯 말 듯 우리를 한 시간 반 동안 애태웠다. 하지만 우리는 호수에 있는 동안은 끝내 완전히 구름이 사라진 봉우리 전체 모습을 온전하게 보지 못했다.
트레킹을 끝내고 엘 찰텐 마을로 돌아오니 세 봉우리는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오후가 돼서 날씨가 맑아지니 봉우리를 휘감고 있던 구름이 모두 걷힌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엘 찰텐에 내려서 산쪽을 바라볼 때는 흐린 날씨 탓에 구름과 안개 속에 싸여 산 모습이 하나도 안 보였는데 오후에 쾌청한 날씨가 되니 마을에서도 멀리기는 하지만 봉우리가 선명하게 잘 보였다.
엘 찰텐, 라구나 카프리 호수, 그리고 피츠로이 산 주변 지도. [구글맵]
라구나 카프리 호수 모래사장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사진-임영태]
호수에서 바라본 피츠로이 산봉우리. 안개 속에 숨어 나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진-임영태]
호수에서 바라본 피츠로이 산봉우리. [사진-임영태]
엘 찰텐 마을에서 바라본 피츠로 산 봉우리. [사진-임영태]
엘 찰텐 마을 표지판과 거리 모습. [사진-임영태]
트레킹을 끝내고 마을로 돌아왔지만 6시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었다. 마을을 돌아보고 버스터미널 옆에 붙어 있는 가게에 들어가 맥주를 한잔 했다. 강행군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10km가 넘는 거리를 걸었다.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맥주 맛도 일품이다.
엘 찰텐에서 오후 6시 버스를 타고 엘 칼라파테로 향했다. 갈 때와는 달리 올 때는 버스가 앞 차를 추월하며 속도를 내며 질주했다. 아마도 버스 기사도 빨리 끝내고 쉬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돌아오면서는 비행장에 들러야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버스가 엘 칼라파테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 32분. 남극에 가까운 곳이어서 백야 현상이 나타나 밤 10시까지도 날이 훤하다. 그러다가 10시가 넘어서면 갑자기 어둠이 찾아온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끝났다. 내일은 빙하 투어가 기다리고 있다.
국립공원 페리토 모레노 빙하 투어
1월 8일, 월요일이다. 이틀 전 시내 여행사에서 페르토 모레노 빙하 투어를 예약했다. 아침에 버스가 숙소까지 오기로 예정돼 있다. 아침 7시 15분까지 버스가 숙소 앞으로 픽업하기로 예약했는데 7시 4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초조해 하고 있는데 7시 43분경 버스가 도착했다. 시내 곳곳에 산재한 호텔마다 돌아서 여행객을 싣고 오다보니 늦어진 것이다.
1시간 반 정도 버스가 달려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공원 입장료는 1인당 1만2천 페소(한화 1만8천원 정도)다. 현금으로 낼 수도 있고 카드도 가능하다. 카드로 지불할 경우는 버스에서 내려서 계산해야 하고 현금은 직원이 직접 버스에 올라와 돈을 받고 표를 준다. 국립공원에 입장한 뒤 10분 정도 가니 배를 타고 빙하투어를 할 선착장이 나온다. 배 빙하투어는 30달러 추가다. 우리는 그냥 전망대에서 빙하를 관람하기로 했다. 보트투어를 하면 거대한 빙벽 근처까지 갈 수 있지만, 배를 타지 않아도 빙하를 잘 관람할 수 있을 정도로 전망대 시설이 잘 돼 있다.
숙소 호텔 에코비스타. [사진-임영태]
빙하투어 버스 가이드. [사진-임영태]
엘 칼라파테와 페리토 모레노 빙하 국립공원 주변 지도. [구글맵]
버스는 11시경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 우리를 내려주었다. 2시 40분까지 자유시간을 정해주고 빙하와 주변 호수, 풍광을 관람하라고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날씨도 겨울 날씨지만 빙하와 호수, 주변 풍광을 보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다. 어제 봤던 칠레의 유빙 조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웅장한 규모다. 빙하와 호수, 산과 주변 경치가 장관이다.
아르헨티나 로스 글래시아레스 국립공원 안에는 페르토 모레노, 웁살라, 비에드마, 스레가시니 등 규모가 큰 빙하만 48개, 작은 빙하는 100개를 넘는다고 한다. 파타고니아 전체에 170여개의 빙하가 산재해 있지만, 이름이 알려진 빙하는 대부분 이 국립공원에 있다고 한다.
페르토 모레노 빙하는 아르헨티나의 탐험가인 프란시스코 모레노 박사가 파타고니아 탐험 중에 최초로 발견해 세상에 알린 것을 기념해 그의 이름을 붙였다. 놀라운 것은 페르토 모레노 빙하는 총길이 35km에 60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움직이는 빙하라는 사실이다. 모레노 빙하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중앙부에서 2m, 양 끝에서 40cm 팽창, 전진한다고 한다. 안데스, 킬리만자로, 히말라야 등 해발 4천〜6천m 고산지대의 빙하가 지구 온난화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지만, 해발 1,500m 지점에 위치한 모레노 빙하는 팽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유일한 팽창 빙하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빙하가 팽창, 전진하는 과정에서 빙하 일부가 떨어져 빙산이 돼 아르헨티나 호수를 떠돌다가 끝내는 녹아서 호수물이 된다.
모레노 빙하는 계속되는 팽창과 지구 온난화로 시도 때도 없이 무너져 내린다. 빙하 덩어리가 떨어지며 내는 소리가 벼락처럼 천지를 진동시킨다. 빙하가 떨어지면서 호수 물이 엄청난 포말을 일으키고 파도가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무너지는 광경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와 하고 탄성을 지른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 [사진-임영태]
페리토 모레노 빙하. [사진-임영태]
페리토 모레노 빙하. [사진-임영태]
모레노 빙하가 있는 국립공원 지역 호수와 설산. [사진-임영태]
빙하, 산, 호수, 나무. [사진-임영태]
빙하 전망대 계단. 자연친화적으로 잘 돼 있다. [사진-임영태]
빗발이 살찍 비치더니 무지개가 떴다. [사진-임영태]
빙벽에서 떨어진 얼음 덩어리가 호수 주변을 떠돌고 있다. 녹아내리는 빙하, 떠도는 빙산이 지구 온난화의 상징물처럼 여겨진다. 지구 온난화 문제는 지구의 운명과 관련된 전지구적, 전인류적 과제지만 눈앞의 이익만 쫓는 인간은 지구 종말을 앞당기는 행위를 거치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산타 크루즈 강을 따라 아르헨티나 남부 파타고니아 지역을 가로 질러 흘러서 대서양으로 빠져나간다.
빙하 투어에는 전망대에서 관람하는 것뿐만 아니라 배를 타고 하는 투어, 실제로 빙하 위를 걷는 투어 등 다양한 코스가 있다. 빙하 투어 역시 한나절 눈으로만 구경하는 것으로 끝내야 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실제로 거대한 푸른색의 빙하를 눈앞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파타고니아에 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빙하뿐만 아니라 호수와 주변의 산, 나무, 풀, 빙산 등이 만들어내는 경치는 정말이자 말과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느끼게 해준다.
전망대 가장 위치 좋은 곳은 사진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사진사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저들에게 사진을 찍힌 사람들은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그들의 인생 사진이 될 것이다. 사진사들도 한두 명이 아니어서 다른 사람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관광객들은 그곳에 살짝 비켜난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관광객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전문사진사들. [사진-임영태]
바람이 많이 불어 날씨가 춥지만 칼날처럼 파고드는 추위는 아니다. 빙하지대이지만 그래도 여름인 것이다.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흩뿌렸다. 찬바람과 함께 겨울 날씨로 급변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다. 금방 비가 그치고 날씨가 개였다. 작지만 호수에 무지개까지 생겨 더욱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관람대에서 빙하를 구경하고 호수 주변에 설치된 데크를 따라 호수 주변을 돌아본다. 적당한 시간에 준비해간 점심 식사도 끝내고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예술품, 경관을 원없이 눈에 담는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오후 2시 50분쯤에 모레노 빙하가 있는 국립공원을 출발해 4시 반경 호텔로 돌아왔다. 버스는 개개인이 묶고 있는 숙소 앞까지 일일이 데러다 준다. 우리는 아침에 빙하 투어를 떠나며 이미 짐을 챙겨 숙소로비에 맡겨놓은 상태였다. 오늘 저녁 비행기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 5시 30분, 숙소에서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이동했다. 택시비는 1만8천 페소다. 직접 부르면 이보다 약간 싸지만 호텔에 부탁했다.
공항에 도착해 캐리어 짐 무게를 달아보니 10kg이다. 그 자리에서 짐을 일부 빼서 백팩에 넣고 재어보니 8.4kg. 통과다. 공항 보딩장 앞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니 저 멀리 호수와 산이 보인다. 호수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큰 아르헨티노 호수다.
오늘 파타고니아를 떠나지만,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파타고니아의 들판과 산, 풀과 꽃들, 그리고 푸른 빙하와 옥색의 호수, 연기를 내뿜는 피츠레이 산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엘 칼라파테 공항. LG로고와 멀리 아르헨티노 호수가 보인다. [사진-임영태]
임영태 필자 약력
출판기획자, 저술가. 청년시절 민주화․사회운동에 관계했으며,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인문․사회 관련 대중서의 기획․집필에 힘쓰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공식 보고서 발간을 총괄했으며, 지금은 평화박물관의 ‘반헌법행위자 열전편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에서의 학살-한국현대사, 기억과의 투쟁』, 『새로 쓴 한국현대사-해방부터 촛불항쟁까지 35장면』(공저),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공저), 『스토리 세계사 1~10』,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 『대한민국사 1945~2008』, 『대한민국50년사』, 『북한50년사』, 『거꾸로 읽는 한국사』(공저), 『거꾸로 읽는 통일이야기』 등이 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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