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환자와 보호자의 '가족'이 되다

[김수영1]

이름: 홍기배

포지션: 소아과의(Pediatrician)

파견 국가: 에티오피아

활동 지역: 아파르(Afar)

활동 기간: 2022년 12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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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활동지역에서 병원 주간 회의 후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과 함께한 홍기배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홍기배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이번엔 어디서 어떻게 하고 오셨나요?

에티오피아 아파르(Afar) 지역 듀브티(Dubti) 소재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왔습니다. 인근 티그라이(Tigray) 지역에서 분쟁이 격화되는 바람에 이쪽 지역으로도 유입되는 영양실조 아동이 급증해, 제가 부임하기 약 8개월쯤 전에 국경없는의사회가 영양실조 병동 환자 치료를 전담하는 프로젝트를 이곳에서 시작했습니다. 분쟁이 확대됐을 때는 잠시 현장에서 철수했다가 다시 재개된지 약 3-4개월쯤 됐을 때 제가 가서 합류했습니다. 따라서 해당 분쟁 자체는 제가 도착하기 전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어서 더는 응급 상황은 아니었고, 비교적 안정적 프로젝트로 전환되는 과도기였습니다. 전에 국경없는의사회 수단(*홍기배 활동가의 수단 활동기 참고)과 레바논(*홍기배 활동가의 레바논 활동기 참고) 프로젝트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굳이 비교해보자면 수단의 경우 제가 소아과의로서 처음 합류한 프로젝트라 모든 환경 설정을 처음부터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고, 이번에는 모든 게 설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부임한 거였죠. 비록 이번 현장에 소아과의는 저 혼자였지만, 간호 활동 관리자를 포함한 다른 파견 활동가는 물론 많은 현지 동료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번에 활동하신 지역의 가장 심각한 의료보건 문제는 무엇일까요? 

분쟁 상황이 안정되면서 근무한 병원으로 유입되는 영양실조 환자도 숫자 자체는 많이 줄어들긴 했는데, 이게 진짜 발생 건수 자체가 줄어든 건지, 아니면 시골지역이라 의료체계 자체가 붕괴되는 바람에 병원까지 오지 못하게 된 건지 잘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영양실조 환자가 듀브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서 집 근처 보건소로 전원되고 나면 그곳에서 영양 관리를 계속 받아야 하는데 보건소 차원에서의 관리는 잘 안 되고 있었습니다. 아마 외딴 지역으로부터 환자를 전원하는 의료체계 자체에 문제가 생겨서 듀브티 병원 유입 영양실조 환자 수도 줄어든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게다가 아파르에는 유목민 사회가 있고 유목민들은 주로 비가 오는 지역을 따라 이동하거든요. 제가 있던 기간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는 건기가 지속되면서 유목민들이 비를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측면도 있습니다. 가축을 기르며 사는 사회이다 보니 원래도 식량이 풍부하지는 않은 지역이었는데, 지속된 분쟁으로 주요 보급 통로가 막히면서 식량이 더욱 부족해졌고 그곳 어린이들은 주로 염소, 낙타나 양, 소 등 가축으로부터 얻는 우유를 마십니다.

아동 환자 채혈 및 정맥 주사를 준비하는 국경없는의사회 팀 ©국경없는의사회/홍기배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들이 있었나요?

화상 환자가 그곳에 비교적 드문 편인데, 한번은 바닥에서 자던 아기가 탁자에 있던 뜨거운 물병이 바닥에 쏟아지는 바람에 등쪽과 머리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 온 적이 있습니다. 사실 화상을 입으면 즉시 병원으로 와야 하지만, 이 아기의 경우 근 한 달은 민간요법을 실시하다가 상처가 감염이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로 오는 바람에 드레싱을 하면서 경과를 지켜봐야 했죠. 듀브티 병원에 마취과의나 성형외과의는 없고 수도 아디스아바바로의 전원도 말처럼 쉽지가 않은 게 이동에 적어도 8시간은 소요되거든요. 게다가 운전해서 가는 길이 치안이 불안한지 보통은 거의 하루가 꼬박 걸리는 실정입니다.

영양실조로 인해 반복 입원을 되풀이하던 쌍둥이 환자도 기억납니다. 처음에 급성 중증영양실조와 쇼크로 입원해서 조마조마했거든요. 10개월쯤 된 아기들인데 한 명은 2번 입원, 다른 한명은 6개월동안 4번은 입원했던 것 같습니다. 간신히 상태가 호전되는 것 같다가도 폐렴 합병증이 오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힘들었지만 다행히 잘들 버텨주어서, 무사히 회복되어 퇴원하는 것을 보았을 때 무척 안심한 기억이 납니다.

활동가의 현지 근무 마지막 날에 쌍둥이 환자의 보호자가 찾아와 감사의 의미로 홍기배 활동가에게 현지 의상을 선물했다. ©국경없는의사회/홍기배

역시 환자의 치료와 회복이 가장 보람있으셨군요. 또 어떤 좋은 기억이 있으신가요?

에티오피아 주민들이 전반적으로 친절하고, 현지 동료들도 서로 잘 도우며 일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어 기본적으로 즐거웠습니다. 다만 진료시설이 6월까지는 그냥 흰 천으로 만든 텐트였습니다. 40도가 넘는 더위가 정말 힘든 기후인데 의료진인 저희도 힘들었으니 그곳에 오는 보호자들과 환자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며칠을 그곳에 머무니까요. 입원 환자 수요도 많아 텐트 안이 가득 차기도 했는데, 홍역이 유행할 때는 그런 텐트나마 추가적으로 더 짓기도 했고요.

2022년 6월 국경없는의사회가 에티오피아 보건부와 협력해 듀브티 소재 병원에 설치한 영양실조 환자 병동용 텐트 내부 ©NJIIRI KARAGO/MSF

그런데 6월부터는 국경없는의사회의 새로운 공기 주입식 텐트 병원이 생긴 겁니다. 에어컨 설비가 달린 것처럼 공기 순환도 훨씬 잘 되는 시설이라서 그때부터는 근무 환경이 조금 편해진 것은 물론 환자나 보호자들도 아주 좋아해서 참 보람있었습니다.

2023년 6월 새로 설치된 듀브티 병원 영양실조 병동 모습 ©국경없는의사회/홍기배

병원 외적인 생활 환경은 어떠셨나요? 하루 일과를 알려주세요.

아파르 지역 전반 치안은 괜찮아진 편이라고 말씀드렸죠. 식량도 기본적으로 야채, 쌀, 콩이 있어 저는 괜찮은 편이라고 느꼈습니다. 저의 근무는 보통 오전 7시에 시작했는데요, 병원에 이때 도착해 혼자 병동을 둘러보고 차트와 환자 기록을 살피며 혹시 응급 상황이 있는지, 해야 할일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8시경 중환자실부터 현지 의사들과 회진을 돕니다. 환자가 많으면 모든 텐트의 회진이 12시쯤 끝납니다. 12시 반쯤부터 점심시간이 두시간 반이라 숙소로 가 점심을 먹고 좀 쉬다가 3시쯤 다시 병원에 가서 6시경까지 입원 아동 환자들과 오전 진료 계획 결과를 확인합니다.

저녁은 주로 숙소에서 먹고, 직원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거나 저는 안 마시지만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동료들이 도착했거나 떠날 때는 염소 고기로 파티를 열기도 했고요.

휴일에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숙소 요리사가 직원들에게 커피와 다과를 대접하기도 했다. ©국경없는의사회/홍기배

그렇다면 이번 활동에서 가장 어렵게 느끼신 점은 무엇일까요?

팀원들이 굉장히 좋았고 현지 의료진 교육 수준도 꽤 높아서 사실 저는 지금까지 다녀온 다른 근무지에 비해 배운 것도 많고, 전반적인 대화와 의견 조정 과정이 다 재밌었습니다. 다만 소아과의를 구하기가 힘들어서 제 원래 파견기간 6개월이 끝나는 시점에도 후임이 구해지지 않았죠. 비자 처리가 쉽지 않아서일수도 있습니다. 결국 제가 근무기간을 2개월 추가연장해서 더 있었어요. 현지어로 인한 의사소통 문제도 조금 있습니다. 아파르 지역에서 사용되는 아파르어(Afaric)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의사가 단 2명뿐이라, 회진을 돌 때마다 아파르어를 현지 직원들을 위해 암하라어(Amharic)로 그리고 나를 위해 영어로 통역해주는 통역관을 동반해야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현지 의료진과 통역관 ©국경없는의사회/홍기배

듀브티 병원이 3차병원이다보니 중환자가 꽤 많았고 저도 중환자실에서 꽤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흑열병(내장 리슈마니아증)의 경우 많이 진행된 상태로 환자가 오면 사실 치료가 힘들거든요. 내장까지 장기간 병이 진행돼 간과 비장이 커지고 골수와 면역 기능이 떨어지며 지혈마저 안 되면 사실상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게 많이 없고 상태가 호전될때까지 버티도록 약제로 도움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적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활동 지역에서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직접 목격하셨습니다. 환자들에게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떤 의미일까요?

이곳에서는 초기 대응 후 바로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인샬라’라고 말하며 신의 뜻에 맡기겠다고, 바로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 보통 1인당 아이 네다섯 명을 낳아 기르는 경우가 많은데 워낙 영아사망률이 높아 그런지 기본적으로 아이를 떠나보낼 준비가 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와 국경없는의사회 현지 의료진은 이에 ‘물론 어떻게 될지는 신의 뜻이겠지만 치료 과정을 견디는 것도 신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 없겠냐.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고 환자와 보호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물론 설득 안 되고 바로 도망가버리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10명 중 6명은 그래도 설득됩니다. 사실 의료진뿐 아니라 병원 문앞 경비원까지 한마음이 되어, 환자가 말도 없이 퇴원하는 것 같은 경우에는 전화로 의료진에 바로 연락하고 출발하려는 뚝뚝(모터바이크가 달린 현지 교통수단)을 함께 붙잡고 마지막까지 설득에 최선을 다합니다.

반쯤은 포기한 상태로 영양실조 상태에 놓인 아동 환자를 데리고 온 보호자들도 이런 설득과 설명을 통해 치료를 진행하다가 상태가 호전되면 그간 방치, 방임하는 듯했던 모습이 싹 없어지고 다시 아동을 더욱 잘 돌보고 보살펴주려 합니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의료서비스를 통해 어린이들이 더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발달이나 영양 측면 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차원에서도 조력할 수 있었던 게 참 의미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엄마같다’는 표현을 많이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그들에게 입원기간 잠시이지만 가족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았죠.

에티오피아 아파르 듀브티 병원 영양실조병동 내 아동 환자와 보호자 ©NJIIRI KARAGO/MSF

예정보다 오랜 기간 에티오피아에서 활동하고 돌아오신 활동가님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저는 주로 1년을 한국에서 일하고 1년은 다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 나가려고 하는 편입니다. 다행히 한국에서 이러한 저의 계획을 배려해주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서, 일하면서 다음 활동을 알아볼 계획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이시지만, 다른 몇몇 활동가 경우처럼 후원자이기도 하십니다. 미래의 활동가, 혹은 후원자에게 한 마디 남겨주세요.

제 주변 많은 의료인도 ‘내가 나가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언어도 어렵고’라고들 하는데 저는 솔직히 누가 가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 소아과의라면 한국에서 하던 일을 장소만 바꾸어 그대로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달라진 환경에 인간은 얼마든지 적응 가능하고요. 나만 외국인 활동가인 경우는 드물고 다른 활동가들 사정도 마찬가지라 언어도 굳이 유창한 수준까지 되지 않아도 되고 일하는데 지장이 없는 정도면 됩니다. 생각이 있는 분은 꼭 도전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후원자가 된 건 역시 제 활동가라는 정체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국경없는의사회 후원을 하고 있는 이유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현장에 나가서 일해본 결과 실제로 이러한 활동에는 후원금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몸소 느꼈기 때문입니다. 

에티오피아 듀브티 병원 활동 마지막날, 의료진과 함께 ©국경없는의사회/홍기배

[송순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신것을 알게되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