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라(5)(잠 19:17)-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자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라는 제목으로 5번째 시간을 갖는다.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오늘로 마무리 한다. 오늘 마지막 설교는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한 동안 10억 만들기와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온 일이 있다. 다들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반영한 것이다. 웰빙은 이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다. 교회도 웰빙 교회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 여러분도 다 건강하고 부자가 되길 축원한다. 근데 도대체 얼마나 돈을 벌어야 부자일까? 월급 500-600만원 받아봐야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월 1천 만 원 정도의 돈을 벌어도 큰 돈을 번다고 보지 않는다. 최소 월 1억 원 정도는 벌어야 부자라고 생각한다. 조국 대한민국 사람은 통이 크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많은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에는 옆 집 아저씨가 백만장자라는 Time지 머리 기사를 본 일이 있다. 그런데 미국의 부자들은 조국 대한민국의 부자들과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다. 미국에서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집권 할 때 상속세 폐지를 주장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미국 상류 사회에서 강하게 반대를 했다. 이들은 책임있는 부자들(responsible wealth)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부시 대통령을 설득했다. 이유는 상속세는 자기와 같은 부자들이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는 촉매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 부자가 되기 바란다. 그러나 책임있는 부자가 되기 바란다. 나눌 줄 아는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
강진 김씨 집안 얘기를 한 일이 있다. 김순혜 선교사님 가문의 얘기다. 얼마나 밥을 아끼고 돈을 아꼈는지 고조 할아버지는 밥님, 돈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렇게 절약하면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았다. 증조 할아버지는 흉년이 연속으로 들자 자신이 살던 산외면 전체의 세금을 내준 일이 있었다. 자기가 그 지역 어른이고 부자라는 의식에서다. 면 사람들이 너무 감격하여 비석을 다 세워주었다. 할아버지는 일제 말 동네에 칠보 발전소가 세워졌는데 정작 그 지역 사람들은 전기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호롱불만 켜고 산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며 논 2만평의 사재를 내놓아 지역주민들이 전기를 쓸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집안은 지금까지 근검절약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가풍을 만들었다. 책임있는 부자의 모습이다. 자기 밖에 모르는 부자가 되지 말라. 인색한 사람이 되지 말고, 근검절약하여 가난한 사람과 나눌 줄 아는 아름다운 부자가 되라.
청백전시대라는 말이 있다. 청년실업전성시대라는 말이다. 요즘 조국 대한민국이 단군이래 최대의 불경기라고 한다. 그런 조국 대한민국은 2004년 기준으로 세계 경제규모 10위 1인당 GNP 14,000불의 나라다. 원화가 강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5천년 역사에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오래지 않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기까지 언제나 먹을 것이 부족하여 배고프고 가난한 나라였다. 지금은 최소한 중진국은 된다. 근데 무슨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냐?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요즘 날씨가 덥다. 100년만의 더위라고 한다. 과장된 말이다. 아마 10년 만에 가장 더운 해인 것 같다. 요즘엔 더우면 에어콘이지 선풍기도 별로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도서관이든 버스든 지하철이든 공공장소에서 에어콘이 너무 잘 나와서 추워서 감기가 걸릴 정도일 때가 많다. 지하철에서는 약하게 냉방이 되는 칸을 따로 만들어놓을 정도가 되었다. 겨울에는 집이나 자동차에 난방이 잘 되어 동상에 걸린다거나 손발이 언다는 것을 모른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방에서 걸레가 얼었다. 손발이나 귀에 동상 걸리는 것은 다반사였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지상 천국에서 사는 것 같다.
이렇게 조국 대한민국에서 좋은 세상을 살아도 많은 사람이 감사할 줄 모르고 만족할 줄 모른다. 끊임없이 불평하고 불만한다. 어렵다, 어렵다 입에 어렵다는 얘기를 달고 산다. 돈 100원이 있으면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은 한끼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인도 정부의 자료에 의하면 인도의 빈곤 가정은 하루 10루피, 한달 296루피를 번다. 한달 296루피가 우리 돈으로 얼마인지 아냐? 9000원이 못된다. 그 돈으로는 최소한의 음식도 해결할 수 없지만 9000원 가지고 한 가정이 산다. 한 가정 당 6명의 식구가 있다고 가정하면 만원이 안 되는 돈으로 6명이 산다는 말이 된다. 더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불평불만만 하면서 살거냐? 정신차려야 한다.
부자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부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신 것이 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라는 말씀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것은 하나님께 돈을 빌려주는 것이라고 말씀했다. 그 선행을 갚아주신다고 약속했다. 돈을 빌려줘도 고의로 갚지 않는 사람이 있다. 떼먹는다. 혹 돈을 빌려주었는데 떼먹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빌린 돈을 떼먹겠냐? 안 떼먹는다. 하나님은 성실하셔서 빌린 돈을 반드시 갚아주신다. 갚아주셔도 그냥 원금만 갚은 것이 아니라 원금의 30배, 60배, 100배로 갚아주실 것이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자. 사람의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보리빵 5개라면 많이 먹는 사람 한끼 식사거리밖에 안 된다. 근데 그걸 나누었는데 남자 어른 5천명을 포함해서 2만 명의 사람이 조금씩도 아니고 배가 부르도록 먹었는데 먹고 남은 조각이 12광주리 가득 남았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눌 때 이런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셨다. 주식을 해서 30%의 수익을 낸다고 해도 큰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부동산으로 단기간에 2배의 수익을 내는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과 나눌 때 하나님은 우리가 나눈 물질의 30배, 60배, 100배를 돌려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부자가 되고 싶다면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자가 되라.
가난한 자를 돌아보면서 큰 부자가 된 사람이 있다. 영안 모자 백성학 회장이다. 세계 모자 업계 1위를 마크한 회사다. 백성학 회장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2번이나 간증이 실렸던 사람이라 해외에서는 유명한데 국내에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분은 초등하교 3학년 중퇴를 했는데 자신이 어려울 때부터 모자를 팔면 먼저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돈이 잘 벌릴 때만 도운 것이 아니다. 돈을 벌면 자기처럼 공부 못한 청소년들과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돕겠다고 하나님한테 기도했기 때문에 노점에서 모자 판 돈으로 쌀과 생필품을 사고, 거기에 돈을 좀 넣어 선물꾸러미 50개를 만들어 남산 일대 판잣집들 가운데 정말 끼니를 잇지 못하는 가정을 찾아다니며 하나씩 나눠주었다. 남대문 지하도에서 거지 소년 3명에게 설렁탕 한 그릇과 용돈도 주며 용기를 잃지말라,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이 살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고 말하며 격려해 주었다. 자기 모자를 팔던 행상의 아들이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수술비를 대주기도 했다.
이렇게 이웃을 도우면서 회사가 함께 커갔다. 1978년에는 근로 청년들이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야간 학교를 열기도 했다. 1986년에는 공사비 50억원을 들여 강원도 6만평의 대지위에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수용시설, 자활공장, 병원, 교회 등 10여 동의 건물이 들어선 대단위 복지 마을을 건설했다. 1992년에는 중국정부로부터 그의 할아버지가 세운 교회를 다시 개축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고 중국으로 건너가 새 교회를 세우는 동시에 흑룡강성에 중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스리랑카에 전쟁고아, 미망인, 미혼모, 정신정애자를 위한 종합복지마을을 건립하고, 무의촌진료를 실시하여 2만 4천명의 스리랑카인이 의료혜택을 받게 했다. 또 같은 해 코스타리카에도 고아원을 세웠다. 최근에는 베트남에 복지마을과 학교를 세우기 위해 거금을 쾌척했다. 이렇게 나누며 베푸는 삶을 사니까 백성학 회장은 더 어려워졌냐? 아니다. 스리랑카, 코스타리카, 미국까지 공장이 세워지고, 카나다에도 사무실을 개설했다. 세계 최대의 모자 회사가 되었다. 최근에는 스웨덴의 유명한 지게차 회사도 인수하고, 국내 49%를 점유하는 대우 버스를 인수하기도 하고 점점 사업이 커져가고 있다.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것은 성서적인 방법으로 부자 되는 방법이다. 여러분, 부자 되고 싶냐? 가난한 이웃을 도우라. 그럼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을 부자 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리스도인이라면 부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또 가난한 이웃을 돌봄으로써 부자가 될 수 없다 해도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아야 한다. 성경에서 의인은 언제나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자를 말한다. 성경에 의하면 가난한 이웃을 돕지 않는 자는 불의한 자이다. 약 2:26에 보면 믿음이 있다면 행함이 따라야 한다고 말씀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여기서 행함이라는 것은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을 말한다. 어려운 이웃을 돕지 않고 외면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 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거짓이다. 레 19:9,10에 보면 추수를 할 때 곡식을 남김 없이 다 거두지 말고 일부는 남겨 두라고 말씀했다. 또 추수하다가 떨어진 이삭이 있으면 줍지 말라고 했다. 포도와 같은 과일을 거둘 때도 다 따지 말고 일부는 남겨두어야 하며, 거두다가 떨어진 과일이 있으면 줍지 말라고 명령했다. 왜냐하면 그래야 가난한 사람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굶어죽지 않고 먹을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성경은 배고플 때 남의 밀밭이나 과수원에서 밀을 따서 먹거나 과일을 따먹어도 도둑질로 보지 않고 가난한 자를 위해 그렇게 할 수 있게 그냥 두도록 가르친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절대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뒷전에 물러나 있을 수 없다. 성경은 가난한 자를 돌아보라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반복하시는지 모른다.
2002년 2월 한신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교회에 도움을 구하겠다는 사람이 7%밖에 안 됐다. 교회는 정직하지 못하고 인정이 없다는 응답이 70%나 나왔다. 부끄러운 얘기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믿음이 거짓이 아니라면 우리는 달라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이웃을 사랑하고 돌아보는 것을 세상이 보게 해야 한다. 넉넉한 살림을 하고 있지 못해도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5천년 역사상 배고픔을 잊고 살아본 적이 별로 없는 나라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나라를 아직 붙들고 계신 것 같다.
고려 말 충남 예산군 대흥 마을에 이성만과 이순 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 해는 다른 해보다 풍년이 들어 수확이 많았다. 그러나 형제가 타작 마당에서 수확한 볏섬을 나누는데 형은 동생이 신혼 살림에 필요한 것이 많을 것이라고 동생에게 벼를 더 가져라 하고, 아우는 형이 조상의 제사를 올려야 하니 형이 더 가져야 한다고 우기다가 결국 볏섬을 나누지 못하고 말았다. 생각다 못해 형은 밤에 볏섬을 몰래 옮겨다가 아우 집에 부려 놓았고, 아우는 아우대로 몰래 볏섬을 형의 집에 부려 놓았다. 그 노릇을 되풀이 하다가 볏섬을 짊어진 두 형제가 달밤에 개뱅이 다리 위에서 맞부딪쳐 마침내 세상에 알려지고, 세종 때 하연의 건의로 형제의 우애를 기리는 ‘우애비’가 세워진 것이다. 유명한 이야기라 한번쯤 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실제 있었던 일이다. 조국 대한민국에 이렇게 서로 돕고 위해 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돕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 조국 대한민국을 반드시 축복하실 것이다.
공자의 조카 공멸과 제자인 자천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두 사람은 모두 하급 공무원으로 살면서 격무에 시달리기만 하고 경제적으로는 쪼들리는 생활을 했다. 먼저 공자가 말단 공무원인 조카 공멸에게 물었다. “네가 이 자리에서 일하며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이냐?” 공멸은 대답했다. “얻은 것은 하나도 없고 세 가지를 잃었습니다. 첫째, 일이 너무 많이 공부를 못했습니다. 둘째, 보수가 적어서 친척 대접을 못했습니다. 세째, 공무가 너무 다급해서 친구와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그 후 공자는 공멸과 같은 직급의 공무원이었던 제자 자천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자천은 이렇게 말했다. “잃은 것은 하나도 없고 세 가지를 얻었습니다. 첫째, 배운 것을 실천해 보게 되어 내용이 더욱 확실해 졌습니다. 둘째, 보수를 아껴 친척을 대접하니 더욱 친숙해졌습니다. 세째, 공무의 여가에 친구들과 교제하니 우정이 더욱 두터워졌습니다.” 같은 직급의 공무원이면서도 공멸은 늘 불만이고 불행하게 지냈지만, 자천은 늘 만족하고 행복하게 지낸 것이다. 불평불만하지 말자.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러면서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자. 공멸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자천과 같은 사람이 되자.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우리는 먼저 우리 식구부터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영철 목사님의 어머니께서 혈관을 두 군데 뚫는 수술을 하셨다. 병원비가 500-600만원 정도 나왔는데 형제들이 다 가난하다. 문목사님을 제외한 세 형제가 100만원씩 내기로 했는데 나머지 비용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문목사님이 해결해야 한다. 그럼 200-300만원 가량 된다. 전국 6개 파이어니어 교회가 이를 돕고자 한다. 오늘 문목사님 가정을 위해 특별 헌금을 한다. 미리 준비하지 못해서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다음 주도 좋다. 함께 하는 분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사랑과 관심을 갖자. 우리도 십시일반으로 이를 돕자.
늦게 일어나서 학교 지각한다고 날마다 택시 타는 청소년이 조국 대한민국에 있다. 그러면서 지하철이나 버스는 할인이 되는데 왜 택시는 학생 할인이 안 되냐고 항의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이다. 영국에서는 학생이 택시를 타려고 하면 기사가 이렇게 말한다. “낭비와 안일은 일생의 적이야. 대중교통 이용해!” 택시 안 태워준다. 학생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도 1km이내의 거리를 가는데 택시를 잡으면 대개는 “건강에도 좋을 텐데 걸어가세요” 하며 도덕적인 승차거부를 한다는 것이다.
독일 본 대학 기숙사에 들어간 한국 학생이 독일학생이 식사할 때 접시를 박박 긁어대면서 스프를 먹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얘기를 읽은 일이 있다. 독일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시에 음식국물이 남았으면 빵에 묻혀서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이 먹어치운다고 한다. 대구에 있는 독일인 여의사가 관리하고 있는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병원에 있는 한국인 고아환자가 여러 명 입원해 있었다고 한다. 이 병원에서 매일 점심때엔 사과 하나씩을 주는데 어떤 아이가 사과를 씹다가 시다고 창 밖으로 버렸다. 그러자 독일인 여의사는 그것을 주워 모아서는 이들이 씹은 잇발 자국을 도려내고서는 오븐에 고아서 먹었다고 한다. 가난한 한국인 무료환자가 버리는 사과를 독일인은 먹는다는 얘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집이나 가게, 교회에 찾아오는 거지도 만 원짜리 안 주면 받아가지도 않으려고 한다. 5천 원 주면 투덜투덜한다. 거지도 우리나라 거지는 통이 크다. 초등학생도 고학년이 되면 세뱃돈으로 만원을 주어도 투덜투덜한다. 애들도 통이 크다. 만족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거, 이런 허영심을 회개해야 한다.
독일 사람 하나가 우리나라에 와서 옷을 사는데 이틀 동안 꼼꼼하게 이곳 저곳을 다닌 다음에 겨우 9천 원 짜리 옷을 하나 사 가지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 독일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쇼핑을 하다가 블라우스가 몇 만원 하는데 너무 놀랐다. 독일 사람은 우리 돈으로 15만 원짜리 양복 한 벌을 사기 위해 3년은 고민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양복 한 벌 사는데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30분이면 척 한 벌 사 온다. 선진국 사람들도 자주 못 입어보는 비싼 옷을 쉽게 사 입는다. 너무 대범하고 통이 크다. 이것 역시 허영심이다. 허영심을 버려야 조국 대한민국이 산다.
우정 장학회라는 거 들어봤냐? 여중생들이 손수 장학회를 만들었다. 대부분 어른들이나 각계 사회 단체의 도움을 받는 경우는 허다하지만, 어린 중학생들이 스스로 장학회를 만들어 자발적으로 착실히 운영해 나가는 경우는 보기 드문 일이다. 화제의 이 우정 장학회는 1996년 5월1일에 발족, 매월 1회씩 학생들이 버스 비와 용돈을 아껴 전교생 1천 8백 명이 1인당 30원씩 모았다. 그 돈으로 1996년 불우한 학생 26명을 스스로 뽑아서 1인당 6천 원씩 학비를 전달했다. 자랑스런 그 학교의 이름은 대구 경일 여자 중학교. 다음 해인 1997년 11월 23일에는 학교 교정에서 불우 학우 36명에게 1인당 1만원씩 모두 36만원을 전달했다. 대상도 10명이 늘었고, 장학금도 4천 원이 더 많아졌다. 장학금을 전달하는 장면을 보고 선생님들과 전교생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중학생이라고 어리다고만 생각하지 마라. 초등생이라고 어리다고만 생각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이다.
오늘 설교를 꼭 돈 얘기로 듣지 말라. 이건 돈 얘기가 아니라, 사는 얘기다.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의 이야기다. 노인이나 아줌마 중에 어떤 목적이 있어서 또는 형편이 어려워 지하철에서 신문지를 모으는 분들이 있다. 여러분이 신문지를 모으는 일을 도와드릴 수도 있다. 여러분이 도와주면 신문지를 모아 하루에 3,4천 원 벌 사람이 5천 원을 벌 수도 있다. 동시에 세상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국 대한민국이 살만한 나라라고 느낄 것이다.
올해 어버이날 경로잔치를 하면 갈비탕 100-200그릇을 제공해 주겠다는 성대 졸업생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준비가 되지 않아서 하지 못했다. 여러분이 이웃을 돌아볼 마음만 있다면 시간을 내고 관심을 가져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조국 대한민국을 아름다운 나라가 되게 하자. 우리 교회 이름은 아름다운 교회다.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교회가 되자. 그럼 조국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다.
왜 돈을 버냐?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사람은 사랑하고 돈은 이용해야 한다. 이것을 거꾸로 해서는 안 된다. 돈은 사랑하고 사람은 이용하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조국 대한민국에 많이 허락해 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우리 아름다운 교회가 이름 그대로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하자. 가난한 이웃을 돌봄으로 조국 대한민국이 아름다운 나라가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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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원문보기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