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안보 및 관광 투어 - 2
일자: 2016년 4월1일 (서울: 7.3~23.8도)
참가자(3명): 유기남, 백영 조금석,
채희묵 (백영 승용차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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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0 복정역
08:54~09:34 굴다리전주콩나물국밥(동두천 지행역)
11:00~20 경순왕릉(사적 제244호; 장남면 고랑포리 산 18-2)
11:42~46 1.21무장공비침투로
11:55~12:26 승전OP (25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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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4~13:19 상승전망대 (25사단 비룡부대)
14:20~16:00 점심(한탄강댐가든; 031-834-2656)
16:10~38 재인폭포 (한탄강댐)
19:25~20:20 하늘빛우렁쌈밥 (문정동맛집)
21:05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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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전망대
상승전망대로 가는 길가 전신주에는 군에서 만들어 붙인 듯한 표어들이 있다. 자아완성, 초지일관, 다다익선...
비룡부대인 상승대대 정훈장교는 우리를 상승전망대로 안내한다.
먼저 연천군 백학면 백령리라고 위치를 소개하면서 백령리에 대한 설명부터 한다.
백령리에는 두가지 얘기가 있는데 서쪽을 보면 크고 작은 고개들이 많아 많을 백(百)자, 고개령(嶺)자 마을리(里)자를 쓴 백령리라는 뜻과 호랑이 떼와 도적 떼가 많아 건장한 장정 100명이 함께 넘어가야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마을이라고 붙은 이름이란다.
기름진 연천평야 DMZ에서 황폐화
서쪽 멀리 평야는 구릉아래 왼쪽 능선 넘어까지 연결되어있는데 그것이 연천평야. 연천평야는 과거 전쟁전 연천군민과 개성시민까지 먹여살릴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땅으로 많은 양의 쌀을 생산하던 곳이었단다. 전쟁이 일어나고 휴전 후에는 DMZ안에 있어 민간인들의 손이 닿지않아 습지화되고 늪지화되어 있어 황폐화되어있단다. 그래서 통일되면 제일 먼저 개발될 곳으로 전망된단다.
제1땅굴 발견 지역
25사단에서는 특별한 자랑거리가 있다. 대한민국 최초로 땅굴을 발견한 부대다. 왼쪽 9시반 나무숲 너머에 ‘제1땅굴’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남방한계선으로부터 500m 안쪽 지점. 1974년 12월 15일 71연대 수색중대의 구중섭 중사 등 8명의 수색대가 DMZ안에 들어가 작전을 펼치는 와중에 땅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야전삽으로 굴토를 시작하니 전망이 보이는 적 GP에서 포를 발사하게 된다. 개인화기로 응사하면서 굴토를 하다 탄약도 제한되어있고 거리도 멀어서 한 시간 정도 교전한 후 퇴각하고 다음날 본격적인 굴토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5일이 지난 15일 땅굴존재를 확인하여 첫 번째 땅굴을 발견하게 된 사단이 되었단다. 제2, 3, 4땅굴 발견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 네 땅굴은 또한 남방한계선 밖에 있어 허락을 받고 탐방할 수 있다.
구중섭 하사는 중사로 특진된 후 전역해 정보원으로 들어가 근무하다 제주도에서 퇴직하고 가든을 경영한다고...
사미천 완전작전
또 하나는 사미천 완전작전. 연천평야 중간에 사미천이 흐르고 있다. 2012년 북한 병사 한사람이 이 강을 건너와 귀순하게 된다. (정훈장교가 설명 중 대남방송 크게 들린다.) 우리 초병이 발견했고 조치를 해 귀순자를 유도한 작전이었다. 귀순했던 병사는 군에 입대해서 굉장히 허약한 체질이었고 각종작업에도 열외로 하는 등 선임들의 미움을 받는 관심병사(고문관)였단다. 수많은 구타와 가혹행위등 부조리를 겪고나서 견디지 못하겠다고 생각해 8월 12일 야간에 선임 초병이 졸고 있는 틈을 타서 사미천을 따라서 대한민국에 넘어왔다.
야간 탈출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반짝거리는 사미천을 따라서 내려온 것이다. 새벽에 하얀 수건을 흔들면서 귀순의사사를 밝혀 초병들은 안전조치를 하고 무장해제등 물건들을 수거하여 완벽하게 작전을 끝낸 후에 대통령으로부터 부대표창을 받기도 한 것이란다.
이 곳 상승전망대는 해발 187m에 위치, 12시방향으로 적 GP까지 2.6km 란다.
대남방송과 대북방송
지금 후방쪽에서 대남 방송중이란다. 곧 이곳에서도 대북방송을 하게 된단다. 처음 북한이 대남방송할 때는 대북방송이 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했으나 지난 해 8월 대북방송을 실시하니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이번에는 준비를 많이 했는지 성능이 좋아 밤에는 단어까지 식별될 정도로 선명하게 큰소리로 들린다고 한다.
북한 북방한계선보다 훨씬 남쪽에 쳐진 추진철책선이 보인다. 유엔의 허락도 없이 전망좋은 곳으로 철조망을 쳐 놓았다.
전자 감지 판망으로 철책선 감시 더욱 수월해
코 앞에 연해지는 우리측 철책이 일반적인 GOP 철책 라인인데 자세히 보면 거미줄같은 판망이 보인다. 과학화시스템에 따른 시설인데 이제는 철책에 붙어있는 과학화판망을 만지거나 끌어당기거나 절단을 하면 바로 경보가 울려 대대나 중대에서 그것을 확인하고 카메라들이 자동적으로 비추게 되어 있다. 그래서 과거 초병들이 눈으로 직접 보고 하던 것을 장비들이 대체 해 초병들의 근무여건이 많이 나아지고 숫자도 줄어들었단다. 왼쪽 초록 카메라가 대대 40여 곳에 설치되어있어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어느 곳에서도 모니터되고 있어 즉각적으로 경보가 울리고 집중 조명이 된다.
조각 평화의 손(Hand of Peace)
바로 아래 하얀손가락 구조물이 세워져있다. 프랑스 작가 장 미셸 후비오가 2012년 만들어 기증한 “평화의 손(Hand of Peace).” 손가락으로 윤형 철조망을 걷어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작가가 대한민국의 조속한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돼 있다. 휴전선 철책 높이는 약 3m.
우리의 추진철책
GOP 철조망은 앞으로 튀어나온 철책선이 있다. 원형으로 이뤄졌는데 북한군의 추진철책과 마찬가지로 선제적으로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으로 GOP 철책선과 달리 과학화장비는 없다고 한다. 제1땅굴에서 북한군이 대량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철조망을 쳐놓은 것으로 순찰및 수색로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곳은 작전명령이 25사단장이 아닌 군단장 소관이란다.
'평화의손' [인터넷에서]
1.2km 떨어진 고황산 아GP와 적GP 사이의 신경전
익산 출신의 최정훈장교는 동쪽 멀리 있는 고황산 능선을 따라서 좌측으로 성벽같은 구조물을 가리키며 아군 28사단 GP라고 설명한다. 이로부터 좌측으로 움직이면 갈색 언덕 위에 초소가 북한군 GP인데 고황산GP와 1.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긴장감이 높아질 때는 두GP 사이에 신경전이 활발하게 전개된단다. 예를 들어 산불이 나 맞불작전을 할 때는 두 GP사이에 신경전이 극에 달한단다.
원래 GOP근무는 피로도가 많아 8개월마다 부대를 순환시키면서 경계를 섰는데 과학화시스템으로 피로도가 줄어 자대인 비룡부대가 고정돼서 경계업무를 수행하고있단다.
제1땅굴 모형
높이 1m22cm, 폭이 윗쪽 90cm 아랫쪽 1m10cm로 만들어 놓은 제1땅굴의 모형도 앞에 섰다. 풀이 죽지 않을 만큼 지하 50cm 정도 아래에 조립식 굴을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병력을 수송할 레일이 깔려있고 비껴서는 자리도 만들어져 있었단다. 곡사화기로 때려 레일이 하늘로 솟아있다는 것.
'제1땅굴' 표지판이 남방한계선 500m지점에 서 있다.[연천군청 홈피에서]
‘5.5.5‘ 비룡부대 정신혼 비석
전망대 앞에는 ‘5.5.5‘라고 쓰인 화강석이 서 있었다. 정훈장교는 25사단의 비룡부대 정신혼 비석이라며 첫째 5는 제 5땅굴을 발견하자, 둘째 5는 5명의 침입하는 적군을 사살하자 그리고 셋째 5는 5명의 북한 군인을 귀순시키자는 뜻이란다. 35년 인근에서 근무하고 현재 군인공제회 소속으로 부대시설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람은 24기 신동만 장군(2010/6월~2012/5월) 시절 세운 것이라고 부언한다.
전곡 한탄교
전곡 선사유적지
한탄강댐가든에서 쏘가리회와 매운탕으로 점찍어
우리는 전망대 건물앞 계단에서 인증샷을 만들고 전망대를 빠져나왔다. 전곡 한탄강교를 지나 연천읍 고문리 재인폭포 입구 매운탕집으로 들어갔다. 한탄강 이곳에 댐이 생기면서 이름도 기풍식당에서 한탄강댐가든. 심사장이 우리를 기다리다 담배를 한 대 빨고 있다. 오후 2시 20분이니 한참 때가 지났다. 그래도 태풍전망대를 포기하고 온 것이다.
쏘가리회가 상에 놓여있다. 진귀한 민물고기다. 우리 5명은 소주잔을 들고 ‘위하여!’를 외쳤다. 지난 3월5일 아들을 장가 보내고 손윗 딸의 혼사를 7월9일로 잡아놓은 심사장이다. 농사철이라 농기계 판매를 하고있는 심사장은 아주 바쁜때다.
쏘가리회가 혀에 찰싹 들어붙는다. 이 음식점 주인 부부까지 합세해 잔을 높이 늘어봤다. 이어 나온 매운탕 역시 그만이다. 이 마을 일부가 댐을 건설해 수몰된단다. 환경론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천과 포천에 물 공급과 홍수조절등 다목적으로 건설하는 것이란다.
소주를 한잔씩 걸치고 김원장님은 사무실로 가고 우리는 심사장의 렉서스를 타고 재인폭포 전망대로 갔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서귀포의 천지연폭포와 유사한 18.5m 폭포. 현무암 절리로 이뤄어진 직벽 상부가 계속 떨어져 나가 한탄강에서 300m 정도 산중턱으로 밀려나 있어 더욱 절묘하다.
명품 재인폭포를 음미하며
비가 내리지 않은 봄철이라 물줄기가 굵지는 않지만 에머럴드빛 소에 떨어지는 모습이 시원하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고 사다리를 따라 지그재그로 해서 계곡으로 내려갔다. 숲속에 깊이 숨어있어 마치 여성의 은밀한 곳같이 신비스럽다.
폭포에 얽힌 얘기 등은 안내판에 상세히 적혀있다. 계속 도로를 따라가면 다락터사격장이 있는데 허락을 맡아야 들어갈 수 있단다.
다음 지도
폭포가 침식되는 바람에 저렇게 한탄강까지 남쪽으로 300여m 계곡을 만들어놓았다.
벌집같은 현무암주상절리(용암이 물속으로흘러내리면서 갑자기 식어 각진 돌기둥모양으로 변한 것이다) 서귀포해안에도 잘 발달되어있다.
폭포 동쪽 능선 넘어 다락터사격장 가는 도로
건설중인 한탄강댐
한탄강(漢灘江) 홍수조절 등 다목적댐
1999년 임진강하류지역 수해방지 종합대책으로 추진된 건설사업으로 1996~1999 임진강,한탄강 일대 산사태와 하천범람으로 인명과 재산피해가 반복되자 한탄강댐 건립을 구상했다.
2001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와 포천시 창수면 신흥리에 길이 705m, 높이 85m, 저수용량 3억 1100만 톤(홍수조절용량 3억 500만 톤) 규모의 한탄강댐 기본계획이 한국수자원공사에 의해 세워졌다.
그러나 환경훼손, 예산낭비 등의 이유를 내세운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발, 상류지역인 철원군의 주민들까지 나서 반대소송을 내는 등으로 오랜 기간 표류하다 2016년 11월 10년 만에 완공된 것이다.
댐 아래 오토캠핑장
전곡읍 대동공업에서 커피 한잔
한탄강댐이 완공되고나서 비가 많이 내리면 폭포가 없어질지도 모른단다. 특히 연천 군민들이 아쉬워 하고 있단다. 마음과 렌즈에 열심히 담아가지고 전곡읍 은대리 심사장의 농기계 판매장 대동공업으로 달려왔다. 바쁜 어부인이 반갑게 맞는다. 큰딸 결혼 축하의 인사를 건냈다. 도토리 가루를 만들었다며 세 개의봉지에 담아 가지고 가란다. 내내 전화받느라 정신이 없다.
1시간 반만에 송파 IC를 빠져나와
5시가 다되어 우리도갈 길이 바쁘다. 인사도 건네지 못하고 오던길을 따라 달렸다. 송파 IC를 빠져나오니 1시간 반 남짓 걸렸다. 우리는 밥집을 찾아 문정동을 돌아다니다 우렁쌈밥집을 찾아 들어가 맛있게 먹었다. 이날 하루 잘먹고 분단 현실을 가까이서 다시보고 아름다운 재인폭포까지 섭렵했다.
후묵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