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신의주 편
권은민
“전국~ 노래자랑”, 와~하는 함성, 이어지는 박수소리 그리고 짠짜짠 짠짠~ ~ ,특유의 멜로디. 일요일 낮이면 TV에서 듣던 소리다. 그런데, 이번 주는 특별하다. 방송장소가 북한인데다가 나도 참석하기 때문이다.
몇 달 전 통일부에서 전화를 받았다. 전국노래자랑을 북한에서 개최할 예정인데, 법률문제를 자문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었다. 예상치 못한 말이라 순간 당황했지만, 자문단은 현지 공연에 초대할 예정이라는 말에 좋다고 해버렸다. 분야별로 자문단을 꾸리는 중이고, 연예인과 공연 전문가들이 대부분이지만 법률전문가도 참여시키자는 내부 논의가 있어 내게 연락했다는 배경 설명을 들었다.
‘전국노래자랑 북한편’은 2003년에 송해 선생의 사회로 평양시 모란봉 공원에서 열린 적이 있다. 당시 북측 여자 방송원과 함께 공동으로 사회를 본 송해 선생은 마지막 장면에서 울먹였다.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이던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북한에서 사회를 보는 것이 감격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때 송대관과 주현미가 초대 가수로 나와 노래를 불렀다. 내 귀에는 북한 참석자들보단 남한 가수의 노래가 더 좋았다. 북한 참석자들의 복장인 인민복 입은 남성과 한복 입은 여성, 그리고 여성들의 고운 목소리가 어색했다. 당시 평양공연은 성공적이었고, 북측 방송원은 분단 58년 만에 남북이 하나가 된 사건이라며 흥분했다. 평양공연 이후 북한의 주요 도시 5개를 순회하면서 공연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실현되진 못했다.
그때로부터 20여 년이 지날 무렵, 북측에서 전국노래자랑을 다시 하자는 연락을 했다. 그 무렵 북측은 신의주경제특구를 가동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었는데, 남측의 투자유도와 화해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제안한 것이었다. 북측 제안을 수용할지 말지 논란도 있었으나, 참석하기로 결론을 모았다. 과거 남북회담의 경험상 분위기가 좋을 때 치고 나가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최근 수년간 북한의 핵개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경제제재 그리고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한 국경봉쇄로 북한 경제는 매우 어려웠다. 코로나가 종식되면서 북한은 경제회복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미국과 핵문제 협의를 시작했고, 중국에는 경제특구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후 우선 신의주경제특구를 시험적으로 가동한 상황이다. 남측 당국은 전국노래자랑에 합의하고 실무자를 모았으나 20여 년 전 행사를 진행했던 경험자들은 거의 퇴직한 상황이었고 북한방문경험자도 거의 없었다.
통일부는 사전준비 회의를 몇 차례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남측 참석자들에게 법률 문제를 설명했다. 노무현 정부 때 평양을 여행한 내 경험을 곁들여 남한 주민이 북한으로 가려면 통일부의 방북 승인이 필요하고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적용된다고 상기시키며, 북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정치적인 발언은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기념품을 사거나 북한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허용되지만 성경책 등 북한이 민감하게 여기는 물품은 소지하지 말고, 휴대폰 반입은 허용되지만 출국 시 사진을 검색할 수도 있다고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데 참석대상자들의 얼굴빛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며칠 간 낯선 곳,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으로 간다고 들뜬 모습이었던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이란 말이 나오자 긴장하기 시작했다. 유의 사항이 포함된 소책자를 나누어 주는 것으로 사전 설명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