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코스도 짧고 높이도 보잘것없는 도드람산이 이천의 명산으로 알려진 것은
능선 전체가 암석으로 이뤄져 있어 수도권 산 가운데 바위 타는 재미가
으뜸이기 때문이다.
등산 동호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바위맛'이 좋은 산이라고 한다.
바위맛이란 발뿐 아니라 손을 이용해 바위와 풀뿌리 등을 잡고 가는 등산로의
아기자기함을 뜻하는 은어이다.
중부고속도로에서 하행선 이천휴게소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솟아 있는 산이 바로
저명산인데, 주능선은 크게 다섯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알프스 마터호른을 닮은 이 산은 종전 5만 분의 1 지형도에
저명산(猪鳴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문 표기를 풀어 쓰면 ‘돋(돼지) 저', ‘울음 명'으로 돼지울음산이다.
옛 문헌에 저명산에는 정악사라는 절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산 남쪽기슭에 사지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곳을 정악골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산 이름의 유명세 덕분에 인근 마을에서는 도드람 돼지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마을에서는 돼지몰이, 돼지 씨름, 돼지 보물찾기 등의 놀이 프로그램과
돼지고기 잔치마당이 준비되고 도드람산에서는 돼지와 가장 비슷한 목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뽑는 저명인사(猪鳴人士) 선발 대회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본 행사가 열리는 장암2리 마을은 소설가 이문열씨가 운영하는 ‘부악문원'이
소재한 마을로도 유명하며, 마을 뒤편에는 조각공원도 있어 마을 전체가
산책 코스로 제격이다.
특히 장암2리는 『동국여지승람』에 장수왕(長水旺)으로 마을 이름이
등장할 정도로 유서 깊은 마을이다.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인해 남천(지금의 복하천)과 함께 생겨난 지명이다.
현재는 ‘장수왕'에서 음운이 변화하여 ‘장생이' 마을로 불린다.
이름풀이에서부터 전설적 기운이 느껴지는 이 산의 전설은 다음 두 가지 설화를
바탕에 두고 있다.
먼저, 마고할미에 관한 설이다.
큰물이 진 후 새로운 인류가 탄생할 무렵,
신은 인간 세상에 마고할미를 내려보냈다.
마고할미는 세상을 만든 거대한 여신으로 한라산을 베고 누워 한 다리는 서해에,
또 한 다리는 동해에 두고 손으로 땅을 훑어 산과 강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처럼 기이한 위력을 지닌 마고할미가 금강산을 만들 때의 일이다.
육지에서 흙과 바위를 한 움큼 퍼다 나르던 중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다가 그만, 손에 쥔 흙 한줌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때 실수로 흘린 흙 한줌이 산이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아마 주변 형세에 비해
헌걸차게 솟아오른 형세가 마치 금강산이나 설악산의 봉우리 하나를
옮겨다 놓은 듯한 모습에서 지어낸 이야기인 듯싶다.
한편, 마고할미에게 지리산 도드람봉을 옮겨오도록 명하였는데 마고할미가
도드람봉을 끌고 오던 중 힘겨워서 잠시 주저앉은 자리가 지금의 도드람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 번째 설화는 저명산의 이름과 연관되어 있다.
산 동네 외딴집에 한 청년이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몸에 좋다는 약은 다 써 보았으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병세를 비치던 이듬해엔
어머니가 아예 자리에 눕게 되어 버렸다.
뼈만 앙상한 어미를 들쳐 업고 밤낮을 전전하며 병구완을 해보았지만
차도는 보이지 않고 어머니의 병을 제대로 짚어 주는 명의도 찾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었다.
이제 청년마저 지칠 대로 지친 상태, 모든 걸 체념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청년은 산기슭 어디쯤에선가 어머니를 등에 업은 채 쓰러지고 말았다.
“일어나거라.
너의 지극한 효성을 하늘은 알지니 이제 곧 처방을 내려 줄 것이니라.
저 산 정상 절벽 바위틈에 자라는 석이버섯을 따다 드리면 어머니의
눈이 밝아지고 맑은 피가 돌아 기운이 솟을 것이다.
더 저물기 전에 버섯을 따다 드리거라.”
고승의 목소리는 아직 귀에 쟁쟁한데 눈을 떠보니 횡한 바람소리만 스산하다.
인기척 하나 없다.
이 인적 드문 산중에 고승이 나타날 리 만무하다.
생생한 현실 같은 꿈속의 목소리를 거역할 수 없어 청년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승의 처방대로 석이버섯을 찾아 헤매었다.
일단 산 정상에 올라 솔잎을 주워 모았다.
푹신하게 어머님의 누울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숨조차 힘겹게 내쉬는 어머님을 뉘어 놓고 버섯이 있다는 바위틈을 주시했다.
놀랍게도 꿈속에서 점지해 준 절벽께에 석이버섯이 예쁘고 단정하게 피어 있었다.
산 정상의 절벽 바위틈에 자라는 버섯을 따기 위해 청년은 마른 나무 뿌리를
이어서 길게 엮어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버섯을 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산돼지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난데없는 돼지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절벽 위를 올려다보니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줄이 아슬아슬 바위에 쓸려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청년은 돼지 울음소리 덕분에 간신히 절벽을 붙들고 올라와 목숨을 구한 셈이다.
지극한 효성에 감복한 산신령이 산돼지를 보내 그 효자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이다.
그때부터 돋(돼지)울음산이라 불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도두름, 도드람 식으로
음운이 변화하여 현재의 도드람산이 되었다고 전한다.
첫댓글 라빈님 30일날 익산에선 뵐 수 있겠지요?? 상봉을 고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