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4.; 연중 제1주간 금요일 (1사무 8,4-22; 마르 2,1-12)
제1독서
<여러분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8,4-7.10-22ㄱ
그 무렵 4 모든 이스라엘 원로들이 모여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가 5 청하였다.
“어르신께서는 이미 나이가 많으시고
아드님들은 당신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있으니,
이제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 주십시오.”
6 사무엘은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정해 주십시오.” 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
마음이 언짢아 주님께 기도하였다.
7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10 사무엘은 자기한테 임금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모두 전하였다.
11 사무엘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이 여러분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오.
그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말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오.
12 천인대장이나 오십인대장으로 삼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고 수확하게 할 것이며,
무기와 병거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오.
13 또한 그는 여러분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 제조사와 요리사와 제빵 기술자로 삼을 것이오.
14 그는 여러분의 가장 좋은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주고,
15 여러분의 곡식과 포도밭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 내시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오.
16 여러분의 남종과 여종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
그리고 여러분의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오.
17 여러분의 양 떼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갈 것이며,
여러분마저 그의 종이 될 것이오.
18 그제야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
19 그러나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기를 마다하며 말하였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20 그래야 우리도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임금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 앞에 나서서 전쟁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1 사무엘은 백성의 말을 다 듣고 나서 그대로 주님께 아뢰었다.
22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들의 말을 들어 그들에게 임금을 세워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치유와 용서
예수님께서 마귀도 쫓아내셨다는 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중풍 병자도 있었습니다. 격리되어 살던 나병 환자는 용기를 내기라도 하면 되었지만, 사지가 마비된 중풍 병자는 아무리 용기를 내더라도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서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중풍은 거동이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심하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사물을 보는 데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고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워지기도 하는 병입니다. 이는 사지근육과 언어 중추, 시각 중추 등을 관장하는 뇌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서 뇌세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생기는 뇌졸증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풍 병자는 이웃에 사는 네 사람이 드는 들것에 실려,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참으로 희한하고 눈물겨운 풍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중풍 때문에 겪어야 했던 신체적 고통 못지않게, 그가 중풍에 걸리기까지 겪어야 했던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는 물론, 사람들 사이에도 의사 소통의 통로가 꽉 막혀 있었습니다. 제사는 사두가이들이 독점하며 비싼 성전세와 제물을 요구했기 때문이고, 세상에는 율법과 재산에 의한 기준으로 정해 놓은 의인과 죄인이 분리되어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워낙 복잡해서 보통 사람은 다 알 수도 없어서 일일이 바리사이들에게 물어서 살아가야 했고, 재산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증표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죄인으로 취급받고 재산도 없어서 가난한 이들은 이중으로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낙인을 찍힌 채로 짓눌려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렇듯 잔뜩 움추려든 상태에서 면역력이 증진될 리 만무하고, 그러다가 자칫하면 가장 약한 신체 부위로 질병이 찾아오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중풍 병자의 신체적 원인을 해결하기 전에 당사자도 사람들도 인식하고 있었던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원인부터 해결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 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마르 2,11) 하고 마비된 사지도 풀어주셨습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치유 기적의 권능을 주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는 한편 중풍 병자를 고쳐내신 예수님의 신적 능력에 경탄하였지만, 군중 속에 끼어 있던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죄의 용서를 한낱 사람인 주제에 감행하는 모습에 대해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신성모독죄의 혐의를 두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혐의가 성전모독 혐의와 함께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게 만드는 빌미가 되지요.
이 사건으로 인해 그 중풍 병자는 일생일대의 행운을 얻었고, 이 광경을 지켜본 군중과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적 능력에 대해 확신이 굳어지게 되었으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마르 3,6), 예수님으로서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선포함으로써 인습적으로 너무나 멀게 느끼던 하느님의 본 모습을 알리는 기회로 삼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이제는 죄인들을 용서하기로 하셨다는 복음선포 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메시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보면 질병의 치유 기적도 용서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중풍을 비롯한 모든 질병은 신체적인 고통을 가져다주는 한편, 정신적으로 위축시키고 사회적으로도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당사자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용서의 본질은 죄인을 끌어안음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영역 안에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