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궁 제 22 장 第 22 章. 혼란(昏亂)한 무림(武林). 2. 그물이 덮처 들었지만 화사의 예리한 날에 의해 두쪽으로 쩍 갈라 져 버렸다. 두 번째 그물이 바로 뒤를 이어왔다. 도일봉은 똑같이 그물을 잘라버리고 나아가려 했다. 그물이 화사에 걸려 찢겨나가는 순간 왼쪽 인물이 그물을 놓아버리고 검을 휘둘렀다. 도일봉은 휘 청 몸을 꺽어 피하긴 했지만 하마터면 장군 등에서 떨어질뻔 했다. 갈고리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도일봉은 재빨리 화사를 휘둘러 갈고리를 처내고 자세를 똑바로 했다. 갈고리와 창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사람과 말을 마구 찔러댔다. 도일봉은 이러저리 화사를 휘둘러 창과 갈고리들을 처냈고, 장군은 도일봉 보다도 빨리 창과 갈고리를 피하며 달리고 있었다. 갈대숲 을 벗어나 키큰 나무숲에 이르렀을 때였다. 나무 위에서 그물이 떨 어져 내렸다. 도일봉이 화사를 마구 휘둘렀다 그물이 조각조각 찢 겨 나갔다. 그리고 금포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을 막은건 물론 이고, 뒤쪽도 막혀버렸다. 그들의 손에는 기다란 창들이 들려 있었 다. 도일봉은 황룡궁을 꺼내들지도 못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쓰 기가 불편하다. 하대치가 천천히 다가왔다. "하핫, 도노형. 더 갈 곳이 없는가?" 도일봉이 코웃움을 쳤다. "흥. 꼭 그렇지만은 않을걸!" 그러나 하대치는 도일봉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은 꽤 당황스러울 게야. 그러지말고 이즘 에서 항복하시는게 어떠신가? 항복하는 것도 그리 나븐 것 만은 아 니거든." 도일봉은 하대치의 히죽거리는 꼴이 정말 보기 싫었다. 하지만 지 금은 도망칠 궁리 먼저 해야 한다. 도일봉은 화사와 죽봉을 양손에 나누어 쥐었다. 이 포위만 빠져나갈 수 있으면 된다. 일단 장군이 달릴 길만 열면 끝인 것이다. 도일봉이 궁리에 빠져 있을 때 하대치의 뒤쪽에서 급박한 말굽소 리가 들려왔다.남연호와 함께 슬그머니 자리를 떳던 그 괴한이었 다. 슉! 괴한의 손에서 한줄기 빛이 쏘아져 나왔다. 비도(飛刀)였다. 비도 는 하대치의 등을 노리고 살처럼 빠르게 날아들었다. 하대치가 놀 라 급히 몸을 숙였다. 비도는 하대치의 등을 스쳐지나 앞에 있는 금포인의 뒷목을 파고들었다. 하대치가 몸을 바로하려는 순간 두자 루의 비도가 이어졌다. 하대치는 할 수 없이 옆으로 몸을 움직여 피했다. 두자루 비도는 허탕을 치지 않고 도일봉 옆쪽에 있는 두 금포인의 가슴에 박혀들었다. 괴한은 본래부터 하대치를 노린 것이 아니라 도일봉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금포인들을 노린 것이었다. 과힌의 손에서 다시 비도가 날았다. 그때 도일봉도 함께 움직였다. "가자, 장군아!" 비도에 맞아 쓰러지는 두명의 금포인 쪽으로 장군이 뛰쳐나갔다. 두 개의 창이 들이닥쳤다. 도일봉은 죽봉을 들어 하나를 막고 화사 를 휘둘러 다른 하나를 잘라버렸다. 장군의 앞발이 앞을 막는 한명 의 금포인을 위협했다. 금포인이 깜짝 놀라 옆으로 피했다. 다른자 가 창을 찔러 장군을 노렸다. 한자루 비도가 먼저 금포인의 목으로 파고들었다. 장군은 이미 포위망을 벗어났다. 비도를 날려준 괴한 도 급히 방향을 꺽어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활을 쏴라!" 하대치는 또 한 번 도일봉을 놓치자 화가 치밀어 콧구멍으로 연기 가 날 지경이었다. 금포인들이 재빨리 창을 거두고 허리에 걸린 활 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 슈슈슉! 뒤에 처진 괴한이 단검으로 날아오는 화살들을 처냈다. 도일봉은 벌써 화사를 허리에 두르고 죽봉에서 황룡궁을 꺼내 들었다. 꺼내 든 순간 장군전이 시위에 걸리고 도일봉은 몸을 돌려 시위를 놓았 다. 쉬익! 장군전이 예리한 소리를 끌며 날아갔다. 활을 쏘던 자가 피하지도 못하고 가슴을 관통당했다. 장군전은 아직도 힘을 잃지 않고 뒤에 있던 자의 목에 푹 박혀버렸다. 금포인들이 놀라 허둥거릴대 두 번 째 세 번째 장군전이 날아들었다. 금포인들은 피할 겨를도 없었다. 장군전은 그만큼 빨랐다. "더 좇지마라! 멈춰라!" 거리가 떨어지고, 도일봉이 황룡궁을 뽑아들면 불리한건 금포인들 이다. 좇아봐야 희생만 늘 뿐이다. 하대치는 그것을 잘 아는지라 할 수 없이 추적을 포기했다.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 현명한 일 이다. 도일봉이 장군을 멈춰 세우고 하대치를 돌아보았다. "하대형, 다음에 또 봅시다! 다음에 만나면 지금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예요. 그땐 하대형이 조심해야 할걸. 빚은 갚으라고 있는 것이니까! 하하핫." 도일봉의 야유에 하대치는 오히려 웃움이 나왔다. 도일봉과는 뭔 가 맞질 않는다. 번번히 다 잡아놓고도 끝내 놓치고 만다. 도일봉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을 때 괴한의 말이 옆을 스치며 달려 나갔다. 그만큼 장군의 발이 빠른 것이다. "어이, 고마워!" 하지만 괴한은 아는체도 않고 달려나갔다. 도일봉도 곧 장군을 몰 아 한쪽으로 달렸다. 숲 속으로 들어선 괴한은 주위를 돌아본후 복면을 벗었다. 사소추 였다. 그녀는 남장까지 벗고 여장으로 갈아입었다. "그 하대치란 자, 정말 보통이 아니군! 그가 대체 어떤 집단에 소 속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단 말야? 멍청한 도일봉 녀석은 날 알아 보지도 못하고..." 도일봉이 남연호를 잡아놓고도 장보도를 빼앗지 못하자 사소추는 바로 남장으로 갈아입고 복면을 한체 나섰던 것이다. 사소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장보도를 차지할 수 없을거야." 사소추는 말에 올랐다. 길을 가다가 적당한 곳을 골라 암호표시를 해두었다. 청응방과 연락을 취하려는 것이다. 사소추는 도일봉을 좇지않고 남연호를 찾았다. 그녀는 물을 따라 내려가 보았다. 남연 호는 물론 도일봉이나 하대치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도일봉은 하대치에게 놀라 멀리 달아 났다지만 하대치 일당은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남연호가 물살에 쓸려 내려갔으니 이즘에서 찾고 있어야 할텐데? 뭔가 이상해. 하대치는 장보도 보다 도 도일봉에게 더 관심이 많았거든! 하대치란 자는 장보도를 노리 고 있지 않는걸까?"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사소 추는 계속 남연호의 종적을 찾았다. 산을 다 내려 왔는데도 어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무림인들은 아직도 산 위에 득시글 거렸 다. 남연호가 죽지 않았다면 또 무림인들에게 좇겨 어딘가에서 모 습을 드러낼 것이다. 사소추는 마을에 들려 먼저 목욕탕이 있는 객점 먼저 찾았다. 무 림인들이 워낙 많아 방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사소추는 뜨끈한 물 에 몸부터 담갔다. 도일봉을 미행한 이후 변변한 목욕한번 해보지 못했다. 사소추는 자신의 풍만한 몸매를 닦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도일봉을 다시 찾기는 어려웠다. 인근을 돌며 수소문 해봐도 도일 봉의 종적은 없었다. "이녀석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거야?" 이틀을 헤매던 사소추는 남연호가 태산을 빠져나가 황하로 향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무림인들은 또 일제히 그쪽으로 달렸고, 사 소추도 북쪽으로 길을 잡았다. 도일봉은장보도 근처에 있을테니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황하변에 당도했을 때 소문의 내용은 이미 바꿔 있었다. 남연호는 이미 종남파(宗南派)의 호도림(胡桃林)이란 자에게 장보도를 빼앗 겼다는 것이다. 호도림이란 자는 섬서일대에서 제법 이름깨나 날리는 자이고, 무 공도 뛰어난 편이다. 남연호와는 비숫한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 미 지쳐버린 남연호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고 했다. 호도림은 남연호의 왼팔을 잘라버리고 장보도를 탈취해 도망쳤다고 했다. 포구엔 너도 나도 배를 띄우느라 바빳다. 호도림이 배를 타고 자 신의 본거지인 섬서 종남산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사소추는 막 선 창을 떠나는 큰 상선에 몸을 실었다. 배에 탄 자들은 대부분 무림 인 들이었다. 사소추가 알아볼 수 있는 자들도 꽤 많았다. 그중에 서도 키가 남보다 휠씬 크고, 얼굴엔 온통 뻣뻣한 수염이 가득한 인물은 더욱 잘 아는 자다. 그는 바로 청응방이 관군에 의해 토벌 받을 당시 도와주었던 장군부의 황삼산이란 자였다. 황삼산 옆에는 20대 후반의 잘생긴 청년이 있었다. 무삼수다. 사소추는 슬그머니 황삼산 옆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아는체 하진 않았다. 여자들의 심리란 묘한 것이어서 자기가 먼저 아는체 하기 보다는 남이 먼저 아는체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소추는 대신 황삼산의 눈에 잘 띄일 곳에 섰다. 아니나다를까! 황삼산이 사소추 를 발견하고는 그 퉁방울만한 고리눈을 더욱 크게 떳다. "아니 이거, 사소추 낭자가 아니시오!" 사소추는 고개를 돌리며 놀라는척 했다. "어머! 황대형 이시군요. 이런 곳에서 뵙다니 뜻 밖 인데요!" 황삼산은 그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웃었다. "그렇군요. 사낭자께선 어쩐 일이십니까?" "이유야 황대형과 같겠지요? 장군부에서도 장보도를 찾으러 나섰 나요?" "그런 셈입니다, 허허." 사소추는 무삼수를 바라보았다. "이분이 장군부의 대장님 이신가요?" 능청도 잘 떤다. 무삼수가 히죽 웃었다. "청응방에 여제갈이 있다는 말은 진작부터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 나뵈니 반갑군요. 대장이 아니라 안됐소만, 소생의 성은 무씨외 다." "무대형 이셨군요! 실례했어요." "별말씀을!" 사소추가 말머리를 돌렸다. "듣자하니 호도림이란 자가 장보도를 쥐고 배로 도망 쳤다는데, 그 말이 사실일까요?" "헛소문 이라면 이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법석을 떨지는 않겠지 요?" "장군부의 대장도 나섰겠군요?" "확실히는 모릅니다. 대장이 거처를 나선지가 이미 오래 되었는지 라..." "음, 이제 우리 청응방과 장군부가 서로 친구가 되었으니 앞으로 잘좀 부탁 드려요." "별말슴을. 오히려 우리 쪽에서 부탁할 일입니다." "그런가요?" 사소추는 깔깔 웃으며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무삼수와 황삼산도 다른쪽을 바라보았다. 사소추는 홀로 중얼거렸다. "장군부에 뭐 대단한 자들이 있는것도 아닌데 잘 나간단 말야? 또 다른자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도일봉이 생긴 것 과는 다르게 잘난 구석이 있나?"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일봉이 그렇게 잘났다고는 생각되 지 않았다. 그렇다면 뒤에 누군가 있거나, 운이 좋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고 그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 운은 실력 있는 자를 따르기 마련이다. 운만으로는 그런 일들을 결코 해낼 수 없다. 결론은 역시 도일봉 뒤에 누군가 있다는 말인데... "누굴까? 낙양 관아에선 한때 도일봉과 활불이라고 알려진 만천 설문빈이 연결 되었다고 의심한 적이 있었어. 혹 정말로 도일봉 뒤 에 만천 설문빈이 있는 것일까?" 있을 수 있는 일이나 단정할 순 없다. 사소추는 이생각 저생각에 빠져 시간 가는줄도 몰랐다. 상선은 쉬지않고 황하를 거슬러 올랐 다. 소나기가 쏟아졌다. 장마가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요즘은 해를 보기도 힘들다. 하룻낮 하룻밤을 달린 상선은 낙수와 만나는 지점에 이르러 있었 다. 그런데 저 앞쪽에서 한줄기 검은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요 란한 함성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일대 수상 전투가 벌어진 모양이다.상선에 탄 사람들이 선부들을 향해 빨리 가자고 난리였다. 상선은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때 누군가 부르짖 었다. "청응방이다!" "청응방 놈들이다!" 가까이 다가 보니 과연 커다란 돛폭에 그려진 푸른 독수리 문양이 그려진 청응방의 수적선이었다. 세척의 청응방 수적선이 중앙의 상 선을 포위 공격하며 불을 지르고 있었다. 몇 척의 배들이 근처에 있긴 했지만 청응방의 요란한 공격에 감히 가까이 다가가질 못했 다. 황삼산이 그중 한 척의 배를 가르키며 말했다. "무순찰. 저건 바로 왕안수의 배가 아니오?" 날렵하게 빠진 중선은 분명 장군부 수룡기의 배였다. 누가 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무삼수등이 타고 있는 상선은 빠르게 불타는 배 쪽을 향해 미끄러 져 갔다. 청응방 방도들이 먼저 불타는 배로 뛰어올라 싸움을 벌이 고 있었다. 상선이 다가가자 청응방의 수적선들이 막아섰다. 하지 만 상선에 탄 사람들은 너도나도 무공에는 자신있는 자들 뿐이다. 청응방도들이 결사적으로 막긴 했지만 역부족이다. 상선의 무림인 들도 곧 불타는 배로 뛰어들었다.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불타는 배를 뒤져 호도림을 찾았다. 그 러나 호도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호도림의 사문형제들과 추 종자들이 무림인들을 막고 있을 뿐이다. 머리회전이 빠른 자들은 벌써 낌새를 채기 시작했다. "호도림은 다른 곳으로 샜어!" 사소추의 생각도 같았다. 호도림은 분명 중도에서 내려 다른길로 뺑소니 쳤을 것이다. 사소추는 급히 오래비를 찾았다. 이번 수전의 지휘는 청응방의 소방주 사평이 맡고 있었다. 사평은 누이가 무사 한 것을 보고 기뻐했다. 사소추는 오래비를 한쪽으로 끌었다. "오빠. 도일봉 못 봤어요?" "아니. 도일봉은 네가 미행하지 않았더냐?" 사평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바라보며 사소추는 잠깐 생각에 잠겼 다. "여우같은 녀석. 벌써 눈치채고 호도림을 좇아 갔구나! 오빠. 방 도들을 물러나게 해요. 더 있어봐야 헛일입니다. 그리고 배를 육지 로 대요. 호도림은 육로를 택해 달아났어요!" 사평은 누이가 똑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평은 급히 방도 들을 철수시켰다. 그리고는 배를 포구로 몰았다. 청응방이 물러나 는 것을 본 무림인들도 급히 육지 쪽으로 배를 몰았다. 배가 선창에 닫자 사소추는 급히 배에서 내리며 말했다. "오빠. 나 먼저 갈께요. 천천히 따라와요. 장보도를 보더라도 함 부로 나서지 마세요." 사소추는 말을 몰아 무삼수를 찾았다. "무대형도 갈건가요?" 무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봐야지요. 동행해도 되겠소?" "좋으실대로." 무삼수는 선창에 배를 대는 왕안수를 불러 일단 돌아가 있으라고 전했다. 그리고는 황삼산과 함께 사소추를 좇아 서쪽으로 말을 몰 았다. 그들이 낙양을 지나고 있을 때 한필의 말이 빠르게 달려왔다. 황 삼산이 돌아보았다. "어라. 저건 이수복인데?" 이수복이 급히 말을 멈추었다. "대장님의 전갈입니다. 두분께선 이 일에 나설 것 없이 산채로 돌 아가시랍니다." 무삼수가 물었다. "대장님은 돌아왔느냐?" "그건 모르겠습이다. 저는 다만 급보를 전하기위해 달려왔을 뿐입 니다." "흐음." 무삼수는 어찌할지 잠깐 생각했다. 도일봉이 이런 명령을 내렸을 때는 물론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위험한 일이니 함부로 나서는걸 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채로 돌아가 만천선생 과 의논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무삼수는 사소추를 돌아보았 다. "사낭자. 더 이상 동행하지 못하게 되었군요. 우린 돌아가야 겠습 니다." "섭섭하군요. 할 수 없죠." 사소추는 더 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대답해줄 것 같지 않았기 때 문이다. 무삼수와 황삼산은 인사를 건넨 후 말을 돌려 가버렸다. 사소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녀석이 무슨 꿍꿍이 수작을 부리려는 것일까? 혼자서는 장보 도를 손에 넣을 수 없을텐데? 장보도를 포기한 것은 아닐텐데...?" 스스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 생각을 많이하여 스 스로를 피로하게 만든다. 사소추는 그러한 사람에 속했고, 또 여인 인지라 어쩔 수 없이 호기심이 많다. 그녀는 끊임없이 생각을 거듭 하며 길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섬서로 들어서고 있었다. 장안 남쪽에 종남산이 있 고, 그곳에 또 호도림의 사문인 종남파가 있다. 호도림 또한 어쩔 수 없이 사문으로 숨어들 것이다. 그러나 종남산까지 갈 필요도 없 었다. 사소추는 장안에서 되돌아 오는 무림인들을 만났다. 호도림 이 사문으로 숨어들긴 했지만 종남파 역시 먼저 도착한 무림인들에 의해 쑥밭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호도림은 겨우 목숨을 부지했을 뿐 장보도는 만에게 빼앗겼다고 했다. 장보도는 남쪽을 향해 달리 고 있다고도 했다. 사소추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방향을 틀지 않을 수 없었다. 도일봉 을 찾느라 주위를 두리번 거렸는지라 자연 걸음이 늦다. 하루가 지 난 다음에야 누구 손에 장보도가 쥐어져 있는지 알려졌다. "양양의 유씨세가(劉氏世家), 유상(劉常)이라고? 그런자의 손에 장보도가 넘어갔단 말인가? 운이 좋은 자로군!" 유씨세가는 대대로 도를 수련해 온 양양지방의 권세가다. 그중 유 상은 28로 선풍도법(旋風刀法)으로 꽤나 이름을 떨치고 잇지만, 종 남파의 쟁쟁한 인물들을 제치고 장보도를 차지할만한 자는 아니다. 그에게 장보도가 들어갔다면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림인들은 또 남쪽을 향해 움직였다. 호북으로 들어서 단강구(湍江口)를 지나던 사소추는 이상한 장면 을 목격했다. 밤 늦게 마을에 도착하여 객점을 찾는데, 일단의 무 리들이 어느집 담장을 넘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도둑인가 하여 그 냥 지나치려다 보니 도둑들 치고는 그 몸놀림이 재빠르고도 날렵했 다. 마치 유령이 움직이듯 신속하고 은밀했다. 모두 적색의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적포인들이 안으로 숨어 들었는데도 집 안에선 아무런 소리도 없 었다. 그리고 잠시후 불길이 화악 솟았다. 집 전체가 한꺼번에 불 길에 휩쓸려 타들어 갔다. 그와 동시에 적포인들이 다시 담장을 넘 어 나왔다. 이상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사소추는 적포인들을 좇았다. 골 목을 꺽는데 갑자기 지붕 위에서 검기가 몰아쳐 왔다. "훗!" 생각도 못한 일격을 당한 사소추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재빨리 말 등에서 미끄러저 내렸다. 퍽! 예리한 검날은 그대로 말 목을 자르고 지나갔다. 잘려진 말 목에 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땅에 내려선 사소추는 어느새 단 검을 뽑아들고 반격을 시도했다. 그런데 또 다른 검기가 옆구리를 파고 들어왔다. 한명이 아니다. 사소추는 그러나 코웃움을 치고는 몸을 버들가지처럼 흔들었다. 검 끝이 옆구리를 스쳐 지났다. 사소 추의 단검이 횡으로 그어졌다. 단검은 상대의 허벅지에 길게 상처 를 내주었다. 사소추는 한명이라도 잡아 심문을 해보려고 부상당한 자를 좇았 다. 다른 자가 앞을 막으며 검을 후려치는 동시에 무엇인가를 던졌 다. 사소추는 암기인가 싶어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팍! 그자가 던진 둥근 공이 발 앞에서 터졌다. 안개같은 연기가 한순 간에 시야를 가렸다. "석회탄(石灰彈)!" 사소추는 깜짝 놀라 눈과 코를 막았다. 석회는 자극성이 강하다. 눈이나 코로 스며들면 따갑고 재체기를 하게 만든다. 거리의 건달 들이 불리하면 쓰는 것이 바로 석회이고, 또 전쟁시에도 많이 사용 되곤 한다. 하지만 무림인들은 좀체로 쓰지 않는 방법이다. 비겁하 다는 이유다. 눈과 코를 가린체 주위를 경계하며 연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동안 상대는 벌써 자취를 감추었다. 급히 골목을 돌아 살펴 보았지 만 역시 허사였다. 사소추는 발만 동동 구르며 제자리로 돌아와 죽 은 말 등에서 보따리를 챙겼다. "망할놈의 자식들!" 불길이 오르는 집을 돌아보니 사람들이 몰려와 불을 끄고 있었다. 사소추는 어떤자가 당했는지 궁굼하여 잠시 기다렸다. 불길을 잡고보니 일가족 열두구의 불탄 시체가 발견되었다. 노도 신검(怒濤神劍)이라고, 강호에서 제법 한가닥 하는 종대명(鐘大明) 과 그의 가족들이었다. 불길은 잡은 마을 사람들은 은원관계(恩怨 關係)에 의한 살인이 아니냐고 숙덕거렸다. 그러나 사소추는 고개 를 갸웃거렸다. "종대명이 비록 노도신검으로 제법 명성을 날리고 있다고는 하지 만 그도 결국 고수는 아니다. 그러나 그 적포인들은 분명 전문가였 어. 고도로 훈련받은 자객일시 분명하단 말야! 그런 자들이 왜 종 대명 같은 자를 노린걸까? 석회라면 몰라도 석회탄은 또 아무나 지 닐 수 있는 물건이 아니거든!" 사소추가 당했던 석회탄은 분명 군대에서나 쓰이는 물건이다. 무 림인들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한동안이나 고개 를 갸웃거리던 사소추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의혈단(義血團)!" 등골이 서늘해졌다. 장담할 순 없으나 장황으로 볼 때 필시 의혈단일 가능성이 짙다. 의혈단은 지난 사오년 동안 강호무림에 암약해 오며 군소방파를 병 합하고, 괴멸시키기도 했으며, 요즘도 그런 만행을 멈추지 않는다. 더욱이 요 근래, 장보도가 출현하고 부터는 그들의 만행도 또한 더 욱 심해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장보도를 좇느라 무림인들이 집을 비우기 때문이다. "보통일이 아니로구나!" 갑자기 몸서리가 쳐지고, 청응방이 걱정되었다. 부친이 지키고는 있다지만 자신과 오래비가 빠져나온 청응방은 전력이 반도 ㄴ아있 지 않다. 사소추는 서둘러 객점을 찾아들었다. 그리고는 사람을 사 서 곧바로 청응방에 편지를 띄웠다. 그러다 문득. "이 녀석도 이런 사실을 눈치챘던 것일까?" 도일봉이 무삼수 등을 나서지 못하고 하고 돌려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멍청해 보이는 도일봉이 그토록 눈치 가 빨랐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제 녀석이..."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사소추는 도일봉이 그토록 눈치빠르 고 앞날을 내다보고 있다고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를 쉰 사소추는 일찍부터 서둘렀다. 아침을 일찍 해결하고 말 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객점을 나서려던 사소추는 문득 이층에 서 식당으로 내려오는 사람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 계집년이?" 홍의경장을 날렵하게 차려입고, 귀한 장신구로 몸을 치장한 아름 다운 여인. 밍밍이라고 했던가? 황하변 포구에서 도일봉을 찾아 헤 매던 바로 그녀였다. 사소추는 밍밍의 아름다움에 묘한 질투심이 치밀었다. 다른 여인이 아름답다고 해서 질투를 느껴본 적이 없는 데, 웬일인지 저 계집애에겐 질투심이 인다. 사소추는 몸을 돌려 식당으로 되돌아와 밍밍을 살폈다. 밍밍이 한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창 가에 두명이 앉아 잇었다. 20대 후반의 잘생긴 청년이 위엄있는 자세로 앉아있고, 그 청년 앞에는 노란색 가사(袈裟)를 걸친 30대 중반의 승려 한명이 앉아 있었다. 사소추의 인상이 절로 찡그려 졌다. "색마(色魔)의 소굴이라는 홍교라마(紅敎羅麻)의 중놈이군!" 승려는 바로 티뱃의 라마들중 한 교파인 홍교라마의 승려였다. 홍 교라면 밀교(密敎)의 형태로 비의(秘義)를 전수하며, 또한 불교에 서 금하는 육식을 하고 여인을 멀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라마교 는 몽고의 징기즈칸 이래 국교(國敎)로 숭상되었다. 그런 특권을 빌미로 홍교라마의 일부 요승(妖僧)들은 희안한 사술 (邪術)과 음탕한 방중술(房中術)로 황제를 꾀고 유혹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며 막강한 권세를 휘둘렀다. 의식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요승들을 극도로 미워했다. 그들의 횡 포에 집을 잃고 딸들을 잃은 많은 사람들은 라마승들을 증오했다. 물론 라마승려들이 모조리 그런 요승은 아니다. 다만 권세를 얻은 일부라마들이 그러할 뿐이다. 사소추는 이런 요승들을 싫어했다. 아니, 라마승려는 모조리 이런 요승으로 몰아붙여 생각하곤 했다. 사소추는 그자들 가까이에 자리 를 잡았다. 밍밍은 물론 사소추를 알지 못한다. 밍밍이 입을 열었다. "두분. 빨리 일어 나셨네요. 언제까지 여행을 계속 할거에요?" 물론 몽고어였다. 사소추는 어려운 말을 제외하면 몽고어를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라마승이 입을 열었다. "우리일이 만족 될 때까집니다." "요원(了元)라마. 그대들은 대체 무슨일을 하는데 이처럼 돌아다 니기만 하는 거예요? 도일봉은 언제 잡아요?" 도일봉이라는 말에 사소추의 귀가 쫑긋 일어섰다. 저 계집애는 라 마승을 이용해 도일봉을 잡으려는 모양이다. 요원이라는 라마가 웃어보였다. "도일봉은 곧 잡힐 것입니다. 소저 말대로 그를 잡으면 소저에게 먼저 넘기지요." 라마와 청년이 함께 밍밍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밍밍이 어째서 도일봉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는지 알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객점을 나섰다. 화려한 사두마차가 준비되 어 있었다. 그들은 곧 마차에 올라 떠나갔다. 사소추는 이들을 따라가 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범상치 않은 청년 과 라마가 대체 무슨짓을 하려는지 궁굼했다. 사소추는 서둘러 말 을 구해 그들을 좇았다. 남쪽이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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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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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요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 잘 보고 갑니다. 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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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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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일봉은 어디로 갓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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