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7일 오후, 이재수 前 기무사령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4주기가 된다. '모든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 라고 하면서 부하들에 대한 선처를 마지막으로 호소했지만, 지금도 부하들에 대한 재판은 진행되고 있고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고 있다.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당시 기무사령부 소속의 6명이 재판절차를 받고있는데, 2명은 1심 재판 후 법정구속, 3명은 1심 실형 선고 이후 보석상태에서 2심 재판진행, 1명은 대법원에서 집행유예가 확정된 상태이다.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직권남용(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함)’과 ‘권리행사방해(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함)’로 이뤄지는데, 지난해 검찰 특별수사단은 민간인 사찰에 대한 위법성이 없으며 ‘권리행사 방해’ 부분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으로 종결한 바 있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법적 용어들에 대하여 따지거나 평가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검찰과 법원의 오랜시간 고민과 판단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법적인 논의들이 군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숙고해보려는 것이다.
현재 직권남용으로 법적절차의 대상이 되고있는 당사자들은 ‘국가적인 재난상황에 대해 모든 국가기관이 역량을 집중하던 기간에 사령관의 명령으로 성실히 임무를 수행한 군인들이 오로지 불법을 자행한 자들처럼 인식되는 것에 대해 너무도 마음이 아프다’라며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밝히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올해가 사관학교에 입학한 지 40년이 되었고, 육군 장교로서 전후방 각지에서 소임완수에 헌신하고 전역했지만, 장기간 재판정으로 출석해야하는 현실에 대하여 한숨을 내쉬고 있다.
군인이나 공무원들이 법령 위반을 인지하지 못하고 상급자의 지시를 이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고 난 이후 과거 상급자가 나쁜 의도로 지시한 것이라고 규정이되면 누구든 현재와 미래의 직권남용 피의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형법 122조는 직무유기에 대하여, 형법 123조는 직권남용(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에 대하여 명시하고 있다. 직무유기란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없이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한 것을 말하고,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사실 공무원들에게 직무와 직권은 매우 중요하다. 공무원의 숙명은 직무와 직권을 보유하고 국가와 국민들을 위하여 온 마음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그러한 정상적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위에 언급된 형법의 적용을 받게되고 심대한 불이익을 감수해야한다.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은 어찌보면 양날의 칼과 같다. 공무원들은 그 사이를 절묘하게 안전하게 지나가야만 한다. 그래서 생존의 비법으로 복지부동(伏地不動)이라는 웃픈 단어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군인들의 복지부동만큼이나 무서운게 없을 것 같다.
군인들은 최악의 상황, 누구도 상상할수 없는 악조건속에서도 주어진 임무를 반드시 완수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헌법 제5조에 명시된 국군, 군인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는 헌법 조문이다.
군인들의 임무수행 현장인 전쟁터에서는 비상식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적군을 향해 사격을 지시하는 것은 살인을 의미하고, 죽을 수도 있는데 목표물을 향해 전진하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하는 것은 즉 개인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복을 입고있는 군인들은 그러한 환경에서 임무를 완수해야만 한다. 군인들이 그러해야 국민들이 더 안전할 수있기 때문이다.
군형법 제47조는 ‘명령 위반’관련, 정당한 명령 또는 규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이를 위반하거나 준수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국방부의 군인복무규율 제 10조는 ‘부하는 상관의 명령에 절대로 복종하여야 하며 그 원인이나 이유를 물을 수 없다. 그러나 명령의 내용에 분명치 않은 점이 있을 경우에는 다시 물어 이를 밝힘으로써 실행에 틀림이 없도록 해야한다’고 밝히고 있다.
군인복무규율 제34조는 ‘직권남용 금지’에 대하여, 군인은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직권을 남용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의 제25조는 ‘명령 복종의 의무’관련,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무사령부의 직권남용 재판에서 대령급 이상은 사령관의 부당한 지시에 대해 거부해야 하는 대상으로, 중령급 이하는 상관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더라도 복종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법리를 적용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런 식으로 법 조항이 고무줄처럼 적용된다면 군의 지휘체계를 약화시킬 수있기 때문에, 군에서의 명령과 복종의 대상 및 관계 설정은 심층깊은 논의를 거쳐 보완이 필요하다.
명령과 직무, 직권 등에 대한 다양한 법률조문들이 있는데, 일반인의 시각 또는 일반 군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내용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행동을 결심하기가 쉽지않다.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호한 법률적 관계를 정리하고 문구도 재정비해야한다.
그러지않으면 뜻밖의 피해자가 발생하거나, 명령을 통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인들이 중요한 순간에 머뭇거림으로써 임무완수를 망칠 수있다. 명령을 받을때마다 법적인 유불리를 고민하고 판단하느라 시간을 허비해서는 정상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없다. 왜냐하면 작전의 성패는 시간의 요소에 상당부분 좌우되기 때문이다. 전쟁터는 그렇게 시간이 여유롭지가 않다. 상황도 긴박하다. 판단을 할 수 있는 모든 팩트가 일사불란하게 정리되어 있지도 않다.
모든 군인들이 법률참모를 두거나 개인 변호사를 계약하면서 실시간 군생활을 할 수도 없다.
삶과 죽음이 어우러져있는 참혹한 전장터에서 공격 또는 방어를 지시하는 지휘관의 판단과 명령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될 때, 분명 이대로 가면 부대원 전원이 전사할 수도있는 위험이 분명할 때 과연 부하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대부분의 군인들은 지휘관의 판단과 명령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단 지휘관의 명령을 신뢰하고 복종하였지만, 결국 패배하고 수많은 부하를 잃어버렸을 경우 그 책임은 누가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군인들이 상관의 명령을 받고난 이후 고민하고 주저하는 법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해야 한다. 군생활을 명예롭게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안들로 인해서 군생활 전체의 명예가 무너져버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현재의 군인들 사기도 떨어뜨릴 수있다. 해외 비싼 무기를 사서 들여오는 것보다 군인들의 전투력과 사기를 높이는 것은 자신들의 군복과 임무수행에 대하여 존중받도록 하는 것이다.
2018년 12월 9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세월호 유족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오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의 빈소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photo 뉴시스
임관과정과 군생활 기간동안 충분한 교육이 진행되어 개인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이 되도록 해야한다. 직무와 직권에 대한 명확한 공감대와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어떤 교육을 받더라고 결국 결정적 순간의 선택은 개인의 몫이고 매우 쉽지않을 것이다.
故人이 된 이재수 사령관이 부하들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지켜보며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서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