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전쟁
현 종 헌
평택에서의 나의 글쓰기 작업은 통상 새벽에 눈 뜨면서 시작하여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끝난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생활 리듬이 깨져 버린다. 오후 5시 45분에 시작하여 60분간 방영되는 사극 한 편이 내 작업 시간대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텔레비전 채널을 무심코 돌리다가 맛보기 삼아 보았던 예고편이 화근이었다. 김자점이라는 양반의 야심에 찬 눈빛과 얌전이라는 후궁의 알 듯 모를 듯한 미소에 한순간에 홀려 버렸다. 2013년에 JTBC에서 방영되었던 50회 분을 2016년 1월부터 경인방송에서 재방송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토록 텔레비전 드라마에 빠지게 된 경험은 20여 년 전의 “모래시계” 이후 처음이다. 대한민국 남심(男心)을 저격하며 남자들의 퇴근 시간을 앞당기게 했다는 “모래시계”는 탄탄한 구성과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로 일약 유명세를 탔었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지금 시청하고 있는 “꽃들의 전쟁” 역시 작품 완성도가 높고 잠시도 한눈팔 수 없도록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로 만들어졌는데, 과거에 왜 뜨지 못했는지 궁금했다. 시청권이 한정된 종편 방송이라는 한계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나는 그 드라마에 매달리는 시간이면 즐겁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시간 낭비적인 요소가 되어 짜증스럽기도 했다. 하여, 28회까지는 평택 집필실에서 보고 나머지 22회는 분당 본가에 가서 ‘올레TV’로 다 보았다. 회당 700원씩 하는 유료 시청료가 아깝지 않았다.
학교 임시 소집일이 있는 출근 날을 전후하여 사흘간을 작정하고 시청했다. 버튼으로 화면을 앞으로 당기는 ‘빨리 보기’ 기능이 있었지만 궁궐 처마 사이로 지나가는 실바람 풍경조차 놓칠세라 느긋하게 화면만 지켜보았다. 숨 넘어가기 직전의 왕이 승하하기까지 30여 분 걸렸으나 ‘느림의 미학’은 그 나름의 쏠쏠한 흥밋거리를 주었다.
나는 전회(全回) 시청을 마치고 평택에 내려오면서 운전대를 잡고서도 줄곧 “꽃들의 전쟁” 속에 나오는 명장면과 명대사 들을 회상한다. 나는 ‘좋은 드라마란?’ 하고 자문하고, ‘시청자로 하여금 등장인물 누구의 편에 서지 않게 하면서도 흥미를 주는 극(劇)’이라고 자답한다. “모래시계”에서 친구 사이인 깡패와 검사 모두에게 호감을 지녔듯이 “꽃들의 전쟁”에서도 나는 어느 한편을 지지할 수가 없다. 모두가 자기 몫을 다하고 살다 간 우리 역사의 주인공들처럼 여겨진다.
어느 순간, 차의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아나운서의 경고음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그래, 극중 인물들 모두가 자신의 경로를 이탈하고 있었지. 사랑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하여 그들은 하나같이 악마가 돼 가고 있었어. 만백성을 호령하던 임금조차도 혼을 빼놓은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 나가고 있었던 거야.’
나는 잘못된 길을 가면서 나지막이 웅얼거린다. 그리고 조선왕조표를 떠올린다.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광인효현 …… ”
우리는 한국사 시간에 임금 명의 첫 글자들을 순서대로 모아 별 생각 없이 외우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노라면 글자 하나 넘어갈 때마다 그 안에 숱한 사연과 우여곡절이 담겨 있음을 알면서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꽃들의 전쟁”은 ‘광인효현’이 얽혀 있으면서 ‘인’의 ‘인조 임금’을 중심으로 한 당시 궁궐 내의 권력 다툼 이야기이다.
보통 조선의 왕들은 빈둥거리며 놀고먹던 무능한 존재로 여겨지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의 업적이 꽤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고종의 경우에는, 군함을 사들이면서까지 군사력 증진을 도모했고 일본보다 전차를 2년 앞서 들여올 만큼 신문물 도입에 앞장섰으며 조선이 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해 외교력을 강화했다. 역적 취급 받으며 왕위에서 내쫓긴 광해군도 명과 청 사이에 서서 ‘중립국으로서의 줄다리기 외교’라는 묘안을 짜내며 조선의 존립과 안녕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인조 또한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까지 도망 다니고 한 후궁의 치마폭에 싸여 줏대 없이 굴었을지언정 화폐, 군사, 조세, 토지 등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개혁을 감행하였다. 친명배금정책이란 선택 때문에 후금(나중엔 청나라)으로부터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의 수모를 겪지만 그건 국력이 약한 소국으로서 당한 어쩔 수 없는 환란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인조를 우매한 왕으로만 보는 관점은 그래서 좀 지양해야 될 듯싶다.
인조의 정비인 인렬왕후가 죽은 후 장렬왕후가 새로운 계비가 되고, 후궁으로 소양 조 씨(‘얌전’과 ‘귀인 조 씨’는 同人, 이하 ‘조 씨’로 칭함)가 들어오면서 궁궐 안은 갈등의 바람으로 회오리치기 시작한다. 그 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가족들이 환국하면서 궁중 여인들의 암투는 더욱 격랑에 휩싸인다.
산 정상에서 내려갈 때 조금만 발길을 틀면 하산한 후의 평지 위치가 엄청 달라진다. 팽팽한 기 싸움으로 하루도 안온한 날이 없었던 세 여인들은 권력의 정상 언저리에서 애초부터 하산할 방향을 잘못 잡고 있었다. 장렬왕후(이하 ‘왕후’)는 왕과 한번도 합방하지 못한 채 후사 없이 스물두 살의 젊음을 썩혀 가고 있었고, 민회빈 강 씨(세자빈, 이하 ‘강 빈’)는 꼿꼿한 성품 때문에 시아버지와 반목하면서 왕의 눈 밖에 나 있었으며, 조 씨는 후처 딸로 태어난 서얼 출신이라는 천박한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온갖 수단을 다 부리고 있었다.
세 여인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권력을 자기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까에 쏠려 있었다. 운명적으로 타고 난 비극적인 상황 때문에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각자 헤쳐 나가는 방법들이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모두의 눈가에서는 독기가 흘러내렸다.
여인들은 내방에 갇힌 채 세상의 가장 밑바닥 인생 같은 시기와 음모 속에 살아간다. 그 시대에 오늘날 같은 전깃불이나 스마트폰이 있었더라면 일상이 그런대로 재미있으련만 오직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데만 눈이 멀어 왕 한 사람의 생각과 움직임에 온 촉각을 곤두세워가며 살았으니 가치 있는 인간적 삶이라는 신성함 따위는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었다. 가족이 있어서 상황이 나았을 법한 강 빈조차 자기보다 매우 외로운 처지의 두 여인에게 한 치 물러서지 않으려고 갖은 계략을 짜낸다. 세 여인들에게 패배는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짧은 낮 시간이 지나가고 해가 지면, 그 어두컴컴한 공간 안에 갇힌 채 여인들은 남을 헐뜯는 일에 몰두한다. 백 년 묵은 여우가 어둠 속의 궁궐 내를 휘젓고 다니면서 멀쩡한 인간의 혼에 사악한 기운을 불어 놓고 가는 듯하다. 다시 먼동이 틀 무렵, 여인들은 자기가 모함했던 적이 쓰러졌으면 희열을 느낄 것이고 아직 명이 남아 있다면 적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고 더 심한 공략 법을 궁리할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왕이라 하여 자기 멋대로 세상을 쥐락펴락 했던 것은 아니다. 신하들의 “그리하면 아니 되옵니다.”와 여인네들의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리지 마옵소서.” 소리에 진저리를 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또는, 주변을 맴도는 자객의 검은 그림자나 시시때때로 엄습해 오는 독극물의 위협 속에서 한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열락의 시간을 보냈을 어느 후궁과의 하룻밤도 맘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서서히 진이 빠져 한창 기고만장할 나이에 절명하고 만다.
궁중 여인들은 여염집 아낙네들 같은 평범한 부부애를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세자빈을 책봉할 때 간택 받지 못한 여자들은 평생 시집을 못 가고, 간택 받은 왕비라 할지언정 숱한 후궁들과의 경쟁 때문에 한 남자의 품을 혼자만 끌어안고 살 수 없다. 일찍 남편을 여읜다면 남은여생 동안 독수공방을 지키다 간다. 궁녀들 또한 일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듬뿍 받게 된 조 씨는 나날이 콧대가 높아가고, 왕이 떼어 준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소실의 자식이라는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쓴다. 생모를 정실로 앉히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본부인이 목매 자살하는 비극을 겪지만 죽은 계모에게 눈짓 한번 주지 않는 비정함을 보인다.
상것이라며 자신을 우습게 보는 강 빈과의 불꽃 튀는 암투가 이 사극의 압권이다. 그녀들로 인해 궁궐 안이 피비린내로 진동한다.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친청(親淸)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소현세자의 화친 사상과 부왕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사력을 키운 후 북벌에 나서야 한다는 봉림대군의 척화 사상이 둘 사이의 명운을 가른다. ‘삼전도의 굴욕’(병자호란 패배로 청 태종에게 三拜 올린 사건)을 곱씹던 왕에게 큰아들 소현세자는 돌연 적이 되어 버린다. 며느리인 강 빈까지 왕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터였다.
눈치가 제비 날갯짓보다 빠른 조 씨는 왕으로부터 암묵적 동의를 얻어냈다고 혼자 판단한 후 소현세자를 독살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세 아들과 강 빈의 형제들을 모두 귀양 보낸다.
제주도로 귀양 간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에 위의 둘은 죽고 막내만 살아 돌아온다. “조선왕조실록” 속에서는 원손의 사인을 풍토병이라고 했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극적 효과를 노린 듯 조 씨가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당한다.
그 후, 강 빈이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장면은 눈물겹기 그지없다. 강 빈의 위기는 대부분 조 씨로부터 오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때마다 강 빈은 조 씨의 치맛자락을 부여잡으며 처음엔 자기 목숨을, 나중에는 자기는 죽더라도 자식만큼은 살려달라고 애원 또 애원한다. 남편인 소현세자가 죽은 이후로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절통한 심사를 달랠 길 없다. 시아버지인 왕에게 다시는 맞서지 않겠노라며 화해할라치면 조 씨의 간교함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그녀를 그냥 놔두질 않는다.
궁전 앞마당에 쓰러져 호읍하는 강 빈에게 다가가 조 씨가 위로하는 척하며 손을 내밀자 강 빈은 모른 척하며 외면한다. 조 씨가 이마에 핏줄을 세우며 호통을 친다. “천한 것으로 태어난 내 손이 더러워서 잡지 않으려는 게냐?” 하는 날 선 목소리가 소름을 돋게 한다. 가마 타고 사가로 쫓겨 나가는 강 빈 앞을 가로막고 조 씨가 엄하게 꾸짖을 때도 그렇다. “나라에 죄를 지어 궁궐 밖으로 쫓겨 나가는 폐인이 무슨 호사더냐. 당장 가마에서 내려 걸어가지 못할까!”
십대 중반의 어린 두 후궁을 불러놓고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조차 조 씨의 독설은 멈추지 않는다. “너희는 임금의 씨를 잉태하여서는 안 되느니라. 그땐 내가 너희 배를 갈라서라도 씨를 뺄 것이야.”
참, 궁중 여인들의 시기와 질투는 어디까지가 끝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을 숯불 속에 떨어뜨려 뼈와 살을 태우거나 독사와 전갈이 가득한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 잔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즐기던 중국 은나라 왕의 애첩 이야기가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알아야 할까.
남편과 자식들이 죽고 자기까지 죽음으로 내몰리자 강 빈은 최후의 수단으로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한다. 볼모 시절에 소현세자와 친하게 지냈던 예친왕에게 마지막 남은 셋째아들을 양자로 삼아달라고 서신을 보낸다. 자신은 죽어도 핏줄만큼은 살려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편지는 조 씨의 수중에 들어가고, 그녀는 그 내용을 사악하게 개작한 후 왕 앞에서 공개한다.
“세자가 독살된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원손이 제주도로 귀양 가 암살되었음이 분명하니 그 사인(死因)도 밝혀 달라, 그래서 청나라에게 군사를 보내 달라고 편지를 썼다. 이게 사실이냐?”
왕이 추궁하자 강 빈은 묵묵히 뜸을 들이다가 그렇다고 응대한다. 어차피 목숨 잃을 게 뻔한데 더 이상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놔 봐야 소용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드라마의 묘미를 한껏 더해 주는 장면이다. 거기다가 왕으로부터 죄를 문초당한 후 사약 받는다는 역사적 사실이 조 씨의 음모에 휘말려 죽는다는 각색으로 흥미를 더한다.
강 빈을 구원하려는 상소문이 사방에서 올라오자 노기를 감추지 못한 왕이 “개새끼 같은 것(狗雛: 며느리인 강 빈을 지칭)을 억지로 임금의 자식이라고 칭하니, 이것이 어찌 모욕이 아니겠는가.”라 했다고 ‘인조 실록’은 전하고 있다. 역대 조선의 임금 가운데 이런 막말을 기록에 남긴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궁중의 세 여인은 봉림대군이 즉위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자기에게 유리한지를 자신들만의 셈법으로 살아간다. 강 빈과 조 씨는 오로지 자기 아들이 보위에 오르기만을 꿈꾼다. 왕후는, 강 빈은 자기를 이용하여 세력을 키우려 하고 있고, 조 씨는 언제 자기 목에 칼을 겨눌지 모르며, 봉림대군도 자기를 내칠 게 분명하다며 불안에 떨면서 최선의 길을 찾는다.
드디어 왕이 죽고 봉림대군이 권좌에 오른다. 왕의 유언을 받는 고명대신이 된 신분을 이용해 반란을 도모하던 영의정 김자점의 세력은 일거에 퇴치되고, 조 씨는 선왕의 유언에 따라 살아남게 된다.
최상의 조건을 부여받은 조 씨이지만 주변을 향한 간교한 계략은 타고난 천성인 듯 그 이후에도 끊일 줄 모른다. 왕대비(이전의 ‘왕후’)가 자기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렇다. 민간신앙의 힘으로 왕을 저주하던 조 씨의 사악한 주문 행각은 나인의 밀고로 들통이 나고, 원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왕대비는 사약 받기 직전의 그녀를 궁궐 밖으로 내쫓아 뭇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게 한다.
궁중 여인들의 시기와 질투로 얼룩진 꽃들의 전쟁은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는다.
왕의 후사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서 왕이 봉림대군을 책봉하려 들자 신하들은 왕가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왕과 첨예하게 대립한다. 인조반정으로 새로운 왕을 옹립한 공신들은 권력을 꼭 움켜쥔 채 다른 세력의 침투를 막음과 동시에 신권을 강화시키고자 한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 살자고 하는 행위일 뿐이다. 신권이든 왕권이든 다 부질없어 보인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도가의 철학 사상이 부국강병을 일으키게 했다며 선조들을 기리고 있는데, 조선의 영혼을 지배한 공맹 사상이 내게는 왜 이리 부정적으로만 비쳐질까.
나랑 친하게 지내는 친구 하나는 이런 내용의 사극을 좋아한다. 남을 모함하고, 그 함정을 교묘히 빠져나가고, 빈사 일보직전에 있던 자가 다시 화려히 재기하는 등등의 …… . ‘조조가 전쟁에서 연전연패한다. 군량미까지 바닥나자 병사들은 사기를 잃고 조조를 원망한다. 자칫하면 쿠데타가 일어날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조조는 잔꾀를 쓴다. 심복과 짜고 그에게 누명을 씌운다. 어느 날 심복을 체포한다. 형장에 이끌어 내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군수물자를 착복했다는 죄명으로 참수한다. 군량미가 없어진 이유를 알게 된 부하들은 조조를 재신임하고 다음 전투에서 목숨을 다해 싸워 승리한다. 조조는 자기를 위해 희생한 심복의 삼대 자손까지 후하게 지내도록 대접해 준다.’ 이런 이야기가 곁들여 있다면 내 친구는 더없이 환호한다. 이 사극에는 그런 극적인 장면이 자주 나온다.
내 친구는 등장인물 중에 누구를 좋아할까. 실권자인 왕? 야심가인 김자점? 꾀에 능한 조 씨? 아니면 속셈을 감추고 왕과 세자 사이에서 엉큼하게 줄타기를 하다가 보위에 오르는 봉림대군? 내 친구는 나처럼 그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고, 등장인물 모두를 좋아할 것 같다. 나와 다른 관점이 있다면, 이 사극을 통해 나는 감동을 받는데 반해 그는 교훈을 얻고자 한다.
내가 보기에, 극 중 인물들 대다수가 실리보다 명분에 집착하며 비생산적인 일로 일상을 허비하고 있는 듯하다. 화려한 그들의 삶을 만들어주기 위해 많은 군중들은 신음하면서 밑바닥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허구한 날을 눈부신 환경 속에서 생을 찬미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사대부 집 사람들의 발아래에는 시름에 겨워하는 민초가 있다. 강 빈이 사가로 쫓겨나 오라비들과 당숙 같은 이들이 그녀 곁으로 몰려들어 재기를 논의하는 모습도 내 눈에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던 독소로 보인다.
등장인물들은 너나없이 애국자 행세를 한다. 효종조차 실현 가능성이 없는 북벌 정책으로 자신이 애국자임을 위장한다. 어느 누구든 자기가 하는 일이 모두 나라를 살리는 길이란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툭하면 국가와 국민들을 걸고넘어지는 것과 같다. 예나 지금이나 애국자가 홍수처럼 철철 흘러넘쳐나는데 조국은 왜 이리 국력이 쇠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6⋅25 전쟁의 난리통에 학도병으로 나간 남학생들 중 상당수가 돌아오지 못했어요. 여자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국가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그들에게 정신적 빚을 갚아야 한다고 마음먹었고, 훌륭한 의사가 돼 조국에 봉사하는 것이 그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팔순을 넘기면서까지 병원과 학교 사업을 팽창시키며 과욕으로 비쳐지던 이길여 여사의 부정적인 모습은 애국심 어린 이 한 마디로 아름답게 치장된다.
을사오적의 중심인물인 이완용도 한때는 독립협회를 이끌며 애국심에 불탔다. 극과 극은 일치한다. 애국과 매국은 백지 한 장 차이이다. 이완용의 곁에는 서재필, 최남선, 박영효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그 당시에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자들도 하나같이 애국자 집단이었다.
애국자라고 함부로 칭송할 게 아니고, 매국노라고 무조건 손가락질만 할 건 아니다. 교사들의 극단적인 사고는 학생들로 하여금 그릇된 선입관을 심어주는가 하면, 때로는 과격한 학생 운동의 불씨를 제공하기도 한다.
최근에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 때 여당을 매몰차게 몰아치던 야당 사람들 또한 왜 그리 밉상인지, 극
중 인물들의 행태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부왕을 지엄한 존재로 떠받들어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려는 봉림대군의 모습과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기념 궁전에서 허리를 90도 각도로 구부려 최고의 경의를 표하며 자기를 따르라던 북한 최고 권력자 김정은의 모습이 다를 게 있을까.
인조 역을 맡은 이덕화야 국민 배우로서 거론할 여지가 없지만, 조 씨 역의 김현주는 이 사극으로 인해 그녀가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시청률만큼은 보장된다는 속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칼끝이 급소를 노리는 듯한 극중 김자점의 표정 연기는 말할 나위 없고, 어의(御醫)인 이형익과 내시 상선의 감칠맛 나는 연기도 돋보였다.
특히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상선이 눈빛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거나 “사내구실도 못하는 주제에 …… ” 하는 조 씨의 비아냥거림에도 꼿꼿이 자기 갈 길을 향해 가는 그의 올곧은 자세는 내시의 권력이 어떻게 하여 막강해졌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어진 덕(仁德)을 베풀라는 동네(院)’인 안양시 인덕원에 왜 그런 지명이 붙여졌는지 깊은 뜻을 알만 했다. 인덕원은 조선 시대에 내시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드라마 속의 여인들이 여한 없이 입어 보았을 한복의 오색찬란함이 내 시각의 잔상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현대적 감각에 맞는 배경 음악과 함께 한복의 고운 때깔이 텔레비전 화면을 찬연히 수놓으면 내 눈과 귀가 호강을 한다. 꽃무늬가 들어간 형형색색의 화사한 빛깔을 눈요기하는 것만으로도 가히 궁중 여인들의 생은 풍요로웠으리라.
“상감마마, 소인에게 원이 하나 있나이다.”
“무엇이더냐?”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처럼 살다 가게 해 주옵소서.”
“아무렴, 들어주고말고.”
조 씨는 잠깐이나마 화려한 꽃처럼 살다 가기를 원했다. 허나 권력의 맛을 보게 된 후 그녀는 영원히 지지 않을 꽃이 되기 위하여 자기 아들인 숭선군이 왕위에 등극하기를 꿈꾸었다. 궁전 안에 핏물이 발목까지 차도 이루어지지 않을 그 허망한 꿈을 위해서 …… . 그렇게 그녀는 한껏 개화했다가 흐드러지는 꽃 이파리처럼 짧은 한 생애를 살다 갔다.
조 씨는 당나라 측천무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알고 있었던 걸까.
측천무후는 비천한 가정에서 태어나, 요부의 기질을 발휘하여 후궁이 되었으며 정적이던 황후의 두 다리를 잘라 술독에 담가 죽이면서 독부로 변신한다. 황후를 모함하기 위해 친딸을 목 졸라 죽이기까지 한다. 황제의 어머니로도 양이 안 찼던지 두 아들을 죽여 드디어 본인이 권좌에 오른다.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 황제였던 것이다.
조 씨는 어쩌면 이런 과정을 원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그녀의 손에 권력이 쥐어지리라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꾀로 다스리는 계략은 능했을지언정 포용으로 감싸는 지략이 없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한다.
‘꽃들의 전쟁’을 한자로 표현하면, ‘꽃 화’에 ‘싸울 투’ 자를 써서 ‘화투(花鬪)’이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들이 애국 운동을 할세라 여가 시간을 놀음 문화로 바꾸기 위해 일본인들이 들여와 널리 퍼뜨렸다는 화투. 식민지 백성들의 정신세계를 병들게 할 요량이었다는 화투가 그 옛날 조선의 궁궐 안에서 사랑과 권력을 품 안에 넣기 위해 피비린내를 풍기며 아귀다툼하던 여인들의 모습으로 남아 오늘날 우리 앞에 실상을 드러내었다.
역사 속에 묻혔던 꽃들의 전쟁은 370여 년이 지난 지금 악몽처럼 되살아났다.
어느 두 여인이 꽃으로 환생을 했다. 하나는 궁궐의 온실 속에서 귀하게 키워진 난초였고, 다른 하나는 야생으로 아무렇게나 자라난 들꽃이었다. 바람에 실려 날아다니던 그 꽃들의 씨앗이 뭔가 서로 죽이 맞아 짝짜꿍하더니 거친 들판에서 야합(野合)을 했다. 세상이 망하려는지, 암꽃끼리도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있었다. 한순간에 난초의 족보가 더러워졌다. 이 사실을 안 온실 주인은 자신이 키우던 소중한 동양란이 벼락 맞을 짓을 했다며 진노했다.
두 꽃들은 서로 상대방을 탓하며 주인 앞에서 화투를 벌였다. 그러면서 자기만 주인의 사랑을 받아 궁궐의 온실 속으로 들여 보내지기를 애원했다. 그러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주인은 둘 다에게 물 주기를 중단했다. 양분 공급이 끊기면 바로 꽃이 시들어 버릴 텐데, 이 꽃들은 얼마나 생명력이 끈질긴지 꽃 이파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흩날리면서 무수한 민중의 발굽 아래에 짓밟힐지언정 쉽게 세상과의 인연을 끊지 않는다.
주인은 분신처럼 아끼던 화초를 잃은 슬픔에 겨워 땅을 치며 흐느끼고 있다.
아, 이놈의 꽃들의 전쟁은 언제야 끝이 나려나. 오호! 애재라. 헬조선의 애달픈 현실이여.